kh's IM Leader Interview2015.03.13 16:15

대한민국의 무브먼트를 꿈꾸다 김윤호 우림FMG 대표이사

대한민국의 무브먼트를 꿈꾸다

김윤호 우림FMG 대표이사


우림FMG(Fashion Marketing Group)는 우리나라 굴지의 시계, 주얼리 업체다.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인 파텍 필립(Patek Philippe)과 쇼파드(Chopard)의 국내 독점 에이전트며,
시계 편집매장인 갤러리  오클락(Gallery O' Clock)을 운영 중이다.
지난 2008년에는 독자 주얼리 브랜드인 스톤헨지를 론칭했고, 지난 3월에는 독자 시계 브랜드인 ‘아르키메데스’를 출시했다.
지난 25년간 우림FMG를 이끌면서 문화 기업으로 진화중인 김윤호 대표를 만나 세밀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진행. 한기훈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김윤호 우림FMG 대표이사(이하 김윤호 대표)


김윤호 대표의 방은 자유분방했다. 살짝 든 배신감은 어쩔 수 없었다. 25년 동안 시계와 함께 했다는 이미지 탓에, 시계의 무브먼트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고 깔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우림FMG가 수입하는 수 십여 개의 브랜드 시계 진열대 위에 가득 쌓여있는 서류, 인터뷰를 진행할 테이블 위에도 역시 수많은 서류와 잡지로 가득했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만이 내가 상상했던 김윤호 대표의 모습과 일치했다.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깐깐한 기업의 대표라기보다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아티스트 같은 느낌이 짙게 흘러나왔다. 


광고회사 AE에서 잡지사 광고부 직원으로 일하다가, 시계, 주얼리 수입회사를 차렸다. 아무리 봐도 연관성이 없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결혼을 조금 일찍 한 편이다. 대학생 때 했으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이화여대 앞에서 '메이퀸'이라는 잡화점을 했었다. 그때 취급하던 아이템 중 하나가 시계였고. 당시에는 수입자유화 전이어서 미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시계를 들여와 팔았다. 브랜드 인지도가 없음에도 곧잘 나가는 것을 보고, '메이퀸'을 접은 다음에 본격적으로 시계 브랜드를 수입하게 됐다.

우림FMG가 1989년도에 설립해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했는데,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이 내 기억으로는 1998년 정도부터인 것 같다.
설립한 1989년부터 1997년까지는 우림FMG는 외형적으로는 55억 원 정도 규모의 회사였다. 1997년 IMF가 터지면서 국내 중소형 지방 백화점이 줄줄이 부도가 났고, 우리 역시 도산 위기를 맞이했었다. 수입 회사였기 때문에 타격이 컸다. 당시에는 하루하루 어음을 막는 것이 일이었다.






급격한 반전을 이루는 계기가 있었나?

우리가 엠프리오 아르마니 시계(EMPORIO ARMANI Watch) 브랜드를 론칭하면서부터다. 아르마니 시계를 필두로 다섯 개 유명 브랜드를 연속으로 론칭하면서 1998년 초부터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이 세계적인 브랜드 판매권을 따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1997년에 엠프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가 시계 브랜드를 론칭했다.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이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전문가였던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 친구에게 “회사 소개서와 제안서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그 친구가 대뜸 “시간이 얼마나 있느냐”고 묻더라. 사실 이전에도 해봤고, 실제로 2주 정도 안에 만들었기에, “한 2주 정도?”라고 하니, 그 친구가 크게 웃었다.
그 친구는 “네가 앞으로 8개월 동안 하루에 3, 4시간씩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시간을 내줄 생각이 없다면, 난 도와줄 수 없다”했다. 이해하지 못 했다. 2주에 끝냈던 것이 8개월이 걸렸다. 일주일에 3, 4일을 회사가 끝나면, 7시 30분에 그 친구를 만나 새벽 2, 3시까지 이 작업만 했었다.

8개월 걸린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의 결과는 어땠나?

속도전에 익숙했기에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때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를 잘 만드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지를 배웠다. 이걸로 아르마니를 얻었고, 펜디, 베르사체, 휴고 보스, 버버리까지 이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를 갖고 연달아 국내에 론칭했다. 쇼파드 전까지 우리가 수입했던 7~80개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했던 것 같다. 지금도 우리 회사에서 가장 가치있는 소프트웨어로는 당시 만들었던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를 꼽는다. 

40장의 잘 만든 소개서와 제안서가 우림FMG를 바꿔 놓은 것인가?

하나의 잘 만든 제안서를 갖게 됐다는 의미보다는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게 됐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2010년에는 15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브랜드 쇼파드를 론칭했다. 이 때도 그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가 도움이 됐나?

아니다. 재밌는 것은 4년 전에 하이엔드(최고급) 브랜드인 쇼파드(CHOPARD)의 국내 론칭을 위해 다시 한 번 그 친구와 일을 했다. 사람들은 기존에 만든 걸로 70개가 넘는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했고, 회사 규모도 성장했으니, 자체적으로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그 친구와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돌이켜봐도, 잘한 선택이었다. 하이엔드 브랜드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우리도 조직이 갖춰졌음에도 홍보팀과 함께 만드는데 3개월 반이 걸렸을 정도니까. 결국, 쇼파드 국내 론칭을 성공했고, 이 제안서를 바탕으로 파텍 필립(Patek Philippe)까지도 우리 손에 쥐게 됐다.


차원이 달랐던 하이엔드 브랜드의 평균가격대는 얼마나 되는가?

우리가 수입하는 브랜드의 평균 가격을 살펴보면 대개 200만 원(주얼리 기준)에서 시작해 많이 팔리는 제품의 가격대는 4~500만 원대다. 시계는 주로 600만 원대에서 시작하고, 천 만 원대가 주요 판매 제품의 평균 가격이다. 그런데 하이엔드 제품이라고 불리는 파텍 필립 같은 경우는 3~4,000만 원에서 시작한다.


엄청나게 높은 가격인데, 파텍 필립은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는가?

쇼파드를 비롯해 하이엔드 쪽에서 주얼리와 시계를 잘하고 있는 회사를 꼽자면, 티파니(Tiffany), 까르띠에(Cartier), 불가리(Bulgari), 쇼메(Chaumet) 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파텍 필립은 독보적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분야에서 뭐가 1등이냐고 물어볼 때, 의견이 다르게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25년 동안 이 업을 하면서 수많은 외국 시계 전문가와 브랜드 담당자를 만나서 물어보고 의견을 나눴지만, 백이면 백 모두 파텍 필립이라고 한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최고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브랜드는 드물다.


예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런 가격 차이는 왜 나는 것인가?

여성 시계는 주로 다이아몬드 세팅에 따라 가격이 많이 올라가는데, 남성 시계는 다이아몬드가 아닌 무브먼트(동력장치) 때문에 가격이 올라간다.


이제 시계 마케팅 이야기를 해보자. 이러한 좋은 브랜드 제품을 마케팅하는데,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가.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PPL이 눈에 띈다.

비록 광고 회사에는 2년 정도 밖에 안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광고에 대한 두 가지 철학이 있다. 일단 광고는 광고주가 싫증 내서 자주 바꾸는 것이다(웃음). 나는 지속적인 광고 효과에 대해 믿고 있다. 두 번째로는 기억이 안 나는 광고보다는 욕먹는 광고가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보 담당자들한테, (비도덕적이어서는 안된다) 이슈화할 수 있게 밀어붙이는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실제 우리는 광고의 상당 부분을 매체 광고로 진행한다. 대부분 수입 브랜드를 했기 때문에 본사 광고 필름을 받아서 집행하는 편이다. 자체 주얼리 브랜드인 ‘스톤헨지’를 론칭하면서부터는 오프라인 매체에서 온라인 매체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PPL로 큰 효과를 본 브랜드는 무엇인가?

‘로즈몽(Rosemont)’이라는 브랜드다. 2012년에 방영한 드라마 KBS2 <넝쿨째 굴러 온 당신>에서 김남주 씨가 착용했던 시계로 유명하다. 우리가 이 브랜드 제품을 수입할 때만해도 한국에서 아는 사람의 거의 없었던 브랜드였다. 드라마 방영 이후 이 시계가 팔리기 시작하는 데 그 속도가 놀라울 정도였다. PPL 효과를 제대로 실감했던 제품이었다.

국내에서 명품 시계 브랜드 마케팅은 어떤 형식으로 이뤄지는가?
명품 브랜드는 광고 가이드라인이 명확하다. 온라인보다는 신문과 잡지 중심으로 진행한다. 명품 시계 브랜드에서만 하는 것이 있다면 VVIP 마케팅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퍼스널 서비스를 하는데, 쇼파드 같은 브랜드는 1년에 한 번 정도 약 300억 원어치의 물건을 가져와 고객들이 퍼스널 쇼핑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가져오는 물량 중에서는 최소 5~15억 원 정도의 매출이 일어난다. 또한, 쇼파드는 칸 영화제 메인 스폰서기 때문에 VVIP들과 세일즈팀, 브랜드 매니저들이 함께 직접 칸 영화제에 가기도 한다.

현재 한국 시장의 트렌드는 어떤가?
25년 전 이 사업을 시작할 때는 한국 시장에 패션 시계가 알려질 즈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패션 시계의 정의는 아무리 고가라고 해도, 모 브랜드가 패션이라면 패션 시계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샤넬에서 시계가 나오면 패션 시계다. 다만, 패션 시계의 하이엔드일 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스와치는 모 브랜드가 패션이 아니므로 정통 시계(트래디셔널 시계)라고 할 수 있다. 1989년부터 2008년도까지 한국은 패션 시계 중흥기였다. 2009년 이후부터는 패션 시계 성장률은 둔화되고, 정통 시계 성장률이 상승하고 있다.

세계 시계 시장은 해외 브랜드가 지배하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림FMG가 최근 자체 시계 브랜드 ‘아르키메데스’를 론칭했다. 왜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나.
글로벌 시계회사와 경쟁하려면 자체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980년대 시계 산업을 이끌었던 한국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높이자는 것도 있다. 4년 전부터 자체 브랜드를 준비했다. 200만 개가 넘는 시계를 팔면서, 많은 시계를 봤기 때문에 남의 시계를 잘 골랐던 눈으로 우리가 만든다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2년 전부터 전문인력과 함께 브랜드 개발부터 디자인, 제조까지 모두 우리가 했다.

아르키메데스의 세계 시장 진출을 기대해도 좋은 것인가?
‘아르키메데스’라는 브랜드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출시하려는 브랜드가 몇 개 더 있다. 그것 중 하나가 '독파이트(Dogfight)'다. 전투기의 ‘공중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표권을 전 세계 50개국에 등록했다. ‘아르키메데스’는 요즘 트렌드에 맞춰서 스포츠형 시계부터 클래식 형 시계까지 모두 갖춘 브랜드라면, ‘독파이트’는 파일럿과 관련한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브랜드다 2016년 4월에 론칭할 예정이다. 그보다 앞서 내년 초에는 홍대 근처에 편집숍을 연다. 이 숍에서는 다섯 개 브랜드를 동시에 선보일 예정이다. 우림FMG가 패션 마케팅 그룹으로 나가는 초석을 마련하는 셈이다.

이제 우림 FMG가 그리는 미래를 정리해 볼 때가 됐다. 시계, 주얼리, 영화, 레스토랑을 모두 포괄하는 최고의 패션 마케팅 그룹을 넘어서는 어떤 미래를 생각하는가?
첫 번째는, 올해 7만 개의 시계를 자체적으로 디자인에서 생산까지 한다. 2015년에는 최소 20만 개가 넘을 것으로 본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우리가 세계적인 라이선스 회사인 파슬(Fossil)과 경합을 벌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5년 안에는 시계 제조를 위한 케이스와 밴드를 만드는 공장 건립을 준비 중에 있다. 자체 생산이 20만 개 가능하면 공장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이 공장을 짓게 되면, 한국 시계 산업의 부활을 알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계획은 시계를 수입해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한국 시장에 대한 빚을 갚고 싶은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케터와 젊은이에게 그들의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 한마디 부탁한다.
마케팅이라는 것은 마케팅하고자 하는 제품의 팩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제품의 본질과 시장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마케팅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테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이는 마케터를 비롯해 모든 젊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이 남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으면 난 그 사람이 노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남이 잘하는 것을 나와 다르다고 여기는데, 우리 역시 큰 회사에도 많은 것을 배우지만, 작은 회사에도 많이 배운다. 다른 이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 큰 공부다. 그게 진화다. 

Posted by KH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