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9.07.14 '빌 번벅' 이야기 5
  2. 2019.07.14 '빌 번벅' 이야기 4
  3. 2019.07.14 '빌 번벅' 이야기 3
  4. 2019.07.14 '빌 번벅' 이야기 2
  5. 2019.07.14 '빌 번벅' 이야기 1 (2)
kh's thought2019.07.14 23:40

폴크스바겐 2 

“그들은 우리에게 유태인 도시에서 나치의 차를 팔아 달라고 했죠.Doyle Dane Bernbach폴크스바겐을 영입할 때쯤 Doyle Dane Bernbach에 합류한 아트 디렉터 조지 로이스의 말이다. 2차 세계대전의 기억이 희미해지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였다. 그리고 폴크스바겐은 나치 독일과 히틀러의 이미지가 짙게 베어 있는 자동차였다. 그런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가장 대표적인 유태인의 도시인 뉴욕에서 팔아 달라는 요청인 것이었다. (물론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이다) 게다가 당시의 미국은 ‘큰 것이 좋다’라는 생각이 널리 퍼진 나라였다. 건물도 크게 짓고, 길도 크게 만들고, 가전제품도 큰 것이 잘 팔리는 시대였다. 그리고 자동차는 가장 대표적으로 큰 것이 선호되던 시기였다.

폴크스바겐 입장에서는 해결해야 할 여러가지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빌 번벅폴크스바겐 차를 있는 그대로 보았다. 정직하고, 단순하며, 믿을 수 있고, 다른 미국 차 하고는 다른 차로 본 것이다. 그리고 빌 번벅은 광고 역시 그런 방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팎으로 자동차 광고의 대세에 따르라는 압력이 대단했으나 빌 번벅의 저항은 더 대단했다. 빌 번벅은 계속 다음과 같이 말했다. The product. The product. Stay with the product.

Doyle Dane Bernbach
폴크스바겐 비틀 광고 캠페인에는 뛰어난 광고가 한 둘이 아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두 편의 광고를 소개한다. 하나는 ‘Think Small 편이고 다른 하나는 ‘Lemon’ 편이다. 카피라이터인 줄리언 쾨니히가 헤드라인으로 Think Small을 뽑아냈을 때 아트 디렉터인 헬무트 크론은 큰 감흥을 느끼진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비틀을 광고의 좌상단에 작게 처리해서 배치하고 헤드라인은 Think Small이었다. 작게 생각해라, 작은 것을 생각해라 등으로 해석되는 카피다. (훗날 Apple의 ‘Think Different카피는 똑 같은 구조로 폴크스바겐 비틀의 광고에서 영감을 받았음에 분명하다고 본다) 이 광고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았었다. 대형승용차가 휘젓고 다니는 나라에서 작게 생각하라고 소비자를 고무시킨 것은 대단한 역발상이었다.



Lemon
이란 헤드라인의 또 다른 비틀 광고는 매우 도발적이다. 레몬은 속어로 불량품을 뜻한다. 멋진 폴크스바겐 비틀 자동차 비주얼 위에 ‘불량품’이라고 헤드라인을 처리한 것이다. 카피라이터 줄리언 쾨니히는 바디카피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 폴크스바겐은 품질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자동차 앞좌석 글러브 박스 위 크롬 스트립에 손상이 있어 교체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론은 이렇게 정리했다. 레몬은 저희가 가져가고 자두(Plum 가장 좋은 부분을 의미하는 속어)만 여러분께 드릴 것입니다.

이 폴크스바겐 이야기는 완전히 고전이 되었다. 원대한 꿈을 가졌으나 돈은 별로 없고, 그러나 자신의 훌륭한 제품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Doyle Dane Bernbach의 문을 두드린 그런 광고주의 이야기다. 그리고 Doyle Dane Bernbach의 이 폴크스바겐 캠페인은 자동차 광고 역사상 참 특이한 광고이고, tone, 스타일, 위트, 불손한 태도는 역사상 그 어떤 광고 보다 수없이 모방되고, 오해도 받고, 찬사도 받았다.

폴크스바겐 캠페인은 20세기 최고의 광고캠페인으로 꼽힌다. 극복하기 엄청 어려운 문제들을 크리에이티브로 해결해냈기 때문이다. 위대한 광고는 위대한 솔루션이다.

(매드 타임스 기고 칼럼)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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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07.14 23:26

폴크스바겐(1)

성공한 광고회사 뒤에는 성공한 캠페인이 있다. 레오 버넷의 말로보, TBWA의 앱솔루트 보드카, 맥켄 에릭슨의 코카콜라, Wieden+Kennedy의 나이키 등이 그런 케이스다. 그런데 DDB의 폴크스바겐 캠페인이야 말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스토리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Doyle Dane Bernbach (1986DDB Needham으로 이름이 바뀌고 90년대에 DDB로 다시 바뀌었다)폴크스바겐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폴크스바겐 비틀이 미국에서 팔리기 시작한 것은 1949년로 수입회사가 이 해에 단 2대를 판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2년에는 610대가 판매되었다. 1955, 폴크스바겐 본사에서 직접 미국 내 판매회사를 설립하고 나서부터 매출이 급속히 신장한다. 1958년에는 비틀 79,038대를 판매하는 등 크게 성공하기 시작한다.

1959년 초, 폴크스바겐 미국 판매 법인의 젊은 사장 (당시 30대 중반) 칼 한 (Carl H. Hahn)폴크스바겐 비틀의 광고대행사를 찾기로 결정한다. 뉴욕 매디슨 애비뉴는 환호했다. 연간 75만달러 예산에 특이한 자동차를 광고주로 영입하기 위해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매디슨 애비뉴는 주요 광고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뉴욕 맨해튼은 거리 이름으로 미국 광고계를 의미한다) 칼 한 사장은 3개월 동안 4천 명이 넘는 광고인을 만나며 고심했지만, 그다지 만족하지 못했다. Doyle Dane Bernbach를 칼 한 사장에게 소개하고 추천한 것은 폴크스바겐 대리점 중의 하나인 퀸즈보로 모터스의 아더 스탠튼이었다. 그는 이전에 Doyle Dane Bernbach가 만든 Ohrbachs 광고를 보고 감동받아서 그의 자동차 대리점 오픈 광고를 Doyle Dane Bernbach에게 의뢰했었고 그 결과에 만족했던 사람이었다.

Doyle Dane Bernbach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칼 한 사장은 지난 1년간 미국에서 발행되는 웬만한 신문, 잡지는 뒤져서 마음에 드는 광고물을 클리핑하고, 그 광고물들을 제작한 대행사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오려낸 광고의 70%가 작은 광고대행사인 Doyle Dane Bernbach의 작품임을 알아냈고, 이 회사가 고려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칼 한 사장은 Doyle Dane Bernbach를 방문하여 회사의 과거 실적, 현재의 크리에이티브, 광고주 담당 자세 등을 듣고 본 후 감명을 받는다. Doyle Dane Bernbach는 칼 한 사장이 방문했던 다른 대행사들과는 달리, 폴크스바겐을 위한 크리에이티브는 제시하지 않고 단지 진행 중인 기존 클라이언트의 작품만을 보였을 뿐이었다.

1959 4폴크스바겐과 Doyle Dane Bernbach의 파트너십이 공표되었다. 최종 광고대행계약서의 서명은 1960년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때부터 세계 광고계에 큰 혁명을 가져오게 되는 폴크스바겐 비틀 캠페인이 시작이 된다. 미국 크리에이티브의 최고 황금기인 60년대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이번 글은 박현주님의 저서 ‘딱정벌레에게 배우는 광고발상법’에서 많은 부분 발췌, 인용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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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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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07.14 23:05

 

빌 번벅’은 기존 고객에게 최고의 작품으로 성과를 올려주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개발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종종 말해 왔다. 오랜 기간에도 실제 클라이언트라고는 Ohrbachs 하나뿐이었지만, 빌 번벅’은 경쟁 피티에 껴들어가지 않았다. 대신에 ‘빌 번벅’은 동료인 Ned Doyle, Joe Daly 등과 함께 기존의 사례, 작품들을 가득 갖고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찾기 위한 미팅을 만들고 다녔었다. 1970년까지 이런 불안정한 영업활동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Doyle Dane Bernbach 2 8천만 달러의 빌링 실적을 올리게 된다. 오늘의 광고회사 리더들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철학이자 전략이 아닐까?

Doyle Dane Bernbach
는 오랜 기간 클라이언트라고는 Ohrbachs 하나뿐이었다. 1957년이 되어서야 Doyle Dane Bernbach는 이스라엘 항공사 El Al Israel을 새로운 클라이언트로 영입한다. 당시 미국과 유럽을 항공편으로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El Al Israel 항공은 첫 번째 선택이 아니었다. 아니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항공사였다.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 잘 알려진 항공사가 대행사를 찾았다면 Doyle Dane Bernbach가 선택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확실한 철학과 실력을 가진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의 만남이었다.


이 클라이언트를 위한 첫 작품은 “torn ocean”이었다. 빌 번벅 광고의 빛나는 샘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광고는 단 한 차례 집행되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엘 알 항공은 결코 많은 광고비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수년에 걸쳐서 엘 알의 광고는 다른 어떤 항공사 광고 보다 더 주목 받았고, 칭찬을 들었고 사랑을 받았다. 부자 경쟁자들의 어떤 광고보다도. 그리고 이는 매출로 입증되었다.

뛰어난 크리에이티브와 남다른 광고주 개발 전략을 가진 Doyle Dane Bernbach 시대가 막 열리기 시작했다.
(
매드타임스 기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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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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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07.14 22:56

빌 번벅 이야기 2

 빌 번벅’이 "그레이 애드버타이징"의 오너 대표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그레이의 경영층은 ‘빌 번벅’에게 빠른 답변을 보내지 못했다. 한편 '빌 번벅'은 같은 회사의 AENed Doyle과 신뢰를 쌓아 간다. 또한 Ned Doyle Maxwell Dane이라는 소규모 광고회사의 사장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는 뉴욕 맨해튼 Medison Avenue의 한 건물 펜트하우스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던 것이다.

1949 6 1일 그들은 ‘Doyle Dane Bernbach 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그들의 첫 클라이언트는 Ohrbachs 백화점이었다. Ohrbachs Grey Advertising에서 ‘빌 번벅’이 담당하던 클라이언트였다. 이 클라이언트의 오너인 Mr. N. M. OhrbachDoyle Dane Bernbach의 첫 광고주가 됨과 동시에 Doyle Dane Bernbach의 광고 스타일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빌 번벅’은 Ohrbachs 이사회에도 참석하는 관계가 된다. 빌 번벅’이라는 강철은 Ohrbachs라는 대장간에서 단련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의 평생에 만든 효과적이고 사람을 사로잡는 광고들 역시 이때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빌 번벅’의 광고 도움으로 Ohrbachs는 촌스러운 동네의 촌스러운 패션 가게에서 저가격 고품질의 하이패션 부티크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Ohrbachs는 록펠러 가의 사람들과 같은 이들을 유혹하고 잡지에서 하이패션 커버 스토리로 다룰 만큼 성장했다.

당시의 Ohrbach’s 광고는 지금 보아도 훌륭한빌 번벅표 광고이다.

(매드타임스 기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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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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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07.14 22:32

빌 번벅이야기 1

 

세계적인 광고인들 중에 많은 사람이 DDB의 창업자인 빌 번벅 (Bill Bernbach)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혁명을 가져온 풍운아였다. 이번부터 몇 차례에 걸쳐서 빌 번벅과 그가 만든 에이전시인 Doyle Dane Bernbach (DDB) 이야기를 적어 본다.

내가 빌 번벅의 이야기를 쓰는 배경을 설명하자면, 1983년 대홍기획의 신입사원 시절 나는 대홍기획과 DDB, 그리고 일본 제일기획 (다이이치기가쿠) 3사간의 업무제휴 관련 업무에 참여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Doyle Dane Bernbach란 회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1989년부터는 매우 긴밀한 관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관계로 발전하였다.

빌 번벅은 광고 크리에이티브에 혁명을 가져온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는 Art Copy를 결합시킨 사람이다. 지금은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 이전의 광고는 이 두 요소가 결합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내가 사원시절 대홍기획에도 카피실이 따로 있어서 기획-카피-그래픽이나 영상의 흐름으로 업무가 진행되기도 했었다.) 많은 광고 전문가들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이 광고의 첫 혁명을 가져왔고 빌 번벅의 크리에이티브 혁명이 2차 혁명이고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구글이 주장하는 ‘Art, Copy & Code’가 세 번째 혁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빌 번벅과 그가 만든 광고회사인 DDB에 의해 광고의 황금시대가 펼쳐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폭스바겐 비틀 캠페인은 특히 두고두고 이야기되는 광고의 고전이 되었다. (이 캠페인 시리즈만을 다룬 책이 있다. ‘딱정벌레에게 배우는 광고발상법’ 박현주 나남 출판사)

빌 번벅은 (정식 이름은 William Bernbach) 1911년 뉴욕 브롱스의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미들 네임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빌 번벅은 NYU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동시에 음악, 경영, 철학 등도 공부했다. 그리고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 영리하고 똑똑한 청년이었지만 외모는 왜소하고 낯 빛은 창백했으며 운동에는 재능이 없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1932년 무렵은 대공황이 절정일 때였다. 빌 번벅은 어떤 회사의 우편물 담당 서무로 취직을 했다. 그 이후 몇 가지 일과 군대 복무를 마치고 그는 유명한 광고회사인 Grey Advertising에 입사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카피라이터, 수석 카피라이터, 부사장 제작본부장 등으로 초고속으로 승진을 하였다. 그러나 광고 비즈니스의 본질을 고민하면서 Grey Advertising의 오너 대표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그 편지의 후반 일부를 인용해 본다.

"만일 우리가 발전을 원한다면 우리는 차별화된 특성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철학을 가져야 하며, 그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철학이어서는 안됩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냅시다. 세상에 뛰어난 감각과 뛰어난 그래픽, 뛰어난 카피가 높은 매출로 이어진다는 것을 증명해 보입시다." (매드타임스 기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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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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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표님, 칼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진정성의 힘을 다시금 배웁니다.

    2019.07.15 13:2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