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s thought2019. 8. 31. 22:44

키이스 라인하드가 시카고 소재의 Needham Harper Worldwide CEO로 있던 1980년대는 미국 경제가 많이 어렵던 시기였다. 경제가 어려우면 광고계는 더 크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1982 Needham Harper의 경영을 맡게 된 키이스 라인하드는 회사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말했다. “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 16위입니다. 내가 보기에 광고산업은 앞으로 두 계층으로 나뉠 것입니다. 언제나 활력이 있는 기반층은 부티크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예닐곱개의 거대기업이 상위층을 형성할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중간입니다. 우리의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마크 턴게이트의 책 <애드랜드>에서 인용)

키이스 라인하드는 당시 BBDO의 대표였던 앨런 로젠샤인과 함께 자주 만나며 업계 현안에 관한 논의를 하였는데 이 논의가 합병관련 대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두 리더는 1982년 작고한 빌 번벅을 크게 존경하고 있었고, 이런 생각은 빌 번벅의 아들인 DDB의 존 번벅을 대화에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서 1986년 광고계의 ‘Big Bang’이라 불리우는 Omnicom Group이 탄생하게 된다. BBDO, DDB, Needham Harper 3개사 합병에 의한 옴니콤 그룹의 결성은 광고계는 물론 미국 경제계에도 큰 뉴스로 부각되었다. 옴니콤은 당장 세계 최대의 광고회사가 되었고, 이후 WPP 그룹 등 광고회사 지주회사의 효시가 되었다.

세 개의 회사가 뭉쳐서 만들어진 옴니콤은 두 개의 글로벌 광고회사 네트워크로 개편된다. BBDO Worldwide DDB Needham Worldwide. DDB Needham Harper간에는 이전에도 합병 논의가 있었다. 빌 번벅은 생존 시에 Needham Harper의 대표 폴 하퍼와 만나서 두 회사가 크리에이티브를 존재의 이유로 하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 존중해 가며 합병 가능성을 타진했었다. 키이스 라인하드는 합병된 DDB Needham Worldwide의 수장을 맡게 되었고 앨런 로젠샤인은 지주회사인 옴니콤의 대표가 되었다. 이 합병으로 큰 시너지가 발생했다. 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고 클라이언트나 미디어와의 협상에서도 업계 1위의 이점을 최대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부수적으로 오퍼레이션 파트나 해외 부문에서의 중복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강점도 있었다.

단점은? 물론 있었다. 뉴욕을 근거로 한 DDB와 시카고에 근거를 두고 미국 중서부의 감성을 가진 Needham Harper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이런 기업 문화에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키이스 라인하드는 회사의 대표로 뉴욕의 오피스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시카고 오피스에도 여전히 자기 사무실을 유지하며 더 편안하게 느끼곤 했다. 실제로 시카고 오피스가 뉴욕 오피스 보다 인원도 더 많고 수익도 더 많이 내는, DDB 그룹 내 넘버 원 오피스였다.

1986년의 옴니콤 결성으로 시작된 지주회사 중심의 광고계 질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옴니콤, WPP, 인터퍼블릭, 푸블리시스 등 커뮤니케이션 인더스트리의 자이언트들이 언제까지 힘을 발휘할지 궁금해진다. 새로운 질서를 위한 변화는 과연 시작된 것인지, 그 변화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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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 8. 31. 22:31

(매드타임스에 연재하는 칼럼을 개인 블로그로 옮긴다.)

 

지난 세 달 여 기간 동안 ‘빌 번벅 이야기’를 총 12회에 걸쳐서 정리해 봤다. 이제 적는 이야기는 바로 그 다음 세대 이야기이고 그 중심 인물이 바로 키이스 라인하드(Keith Reinhard). 키이스 라인하드 1986년 광고업계 최초로 3개 광고회사를 통합해서 옴니콤을 만든 주역이고, 90년대 DDB의 부흥을 일궈낸 주역이다. 흔히 그를 ‘The Last Mad Man’이라고 부른다.

내가 키이스 라인하드를 처음 만난 것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던 DDB Needham Worldwide Creative Directors Conference였다. 첫날 저녁 다뉴브강의 유람선에서 컨퍼런스 전야 식사 모임을 갖는 중 그는 내게 다가와서 불편한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나를 데리고 다니며 여러 명에게 소개해 주었다. 한국에서는 혼자 참석한 자리였고 첫 글로벌 컨퍼런스라서 어색함 속에서 긴장한 내게는 정말 고마운 회장님이었다.

키이스 라인하드는 미국 중서부 인디애나 주의 시골에서 성장했다.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못했던 그는 홀어머니의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일을 도왔다. 가게 안에는 많은 상품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는 그 포스터를 보며 드로잉을 하곤 했다. 그리고 통신으로 커머셜 아트를 공부했다. 그리고 커머셜 아트 스튜디오에서의 인턴 생활을 거쳐서 나중에는 시카고의 대형 아트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 마침내 시카고 대형광고회사인 Needham Louis & Brorby에 취업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트로 지원했는데 카피라이터로 뽑혔다는 것이다. 언젠가 키이스 라인하드 회장이 사석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카피라이터로 일을 시작하면서 첫 과제는 States Farm 보험회사의 라디오 광고 카피였다. 이후 Mars candies, Johnsons Wax, Morton Salt, Hasbro Toys, General Mills 등의 브랜드를 담당했다. 카피라이터 생활 초기에 코믹한 광고 카피를 쓰는 과제를 받아 들고는 도무지 어찌할지 알 수가 없어서 부서장급 카피라이터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 부서장은 키이스 라인하드에게 “쓰고 쓰고 또 써 봐라. 그리고 자기 카피를 자기가 읽으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것이 나오면 그것을 갖고 와라”라고 말해 주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코믹한 카피를 잘 쓰는 카피라이터로 알려졌다고 웃으며 말했었다.

키이스 라인하드는 크리에이티브 수퍼바이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승진했고 초대형 클라이언트인 맥도날드의 경쟁 피티를 리드하며 승리하였다. 이때 만든 맥도날드 캠페인의 테마라인인 “You Deserve a Break Today”는 키이스 라인하드의 대표적인 작품이 되었고 20세기를 대표하는 광고 중 하나로 기록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카피였다.


1971년 맥도날드 광고주 경쟁피티에서 승리한 후의 Needham 에이전시 핵심 멤버들, 좌측에서 세번째가 키이스 라인하드 출처 : 매드타임스(M@D Times)(http://www.madtimes.org)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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