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s IM Leader Interview2018. 6. 22. 14:05

대한민국 광고산업 다시 보기 남상조 前한국광고단체연합회 회장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표현이 감히 아깝지 않은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주변에서 그런 분을 만나기란 더더욱 어렵고 말이다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 광고가 아직 산업으로서 본격적인 성장을 이루기도 전의 모습이 그래서 기자에게는 마치 TV를 통해 보는 옛날 이야기와도 같았다. 국내 최고의 광고회사로 손꼽히는 두 회사제일기획을 처음 만들고, 대홍기획의 첫 대표이사를 역임한 남상조 전 한국광고단체연합회 회장을 만나 우리나라 광고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를 들었다.      

. 전찬우 기자 jcw@websmedia.co.kr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주디

   

·         페이스북Q. 우리나라 광고 산업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오셨는데, 사실 처음부터 광고 분야에서 일을 하신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보면 광고와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연세대학교 학부 재학시절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관심이 많던 상경계열 분야의 수업을 들으며 한 때는 학자를 꿈꾸기도 했었다. 군대를 다녀와 1963년 즈음이 됐을 무렵, 그때만 해도 국영 기업 몇 곳을 제외하고 나면 취업할 회사가 많지 않았는데, 처음 시험을 봤던 은행에 합격해 신문 하단에 이름까지 실렸었다. 그런데 당시 시험을 봤던 삼성그룹에서도 합격 통지를 받게 돼 삼성에 입사하게 됐다. 어찌보면 경제학, 회계학을 공부했던 전공을 좀 더 살린 셈이다. 대구에 있는 제일모직 공장, 부산에 있는 제일제당 공장에서 한 달씩 실습을 마치고 제일제당 경리과에 배치를 받았고, 2년여 정도 제일제당에서 일을 하게 됐다


Q.
그러던 도중 중앙일보 동양방송에서 근무를 하시게 됐습니다. 얼핏 생각해봤을 때 두 회사의 연결고리가 잘 떠오르지 않는데요, 어떤 일을 하시게 된 건가요?

1964
년 라디오 서울방송, 동양방송 TBC의 개국 이후 1965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립자를 창업주로 중앙일보가 창간됐다. 그리고 같은 해 겨울 중앙일보·중앙라디오·중앙TV 통합 운영으로 전환되며 중앙 매스컴 센터가 형성됐다. 갓 입사 3년차 무렵이었는데, 그곳으로 발령이 났다. 아무래도 이병철 회장과 동향에 우리 집안도 잘 알고 계셨던 만큼 믿고 맡겨주신 것 같다. 중앙일보의 초창기 인력을 구성하는 일부터 모든 일이 내 손을 거쳐 진행됐고 직원 수가 1000여명 가까이 되는 등 완전한 매스컴 센터로 발전하게 됐다. 또 이곳에서 기획실 실장이 됐을 때는 국내 최초로 전산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Q.
그렇다면 중앙일보 동양방송에서 본격적으로 광고 분야 업무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기획실장을 지내며 매달 경영실적과 관련해 이사회에 참석했는데, 그러던 중 한 번은 이병철 회장의 지시로 언론사 경영 체제를 배우러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언론사의 광고, 수입 관계 등을 보고 배웠고, 출장을 마치고 리포트를 작성해 회사에 제출했는데, 이를 계기로 광고 분야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사실 광고 관련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고,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에 고사를 하려 했으나 계속되는 권유에 광고국장을 맡게 됐다. 매스컴 센터 구축 이후 신문사의 수입 구조에 제일 고민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광고 시장이 약 200억 원 규모였는데, 그 중 신문이 약 40% 비중을 차지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워낙 기존 신문사의 영향력이 컸는데, 광고국장이 되고 제일 먼저 이 세 곳의 광고국장들과 관계를 맺었던 걸로 기억한다.   


Q.
그러던 중 제일기획 설립에 참여하시게 됐습니다. 여전히 우리나라 대표 광고회사로 꼽히는 제일기획은 처음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요?  

제일기획 역시 어느 날 다시 한번 일본 출장을 다녀오라는 이병철 회장의 지시에서 시작됐다. 미리 연락이 닿아있던 일본 광고회사 ‘다이이치기카쿠’를 견학하며 광고 전반에 대해 배웠고, 여러가지 관련 자료를 모았다. 그 이후 출장에서 돌아와 그룹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에도 삼성그룹은 제일모직, 제일제당, 삼성전자 등 자체적인 광고주가 있고, 매스컴 센터 기반의 매체 또한 보유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최초에 그룹사 말고도 유한양행, 종근당, 롯데제과,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이 제일기획의 주주로 참여했다. 당시 중앙일보 3층 식당에서 열렸던 발기인회의에서 직접 브리핑을 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이때부터 중역을 맡았다. 불과 삼성그룹 입사 9년만의 일이었다. 그렇게해서 중앙 매스컴 센터 광고국 직원 일부, 그룹사 선전과 직원 일부, 그리고 주주사에서 일부가 모였고 약 30여 명이 을지로 쌍용빌딩에서 1973 1, 제일기획을 시작하게 됐다


Q.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절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제일기획의 초창기 업무는 어떤 형태였나요?

당시 우리나라 광고주들에게는 ‘광고회사’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광고주를 섭외하러 다니며 우리에게 광고를 맡기라 설득하는 일보다는 광고회사가 왜 존재하고,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처음부터 설명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출간된 광고 책자도 번역해 가지고 다니며 매체의 성격, 소비자 성향 등에 맞춰 광고 집행을 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알렸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나라 광고시장 매출에서 100억 원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광고 전체의 50% 정도 규모였기에 사실 처음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는데, 제일기획에서 나올 즈음 됐을 때는 달성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Q.
그렇다면 제일기획이 처음 문을 열던 그 무렵, 국내광고회사는 거의 없었던 건가요?

제일기획이 처음 생길 때도 몇 개의 광고회사가 존재하긴 했다. 합동통신사라는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뉴스를 직접적으로 배포하지만 그때는 통신사를 통해서만 배포할 수 있었다. 합동통신사는 두산그룹 계열이었다. 계열사로 오비맥주도 있고 언론사를 상대하다 보니 광고 부서를 만들게 됐는데, 이게 나중에 오리콤이 됐다. , TBC가 제일기획을 만들었다고 본 MBC는 연합광고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연합광고는 나중에 MBC애드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밖에도 나라기획, 애드코리아, 현대기획 등이 있었다


Q.
이후에 그룹사에서 중역을 지내신 뒤, 뜻밖에도 대홍기획의 첫 사장이 되셨습니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제일기획 시절 한번은 회장님 브리핑을 하다가 ‘광고 업무에서 3년만 고생하라 하셨는데, 벌써 7년이 지났다’고 말씀 드렸더니, 당장 그 해 연말 중역 인사이동 때 삼성전자 전무로 발령이 났다. 이제 광고와의 인연은 끝이 났나 보다 하고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에서 본연의 관리 업무를 맡았다. 시간이 지나 1983년도에 그룹 세대교체 시기가 왔고, 나도 회사를 그만뒀다. 우리나라 제1회 회계사시험에서 합격했던 터라 회계법인을 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롯데그룹에서 광고회사를 만드는데 이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개인적인 고민과, 회사 윗분들께 말씀드리는 등의 시간이 지나고 1983 10월 대홍기획 사장으로 거취를 정하게 됐다. 당시 광고회사가 굉장히 많이 생겨났는데, 우리나라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광고 물량도 늘어 성장이 아주 빨랐다. 그 무렵 시청률 조사, 시청자 조사, 계층 조사 등 관련 연구도 시작됐다


Q.
대홍기획의 설립 배경도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4촌 동생으로, 대지라는 옥외광고회사를 운영하는 윤명의 회장이 있었다. 대지는 당시 전신주에 달아 매는 광고권을 갖고 있었는데, 롯데제과의 광고를 많이 유치했다. 이런 비즈니스를 바탕으로 롯데그룹과 자주 소통하던 윤 회장이 광고회사 설립을 제안했고, 소비재가 많은 롯데가 대홍기획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윤 회장이 대홍기획 회장으로 오고 경영자를 찾던 중 제일기획을 만든 경험이 있고 신문사 광고국장도 지냈던 내게 연락이 오게 돼 내가 대홍기획의 첫 대표이사로 부임하게 됐다


Q.
대홍기획 초기 시절, 외국 광고회사와의 교류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곳이었나요?

대홍기획 설립 후, 신격호 회장이 당시 일본 롯데의 광고를 담당하던 다이이치키카쿠 사카이 사장에게 롯데가 한국에 광고회사를 만들었다고 자랑을 하며 한국에 가면 한 번 만나 보라고 추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카이 사장이 한국을 방문했고, 대홍기획의 윤명의 회장과 내가 직접 만나 업무제휴 얘기를 진행했다. 또 미국 광고회사인 DDB가 당시 일본 다이이치기카쿠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함께 업무 제휴를 맺게 됐다. 대홍기획, 일본의 다이이치키카쿠, 미국 DDB 등 모두 영어 D로 시작되는 회사여서 이른바 3D 업무제휴 라고 불렀었다


Q.
광고 분야에 계시는 동안, 국내에서는 최초로 국제 광고제에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인지도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IAA(International Advertising Association, 국제 광고 협회) 국제광고대회에 나간 것이 1978년이었다. 당시 대회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는데, 북한 대사관이 나가고 우리나라 대사관이 들어간 지 채 몇 년이 안됐던 때다. 나를 포함해 6명 정도가 방문했는데, 그때 처음 세계에 우리 광고계를 소개하게 됐다. 이때 이후 가까운 일본 광고업계와도 교류를 활발히 하게 됐고, 그 이후에 AFAA(Asia Federation of Advertising Associations, 아시아 광고연맹)를 설립해 활동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지금은 다들 알다시피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광고 대국으로 성장했다.


Q.
해외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였던 만큼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습니다

1970
년대는 여권도 한 번 사용하면 끝나는 단수 여권뿐이었다. 해외 한 번 나가는데 신원조회에만 보름 넘게 소요됐고, 반공회관에 가서 교육도 한 시간 받아야 했다. 첫 국제 광고대회 참석차 덴마크에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파리에 들러 중앙일보 특파원을 만나고, 거기에서 동경을 들렀다 귀국하는 일정이었는데, 동경행 비행기를 타고 보니 그 비행기가 모스크바 경유였다. 당시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모스코바 공항에 내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동경행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이제 살았다’ 싶었다. 물론 귀국해서 바로 안기부에 신고를 했었다


Q.
그럼 당시에는 해외 광고를 보는 일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매체들도 해외 광고 혹은 광고제 관련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물론 쉽지는 않았다. 1970년대 초만 해도 해외 TV CF라고 해봤자 부산 해운대에서 전파가 잡히는 일본 방송을 보며 광고를 녹화해 가져오는 수준이었는데, 그것을 서울에 가져 오면 그야말로 귀중품 대접을 받았다. 당시 전체 광고주의 80% 가까이가 제약회사였는데, 녹화해온 CF가 있을 때면 각 회사 선전과장들이 찾아오곤 했고, 그때만 해도 우리말로만 바꿔 베껴 만든 광고도 많았다


Q.
중앙일보 광고국장부터 시작해 약 20여년 넘게 광고 분야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 보셨을 때 감회가 어떠신가요

원래 내 본연의 업무는 관리직인데, 사실 자칫 따분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광고 분야는 늘 크리에이티브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관리는 관습에 의해 꼼꼼하게만 일을 진행하면 되지만, 광고라는 건 늘 상대방에게 새롭고 임팩트 있는 무언가를 전달해야 하는 만큼, 생활 자체가 상당히 활기 있었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분야의 분위기, 사람들을 접하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Q.
이제 현업에서 한 발 물러나 계신데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특별한 일 보다는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가고 싶은 곳은 머릿속에 많지만, 체력이 달려 이제는 좀 어렵지 않을까? 일본이나 중국 정도로 가까운 곳을 좀 다녀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지금도 어디를 갔을 때 사진을 잘 찍는다. 물론 전문적으로 하려면 장비도 챙겨야 해서 어렵겠지만 휴대폰으로도 구도를 생각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재미있다. 또 다른 취미로는 붓글씨를 쓰는데, 취미 삼아 수양 삼아 하고 있으면 잡념이 없어지고 몰입을 할 수 있어 좋다. 뭐 그리 특별하다 할만한 건 없다





• 연세대학교 경제학사(64)/경영학 석사(70) 
• 중앙일보 동양방송 기획실장, 광고국장(71)
• 제일기획 상무이사(73) 
• 삼성전자 상무이사(75) 
• 삼성종합건설 전무이사(80) 
• 대홍기획 대표이사(83) 
•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자금 운영위원(88)/심의위원(91) 
• 사단법인 한일협회 이사(88) 
• 한국광고학회 발기이사(89) 
• 방송위원회 방송제도 개선 연구위원(89) 
• 한국광고인대상(매일경제)(89) 
• 한국광고업협회 회장(92) 
• 한국마케팅연구회 이사(93)
• 국제신문사 대표이사(96) 
• 중앙언론문화상(중앙대학교)(94) 
•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95) 
•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95) 
• 방송위원회발전기금관리위원(00) 
• 한국보이스카웃연맹 감사(01) 
KADD 회장(01) 
• 아시아광고연맹 회장(05) 
• 한국광고단체연합회회장(08)

(남상조회장과 한기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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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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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8. 3. 16. 12:10

29초 영화제를 탄생시키다, 신성섭 ㈜이구필름 이사


그의 명함에 두 가지 직책이 새겨져 있다.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영상콘텐츠전략본부 본부장, 그리고 ㈜이구필름 이사. 즉흥 여행을 좋아하고 바이크 일주를 꿈꾸는 그를 그저 감성파라 볼 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회사 창립 50주년 특별 이벤트로 3개월 만에 무려 50Kg 감량에 성공한, 철저한 행동파이기도 하다. 대화를 나누고 나니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상을 고민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라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됐다. 이번 호 인사이트 리더, 신성섭 ㈜이구필름 이사를 만났다. 

글. 전찬우 기자 jcw@websmedia.co.kr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주디




먼저 디아이매거진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해달라.
 
‘영화감독을 꿈꾸는 회사원’이라는 한 줄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이하 한경) 영상콘텐츠전략본부에서 영상 총괄을 담당하고 있고, 동시에 이구필름의 이사로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비즈니스로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한경에 입사한지 어느덧 10년이 조금 넘었는데, 회사의 영상 총괄로서 매체의 플랫폼이 종이에서 모바일로 전환되는 과정 전반에 대응하고 있다. 

이어서 이구필름에 대한 소개도 부탁한다. 언제 만들어졌고,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작년 12월에 이구필름이 만들어졌다. 한경에서 진행해온 ‘29초 영화제’가 국내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이구필름은 여기서 더 확장된 국제 영화제 형태의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 정도를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페이스북 29초 국제영화제'와 중국과 일본 지역의 영화제다. 기존 29초 영화제의 글로벌 버전이라 생각하면 쉬울 것 같은데, 앞으로 이구필름이 이것들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29초 영화제를 만든 주역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처음 29초 영화제를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학부 때 영화 전공을 하고 졸업한 뒤 1년여 정도 광고와 뮤직비디오 연출을 했다. 그 무렵 한경에 다니고 있던 친구에게 빌려줬던 책을 받으러 왔다가 우연히 그 친구 보스와 차를 한 잔 하게 됐는데, 내가 마음에 드셨었는지 입사 제안을 해주셔서 출근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3년만 일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3년이 지나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에 아버지께서 ‘회사에 뭐라도 하나 남기고 오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더라. ‘어차피 퇴사할거니 뭐라도 시도해 보자’라는 생각에 기획했던 것이 29초 영화제였고, 식사자리에서 내뱉었던 ‘이런 거 한 번 해보시죠’라는 나의 한 마디가 첫 시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다. 그렇다면 29초 영화제의 아이디어는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출발하게 된 건가?

신문사인 만큼 신문을 많이 읽는다. 하루에 평균적으로 10종 정도 두루 보는 것 같다. 여러 신문에서 중복해서 다루는 기사가 중요한 기사인데,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 모든 신문들이 스마트폰 보급률에 대해 주목했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만들 순 없지만, 그 안에 담기는 영상 콘텐츠를 다루면 좋겠다 싶었고, 찰나에 학부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보여주셨던 칸 광고제의 영상들이 생각났다. 당시만해도 통신이 지금과 같은 5G, 4G가 아닌었던 만큼 길이는 짧지만, 임팩트가 강한 영상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30초를 광고 영역의 맥스로 보고그보다 1초 짧은 영화를 만들어 차별성을 가져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29초 영화제가 벌써 8년째를 맞이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제 1회 29초 영화제가 2011년 12월에 개최됐다. 이전에 영화제를 겪은 경험이 없다 보니 봄부터 약 3개월 동안 여러 영화제 관계자분들을 만났다. 미쟝센 단편 영화제 사무국장님부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님까지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일반적인 단편 영화제의 경우, 약 200여 편 들어오면 잘했다 평가 받는데 영화제를 처음 시작했던 그 해에만 2200여 작품이 접수됐다. 말 그대로 초대박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필름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첫 회부터 퀄리티가 좋았다. 

여전히 다양한 곳들에서 29초 영화제와 함께 하기위해 러브콜 한다고 알고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적으로 29초 영화제에 접수되는 영상들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분들이 기억할 만한 작품중에 박카스를 주제로 동아제약과 함께 진행했던 것들이 아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수상작이 실제 TV CF로 방영돼 시청자로부터 호응을 이끌어 냈고,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대상에 선정되는 등 의미있는 성과도 있었다. 이런 부분들 덕에 29초 영화제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브랜드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29초 영화제에 많은 상업 브랜드들이 참여하다보니 영화제이면서 동시에 광고제의 성격도 가미됐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뮤직비디오를 예로 들어보자면, 이미지 중심의 영상이 있는가 하면 스토리 중심이 영상도 있지 않은가. 29초 영화는 광고적인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스토리를 내포한 영화적 요소도 있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 일각에서는 ‘29초면 광고지 무슨 영화냐’며 무시하는 관계자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러닝 타임 90분짜리 영화가 소설이라면, 29초 영화는 시에 비유할 수 있다. 한 권의 소설을 읽어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한 줄의 시를 읽어서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다.

29초 영화가 그런 성격이라면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에게도 29초 영화제는 상당히 매력적인 플랫폼으로 다가올 것 같다. 

광고제 이후 작품 활용도를 고려했을 때, 좋은 작품들은 다양한 채널에서 사용 될 수 있다. 그해서  충분히 효율적인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대략 한 편의 TV CF를 제작하는 비용이라면, 단독 영화제를 진행할 수 있다. 공모의 개념으로 따졌을 때 평균적으로 한 회당 평균 1000여편이 접수되는데, 그 중 10%는 TV CF로 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하이 퀄리티다. 즉, 일차원적으로 비용만 따져 봐도 훨씬 효율적이라는 거다. 같은 비용으로 100편의 뛰어난 영상을 확보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그저 작품으로 평가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영상을 본 소비자들을 거쳐 SNS를 통해 바이럴되어 확산되는 만큼 그 파급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광고의 기본 목적 달성은 물론 그 외적인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해외에도 29초 영화제와 유사포맷을 가진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생각해보니 한 때 이슈가 됐던 미국 웹사이트 중에 '5secondsfilm.com'이라는 곳이 있다. 다섯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계속 5초 영화를 만들어 올리는 곳이었다. 한때는 광고도 많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이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역시 5초는 짧았고, 사람들이 집중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29초였다고 생각한다(웃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29초 영화제를 해오며 수많은 작품을 접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먼저 김경래 감독 작품 <김치>가 떠오른다. 내용은 검정 테이프를 붙인 거울 앞에서 한 노인이 일회용 카메라로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 것으로, 그의 대사는 단 한마디, “김치”. 치즈(Cheese)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한 마디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단시간 안에 가장 임팩트 있었던 건 <대한민국에서 불효자로 산다는 것>으로, 당시 상도 많이 받았고 배우들도 크게 주목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29초 영화제를 진행하며 자체 홍보는 어떤 채널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부적으로 팀 모토가 ‘권력은 대중한테 있다’이다. 29초 영화제의 힘은 참여해주시는 회원분들에게서 나온다 생각하고, 그래서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 등 회원 서비스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다. 올 하반기 부터는 출품 횟수 등으로 회원 등급을 구분하고 29초 영화제에 많이 참여하시는 분들께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려한다. 가령 시상식에 먼저 입장한다든지, 한경 파트너 업체들과 협력해 회원분께 무상으로 장비를 빌려드리는 방식 등으로 말이다. 그 밖에 기사, 버스 광고 등 자체 홍보채널 활용은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29초 영화제를 운영해 오며 뿌듯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누군가 29초 영화제가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등용문 역할을 잘 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매우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특히 청소년부가 따로 있어 심사와 수상을 별개로 진행하고 있다. 상을 받고 ‘신방과 갈 거에요, 영화과 갈 거에요"라고  했던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2년 뒤에 연락 와서 덕분에 원하는 과에 진학하게 됐다고, 고맙다며 인사를한다거나, 먹을 것을 사 들고 직접 찾아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너무 수준이 낮다, 청소년 부를 없애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친구들이 결국 몇 년 뒤에는 메이저 그룹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투자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부 작품들이 시간이 갈수록 퀄리티가 높아지면서 일반부와 거의 비등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누구보다 많은 영상을 접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좋은 영상을 구분 짓는 신 상무만의 기준은 무엇일지도 궁금하다.
 
앞서 잠시 말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영화제를 할 때마다 팀원들에게 권력은 대중에 있고, 대중이 인정을 해야 진정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중 문화에는 굉장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는데, 영화제에서 시상을 하면 작품 길이가 짧은 만큼 수상자의 소감을 듣고 상영을 한다. 
우리나라는 기립박수 문화가 굉장히 인색한 편인데,, 3000명이 넘게 참석했던 제 2회 영화제 때 <죽어도 좋아>라는 작품 상영 후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었다. ‘이것이 바로 대중 문화, 그리고 영상이 갖는 힘이구나’라고 다시금 절실히 느꼈었다. 좋은 영상이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상이다. 대중들의 입에서 계속 회자되고, 서로 공유되는. 

화제를 바꿔, 초반에 말한 이구필름의 프로젝트는 언제 만나볼 수 있는가? 

오픈 시기 순서로 보자면 페이스북 국제 영화제가 첫 번째가 된다.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이미 한 차례 내부 테스트 버전으로 페이지를 잠깐 오픈했었는데, 이게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퍼졌다. 조회수와 서버 접속량이 굉장히 많았다고 하는데, 그 때 페이스북 측에서 페이지 테스트는 블라인드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처음 이구필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들이 오갔을 것 같다.  이구필름의 장기 계획이나 비전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우선 앞서 소개했던 세 가지의 국제 영화제를 굳건히 자리잡게 하는 것이 첫 번째 계획이다. 그리고 한경의 올해 목표가 모든 한경 콘텐츠를 영상화하자는 것인데, 이것들을 서비스 할 수 있는 29초 TV를 론칭할 계획이다. 그리고 장기 계획 중에 뉴스 제보 플랫폼이 있다. 29초 영화제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처럼 사용자가 콘텐츠를 올리고 소비하는 플랫폼 구조이지 않은가. 같은 맥락에서 뉴스도 더 이상 기자들만의 영역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모바일로 등록하고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것이다. 

특별히 뉴스 제보 플랫폼을 비즈니스 모델로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현재 모든 보도채널 등에서 뉴스영상을 제보 받고 있다. 특히 자연재해나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실제 뉴스에 제보영상을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예전에 비해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화질 좋은 영상을 찍고, 쉽게 전송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전용 앱을 구축해서 평소에는 일상 촬영과 편집을 하는 용도로 사용하다 이슈가 생겼을 때는 이 앱을 통해 현장을 촬영하고 바로 전송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렇게 들어온 이슈는 기자들이 모니터링하고 회의를 통해 어떤 것을 집중 취재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장시간 투자하고 단단하게 구축해야 하는 플랫폼인 만큼 이미 오랜 기간 준비해왔고, 현재 일정 수준까지구체적으로 진행 돼 있는 상태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소개해 달라. 

‘공부를 더 해볼까’라는 생각도 있는데, 서두에서 말했듯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영화인만큼 지금도 기획해 놓은 시나리오(가칭 ‘처세의 신’)를 꾸준히 쓰고 있다. 감독이 되어 이 시나리오를 상업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다. 영화를 전공한 만큼 많은 동기들이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있는데, 우리동기들끼리는 스스로를 영화준비위원회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만나면 매일 시나리오 얘기다. 

영화 전공자로서, 특히 좋아하는 영화 장르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르는 가리지 않고 포괄적으로 좋아한다. 대학 때는 호러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좋아하는 작품을 꼽자면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와 같은, 전형적으로 남자들이 좋아할 법한 영화들인데, 스무 번은 넘게 봤던 것 같다. 인생작이라고 손꼽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아닐까 싶다. 동생이 있는데다 특히 군대 휴가 나와서 봤던 터라 감정이입이 됐던 것 같다. 무섭게 깎은 머리에 정복을 입고 휴가 나온 군인이 영화관에서 펑펑 울었었다.  

영상 분야에 뜻을 둔 청년, 학생들에게 도움될 이야기를 부탁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하겠다.  

대개 무언가를 ‘해야지, 해야지’ 생각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영화과에 간 것은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면서였다. 지금 보면 소름 끼칠 정도로 형편 없는 영상이지만  고등학생 때 동국대에서 상을 받았는데, 이를 계기로 EBS에 출연하고, 신문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뭐라도 하라는 게, 도전하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다. 꼭 잘 갖춰졌을 때 시작할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일단은 저질러 보는 게 중요하다. 많은 학생들이 ‘찍을게 없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데, 뭐라도 일단 시도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내가 아무리 공을 들여 만족스러운 영상을 만들어도 결과는 안 좋을 수 있고, 반대로 대충 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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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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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8. 3. 9. 14:09

광고로 사람을 움직이다, 전훈철 애드쿠아 인터렉티브 대표


누가 알았을까? 짜장면 한 그릇 사주고 받은 후배의 인터넷 ID가 대한민국 광고계를 뒤흔든 최고의 회사 사명으로 성장하게 될 줄을. 애드쿠아는 애드버타이징(adver­tising)과 아쿠아(aqua)의 합성어로, 광고와 광고계를 물처럼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재작년 바나나맛 우유에 이어 지난해 마음이음 연결음까지, 그야말로 광고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독립광고대행사로서 시장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음이음 연결음으로 국내외 유수의 광고제에서 수상 하고, 일본과 태국, 독일 등 전 세계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며 그야말로 2017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한 이 곳. 전훈철 애드쿠아 인터렉티브(이하 애드쿠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글. 전찬우 기자 jcw@websmedia.co.kr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주디




먼저 디아이 매거진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해달라.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막 태동하던 디지털 분야를 접하게 됐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분야가 생소했다. TV광고 조감독으로 일을 시작했다가 여러 고민 끝에 인터넷 감독이 돼야겠다 마음 먹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학부 동문회 웹사이트를 보게 됐다. 이걸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해 알아봤는데 그 사람이 지금의 서정교 대표였다. 서 대표와는 학부 때부터 워낙 친했던 만큼 함께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 제안을 했고 뜻을 같이해 2000년도에 정식으로 회사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영상과 디지털을 접목한 여러 활동을 해오고 있다.

회사 초창기의 모습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영상은 제작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우리 스스로 마이너 미디어를 표방하며 대중매체에서 소개되지 않는 주제들을 가져와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에 ‘리얼 페이퍼’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일종의 인터넷 동영상 신문으로,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 소외계층을 찾아 다니며 그들의 다양한 고충을 듣고 영상으로 담아냈다. 이때를 계기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는 것도 다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사회를 바라보는 좀 더 넓은 시각을 갖게 됐다.
 
리얼 페이퍼에서 다루었던 주제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지역의 한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있었다. 피해자라 주장하는 측에서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는데, 우리는 양 측의 의견을 모두 들어볼 수 있도록 병원 측과 인터뷰를 진행해 이들의 입장도 영삼에 담았다. 이때, 리얼 페이퍼 공간에서 사람들은 의견을 나누며 일정 수준의 결론까지 도달하기도 했다. 리얼 페이퍼는 네티즌들도 직접 영상을 올리고 글을 달아 의견교환을 할 수 있는 포맷이었는데, 주위에서는 ‘이름만 다르지 사실상 유튜브였네!’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생각해보면 포맷 자체가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회사 초창기에는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정말 디지털 초반의 이야기인데, ‘선영아 사랑해’ 광고로 유명했던 여성포털 마이클럽닷컴에 올라가는 영상 콘텐츠를 꼭지당 100만원씩 받고 만들기 시작하면서 입봉을 했다. 또 리얼 페이퍼의 콘텐츠들을 서울신문 웹사이트 PEOLE란에 꼭지당 50만원에 제공하며 콘텐츠 프로바이더 역할을 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던 분들께 감사하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취업을 했다고 하던데, 계기가 무엇인가?

영상을 베이스로 한 웹 에이전시 형태로 4년 정도 운영을 하고 보니 광고회사로 더 키워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대행사의 구조를 알아야겠다 싶어 오리콤에 입사했다. 입사 비하인드 스토리를 짧게 소개하자면, 오리콤 이전에 면접을 본 곳에서 대표 경력을 오픈했더니 떨어졌었다. 그래서 오리콤 때는 일반 경력직이라고만 이야기했다. 면접 평가 때는 시안을 잡았어야 했는데 약 이틀 동안 아이디어 관련자료를 수십 페이지 정리해 봉투로 제출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걸 보신 본부장님이 열어보지 않고 ‘저 놈 뭘 해도 하겠구나’싶어 합격시키셨다고 하더라. 

대행사에서의 업무는 어땠을지 궁금하다.

오리콤에 입사해 부족한 점을 느꼈다. 내가 낸 아이디어가 안 좋았다 라기보다는 뭐랄까, 경력자로서의 깔끔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밖으로 잘 표현되지 못했는데,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약 6~7개월 정도 집에도 안 들어가고 회의실에서 자며 열심해 배웠던 것 같다. 선배들이 회의실에다가 아이디어를 붙여놓고 퇴근하면 몰래 들어가서 그걸 일일이 필사했다. 지금도 ‘난 카피라이터일지도 몰라’라는 폴더가 있는데, 아무튼 짧은 시간이었지만 짧은 시간에 내 생각을 표현하고, 개념을 빠르게 설득하는 훈련을 그 때 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니 슬슬 내 아이디어가 팔리기 시작했고, 오리콤 최초로 TVCF에서 높은 점수도 얻어 팀 금일봉을 받았던 경험도 했다. 
이후로도 다양한 곳에서 근무했다고 알고있다. 애드쿠아로 복귀 하기 전의 그 경험들이 현재 대표로서의 업무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처음 오리콤에서 PD로 약 2년 반 정도 일을 하고, 그이후 이노션으로 이직해 1년 반을, 그리고 실버불렛(현 피플웍스)으로 옮겨 PD로 약 1년, 그리고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1년 반 일했다. 마지막에 실버불렛으로 직장을 옮긴 이유는 아무래도 CD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1년 정도 PD로 근무를 하다 처음 CD로서 진행했었던 프로젝트가 GS칼텍스의 ‘I’m your Energy’다. 상대적으로 CD로서의 입봉을 화려하게 한 편인데, 초짜 CD였음에도 GS칼텍스와 쌍용차 두 개의 팀을 맡아 바쁘게 일했었다. 대행사에서 근무하며 정말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돌이켜보면 회사의 대표로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도 당시 대표님들을 보며 실무자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그때 함께 호흡을 맞춰본 동료들과지금도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대행사의 직원으로 또 애드쿠아의 대표로, 짧지 않은 기간동안 동시에 두가지 역할을 하며 체력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옐로디지털마케팅그룹(YDM)의 가족사가 되어 애드쿠아의 대표로만 일을 하고 있는 건 이제 5, 6년 됐다.  대학생 때부터 약 20여 동안 바쁘게 뛰어온 것 같은데, 조감독 시절에 다져진 맷집 때문인지 밤 세우는 건 누구보다 잘한다.(웃음) 그리고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혼자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서 업무를 볼때가 있는데, 먼저 가는 직원들이 미안해 하는 것 같아 그냥 인사하지 말고 퇴근하라고까지 이야기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아이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예전에는 주말도 없이 일을 하곤 했는데, 이제 회사가 커가면서 훌륭한 분들이 계신 만큼 주말에도 쉬고 있다.



애드쿠아로 복귀 이후 시장에 회사를 더 많이 알리게 된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언제인가? 

내가 밖에 있는 동안 애드쿠아도 서 대표가 경영인으로, 전략가로, 크리에이터로 활약해준 덕분에 회사 규모가 커졌다. 2010년 즈음 애드쿠아로 복귀했는데 시장에서 ‘이런 회사가 있네’라고 주목 받기 시작했던 건 아무래도 AIA생명 ‘청춘, 군대를 가다’ 편 이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이후에는 마인드브릿지 '뜻밖의 퇴근', 알바천국 ‘착한손님 마음을 더하다’ 편 등이 큰 화제가 됐었다.

그러다 재작년 바나나맛 우유에 이어 작년에는 GS칼텍스 마음이음 연결음으로 애드쿠아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됐다. 처음 마음이음 연결음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마음이음 연결음 이전에 GS칼텍스와는 ‘헬로먼데이’라는 캠페이너블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월요일이 즐거워지면 대한민국이 즐거워진다’라는 슬로건 하에 대한민국의 월요일을 즐겁게 하고, 그 에너지를 공급하는 회사가 되자는 취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월요일 출근을 실감하는 게 개그콘서트 엔딩크레딧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가상 광고를 했다. 엔딩크레딧 화면에 회사 대표님의 얼굴이 나오고 ‘내일은 00로 출근하세요’라고 자막이 뜨면 직원들이 깜짝 놀라는 내용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며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어떻게 하면 당신의 월요일이 즐거워지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당시 실제 상담사로 일하는 분들이 글을 올려주셨다. 주말에 쌓였던 민원들이 월요일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더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의 고충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사람들의 인습을 건드려 보기로 했다. 

마음이음 연결음을 통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렇게 잘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나?

사실 마음이음 연결음이 나오기까지 제안서를 들고 약 두 달 동안 함께 할 업체를 찾아 헤맸는데 성사까지의 과정이 참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선뜻 함께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제안서를 보자마자 ‘이거 될 것 같다, 우리부터 해보겠다’라고 적극 참여해 주신 곳이 한국 지엠이었다. 지면을 빌어 다신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워낙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시고 같이 호흡을 맞춰주셔서 프로젝트가 잘 수행될 수 있었다. 애초에 상을 받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정말 반응이 좋구나’ 싶었던 건 맨처음 한국지엠에서 50명의 상담사분들이 사용했던 마음이음 연결음이 현재는 여러 회사에서 약 6000여명의 상담사분들이 사용하고 있고, 하루 평균 100만건 이상의 상담 전화가 마음이음 연결음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상을 받은 것 이외에도 마음이음 연결음을 통해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을 것 같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실제 인터뷰에 참여해주셨던 상담사분들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었다. 가슴 뜨거웠던 건 그분들 스스로가 ‘맞아, 나 역시 누군가의 딸이지, 아들이었지.’라고 공감을 해 주셨고, 또 상담사분들의 커뮤니티에서도 ‘그래, 우리 직업이 뭐가 어때서?’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해주셨다. 또 해외에 계신 상담원분들 중에서는 SNS를 통해 ‘좋은 영상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보내준 분들도 계시다. 무엇보다 이런 것들에 대한 보람이 가장 큰 것 같다. 또 직원들에게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조금은 더 높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쁘다. 회사를 끌고 가는 대표로서는 주된 즐거움 중 하나다. 

지금까지 애드쿠아에서 진행한 여러 광고 중 기억에 남는 몇 편을 꼽는다면? 

삼성생명 ‘당신에게 남은 시간’편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남았을지 계산해보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실제로 나 역시 80세까지를 전체 인생으로 설정하고 잠자는 시간, 회사에 와있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을 빼고 계산해봤더니,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채 두 달도 안 남았다는 결과가 나와 큰 충격이었다. 정말 큰일 났구나 싶어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 뵀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변화와 움직임을 만들어주는 메시지가 중요한 것 같다. 바나나맛 우유 ‘ㅏㅏㅏ’ 모음 프로젝트 역시 사람들이 직접 표현하고, 경험할 수 있는, 굉장히 텐저블(Tangible)하고 임팩트있는 메시지였다.

애드쿠아는 영상에 강한 회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좋은 영상을 만드는 비결이 있다면? 

영상이 그저 그림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급적이면 콘셉추얼(Conceptual)하거나 왓 투 세이(What to say)가 분명하게 만드려 한다. 또 콘텐츠를 만드는 곳은 많지만, 우리는 광고를 하는 사람들인 만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상업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이음 연결음도 그저 감동적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 안에는 분명 ‘I’m your energy’라는 브랜드가 녹아있다. 에너지는 GS칼텍스가 잡아야 할 핵심 키워드이고, 그것을 잘 잡았기 때문에 마음이음 연결음까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것들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게 우리의 역할인 것 같다.

애드쿠아만의 크리에이티브 철학을 정의한다면?

크리에이티브의 철학은 컬레버래이션이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에이티브의 객관화라고 까지 표현하는데, 이전에는 로직 투 매직(Logic to magic)을 이야기했다면 이제 데이터 투 매직(Data to magic)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베이스의 회사로서 이것이 더욱 중요해 졌으며, 데이터를 읽고 실제 소비자들에게서 어떤 것을 도출할 수 있을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광고 업계가 가야 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하고 우리 역시 이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씩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여러 파트들의 컬레버래이션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다른 회사의 데이터 센터 쪽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히 단절돼있다고 한다. 워낙에 우리 회사는 컬레버래이션이 잘 되는 만큼 이를 활용해 디지털 광고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영역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올 한해 애드쿠아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즐겁고 행복한 회사’야말로 우리가 늘 추구하는 방향이다. 올해는 직원들과도 더 가까워지려고 한다. 속된말이긴 하지만 서 대표와 함께 ‘쪽 팔리지 않게 경영하자.’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하고 싶고, 먹고 싶고, 놀고 싶은 건 직원들도 같을 것이고, 그것들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나와 서대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직원 해외 여행, 동호회, 상주 마사지사, 카페테리아 무료 운영 등의 사내 문화를 만들어 왔다. 올해도 직원들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업무와 별개로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지금의 혜안으로는 부족하겠지만, 후에 기회가 된다면 공익광고를 만들어 보고 싶다. 실제 공익광고 심사를 했던 적도 있는데 이 분야도 참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공익광고라고 하면 재미없고, 틀에 박힌 광고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기도 한데,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는 광고를 제작해보고 싶다. 마음이음 연결음을 끝내고나니 한편으로 이전에 리얼 페이퍼 플랫폼에서 기사화 하지 못했던 것들도 다시광고를 통해 다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뒤 애드쿠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애드쿠아는 더 재미있고 좋은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한치 앞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그저 추구하는 게 있다면 출근할 때 직원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이 업계 자체가 채 20년인 안된 시장이다 보니 내부적으로 변화가 참 많다. 회사의 대표로서 직원들에게 자신의 업에 대한 연속성을 주고,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데, 그 일환으로 디자인 본부의 경계를 풀기도 했다. 회사로서도 그렇, 직원들 개개인에 있어서도 10년 뒤를 더욱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늘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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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8. 1. 16. 08:45

          인사이트 리더, 류호현 웹스미디어 대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1월이다. 이맘때면 개인이나 회사 차원에서 목표를 세우고 늘어나는 매출, 높아지는 점유율 등 화려함을 강조할 법도 한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간과하기 쉬운, 본질에 대한 가치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그야말로 속도 보단 철저히 방향이다. 2018년 첫 번째 인사이트 리더, <디아이 매거진> 발행인 류호현 웹스미디어 대표를 만나 그가 그리는 내일을 들어봤다.

글. 전찬우 기자 jcw@websmedia.co.kr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주디



▲류호현 웹스미디어 대표


먼저 <디아이 매거진>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해달라.
주로 인터뷰어의 역할을 하는 편이었는데 막상 인터뷰이가 되려니 쑥스럽다. 20대에 매체를 만들겠다 이 분야에 뛰어들었던 것이 어느덧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스스로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굉장히 어렵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시작해 이제 막 40대 중반이 된, 젊은 잡지인이자 출판인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젊은 잡지를 만들어나가려고 한다. 

젊은 나이에 매체를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20대 초반, 매킨토시(LC475)로 디자인 작업 하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 당시 국내에는 매킨토시 관련 서적이 부재했는데, 그러다 보니 정보를 찾기 위해 충무로와 청계천, 홍대 일대의 서점들을 찾아 다니며 외서를 구했다. 우연히 [IDN]이라는 잡지를 접하게 됐고, 매킨토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고와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지 알게 돼 감명을 받았었다. 단순히 기능적인 매뉴얼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보들을 원했던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책이었고, [IDN]을 보며 전자출판의 시장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는 왜 이런 잡지가 없을까?’라는 어린 학생의 생각에서 출발하게 됐다. 그렇게 여의도 맨하탄빌딩에서 1995년 9월 [IMPRESS]를 창간했다. 

[IMPRESS]등 사업 초창기의 이야기가 더 듣고싶다. 
제호가 좀 더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주변 만류도 있었지만 우리만의 젊은 감성으로 [IMPRESS]를 시작했다. 초창기 [IMPRESS]는 [IDN]를 많이 닮아있었는데 프리프레스, DTP(Desktop Publishing), 멀티미디어 여기에 그래픽을 더해 총 네 가지세션으로 구성됐었다. 창립 당시 코닥 등 몇몇 기업이 주주로 참여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시장에서 자리잡게 됐다. 그러다 1998년 IMF사태와 PDF의 등장으로 전자출판시장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 무렵 매킨토시 역시 영상과 음향 등 멀티미디어만을 지원하는 형태로 사업계획이 바뀌었고, 넷스케이프의 출현으로 인터넷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결국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디지털, 영상, 음향이라는 키워드들을 조합해 ‘이것들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매체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2000년 1월 [IMPRESS]의 세션을 찢어 <웹디자인>, <월간그래픽디자인>, <디지털무비>, <웹마스터>라는 네 종의 잡지를 동시 창간했다.

웹 업계의 중심에서 지난 20년을 보내왔는데 감회가 어떤지?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웹이 막 확산되던 2000년대 초반, 업계에는 전문가들이 많지 않았다. 갓 태동한 산업이었기 때문에 경험과 학습, 일을 병행하는 실전형 리더들이 많았다. 지난 20년의 시간을 뒤돌아 보니 지금에서야 기술과 산업 그리고 사람과 기회에 대한 학습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간의 경험을 어떤 형식으로 풀어나갈지에 대한 계획도 마흔 중반을 넘어선 지금에야 조금씩 정리되고 있다. 터닝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디지털시대의 미디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생각하고 자리를 잡아왔다면, 지금을 이것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난 20년 간 디지털 에이전시들도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뤘다. 그 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과거 온오프라인 광고시장은 수익 구조, 고객 등 각각의 경계가 분명했다면, 어느 순간 그 경계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업들 역시 온오프라인의 구분을 넘어 자신들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를 더 많은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통합적인 플랜이 필요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업들이 필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디지털을 많이 학습하고 제작해온 디지털 에이전시들이 흐려진 경계 속에서 직접 광고까지 하게 되며 성장해 온 것 같다. 이전의 온라인 광고와 구축은 분명 시장이 달랐으나, 현재는 이 두 가지가 혼합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종이 매체로서 이런 디지털 생태계 흐름에 따라 어떤 변화를 가져갈 수 있을까? 
늘 관심을 두고 고민해온 문제이기도 하다. 일단 [TIME]등 전형적으로 오프라인 매체를 꾸려왔던 전 세계적인 언론사나 미디어조차 디지털에 대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이것은 디지털 산업 변화라는 특성 말고도 소비자들의 콘텐츠 소비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리 예측하거나 준비, 연구하지 않고 그냥 기존에 하던 방식만을 고집하다 보면 이러한 생태계의 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도래했다 느껴지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흐려진 경계 속에서 디지털에이전시가 성장했듯이 앞으로는 미디어와 에이전시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건 아닐까? 단순히 보여주기 식인 디스플레이적 형태가 아니라, 이제는 콘텐츠와 서비스의 본질이 중요한 시대다. 물론 외관상으로 보여지는 디스플레이 환경은 지속해서 발전하겠지만, 사실 콘텐츠 그 자체가 이러한 기술을 뒷받침 해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제 소비자들의 콘텐츠 소비 환경 변화에맞춰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오랜 기간 미디어사업을 해 오면서 느꼈던 어려움은?
종이 매체는 인터넷 매체나 인력기반의 에이전시와 달리 고정적으로 종이를 사고, 인쇄를 해야 하다 보니줄어들지 않고 되려 상승곡선을 그리는 제작비 부담률이 가장 어렵다. 두 번째로는 문화적인 부분인데, 어느 순간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면서 출판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저비용 고효율 누릴 수 있는 웹과 전형적인 종이 매체의 비율이 바뀌며 이제 책을 보는 목적 자체도 바뀌게 됐다.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 도서는 여전히 팔리는 반면 뭔가 창의적이거나, 사고를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담은 책은 많이 팔리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형태, 습관 등의 변화가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오프라인 매체를 통한 보람이 있다면?
아직 보람을 찾는 과정 중에 있다. 다만 평상시에 미디어사업부 직원들과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고방식이나 형태를 바꿔야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를 종종 하곤 하는데, 그 변화에 같이 동참해주는 직원들을 보면 뿌듯하다. 또 그런 콘텐츠를 소비하는 독자들의 달라진 방식 등 이런저런 성과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현재로서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프리미엄 디지털 포트폴리오 북 <링크>의 11번째 시리즈가 발간됐다. 링크에 대한 설명도 부탁한다.
일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포트폴리오나 업력 등 회사의 경쟁력을 보고 싶어하는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 요구에 각자도생으로 섣불리 대응을 하게 되면 오히려 리스크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매체를 통해 업계에 어떤 회사가 존재하고,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했는지 관련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디지털에이전시 디렉토리 북으로 시작했던 것이 <링크>다. 웹이 보이는 아주 특이한 현상 중 하나가 새로운 웹사이트가 만들어지면 기존의 것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치 백화점가서 좋은 옷을 한 벌 골라 입고는 ‘입고 오셨던 옷은 따로 넣어 드릴까요?’라는 질문에 ‘아니요, 됐습니다. 버려주세요’하고 대답하는 꼴이다. 웹이 갖고 있는 이런 속성이 아쉬웠다. 무언가 보관한다는 건 아주 소중한 것인데, <링크>는 종이의 강점을 이용해 과거에 있었던 히스토리들 즉, 변화 전의 것들을 계속 기록하고 있다. 하나의 아카이브를 이뤄 흐름을 보여줄 수 있고, 자연스럽게 이 산업으로 유입되는 전문가들에게 학습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열어주고 있다. 

이전의 <월간 w.e.b>과 <월간 IM> 통합으로 탄생한 <디아이매거진>이 어느덧 창간 2년이 지났다.  
<디아이 매거진>은 ‘융합’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우리가 오프라인 종이 매체를 버릴 생각이 없듯, 디지털도 결코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을 어떻게 융합시킬 것인지 이에 대해 매체 입장에서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는데, 결국 앞서 디지털 에이전시의 사례를 들었던 것처럼 <월간 w.e.b>과 <월간 IM> 또한 경계가 없어졌다.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와 경험이 부족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지금까지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그들을 이 산업의 새로운 동력으로 이끌 수 있게 됐다. 또 그렇기에 이제 중요한 건 현재의 산업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 즉 인사이트라고 생각했다. 콘텐츠 방향이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가치 기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해 새로운 제호로 통합·창간한 것이 <디아이 매거진>이다. 앞으로도 <디아이매거진>을 통해 디지털 시장 경험자들의 데이터와 노하우를 전달함으로써 이 산업 생태계에 기여할 것이다. 

최근 한편에서는 종이 매체나 서점 등이 새롭게 살아나는 트렌드다. 이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 답을 하는데 검색 서비스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인터넷이 없던 과거에는 어떤 정보를 주고받을 때,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깊이 있는 콘텐츠보다는 유행성·휘발성 콘텐츠가 난무하고 있다. 어떤 때는 그것이 공해로까지 느껴져 피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마치 고향에 가듯 아날로그의 향수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다시 서점을 찾아가는 것도 이런 흐름이 아니겠는가. 디지털 정보 소비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데, 그것이 곧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것이다. 공간적인 부분에서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 서점은 그저 책을 사는 곳이었는데, 지금의 서점은 책을 읽고 쉬는 곳이 됐다. 또 쉼이 자연스레 라이프 스타일로 연결돼 쇼핑을 하고 사람도 만나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용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피로도를 풀어줄 수 있는, 잘 설계된 곳 중 하나가 이제 서점인 것 같다. 

2000년대 초반의 디지털 시장과 오늘의 시장 환경은 전혀 다를 것 같다. 비교를 해본다면?
시장 내의 사업 영역을 정리했던 적이 있는데, ‘디지털이라는 분야에 생존하는 기업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따져보니, 과거에는 웹 디자인이라는 단 1개의 카테고리가 있었다면, 최근에는 그 카테고리가 확장돼 14개의 산업군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이는 산업 내의 다양성이 확보됐고, 그만큼 산업이 성장했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이제 산업이 해야 할 일은 공급되는 새로운 인력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매달 새 책이 인쇄돼 나오는데, 책을 받아 볼 때마다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회사 페이스북 채널에 인쇄기가 돌아가는 영상이 있기도 한데, 여전히 인쇄 소리, 잉크 향 섞인 종이냄새 등에 대한 향수가 있다. 이런 것들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 좋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한 달이 지나 갔구나. 또 해냈구나. 300호가 멀지 않았구나.’라는 생각들도 든다. 하지만 사실 독자 분들 그리고 함께 산업을 만들어가고 계신 여러분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매달 열심히 뛰는 기자들, 멋있게 디자인 하느라 고생하는 디자이너들, 서비스를 잘 하기 위해 애쓰는 담당자들에게 고맙다. 다만 한편으로 돌이켜봤을 때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동안 스스로 평가를 받는데 조금 둔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는 외부의 냉정한 비판과 평가를 듣고, 이를 매거진에 담아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려 한다. 그렇게 하면 책 나오는 날이 더 기다려지지 않을까?

평상시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나? 
조금은 엉뚱하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를 꼭 해결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하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내성이 좀 쌓인 것 같다. 상대적으로 작은 것들은 오랜 시간 내성이 쌓여 별로 체감이 잘 안되다 보니 스트레스로 작용을 안하고, 너무 큰 스트레스는 당장 어떻게 해결할 수 없다 보니 숙제처럼 차근차근 해결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것 같다. 두 번째는 늘 학습해야 한다는 부담감인데, 이건 이 분야의 숙명이기도 하다. 다만 스트레스를 받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꼽자면, 디지털로 받은 스트레스는 철저하게 아날로그로 풀고, 아날로그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오히려 디지털을 접하면서 잊어버리려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하는 공간과 생활하는 공간을 철저히 분리시킨다. 

2018년도에 웹스미디어가 계획하고 있는 사업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크게 네 가지로 구상하고 있다. 산업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하는 미디어 사업을 기본으로, 오는 상반기 오픈을 앞두고 있는 플랫폼 사업과 최근에는 다소 주춤했던 대형 세미나·국제 콘퍼런스 등의 교육 사업, 마지막으로 콘텐츠 품질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각 사업 영역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 우선순위를 둬 조금 더 밀도있게 집중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이렇게 나온 성과들이 다시 직원들의 성장으로 돌아가 보람과 성취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새해를 맞아 <디아이매거진> 독자와 파트너들에게 인사 한마디 부탁한다. 
세상은 계속해서 요동치며 변화할 것이다. 우리가 그 안에서 준비해야 할 것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본질에 대한 가치 즉, 콘텐츠가 될 것이다. 독자들과 함께 그리고 산업과 함께 이 숙제를 풀어 나가고 싶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좋은 콘텐츠를 입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마치 정장을 잘 차려 입고 고무신을 신고 있는 모습과 같을 것이다. 늘 변화와 트렌드를, 그리고 독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애쓰겠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레 패러다임으로 연결되는 형태가 되기를 희망한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앞으로 대부분의 비즈니스 키워드는 혁신이 아니라, 일본식 카이젠과 같은 ‘개선’이 될 것이다. 혁신도 중요하지만, 우리 독자들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힘쓰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란다.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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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7. 12. 25. 19:43

지치지 않는 광고인 박선미 대홍기획 상무/본부장


잘 만든 광고 하나가 열 품목 부럽지 않게 기업 매출로 연결된다지만, 그런 광고가 어디 쉬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단순히 제작 비용을 많이 들인다 해서 모두 통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고, CM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는 광고를 수없이 만들어온 그녀가 그래서 더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단순히 대박 광고만이 아니었다. 2017년 마지막 인사이트 리더, 박선미 대홍기획 상무/본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전찬우 기자 jcw@websmedia.co.kr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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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월간 DI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올해로 광고계에 들어온 지 27년 차가 됐고, 대홍기획이 광고 회사로는 네 번째다. 1992년도에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입사해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파고 있다. 돌이켜보니 광고계가 굉장히 흥했던 호황기부터 IMF 외환위기, 그리고 주요 채널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던 일련의 시대 분위기를 모두 겪었다. 중간에 몇 개월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팬시 분야의 사업을 한 경험도 있었지만, 다시 광고로 돌아와 2000년도에 대홍기획에 차장 카피라이터로 입사했다. 그리고 CD를 거쳐, 현재는 ECD로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본부장을 맡고 있다

[
대홍기획은 어떤 회사인가?]

1982
년도에 설립된 롯데그룹의 인하우스에이전시다. 전통적으로 롯데가 워낙 제과나 음료 등 유통업계에서 강세를 보여온 만큼 대홍기획 역시 관련 분야의 광고와 함께 성장해왔다. 즐겁고 유쾌한 광고, 소비자에게 공감을 주는 광고를 많이 만들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룹 계열사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내부 광고주보다 외부 영입한 광고주가 조금 더 많은 상황이고, 특히 회사의 성장세는 외부 광고주 영입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여전히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회사로, 대형 광고 회사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내부적으로 다양한 솔루션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지금까지 한 광고 중 기억에 남는 몇 편을 소개해 달라.]
 
아주 오래전 썼던 라네즈 ‘만지고 싶은 피부’ 캠페인과 설화수 캠페인, ‘자기 전에 씹는 껌’ 자일리톨 껌 론칭 광고, ‘휘바휘바’ 캠페인 카피, 그리고 나뚜루 아이스크림 론칭 캠페인 등이 있다. 또 개인적으론 웃긴 광고라 생각하는데 회자가 많이 된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와 대한민국 성씨(姓氏)를 이용했던 ‘롯데 디씨(DC)카드’ 광고가 있다. 물론 지금까지 진행했던 모든 광고가 자랑스럽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정성을 많이 들였던 광고를 꼽자면 자일리톨 껌 캠페인과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를 들 수 있겠다. 자일리톨 캠페인 중 '휘바휘바' 캠페인은 카피를 생각할 때 핀란드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어렵게 관계자와 대화하다 찾아낸 단어였고,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는 네이밍부터 직접 생각한 캠페인이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

[
디지털, 테크 분야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해당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2009
년에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뉴욕페스티벌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가를 했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상을 받으러 온 분들이 엄청난 걸 가지고 왔더라. 그 중 하나가 심장 소리를 사용한 크리에이티비아(Creativia)의 ‘리슨(Listen)’ 캠페인으로, 칸 라이언즈에서 수상하기도 했던 작품이다. 당시에 이 광고를 처음으로 접하고나서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았는데, '저런 캠페인을 우리나라에서도 하고 있고,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 통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디지털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겼고,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쌓으려 노력했다. 스마트폰이 막 확산되던 2012년에는 디지털 분야에서 직접적인 경험을 쌓기 위해 인턴생활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퍼포먼스에서 앞서가는 대홍을 알리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3년 전부터 준비해 작년까지 대홍 ICS(Innovative & Creative Show, 이노베이티브 & 크리에이티브 쇼)를 총괄 기획했었다. 대홍 ICS  스타트업이나 중소 디지털 회사의 기술과 대홍기획의 아이디어를 결합한 혁신적인 디지털 마케팅 사례를 제안하는 쇼로, 그 결과 대외적인 상을 받기도 했다.

[10
여 년 전 ‘광고는 죽었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의 광고는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요즘은 한마디로 광고를 규정할 수 없는 시대라 대답하기가 참 어렵다. 이제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광고 만드는 크리에이터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스스로 업에 대한 규정을 새로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하는 일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커버할 수 있는지 설정해야 할 텐데, 이 역시 쉽지 않아 나는 ‘Pathfinder’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멋있게 해석하면야 먼저 나가 탐색을 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방황하는 모습을 내포하기도 하는 단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에 남들보다 조금 앞서서 주변을 살펴보며 찾아가는 중이다
오늘날의 광고를 두고 '뭔가 새로운 주목거리를 만드는 것, 몰입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얘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지금 광고의 모습은 그만큼 형태가 없다.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
그렇다면 10년 뒤 광고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으로든 계속해서 광고는 변화하고 진화할 것이다. 물론 그것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디지털, 혹은 그 무엇이 됐든 결국 사람의 가치가 더 강화될 것이다. 디지털이 발전하면 할수록 아날로그적인 감성, 인간적인 인사이트를 던질 수 있는 것들이 광고의 소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크게는 그런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고, 현업에 있는 분들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
디지털 프로젝트나, 프로덕트 이노베이션 등의 일을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들이 합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국가적인 정책이나 지원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현재 정부에서 다른 뉴미디어 사업 같은 것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고, 스타트업이나 디지털 회사들의 수익에 대해서도 다양한 연구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실제정책화 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광고 서비스 영역에 머물 것이다. 최근에는 상생에 대한 이슈가 부각되고 그만큼 외부 기업과 협업하면 좋은 것들도 많은데, 이것이 보장되려면 우선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계도적인 방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지적인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가. 아이디어를 냈는데, 금방 모방되기 일쑤다. 광고인은 당당해지고, 클라이언트는 조금 더 양심적이었으면 좋겠다. 현업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먼저 의식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해외 광고도 자주 챙겨 보는 편인가?]

광고제 수상작들은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보고 있는데, 그 밖에도 유튜브에서 다양한 디지털 클립을 보는 편이다. 이를테면 디지털에서 인기 있는 영상은 조회 수가 왜 높은지, 분명 완성도는 떨어지는데 매력도가 높은 것들은 왜 그런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키워드 검색으로도 찾아보고 있다. 해외의 것을 보다 보면 나라별로 감성에 차이점은 있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사람이 가진 인사이트는 만국공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P&G의 땡큐맘(Thank You, Mom)은 아이디어도 좋고, 누가 봐도 공감대를 형성하며 좋은 광고라는 데에 이견이 없지 않나. 진정성에 대한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
해외 광고 회사 중 관심 있게 지켜보는 곳이 있다면?]

에이케이큐에이(AKQA)와 드로가5(Droga5) 두 곳에 관심이 많다. 드로가5는 문제해결(Problem-Solving)의 관점으로 제일 앞장서있는 업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가끔은 존경스럽기까지 할 때가 있다. 또 전에 일본에서 열린 어느 세미나에 참석해 에이케이큐에이의 CCO(Chief Creative Officer)인 이나모토 레이의 강연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사람의 감성을 디지털에 최적화시키는 데에 있어 사람을 중심으로 체험화 한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었다

[
최근 아날로그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신문, 잡지 등 종이매체도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최근 사보협회 커뮤니케이션 대상 심사를 맡은 적이 있다. 웹진 외에도 오프라인 매체가 굉장히 많았는데, 협회장님께 앞으로 이런 사보나 인쇄물에 대한 업계 전망을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여쭤봤더니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종이 매체에 대한 선호도가 있다고 말씀하셨다사람이 살아있고 존재가치를 느끼는 한 종이에 대한 가치는 유효하다고 본다. 나 역시 아날로그 세대에 걸쳐있긴 하지만, 책을 디지털로는 못 읽겠다. 종이 매체가 사양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얘기는 이전부터 한참 있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미디어에 따라, 그 역할을 누가 어떻게 키워가는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까.

[
많은 이들이 꿈꾸는 대홍기획, 입사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이 질문을 참 많이 듣는데, 그럴 때면 회사를 바라보고 들어오는 사람은 직장인일 뿐이라고 답한다. 반대로 광고 그 자체를 바라보고 일을 한다면 회사는 열려있다. 어딘가에서 광고를 하고 있고, 실력이 있다면 작은 곳에서 광고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대홍기획에 못 들어올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홍기획도 직원들의 입사와 퇴사에 일정 패턴이 있는데, 30% 이상의 직원들이 작은 스튜디오에서 들어오는 편이다. 그런 친구들은 조직력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일당백을 하던 경우가 많아 오히려 개인기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광고와 관련된 어딘가에 들어가 실력만 키워라, 그렇다면 길은 열릴 것이다.
 
[
후배 광고인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 있다면?] 
책이라면 뭐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본인과 코드가 맞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책에도 케미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굳이 고르라면 스토리텔링의 원형이 녹아있는 인문학적 고전을 읽으라 추천하고 싶다. 신입사원 면접 때 나는 '어떤 고전 소설을 읽었냐'는 질문을 꼭 하는데, 톨스토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러면 그 친구는 일단 눈에서 떠나기 마련이다
광고인에게 조금 더 실용적인 도서를 꼽으면 최근에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 자본론>을 좋게 읽었고, 사토 오오키, 가와카미 노리코의 <넨도 디자인 이야기>라는 책이 아트 분야의 관점을 달리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또 크리에이터들은 일을 하다 보면 근성이 떨어지곤 하는데, 그럴 때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책을 읽고 기가 빨린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작가의 철학과 책 한 문장 한 문장이 강하게 심장에 쿵 하고 들어온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와 싸우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생각의 근력을 키우기에 좋은 책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팀워크를 발휘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리치 칼가아드, 마이클 말론의 <팀이 천재를 이긴다>는 책을 읽어보길

[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평소에 공부를 많이 하는가?]

2015
년 초에 논문을 완성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이제 3년 정도 됐다. 마케팅은 변화무쌍한 이론이 생겨나는 분야다. 전문가가 되려면 당연히 옛날 이론만 갖고는 안되니 최신의 공부를 해야 하는 게 기본 아닐까? 개인적으로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정한 형식을 갖춘 공부가 아니더라도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주부가 아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도 하나의 공부라 할 수 있다. 광고인들도 자기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공부를 하면 좋겠다. 일부러 마음 먹고 하는 공부도 좋고, 놀러 가거나 전시회에 가서 무언가 배우는 것도 좋다. 지식과 정보를 얻는 모든 행위가 공부이기에 늘 해야 한다

[
평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으로 안다.]
   
크리에이티브는 나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충돌하는 것에서 완성된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새로운 분들과 만남에서 더 생산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시너지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지금이야 대홍기획이라는 큰 조직 내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많이 찾지만, 만약 내가 밖에 있게 된다면 그때 어떤 분들과 새롭게 연을 맺을 수 있을까? 그때 가서 외부에 있는 분들을 만난다면 너무 늦다. 그리고 회사 밖에는 좋은 분들이 많고, 양질의 이야기들이 있다. 언젠가는 조직을 떠나고 이후의 시간이 남은 인생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때 지금 알아둔 많은 분들이 나의 경쟁력이 될 거라 생각한다

[
스트레스를 컨트롤하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다면?]

나이나 연차에 따라 스트레스의 종류도 달라지는데,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내공이 생기기도 하더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방해 받거나, 회사 차원에서 도움이 되고 후배들한테 남겨주면 좋을 것 같은데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 되면 답답함을 느낀다. 무언가에 막혔을 때는 일단 마음을 접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서 시도하는 편이다. 이것저것 두드려서 하다 보면 이전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그나마 해소된다. 돈 버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 사이의 균형을 잘 이뤄가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
원하는 광고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광고계에 입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들을 때도 있는데, 나를 포함한 내 혹은 그 이상 되는 선배님들 중에는 JR 광고 카피와 시리즈를 보며 광고계에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에도 일본에 가서 JR 광고를 봤는데 역시나 캠페인이 멋있더라. 일관된 매너가 여전히 카피에 잘 녹아있었다. 그런 점에서 JR 광고를 한번 해보고 싶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감성과는 다른 일본의 특성인 것 같다. Christmas Express 시리즈나 교토 시리즈 등,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다운 감성이 묻어있다.

[
광고를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은?]

어떤 일이든 ‘일은 자신의 신념과 같다’고 생각한다. , 광고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고 믿어야 한다. ‘광고의 매력은 매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기분 좋은 마법을 스스로에게 걸어보는 거다. ‘오래 하자’ 라고 결심하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매일매일 새롭게 해보자’라고 믿고 즐기며 한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27년차가 되어 간다.

[
광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70
대가 됐을 때 재즈 트럼펫터가 되리라는 다짐으로 지금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일본 덴츠(Dentsu)에 친한 ECD가 있는데, 재즈 피아노를 하는 카피라이터이다. 일본에 갈 때마다 연락하면 그분이 늘 재즈바로 초대를 하시는데, 자그마한 바에 피아노와 잼을 할 수 있는 연주공간이 있다. 사장님 역시 덴츠에서 오디오 PD를 하시던 분으로 그곳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정식으로 트럼펫을 배운 건 올 여름부터였다. 비 내리는 어느 우울한 날, 종로에 있는 학원을 다니다가 우연히 빌딩 옆 작은 간판 하나를 보게 됐는데 음악학원이었다. 입구를 찾아 올라가 원장님께 트럼펫에 관심이 있다 하니 그 자리에서 트럼펫을 꺼내 보여주며 한번 불어보라고 하셨다. 남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바로 소리가 났고, 당장 시작하겠다는 결심은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빠져들어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다.

[
음악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좋아하는 뮤지션 중에 야마자키 치히로라는 일본인 여성 트럼펫터가 있다. 아주 유명한 그룹은 아닌데, 재즈 그룹 Route 14밴드의 트럼팻터다. 미국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에서 그녀가 한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 후로 유튜브 등으로 꾸준히 그녀의 활동 모습을 봐왔고, 우리나라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공연을 한다기에 직접 보러도 갔었다. 그곳에서 사인을 하며 인사를 하게 됐고 SNS에서도 교류를 하게 됐다. 그러다 나도 트럼펫을 배울 것이라고 얘기했더니 언젠가는 같이 공연을 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앞으로 70살이 되면 재즈바에서 트럼펫을 불면서 소일거리를 하고, 해외를 다니며 지내고 싶다.
 
[
마지막으로 후배 광고인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하고 싶은 광고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광고 분야는 예전처럼 광고 그 자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더 오래 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 된 것 같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내 맘대로 잘 안 풀리는 경우가 많고 스트레스가 높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퇴사를 고민하기도 하는 곳이 광고계라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광고만 하게 된다면 내가 하고 싶은 광고를 못 하게 될 것이다. 재능기부가 됐든, 다른 선제적인 형태의 일이 됐든 앞서도 말했듯 내가 하고자 하는 광고를 하며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지치지 않는 광고인이 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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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7. 11. 27. 15:06

전 세계 미용의료 시장을 두드리다, 안희돈 제이시스메디칼 상무


남녀노소 불문 아름다움을 좇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듯싶다. 메트로섹슈얼, 그루밍족이라는 단어도 이제 익숙해지지 않았는가? 물론 지나친 외모지상주의는 지양해야겠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단정하고 깔끔한 외모는 자기만족을 넘어 자기 관리의 방증이 될 때가 있다. 최근에는 K뷰티의 영향으로 한국 미용 의료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이번 호 인사이트리더에서는 전세계를 무대로 미용 의료기기 마케터로 활동하는 안희돈 제이시스메디칼 상무를 만나 업계의 현황과 글로벌 세일즈 마케팅에 대해 들어본다.

글. 전찬우 기자 jcw@websmedia.co.kr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주디



▲안희돈 제이시스메디칼 상무

DI: 제이시스메디칼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달라.

미용 의료기기 산업은 제약, 진단의료기기 분야에 비해 역사가 길지 않은데, 제이시스메디칼도 올해로 설립 17년 정도가 되어간다. 회사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몇몇 회사들과 우리나라 미용 의료기기 시장을 연 1세대로, 국내 Top3안에 드는 산업 내 리더 격인 회사라고 보면 된다. 17년이라는 시간만큼이나 젊은 회사다. 

DI: 미용 의료기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인가? 

일반적으로 ‘의료기기’라고 하면 수술도구나 방사선 기구 등과 같은 치료 의료기기나 진단 의료기기를 떠올리기 쉽다. 진단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MRI 같은 영상진단과 혈액이나 소변 등을 이용하는 액체진단이 그것이다. 
미용 의료기기는 쉽게 얘기해 ‘삶의 질’과 관련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여드름이나 반점 같은 피부 트러블, 홍조 등을 개선해 주는, 즉 죽고 사는 문제와는 거리가 먼 분야다. 그러나 단순 미용 장비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치료의 목적이 들어가 ‘개선’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수 있는 레벨의 기기들을 가리켜 미용 의료기기라고 칭한다. 
물론 ‘의료’라는 말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치료의료기기나 진단 의료기기가 거쳐야 하는 모든 인증과정을 똑같이 거쳐야 한다. 많은 미용 의료기기 회사들이 단순 ‘미용’시장을 노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미용 의료기기를 주로 다룬다. 미용기기와 미용 의료기기는 워낙 다른 시장에 있다.

DI: 글로벌 미용 의료기기 시장 현황이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산업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IT나 바이오 등이 성장률이 좋다고 한다. 미용분야는 크게 Face와 Body 두 가지로 나누는데, 각각 연간 성장률이 약 12%, 15%를 상회하는, 굉장히 고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미용 의료기기 산업의 전망을 보여주는 일례로 보톡스를 만드는 ‘엘러건’이 최근 미용 의료기기 제조사인 ‘젤틱 에스테틱스’를 24억 7,500만 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무슨 의미겠는가? 글로벌 업체들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미용 의료기기는 굉장히 재미있는 시장이다. 현재 전세계 성장률을 1.2%~2%대로 보고, 개발도상국의 경우 5%로 잡는데 이 산업은 두 자리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DI: 해외 시장에서 한국 미용 의료기기 기업들의 위상은?

관련 시장에서 메이저 강자는 미국업체다. 조금 특이하게 이스라엘 업체들이 활약하고 있는데 그래도 메인은 미국이다. 다만 미국 장비는 한 대당 억대가 넘는 가격이다 보니 사기에 부담이 되기도 하는데, 세컨드 티어(Second-tier)로 국내 제품들이 모두 포진해 있다. 물론 국내 장비들도 명품 자동차 한 대 값은 훌쩍 넘는다. 전반적으로 선방하고 있다고 본다. 워낙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기술이 좋고 과감한 부분이 있어 기술에 대한 응용력이 높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업체들이 이를 배워 크게 성장하며 가격 경쟁력 등으로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DI: 제이시스메디칼 브랜드 및 제품의 강점은 무엇인가?

미용 의료기기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흔히 얘기하는 ‘레이저’로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방식이다. 다음은 RF(Radiofrequency, RF)라는 고주파를 이용한 장비로 피부나 피부 바로 아래 층에 자극을 주면 그 자극에 면역체계가 반응해 몸이 낫게 하는 원리다. 또 이 RF에는 바늘로 찔러서 자극을 주는 침습형 장비가 따로 있다. 마지막으로는 집속 초음파(High Intensity Focused Ultrasound, HIFU) 장비로, 초음파 에너지를 피부 밑까지 전달하는 기기다. 
대부분의 미용 의료기기 회사들이 이 중 두세 개 분야를 다룬다면 제이시스메디칼은 앞서 말한 네 가지의 영역을 모두 커버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다. 쉽게 얘기해 풀 라인업(Full Line Up)을 보유한 브랜드로, 특히 마이크로니들(Micro Needle)이 사용되는 RF분야는 세계 최고라 평가 받고 있다.



DI: 특히 주목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HIFU 초음파 시장이 계속 커나가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 초음파를 집속해 에너지를 넣어주는 것인데, 이는 시장변화와도 관련된다. 세계 미용 의료시장의 트렌드를 보면 Face 분야는 이미 너무 많은 성장을 이루어 왔고, 관심은 이제 Body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체 시장에서의 Body 분야 비중을 따져봐도 맥시멈 20%이하로 본다. Face분야가 8, Body가 2 혹은 9와 1의 비율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Body 분야의 성장성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앞서 말한 엘러건이 인수한 회사 역시 Body 분야를 다루는 회사다. 

DI: 전세계가 타깃 지역인데 보통 우선순위 지역은 어떻게 설정하나?

정말 쉽지 않은 문제다. 사실 우선순위를 정할 땐 해당 시장의 규모를 보고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접근성이 좋은 곳을 먼저 공략한다. 왜냐하면 마켓 사이즈가 크다고 해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해외마케팅 분야에서 25년 정도를 일한 것 같은데, 커머셜에 있는 마케터나 전략가들이 가장 실수 하는 것 중 하나가 ‘저 시장의 규모가 크니 저 곳에 들어가겠다’하는 착각이다. 우리 회사 규모에서 우리 제품이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선점하고 들어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시장이 우선시 된다. 물론 특정 국가에 진입하기 위해 FDA임상을 진행하고, 또 성공해 들어가 있는 나라들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규제가 많은 시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것보단 빨리 진입할 수 있는 국가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레퍼런스를 쌓으면 기타 시장 진입이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현재 이런 전략을 취하고 있다. 

DI: 제품 진입을 계획중인 해외 국가 내에서의 핵심 타깃은 누구인가? 

기가 막힌 질문이다. 제일 힘든 부분이다. ‘휴대폰을 판다’라고 하면 누구를 타깃으로 삼을지 명확하다. 예컨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대상으로, 새로운 기기에 대한 요구를 높일 수 있는 광고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설득해야 하는 허들이 굉장히 많다. 의료기기 쪽의 해외 세일즈맨들은 세일즈맨이라기 보다 마케터라 봐야 한다. 먼저 우리 장비를 그 나라에서 실제로 나 대신 홍보하고 있는 것은 딜러다. 첫 번째 설득해야 하는 타깃은 그 딜러다. 특히 의료 기기는 일반 상업 제품처럼 인식이 쉬운 제품이 아니다 보니 제품의 장점이나 특징을 잘 전달해야 한다. 딜러는 해당 국가의 의사들을 설득하고, 의사는 다시 환자를 설득한다. 물론 순환고리가 가장 좋은 형태는 해당 국가의 일반 고객들을 타깃으로 정해 마케팅 활동을 실시 하고 그들이 우리 제품을 찾도록 하는 것이 베스트 케이스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기억에 남는 예시로 우리나라 진단기업 중 씨젠을 들 수 있다. 정말 잘 했던 것 중 하나가 자궁경부암 관련 광고로, 많은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해 질병의 위험성도 환기시키고 자사 브랜드에 대한 홍보도 성공적으로 이뤘다. 실제 많은 엔드 유저(End Use) 즉, 일반 고객들이 그 광고를 보고 병원에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용 의료기기는 당장에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일반 고객들의 주의를 끌거나 관리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현재는 핵심 타깃을 의사로 설정하고 있다. 

DI: 핵심타깃이라고 한 해외 현지 의사들과는 어떻게 컨택하는지 궁금하다. 

이 회사에 오기 전 진단기기 업체에서 근무 했었는데, 그 분야는 100여 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산업이 오래된 만큼 그 분야의 키 오피니언 리더(Key Opinion Leader)들은 대부분 연세가 60 가까이 되신 분들이 많다. 
앞서도 말했지만 미용 의료기기 산업은 이제 20년이 좀 넘을 정도로 젊은 업계다 보니 키 오피니언 리더들의 연령대 역시 상대적으로 낮다. 그들은 SNS도 활발하게 이용하는데 SNS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실제 우리 회사 페이스북 계정도 약 8,0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큰 학회나 세미나에서 발표를 맡을 정도면 연배가 꽤 될 것 같고 페이스북도 안 할 것 같지만, 이 업계 의사들은 젊고 굉장히 개방적이다. 복장부터가 굉장히 패셔너블하다. 실제 학회에 참석해보면 놀랄 정도다. 본인 역시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해 화장을 하거나 눈썹 문신을 한 남자 의사들도 많다. 그런 의사들을 만나보면 본인들의 병원 운영이나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에도 의료 기기가 아니라 패션, 미용 트렌드를 먼저 챙기고, 고객들이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를 살핀 뒤 그 해 방향을 설정 한다. 대단하다. 

DI: 향후 엔드 유저(End User)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활동 계획은 없는가?

디지털마케팅 쪽에 최대한 이벤트를 만들어 엔드 유저가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해 전파하려고 한다. 사실 지금은 콘텐츠 자체가 없다. 10년 전만 해도 디지털마케팅이라 하면 ‘채널전략’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은 소용이 없지 않은가? 이제 소비자들은 알아서 콘텐츠를 찾아간다. 채널에 대한 고민보다는 콘텐츠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콘텐츠를 만들기란 또 쉽지 않다. 아무래도 의료 장비다 보니 의료 환경이라는 배경에서 진행이 돼야 하고, 전문가가 포함되어야 하는 등 한계가 있다. 현재는 소외계층 수기 공모 등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께 치료를 해드리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형식의 콘텐츠를 구상하고 있다. 

DI: 오프라인 마케팅 활동은 안 하는가? 

가장 전통적인 방식인 전시회나 지면 광고 등도 안 할 순 없다. 에스테틱 가이드 같은 업계지에도 꾸준히 광고를 진행하고 있고, 매번 국제 전시회에도 참석한다. 전시회에 안 나가기 시작하면 ‘이 업체 어디 갔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온라인 중심의 마케팅 위주로 넘어가려는 노력도 동시에 하고 있다. 
단적인 예시로 진단분야 시장의 양대 산맥을 꼽으라 하면 애봇과 로슈사를 들 수 있는데, 이전에는 이 두 업체가 메디카(전세계에서 가장 큰 메디칼 전시회) 부스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1/10도 채 안 나온다. 이제 디지털이라는 거다. 제이시스메디칼 역시 노출은 오프라인에서도 꾸준히 하고 있고, 포기하진 않겠지만 이제 디지털을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그래서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고려하는 것 중 하나가 해당 국가의 IT 인프라는 잘 구축돼 있는지, 모바일 사용성은 얼마나 높은지 등이다. IT기반이 충분히 마련된 나라에 가야 디지털마케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깃 국가를 선정하는 조건 중 하나로 IT인프라도 꼽을 수 있겠다. 



DI: 글로벌 세일즈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반복되긴 하지만 결국 디지털마케팅이라고 본다. 왜냐면 어차피 우리 제품은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잘 마케팅 하냐의 문제이고, 꼭 안 해도 되는 것을 하게끔 만드는 일이다. 그렇기에 타깃 역시 노인분들이 아니라 디지털 제너레이션, 특히 디지털과 성장을 함께 해온 세대다. 
제일 힘든 점은 ‘그들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이다. 해당 국가별로 고객을 정의하면 그들의 활동 반경을 알 수 있고, 그들이 어느 디지털 공간을 주로 이용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글로벌화 되면서 세계가 일원화 되는 듯 하나 자세히 보면 국가별로의 상황과 모습은 모두 다르다. 어느 특정 나라만 제품 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제품 성능이 떨어지면 팔 수 없다. 이제 어차피 정보는 오픈 돼 있고, 고객들이 몇 번만 검색하면 업계 현황까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노출시키고 포장하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영상을 첨부할 수 있는 SNS가 가장 큰 마케팅 채널로 활용된다. 특히 미용산업에 있는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시술 동영상을 많이 올리는데, 갈수록 영상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DI: 업무 특성상 해외에 나갈 일이 많을 것 같다. 1년에 해외출장은 얼마나 가는가?

한 달에 적어도 두세 번은 나가니 1년으로 따졌을 때 30번 이상은 나가는 것 같다. 일수로 따지면 1년에 100일 정도, 바쁠 땐 그보다 더 오래 나가있는다. 어느덧 이렇게 산 지도 25년이 지났다. 예전에는 비행기에서 일도 많이 했다. 전화도 안 와 조용하고,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 오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과 집중도는 한계가 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착륙 후 협상이나 회의를 진행할 때 에너지가 떨어지더라. 요즘은 비행기를 타면 되도록 책을 읽거나 자려고 노력한다. 
비행기를 많이 타서 좋은 점은 마일리지 많다는 것 정도랄까?(웃음) 그도 그럴 것이 한창 일이 많을 땐 아침에 일본에 가서 회의하고 저녁에 인천공항으로 돌아와 비행기를 갈아타 터키에 가서 새벽에 내려 하루 종일 미팅을 진행하고, 터키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들어가 미팅하고 귀국했던 적도 있다. 그때는 4일 일정 동안 모두 비행기에서 잠을 잤다. 

DI: 미용 의료기기 세일즈 마케팅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의료기기 시장은 마케팅 분야의 꽃인 것 같다. 물론 나 자신도 아직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이 분야의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규제, IT인프라, 가격, 사람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가장 복합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덕분에 이 분야에서 일을 하면 스스로 트레이닝이 되는 것 같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너무 어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입사해서 30대를 이 분야에서 일하고 나면, 다른 분야에서의 마케팅으로 쉽게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이나 마케팅 분야의 일을 배우고 싶다면 의료기기 회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 이다. 

DI: 그렇다면 미용 의료기기 마케터로서 어떤 공부를 하면 좋겠는가?

개인적으로 학부에서는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석사는 고분자공학, MBA(세부전공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s)를 거쳤다. 깊게 공부하고 잘 아는 사람은 학자가 되는 게 맞다. 대신 얕더라도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 본 사람이면 마케터로서 적당할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회학이나 심리학 등을 학부에서 전공하고 3, 4학년에 열심히 분석화학 등 이과 과목을 들어 약간의 이공계를 입고, 이후 MBA를 지내면 베스트라고 본다. 에스테틱 기계로 넘어가게 되면서 과학이 들어간다. 알다시피 과학은 물리와 수학이 베이스 아닌가.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거기에 들어가는 매질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생물학 분야의 지식도 필요하다. 종합해보면 의료 기기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DI: 바쁜 업무로 휴식시간이 부족 할 것 같다. 평소 스트레스를 푸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특이한 것 중 하나는 서울에서는 아무리 쉬고 있어도 잘 쉬어지지 않는다. 희한하게 직장과 물리적으로 거리가 떨어지면 그때 회사 일을 잊어버린다. 춘천까지 가면 그만큼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속초나 제주도에 가면 완전 잊혀진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지방에 간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그만큼 스트레스도 풀리는게 스스로도 신기하다. 개인적으로는 맛있는 음식 먹는걸 좋아한다. 거창하게 미슐랭가이드나 비싼 레스토랑은 됐고, 볶음밥 하나 먹기 위해 포항까지 갈 수 있다. 

DI: 10년 뒤 자신을 상상해본다면? 
계속 이 분야의 일을 할 것 같다. 매일 그만두고 싶다 말하지만 결국은 이곳에 있을 것 같다. 대신 비행기는 좀 적게 타지 않을까.(웃음) 물론 아직 부족하지만 10년 뒤에 꼭 해 보고 싶은 것은 교육 분야다. 스스로 욕심도 있다. 그동안 경험했던 글로벌 세일즈 마케팅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안희돈 상무(오른쪽)과 한기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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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7. 11. 15. 19:39

브랜드에 빛을 비추다 남국희·이정윤 램퍼스 공동대표


강남 신사동 어느 조용한 골목에 자리잡은 빨간 벽돌 건물. 이 건물 2층에는 브랜드에 불을 밝혀주리라 뜻을 모은 두 사람, 이정윤·남국희 공동 대표가 있다. 브랜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진지하지만 유쾌하고, 감성적이지만 본질을 관통한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두 사람은 오늘도 그들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고 있다.

글. 전찬우 기자 jcw@websmedia.co.kr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소기섭 포토그래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램퍼스 이정윤(좌), 남국희(우) 공동대표

만나게 되어 반갑다. 먼저 디아이 매거진 독자들에게 대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이정윤 대표(이하 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램퍼스의 공동대표이자 디렉터로 활동중인 이정윤이다. 학부 때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이후 개인적인 계기로 교육학 석사과정 이후 고등학교 교사로 일선에서 4년 동안 일을 했었다. 현재는 다시 한번의 계기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세우고 창업을 해 일하고 있다. 
남국희 대표(이하 남): 램퍼스의 공동대표이자 디렉터 남국희다. 10년째 영상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모션그래픽이라는 장르로 시작해 디자이너로 있다가 가장 최근 직장에서 뉴미디어 전시분야 치프 디렉터로 근무했는데, 회사에 속해 있다 보니 크리에이터로서 내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기 힘든 부분이 있더라. 물론 규모가 있는 회사 소속으로 큰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지만, 다시 내려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처음부터 밟아보자는 생각에 창업을 하게 됐고, 그 와중에 좋은 인연인 이정윤 대표를 만나 공동 창업을 하게 됐다.

이어서 램퍼스에 대한 소개를 듣고싶다.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이: 공동창업을 결정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서로 다른 성향과 관점, 철학 때문이었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융합해보자는 것이 시발점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브랜드의 본질을 파악하는, 그리고 브랜드를 커뮤니케이션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고 희열을 느낀다. 반면 남 대표는 구성된 본질을 이미지화하고 그것을 디자인하고 시각화하는 일에 대한 관심과 능력이 뛰어나다.
남: 사실 램퍼스 공동체는 이름만 올해 정해졌을 뿐, 이전부터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었다. 또 그 과정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비주얼 기반의 디자이너, 크리에이터들이 하는 일반적인 생각 틀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데, 이 대표는 디자인이나 비주얼 영역에서 떨어져있는 사람들의 언어와 개념까지도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었다. 나는 잘 하지 못하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었고, 여기에 내가 잘 하는 영역이 만났을 때 분명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라는 확신에 먼저 창업제의를 하게 됐다.
램퍼스라는 회사 이름이 독특하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설명해달라.
이: 직관적으로 접근했다. 그게 가장 본질적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램퍼스를 풀이해보면 어둠을 밝혀주는 램프와, 그것을 손에 쥔 사람들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브랜드와 사용자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 밝혀주는 안내자가 되겠다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는 길을 밝히는 등불을 손에 쥔 사람들’이라는 의미와 철학에서 램퍼스라고 회사명을 짓게 됐다.
 
램퍼스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가? 
이: 창업하고 운영한지 얼마 안된 현재에는 사실 하고 싶어하는 일과 닮아있는 부분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 하고 있다. 지향하는 바는 기존에 이루어졌던 광고 형태나 이미지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뛰어넘는, 기존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작업을 하려 한다. 그것은 광고가 될 수도, 브랜드 아이덴티티(BI, Brand Identity)작업이 될 수도, 아니면 지금 진행 중인 전시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보자면 ‘브랜드 이미지 커뮤니케이션’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맑다, 투명하다, 세련됐다 등의 심상적으로 떠오르는 브랜드 이미지를 포함해, 아웃풋되는 디자인의 결과물, 영상 등 복합적이고 중의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두 대표는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나?
남: 이 대표가 시작한지 1년 정도, 내가 6개월 정도 즈음 됐을 때 우연히 프로젝트를 함께한 적이 있는데 서로 합도 잘 맞았고, 각자 지닌 강점이 다르다 보니 큰 시너지가 발생했었다. 물론 사업이란 것이 프로젝트 하나 잘 됐다고 해서 ‘좋다, 같이 해보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처음부터 끌리는 부분이 있었다. 스스로는 좀 신중해지자 생각해서 이후 몇 개의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했는데 역시나 ‘이 사람과 같이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렸을 때야 주변에 친구가 많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동갑 관계를 찾기 쉽지 않다. 남 대표와 동갑인데 비슷한 또래 관계에서 나눌 수 있는 특유의 감정적인 안정감이 있어 좋았다. 또 특별히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없어도 서로 사적인 교류가 있었던 터라 그런 점도 많은 작용을 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함께 했던, 또 진행중인 프로젝트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이: 남 대표를 만나게 해준 계기가 된 프로젝트 중 하나가 광운대학교 총괄 브랜드 작업이었다. 우리보다 몇 십 배 큰 규모의 회사와의 경쟁에서 과반수 이상의 득표로 진행을 맡게 됐다. 기존의 일반적인 대학 홍보영상보다 조금 더 참신하고 본질적인 접근을 하려 노력했다. 모션그래픽과 CG에 특화된 전문가를 찾던 중 남 대표에게 의뢰해 최종 단계까지 함께 했었다. 그 결과 학교 관련 채널에서 이례적인 조회수와 좋아요를 기록하는 등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남: 현재는 마곡지구에 건설중인 LG사이언스파크 내 LG디스플레이 체험관(가제)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곳에 LG디스플레이 VIP방문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그들에게 브랜드를 고급스럽게 알리고, 철학과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을 1층에 건립할 예정이다. 스펙 위주의 단순 제품 전시를 뛰어 넘어 감성적 체험 중심으로 풀어낸 연출로 전시관을 구상하고 있으며, 총괄 연출·기획 및 최종 제작을 맡아 내년 2월까지 진행 예정인 장기 프로젝트다.

램퍼스가 가진 강점이 있다면?
이: 브랜드커뮤니케이션은 유기체적인 것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 있는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이 램퍼스의 강점이다. 일반적으로 광고나 영상, 아이덴티티 디자인 작업을 함에 있어 그룹화된 프로젝트 형태로 수행할 때가 많다. 광고 대행사가 대행 및 기획을 하고, 제작사가 촬영, 디자인을 진행하는 등 우리는 그런 작업들을 내부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다. 단순 제작 스튜디오로 비춰질 수 도 있으나 컨설팅에서 기획 및 제작, 스크립트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

크리에이티브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철학이 궁금하다. 
남: 많은 사람들이 크리에이티브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레퍼런스를 뒤진다 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해당 브랜드의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심플하게 정의 내릴 수 있다면, 거기서부터 크리에이티브는 의외로 간단히 도출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강의를 나가면 가끔 학생들이 우울한 얼굴로 말한다. ‘저는 비전공자라서요,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아서요’ 이 두 명제가 학생들을 굉장히 괴롭히고 있고, 생각해보면 이러한 죄책감은 수행 과정과 결과물에 나쁜 영향을 준다.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가 우리 디자이너들을 괴롭히는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많이 시달려봤고. 생각해보면 크리에이티브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먹고 살아가되, 결과물로 판단되어야 할 부분도 있지만 도리어 하나의 방법론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도 크리에이티브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정의 내렸다. 학생들에게도 외주, 프리랜서들과 협업하고 커뮤니케이션 할 때, 방법과 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 중 하나가 정의일수도 있고, 혹은 분석일수도 있다. 그것들이 방법론으로 만들어질 때 고유의 아웃풋 혹은 아이덴티티가 형성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싶은가? 
이: 아이덴티티에 관심이 많다 보니 주력적으로 하고 있다. 서울시의 여러 브랜딩 사례들이 있었는데, 그 고민을 심도 있게 같이 참여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갈증은 대규모로 건설중인 서울 식물원 프로젝트를 1년 가까이 진행하며 상당 부분 해소됐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소셜 매체와 브랜드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 시대에 개인 브랜드, 퍼스널(Personal) 브랜딩에 관심이 많다. 자기 자신과 뿌리에 대한 고민을 통해 만들어지는 본질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우리 사회를 좀 더 유연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커머셜 목적이든 아니든, 한 사람의 개인적 아이덴티티를 브랜드화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 값어치를 매겨 의뢰를 받을 수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수도 있고 그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남: 바쁘지만 시간이 생기면 틈틈이 전시회를 찾는다. 물론 전시물 자체에서 영감을 받아 찾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 사람이 적은 평일 낮에 가는 전시회다. 그 공간에 있으면 생각 정리가 정말 잘 된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 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다.
이: 평소 건축이나 인테리어 등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와 그의 건축물을 좋아한다. 직접 건축물에 가서 텍스처를 느껴보고, 냄새도 맡는다. 또 눈을 감고 사람들이 어떤 동선으로 이동할지, 어떤 소리가 발생하는지를 모든 입체적 감각을 동원해 상상을 하곤 하는데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에 가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평소 관심있게 지켜봤던 브랜드나 회사, 인물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이: AKQA라는 디지털마케팅 회사를 좋아한다. 우연치 않게 한 다리 건넌 지인이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라 이야기를 들어보니 프로세스도 탄탄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마케팅 캠페인들을 많이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 광고나 영상을 만드는 직능적인 형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브랜드의 본질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브랜딩을 하고 싶다. 또 이 시대에 통용될 수 있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혹은 가볍지만 그 안에 본질을 꿰뚫는 내용을 담아낸 작업을 해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AKQA와 협업을 해보고 싶다. 관심 있는 브랜드를 꼽으라면 먼저 나이키가 떠오른다. 나이키는 캠페인을 하는데 있어 앞선 시도를 많이 했었고 사용자 니즈 뿐만 아니라 시대의 니즈를 잘 판단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 볼보 역시 좋아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인 안정성을 다각적으로 풀어내 결국은 머릿속에 안정성이라는 키워드를 강하게 심어주지 않는가. 
남: 영국에 디지털 아트 디자인 스튜디오 ‘유니버셜에브리띵(Universal everything)’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곳의 작업물을 보면 비주얼적으로는 미디어 아트인데, 커머셜 분야로 활용을 아주 잘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부 미디어 아트 혹은 아트적인 비주얼로 커머셜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 중에는 아트라는 개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보니, 원래 커머셜한 목적과는 동떨어지게 아트 쪽으로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회사는 브랜드를 정확히 판단해서 그 브랜드를 고급스럽고 아트스럽게 잘 풀어낸다. 이전 직장에서 이 회사와 간접적으로 작업을 함께 해본 적이 있는데 이제는 조금 더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협업해 보고 싶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이라 전망하는가?
이: 어떤 광고라든지 제품의 아이덴티티가 상업적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다고 하면, 이제 개인도 곧 그렇게 되는 사회가 올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개인 퍼스널 브랜딩이나 아이덴티티 구축의 시대가 올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하는 일은 굉장히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되고, 이것은 곧 결국 광고와 브랜딩, 디자인의 영역을 융합시킬 것으로 본다. 또 일정 집단이 가지고 있던 전문 능력이 이제는 대중화 되었다. 예를 들어 심도 있게 고민해 아웃풋했던 프로그램이 이제는 템플릿처럼 뚝딱 하고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고,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도 쉽고 간단해져서 학생들도 굉장히 잘 만든다. 이처럼 전문가들의 권한이 흩어진 측면이 있지만, 사람 고유의 기능을 기계가 대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역시 전문가로서 맥을 짚어주고, 관리 및 디렉팅하는 일들이 고유 권한으로 부각될 것이다. 즉, 이전에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만 해도 크리에이티브로 여겨졌다면 이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고, 그럴수록 진짜 크리에이티브를 할 수 있는 사람들 간의 교류를 통해 전문성은 더 특화될 것이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회사의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
이: 거창한 기준 보다는 좋은 공간에 사무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말하면 물질적 풍요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앞서 밝혔듯 나에게 공간은 다른 의미가 있다. 늘 함께 고민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동료들이 머무는 공간은 이랬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있다. 다음 사무실 역시 가정집의 형태가 될 것이다.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듯, 심적으로 안정을 느끼고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은 집이라 생각한다. 집과 같은 사무실이나 너무 루즈하거나 편하다기 보다 그 경계선상에서 좋은 쪽으로 기운 집 같은 사무실이 내겐 성공 기준이겠다.
남: 개인적으로는 어떤 사람과 어떤 일을 하느냐가 나에겐 제일 중요한 미션이다. 그 공간에서 마음이 잘 통하고 유대감 있는 사람들과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램퍼스가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이: 회사로서 높은 인지도도 중요하고 다양한 프로젝트 사례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하나의 단어로 묶이는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 아직은 인프라가 부족해 좋은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어도 지금까지 진행된 여러 사례에서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 여러 업체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다며 순차적으로 더 많은 기회가 찾아 올 것이라 생각한다. 
남: 앞서 성공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은 그 기준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때로는 타협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목표, 성공 기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램퍼스의 향후 비전은 무엇인가?
이: 고객이 조금 더 영향력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데 기여를 하겠다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자 비전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사 출신이다 보니 학교를 나오는 순간에 결심했던 것 중 하나가 교육과 관련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었다. 지금 하는 일도 결국은 어떤 주제와 대상을 고객이나 사용자에게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인데, 교육 또한 같은 일환이다. 같은 주제(혹은 교육 과목)를 전달함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전달이 이루어졌을 때 쉽게 느끼고, 오래 기억할 수 있다. 교육받지 못한 학생, 교육을 필요로 하는데 무슨 교육을 받아야 할지 모르는 성인 등에게 조금 더 날카롭게 내용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지금 하는 일도 그것과 굉장히 맥이 통하고 있어 많은 동기가 유발된다. 
남: ‘디자이너들은 왜 드리블(글로벌 디자이너들의 작품 공유 웹사이트)에 올리기 위해 디자인하는가’라는 외국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요는 커머셜한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임에도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이 아닌 드리블에 업로드 해 댓글을 많이 받고 자랑하기 위한 디자인을 한다는 거다. 그 글을 읽던 당시 굉장히 공감했 다. 나 역시 디자이너로서 보기에 예쁜 디자인, 결과물이 멋진 디자인을 추구했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은 뭘까, 이 매체(편집 디자인, 웹페이지, 영상 등)를 통해 고객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뭘까와 같은 고민들을 말이다. 고객은 특정 범주를 설정하고 카테고리를 정해 프로젝트 의뢰를 맡기지만, 사실 클라이언트라고 모든 걸 알고 의뢰를 주는 것은 아니다. 클라이언트 본인 자신도 모르고 놓쳤던 니즈를 짚어주고 찾아내 알맞는 형태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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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7. 10. 20. 15:27

True Enterprise, True Management 김영수 모라비안프라트룸 대표

글. 전찬우 기자 jcw@websmedia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김주선 포토그래퍼

<손자병법>의 대표 문장인 ‘지피지기(知彼而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으로, 오늘날의 각종 마케팅 경쟁 사회에서도 통하는 진리다. 새로운 비즈니스 브랜드를 기획하거나, 기존 브랜드의 혁신과 성장을 꿈꾼다면 주목하라. 내부 고유 가치(Identity)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과 소통할 수 있도록 전략을 제시하는 ‘모라비안프라트룸’의 김영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 김영수 모라비안프라트룸 대표 


Q. 먼저 디아이 매거진 독자들에게 김영수 대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브랜드 리바이벌(Brand Revival)을 꿈꾼다. 회사의 비전 중 하나가 BRO(Business, Region, Ourselves) Revival이다. 비지니스와 지역, 사람 등 각 부문별로 진정한 브랜드의 회복을 꿈꾸며 살고 있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딸의 아버지다.  

Q. 브랜드의 회복이라는 표현이 참 신선하다. 이어서 회사 소개를 부탁한다.  
창업 전 이랜드에서 전략 업무를 맡았다 보니 비지니스로 처음 관심을 둔 분야가 패션 산업(Fashion industry)이었다. 마케팅 업무를 했던 친구들과 함께 시작해 가장 먼저 한 작업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출발은 비지니스 컨설팅 개념이었다. 시장을 분석해 기회를 보고, 새로운 비지니스를 만드는 일. 모든 비지니스는 브랜드가 된다는 생각으로 브랜드를 런칭하고, 리뉴얼 하는 것이 업무의 본질이었다. 가장 먼저 패션 분야에서 시작해 이후 라이프 스타일 분야(life style industry)로 확장이 됐고, 현재는 지역 및 도시 컨설팅 업무도 진행하고 있다. 

Q. 독자들도 느낄 것 같은데 회사 이름이 굉장히 독특하다. ‘모라비안프라트룸’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나?
비지니스와 선교를 결합한 모델에 대해 다룬 라는 책을 읽었는데, 처음 나온 사례가 모라비안이었다. 체코에 모라비아라는 지역이 있다. 구교의 박해를 피해 과거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비지니스 생활을 했다. 이들은 또 해외에서 선교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복음전파뿐만 아니라 비지니스와 선교를 동시에 했다. 즉 삶과 선교가 하나된 단체로서, 당시 굉장한 영향력을 지녔었다. 이들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모라비안을 차용했고, 이 단체의 라틴어 이름 중 ‘형제연합’이란 뜻을 지닌 프라트룸을 가져와 모라비안 공동체라는 의미로 회사명을 정했다. 

Q. 다양한 분야 가운데 브랜드 전략 컨설팅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비영리 단체에 관심이 있어 유학을 준비하던 중 와이엠(YWAM)이라는 단체에서 진행한 비지니스 세미나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지성적인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컨설팅 한다는 한 업체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나도 사회적 가치를 창출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고, ‘기업을 기업답게, 경영을 경영답게 (True Enterprise True Management) 만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라고 답을 내렸다. 그래서 앞서 말한 BRO Revival, 즉 비지니스와 지역, 사람의 회복을 회사의 목적과 가치, 비전으로 투영하게 됐다. 

Q.브랜드 전략 컨설팅 회사가 수행하는 구체적인 업무 영역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업체들은 BI(Brand Identity)의 구체적 형태인 Verbal, Visual 분야를 축으로 만들어져 왔다. 그러다가 Verbal, Visual보다 이전 단계인 BI의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면서 브랜드 컨설팅 영역으로 확장됐다. 우리는 출발 자체가 컨설팅이었다. 시장, 고객, 경쟁자, 자사 분석을 통해 새롭고(New) 다르며(Different), 지속가능하고(Sustainable), 적절한(Relevant) 가치(Value)를 뽑아 BI를 만든다. 이후 BI를 토대로 네이밍, 슬로건, 스토리 등 Verbal 작업을 하고, 다음으로 로고, 심볼, 앱 등의 Visual 작업을 한다. 이 단계까지 완료되면 상품 및 서비스, 가격, 유통, 커뮤니케이션(마케팅) 등에 대한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고, 마지막으로 평가 작업을 거치게 된다. 여기까지가 일련의 종합 패키지 업무다. 물론 고객의 요구에 따라 일부 단계만 서비스하기도 하나 브랜드를 런칭하거나 리뉴얼 하는 고객들이 많다 보니 대부분 처음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종합 패키지로 진행한다. 

Q. 일반적으로 브랜드 전략 컨설팅에 소요되는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고객의 요구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조사작업에서부터 BI, Verbal, Visual, 커뮤니케이션 전략 작업까지 모두 완료하는데 6개월 정도가 걸린다. 사전 작업을 줄이면 대략 4개월 정도가 소요되고, 이미 BI가 잡혀있는 회사의 경우에는 Visual과 커뮤니케이션 전략까지 3개월 정도 진행한다.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경우 Visual 작업과 병행해서 진행된다.

Q. 전체 소요 기간에도 큰 영향을 줄 만큼 BI(Brand Identity)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휠라(FILA)가 한동안 주춤하다가 요즘 다시 주가가 오르고 있다. 휠라와 2012년부터 작업 했는데 사실 내부적인 고민이 있었다. 업계의 큰 흐름은 퍼포먼스 분야로 가고 있는데 필라의 본질은 패션, 라이프스타일 분야였다. 전반적인 산업 흐름에 편성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으나, 결국 자기 본연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에서 다시 기회들이 오더라. 개인도 그렇고 창업도 그렇고 일반 비지니스는 결국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다움’이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보존하고 발전은 자극하라’는 말이 있다. 핵심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변화들에 잘 적응해가고,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가느냐가 관건이다. ‘기업을 기업답게, 경영을 경영답게’ 하는 데 있어서 브랜드와 비지니스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BI를 설정하고 바로잡아 주는 것이 앞서 말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한 과정 또는 전략이 될 수 있다. 

Q. 브랜드를 만든 이후 관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가? 
브랜드 관리를 하면서 우리 자체적으로 가져가는 지표 중에 ‘고객 연대감’이라는 것이 있다. 필립 코틀러가 말했듯이 마켓은 기능, 소비자, 가치, 인간중심에서 이제 옴니 채널로 넘어가며 고객 참여적인 부분들이 확대되고 있다. 고객이 이전에는 소비자로서 혜택을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인식들이 퍼지고 있다. 휠라에서도 브랜드 활동과 브랜드 밸류 체인 단계에 고객이 얼마나 참여하는지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2년 이상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의 개념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개념으로 여겨진다. 애플, 할리데이비슨 등이 고객들이 브랜드에 대해 아주 강한 연대감을 갖는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지표를 측정하고 평가해보면 이제 제품이 싫어서 고객이 떠나는 세상이 아니라 고객과 브랜드를 함께 만드는 시대가 돼가고 있다. 이것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기업과 브랜드 활동에 참여하는 고객이 모두 공생할 수 있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Q. 이쯤 되니 지금까지 실제 진행했던 컨설팅 사례들이 궁금해진다. 앞서 말한 휠라를 제외하고 
몇 가지 더 소개해달라.
먼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해외 브랜드로 알고 있는 제이에스티나(J.ESTINA)가 있다. 로만손(ROMANSON)으로부터 신 사업 기획 요청을 받고 시계사업과 관련된 주얼리 사업을 제안해 전체 패키지로 진행했었다. ‘여자를 공주로 만들어 준다’라는 콘셉트로 스토리도 이태리 공주 이야기를 가져오고, 공주의 상징 티아라를 이용해 로고, 심볼을 비주얼라이징 했다. 이밖에 캐주얼(casual)과 스포츠(sports)를 합쳐 캐포츠(caports)라는 새로운 영역을 연 이엑스알(EXR), 중저가 이미지에서 트렌드 세터 반열에 오른 컨버스(CONVERSE) 등이 있다. 최근에는 지난 6월에 런칭한 홈쇼핑 브랜드 오로타(OROTA)가 있는데, ‘오롯하다’라는 말에서 의미를 가져온 이 브랜드는 런칭 30분만에 매진을 기록하며 5억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Q. 그 밖에도 MCM, 8IGHT SECONDS 등 많은 브랜드 컨설팅 작업을 한 것으로 안다. 유독 기억에 남는 브랜드가 있다면?  
EXR 네이밍 작업했을 때가 생각난다. 브랜드 컨셉 등 전반적인 것들은 다 준비가 됐는데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 고생을 했었다. 당시에는 밥을 먹을 때도, 운전을 할 때도 그 생각만 했다. 야구 선수들은 타율이 좋은 날 공이 유독 크게 보인다고 하던데, 어느 날 컴퓨터를 하다 EXR이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영어공부를 나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단어가 있는 줄 몰랐다. 단어를 찾아보니 executor의 약자더라. 집행자라는 뜻 이다 보니 progressive 라는 당시 브랜드 콘셉트와도 잘 어울렸다. 여기에 알파벳 E를 날개 모양으로 바꿔 역동성을 느껴지게 했고, 광고 비주얼과 오프라인 매장 컨셉을 스피디하고 미래적인 느낌으로 잘 풀어냈던 사례다. 특히 EXR은 9년간 함께 작업 하면서 일본과 중국 등 해외시장에도 런칭했던 브랜드라 더 기억에 남는다. 

Q. 현재 회사가 소재한 성수동에서 지역 회복 사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에서 시작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달라.  
‘도시 브랜딩’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는데, 캄보디아에서 신도시를 개발하는 어떤 분이 이 책을 읽고 찾아왔다. 결과적으로 다른 글로벌 컨설팅 팀과 함께 컨소시엄으로 작업을 하게 됐다. 당시 도시 브랜딩, 공항 브랜딩 등을 통해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사업을 진행하며 연구를 하다 보니 비지니스를 통한 지역회복 사례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사무실 건물 내부에 b.some 카페를 열어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고 회복을 할 수 있는 소통 공간을 만들었다. 또 예술인들을 모아 공방을 열어 공동 브랜드를 만들었고, 성수동 상원길 리뉴얼 사업에 구성원으로 참여해 우리 직원이 감독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평소 대기업, 중견기업위주의 고객들을 만나 사업을 하다 보니 골목이 획일화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골목을 더 다채롭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골목 가게가 골목 브랜드가 되고, 그 골목 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 교육을 실시하는 골목 대학도 열게 됐다.

Q. 시대가 변하면서 브랜드 컨설팅 분야에서 겪게 되는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망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컨설팅 분야가 아니긴 하지만 한 선배의 경우에는 회사 내부에 있던 직원들이 회사를 나가 계속 사업체를 만들면서 가격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이는 자기를 스스로 죽이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사실 패션 컨설팅 분야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가격이 높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수익성이 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이후의 결과는 예상대로 경쟁이 심화되면서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 요즘에는 견디는 것도 힘들 때가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려움은 아무래도 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다. 다가오는 변화에 대해 앞으로 브랜드 컨설팅 회사 들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 많은 고민이 된다.  Q. 말한 대로 4차 산업혁명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고, 브랜드 전략 컨설팅 분야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의 앞날을 어떻게 내다보고 있는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까지 한 50년 정도 살고 뒤를 돌아보니 상황은 계속 변해왔더라. 상황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데, 이것을 위협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고 기회로 보는 사람도 있다.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2000년대 중후반 한창 패션산업 분야에 있을 때는 성공했던 사례도 많았기 때문에 ‘업종내의 독점적 위치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격덤핑, 경쟁 확대 등이 발생 하면서 상황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왔다. 비지니스 현장에는 늘 기회요인과 위기요인이 공존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누군가 위기를 ‘위태로운 기회’라고 말하더라. 위태롭고 위험스러운 기회라는 말인데 그 말에 동의한다. 나 역시 나이가 들어 AI나 빅데이터 등은 대해 굉장히 거대하고, 접근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분명 보여지는 게 있었다. 미래가 밝게 될지, 어둡게 될지 결국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철학적인 대답인가(웃음)?

Q. 회사 직원들이 모두 크리스찬인 것으로 안다. 인재를 채용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는가? 
직원들의 유형이 세 번 정도 변화해왔다. 초창기에는 우리 회사의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 가운데 업무적인 성과도 내고, 본인 스스로의 성장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위주로 보고 뽑았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유학, 자기 사업 등으로 모두 떠나더라.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영속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기업을 기업답게, 경영을 경영답게’라는 본질로 돌아 가자 다짐 했던 것이 2007, 2008년쯤이었는데 좀 더 사회변화적인 측면을 다뤄야겠다 싶어 당시에는 업무적인 능력보다 크리스찬 중에서 브랜딩 비지니스를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뽑았다. 그러자 브랜드에 대한 사명보다는 종교적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라. 업무를 처음부터 다 가르쳐야 하다 보니 어려웠고, 한계도 보였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입사한 분들이 마지막 단계로 능력과 사명감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고 충족하는 사람들이다. 딱히 의도적으로 이러한 채용 기준을 두고 뽑았다기 보다는 지원자들 스스로가 선교자적인 마인드, 좋은 브랜드로 세상을 가치 있게 만들고 싶다는 신념을 추구하더라.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Q. 사업을 하면서 힘든 순간도 많을 터인데 평소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운동을 한다. 이전에 목동에 살 때는 한강을 뛰었고, 일산 쪽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호수공원을 뛰고 있다. 뛰면서 자연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는데 이때가 나에게는 회복되는 과정이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느껴진다. 육체가 건강해지니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맑아지니 또 육체가 잘 움직이게 되는 측면이 있다. 운동 이외에는 책을 읽는다. 예전에는 기능적인 내용의 책이 도움이 됐다면, 요즘은 인문학적 도서를 자주 본다. 또 아내가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평상시에 내게 소설 내용을 잘 전달해준다. 아내가 스토리텔러가 되어 내가 읽거나 보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 장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설명을 잘 해준다. 너무 재미있고, 스트레스 관리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Q. 최근에 신작을 낸 것으로 안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 책인가?
‘창업은 브랜딩이다’라는 책이 지난 6월 말에 나왔다. 우리가 하는 주요 사업이 신규사업 런칭이다 보니 창업과 연결이 되어있고, 자기의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창업이라는 것이 브랜딩의 속성과 굉장히 닮아있다고 느꼈다. 요즘은 해보기 식 창업도 많은데 사실 창업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책에서는 창업을 브랜딩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지금까지 일하며 쌓아온 창업관, 브랜딩에 대한 관점들을 접목해 행복한 창업, 그것은 자기다운 창업이 되어야 하고 결국 그 방향은 ‘우리다움’이라는 공동체를 만드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공동체적 브랜드가 됐을 때 고객들이 앞서 말한 강한 연대감을 갖고, 또 그래야만 영속하는 브랜드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Q.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가족들과 세계여행을 가고 싶다. 또 시나 소설 등 인문학적 글이나 지금까지의 내 철학을 담은 브랜딩 원론 책을 써보고 싶다. 그리고 혹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화나 연극 대본도 쓰고 싶다. 예전 대학 시절 희극론 수업을 들었었는데 내가 쓴 시나리오가 A학점을 받은 적이 있다. 나에게 희곡을 쓰는 자질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내 인생에 있어 한 시대 한 시대마다 만들었던, 해결하지 않은 숙제와 과제들이 떠오르는데 이것들을 하나하나 잘 해결해 나가는 것이 개인적인 버킷리스트다. 
비즈니스 측면으로는 크게 세가지, 이코노믹 밸류, 소셜 밸류, 킹덤 밸류(신앙적 밸류)가 결합된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 또 하나는 비지니스와 지역의 회복, 이것이 연결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지금 이곳에 와있는 이유도 그렇다. 가치 면에서는 3가지가 결합되고, 영역 면에서 사람과 지역, 비지니스가 통합된 것을 하면 맨 처음 말했던 BRO Revival이 될 것이다. 꼭 이루고 싶다.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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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7. 10. 20. 15:23

브랜드에 빛을 비추다 남국희·이정윤 램퍼스 공동대표


강남 신사동 어느 조용한 골목에 자리잡은 빨간 벽돌 건물. 이 건물 2층에는 브랜드에 불을 밝혀주리라 뜻을 모은 두 사람, 이정윤·남국희 공동 대표가 있다. 브랜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진지하지만 유쾌하고, 감성적이지만 본질을 관통한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두 사람은 오늘도 그들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고 있다.

글. 전찬우 기자 jcw@websmedia.co.kr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소기섭 포토그래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램퍼스 이정윤(좌), 남국희(우) 공동대표

만나게 되어 반갑다. 먼저 디아이 매거진 독자들에게 대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이정윤 대표(이하 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램퍼스의 공동대표이자 디렉터로 활동중인 이정윤이다. 학부 때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이후 개인적인 계기로 교육학 석사과정 이후 고등학교 교사로 일선에서 4년 동안 일을 했었다. 현재는 다시 한번의 계기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세우고 창업을 해 일하고 있다. 
남국희 대표(이하 남): 램퍼스의 공동대표이자 디렉터 남국희다. 10년째 영상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모션그래픽이라는 장르로 시작해 디자이너로 있다가 가장 최근 직장에서 뉴미디어 전시분야 치프 디렉터로 근무했는데, 회사에 속해 있다 보니 크리에이터로서 내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기 힘든 부분이 있더라. 물론 규모가 있는 회사 소속으로 큰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지만, 다시 내려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처음부터 밟아보자는 생각에 창업을 하게 됐고, 그 와중에 좋은 인연인 이정윤 대표를 만나 공동 창업을 하게 됐다.

이어서 램퍼스에 대한 소개를 듣고싶다.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이: 공동창업을 결정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서로 다른 성향과 관점, 철학 때문이었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융합해보자는 것이 시발점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브랜드의 본질을 파악하는, 그리고 브랜드를 커뮤니케이션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고 희열을 느낀다. 반면 남 대표는 구성된 본질을 이미지화하고 그것을 디자인하고 시각화하는 일에 대한 관심과 능력이 뛰어나다.
남: 사실 램퍼스 공동체는 이름만 올해 정해졌을 뿐, 이전부터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었다. 또 그 과정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비주얼 기반의 디자이너, 크리에이터들이 하는 일반적인 생각 틀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데, 이 대표는 디자인이나 비주얼 영역에서 떨어져있는 사람들의 언어와 개념까지도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었다. 나는 잘 하지 못하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었고, 여기에 내가 잘 하는 영역이 만났을 때 분명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라는 확신에 먼저 창업제의를 하게 됐다.
램퍼스라는 회사 이름이 독특하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설명해달라.
이: 직관적으로 접근했다. 그게 가장 본질적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램퍼스를 풀이해보면 어둠을 밝혀주는 램프와, 그것을 손에 쥔 사람들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브랜드와 사용자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 밝혀주는 안내자가 되겠다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는 길을 밝히는 등불을 손에 쥔 사람들’이라는 의미와 철학에서 램퍼스라고 회사명을 짓게 됐다.
 
램퍼스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가? 
이: 창업하고 운영한지 얼마 안된 현재에는 사실 하고 싶어하는 일과 닮아있는 부분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 하고 있다. 지향하는 바는 기존에 이루어졌던 광고 형태나 이미지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뛰어넘는, 기존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작업을 하려 한다. 그것은 광고가 될 수도, 브랜드 아이덴티티(BI, Brand Identity)작업이 될 수도, 아니면 지금 진행 중인 전시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보자면 ‘브랜드 이미지 커뮤니케이션’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맑다, 투명하다, 세련됐다 등의 심상적으로 떠오르는 브랜드 이미지를 포함해, 아웃풋되는 디자인의 결과물, 영상 등 복합적이고 중의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두 대표는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나?
남: 이 대표가 시작한지 1년 정도, 내가 6개월 정도 즈음 됐을 때 우연히 프로젝트를 함께한 적이 있는데 서로 합도 잘 맞았고, 각자 지닌 강점이 다르다 보니 큰 시너지가 발생했었다. 물론 사업이란 것이 프로젝트 하나 잘 됐다고 해서 ‘좋다, 같이 해보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처음부터 끌리는 부분이 있었다. 스스로는 좀 신중해지자 생각해서 이후 몇 개의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했는데 역시나 ‘이 사람과 같이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렸을 때야 주변에 친구가 많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동갑 관계를 찾기 쉽지 않다. 남 대표와 동갑인데 비슷한 또래 관계에서 나눌 수 있는 특유의 감정적인 안정감이 있어 좋았다. 또 특별히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없어도 서로 사적인 교류가 있었던 터라 그런 점도 많은 작용을 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함께 했던, 또 진행중인 프로젝트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이: 남 대표를 만나게 해준 계기가 된 프로젝트 중 하나가 광운대학교 총괄 브랜드 작업이었다. 우리보다 몇 십 배 큰 규모의 회사와의 경쟁에서 과반수 이상의 득표로 진행을 맡게 됐다. 기존의 일반적인 대학 홍보영상보다 조금 더 참신하고 본질적인 접근을 하려 노력했다. 모션그래픽과 CG에 특화된 전문가를 찾던 중 남 대표에게 의뢰해 최종 단계까지 함께 했었다. 그 결과 학교 관련 채널에서 이례적인 조회수와 좋아요를 기록하는 등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남: 현재는 마곡지구에 건설중인 LG사이언스파크 내 LG디스플레이 체험관(가제)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곳에 LG디스플레이 VIP방문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그들에게 브랜드를 고급스럽게 알리고, 철학과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을 1층에 건립할 예정이다. 스펙 위주의 단순 제품 전시를 뛰어 넘어 감성적 체험 중심으로 풀어낸 연출로 전시관을 구상하고 있으며, 총괄 연출·기획 및 최종 제작을 맡아 내년 2월까지 진행 예정인 장기 프로젝트다.

램퍼스가 가진 강점이 있다면?
이: 브랜드커뮤니케이션은 유기체적인 것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 있는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이 램퍼스의 강점이다. 일반적으로 광고나 영상, 아이덴티티 디자인 작업을 함에 있어 그룹화된 프로젝트 형태로 수행할 때가 많다. 광고 대행사가 대행 및 기획을 하고, 제작사가 촬영, 디자인을 진행하는 등 우리는 그런 작업들을 내부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다. 단순 제작 스튜디오로 비춰질 수 도 있으나 컨설팅에서 기획 및 제작, 스크립트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

크리에이티브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철학이 궁금하다. 
남: 많은 사람들이 크리에이티브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레퍼런스를 뒤진다 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해당 브랜드의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심플하게 정의 내릴 수 있다면, 거기서부터 크리에이티브는 의외로 간단히 도출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강의를 나가면 가끔 학생들이 우울한 얼굴로 말한다. ‘저는 비전공자라서요,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아서요’ 이 두 명제가 학생들을 굉장히 괴롭히고 있고, 생각해보면 이러한 죄책감은 수행 과정과 결과물에 나쁜 영향을 준다.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가 우리 디자이너들을 괴롭히는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많이 시달려봤고. 생각해보면 크리에이티브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먹고 살아가되, 결과물로 판단되어야 할 부분도 있지만 도리어 하나의 방법론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도 크리에이티브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정의 내렸다. 학생들에게도 외주, 프리랜서들과 협업하고 커뮤니케이션 할 때, 방법과 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 중 하나가 정의일수도 있고, 혹은 분석일수도 있다. 그것들이 방법론으로 만들어질 때 고유의 아웃풋 혹은 아이덴티티가 형성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싶은가? 
이: 아이덴티티에 관심이 많다 보니 주력적으로 하고 있다. 서울시의 여러 브랜딩 사례들이 있었는데, 그 고민을 심도 있게 같이 참여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갈증은 대규모로 건설중인 서울 식물원 프로젝트를 1년 가까이 진행하며 상당 부분 해소됐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소셜 매체와 브랜드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 시대에 개인 브랜드, 퍼스널(Personal) 브랜딩에 관심이 많다. 자기 자신과 뿌리에 대한 고민을 통해 만들어지는 본질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우리 사회를 좀 더 유연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커머셜 목적이든 아니든, 한 사람의 개인적 아이덴티티를 브랜드화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 값어치를 매겨 의뢰를 받을 수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수도 있고 그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남: 바쁘지만 시간이 생기면 틈틈이 전시회를 찾는다. 물론 전시물 자체에서 영감을 받아 찾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 사람이 적은 평일 낮에 가는 전시회다. 그 공간에 있으면 생각 정리가 정말 잘 된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 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다.
이: 평소 건축이나 인테리어 등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와 그의 건축물을 좋아한다. 직접 건축물에 가서 텍스처를 느껴보고, 냄새도 맡는다. 또 눈을 감고 사람들이 어떤 동선으로 이동할지, 어떤 소리가 발생하는지를 모든 입체적 감각을 동원해 상상을 하곤 하는데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에 가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평소 관심있게 지켜봤던 브랜드나 회사, 인물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이: AKQA라는 디지털마케팅 회사를 좋아한다. 우연치 않게 한 다리 건넌 지인이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라 이야기를 들어보니 프로세스도 탄탄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마케팅 캠페인들을 많이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 광고나 영상을 만드는 직능적인 형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브랜드의 본질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브랜딩을 하고 싶다. 또 이 시대에 통용될 수 있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혹은 가볍지만 그 안에 본질을 꿰뚫는 내용을 담아낸 작업을 해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AKQA와 협업을 해보고 싶다. 관심 있는 브랜드를 꼽으라면 먼저 나이키가 떠오른다. 나이키는 캠페인을 하는데 있어 앞선 시도를 많이 했었고 사용자 니즈 뿐만 아니라 시대의 니즈를 잘 판단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 볼보 역시 좋아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인 안정성을 다각적으로 풀어내 결국은 머릿속에 안정성이라는 키워드를 강하게 심어주지 않는가. 
남: 영국에 디지털 아트 디자인 스튜디오 ‘유니버셜에브리띵(Universal everything)’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곳의 작업물을 보면 비주얼적으로는 미디어 아트인데, 커머셜 분야로 활용을 아주 잘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부 미디어 아트 혹은 아트적인 비주얼로 커머셜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 중에는 아트라는 개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보니, 원래 커머셜한 목적과는 동떨어지게 아트 쪽으로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회사는 브랜드를 정확히 판단해서 그 브랜드를 고급스럽고 아트스럽게 잘 풀어낸다. 이전 직장에서 이 회사와 간접적으로 작업을 함께 해본 적이 있는데 이제는 조금 더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협업해 보고 싶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이라 전망하는가?
이: 어떤 광고라든지 제품의 아이덴티티가 상업적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다고 하면, 이제 개인도 곧 그렇게 되는 사회가 올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개인 퍼스널 브랜딩이나 아이덴티티 구축의 시대가 올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하는 일은 굉장히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되고, 이것은 곧 결국 광고와 브랜딩, 디자인의 영역을 융합시킬 것으로 본다. 또 일정 집단이 가지고 있던 전문 능력이 이제는 대중화 되었다. 예를 들어 심도 있게 고민해 아웃풋했던 프로그램이 이제는 템플릿처럼 뚝딱 하고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고,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도 쉽고 간단해져서 학생들도 굉장히 잘 만든다. 이처럼 전문가들의 권한이 흩어진 측면이 있지만, 사람 고유의 기능을 기계가 대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역시 전문가로서 맥을 짚어주고, 관리 및 디렉팅하는 일들이 고유 권한으로 부각될 것이다. 즉, 이전에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만 해도 크리에이티브로 여겨졌다면 이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고, 그럴수록 진짜 크리에이티브를 할 수 있는 사람들 간의 교류를 통해 전문성은 더 특화될 것이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회사의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
이: 거창한 기준 보다는 좋은 공간에 사무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말하면 물질적 풍요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앞서 밝혔듯 나에게 공간은 다른 의미가 있다. 늘 함께 고민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동료들이 머무는 공간은 이랬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있다. 다음 사무실 역시 가정집의 형태가 될 것이다.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듯, 심적으로 안정을 느끼고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은 집이라 생각한다. 집과 같은 사무실이나 너무 루즈하거나 편하다기 보다 그 경계선상에서 좋은 쪽으로 기운 집 같은 사무실이 내겐 성공 기준이겠다.
남: 개인적으로는 어떤 사람과 어떤 일을 하느냐가 나에겐 제일 중요한 미션이다. 그 공간에서 마음이 잘 통하고 유대감 있는 사람들과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램퍼스가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이: 회사로서 높은 인지도도 중요하고 다양한 프로젝트 사례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하나의 단어로 묶이는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 아직은 인프라가 부족해 좋은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어도 지금까지 진행된 여러 사례에서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 여러 업체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다며 순차적으로 더 많은 기회가 찾아 올 것이라 생각한다. 
남: 앞서 성공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은 그 기준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때로는 타협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목표, 성공 기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램퍼스의 향후 비전은 무엇인가?
이: 고객이 조금 더 영향력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데 기여를 하겠다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자 비전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사 출신이다 보니 학교를 나오는 순간에 결심했던 것 중 하나가 교육과 관련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었다. 지금 하는 일도 결국은 어떤 주제와 대상을 고객이나 사용자에게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인데, 교육 또한 같은 일환이다. 같은 주제(혹은 교육 과목)를 전달함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전달이 이루어졌을 때 쉽게 느끼고, 오래 기억할 수 있다. 교육받지 못한 학생, 교육을 필요로 하는데 무슨 교육을 받아야 할지 모르는 성인 등에게 조금 더 날카롭게 내용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지금 하는 일도 그것과 굉장히 맥이 통하고 있어 많은 동기가 유발된다. 
남: ‘디자이너들은 왜 드리블(글로벌 디자이너들의 작품 공유 웹사이트)에 올리기 위해 디자인하는가’라는 외국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요는 커머셜한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임에도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이 아닌 드리블에 업로드 해 댓글을 많이 받고 자랑하기 위한 디자인을 한다는 거다. 그 글을 읽던 당시 굉장히 공감했 다. 나 역시 디자이너로서 보기에 예쁜 디자인, 결과물이 멋진 디자인을 추구했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은 뭘까, 이 매체(편집 디자인, 웹페이지, 영상 등)를 통해 고객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뭘까와 같은 고민들을 말이다. 고객은 특정 범주를 설정하고 카테고리를 정해 프로젝트 의뢰를 맡기지만, 사실 클라이언트라고 모든 걸 알고 의뢰를 주는 것은 아니다. 클라이언트 본인 자신도 모르고 놓쳤던 니즈를 짚어주고 찾아내 알맞는 형태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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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7. 10. 20. 15:22

크리에이티브 르네상스를 위해, 김영호 샴페인 대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최소 1만 시간을 투자하라 했던가. 올해로 37년, 평생의 반 이상을 이른바‘광고쟁이’로 살아온 그는 누가 봐도 광고 전문가다. 그러나 아직도 매주 극장에 가서 최신 영화와 광고 트렌드를 챙기고, 인기 K-pop가요를 골라 듣는다. 왜? 남들이 말하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와이프는 이런 모습을 참 꼴 보기 싫어한다’며 웃는 그에게서 크리에이티브를 향한 열정이 엿보인다. 1만 시간을 넘어 10만 시간의 지혜를 보여준 김영호 샴페인 대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 전찬우 기자 jcw@websmedia.co.kr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김성진 포토그래퍼




먼저 디아이 매거진 독자들에게 김영호 대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보통 소개를 하라고 하면 나이부터 밝히는데 작년에 환갑을 넘겼다. 광고를 한지 37년 정도 됐으니 오래 했다. 지금까지 3개 회사를 다녔는데, 보령제약 홍보실과 대홍기획을 거쳐 현재는 샴페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학부 때 디자인, 대학원에서 광고홍보를 전공했고 대홍기획에 디자이너로 입사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광고본부장을 지낸 후 샴페인을 창립하며 대표를 맡았는데, 그게 어느덧 15년이 지났다. 

이어서 회사 소개를 부탁한다. 

샴페인은 월드컵으로 한창 뜨거웠던 2002년도의 9월 1일자로 설립을 했다. IMF가 조금은 지나간 그 해 유난히 크고 작은 광고회사가 많이 생겼다. LG, 제일(기획) 등 메이저 대행사 출신 크리에이터들이 광고회사를 제법 많이 만들었던 시점이었는데, 샴페인의 첫 사무실은 경복궁 옆 사간동이었다. 이후 홍대로 이사 와 10여년을 보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홍대 근처에 광고회사가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굉장히 늘어났다. 회사명인 샴페인은 표문송 부사장이 캠페인(Campaign)이라는 단어에 H(Heart, Humor, Highlight, Harmony, Helpful)를 더해 탄생시켰다. H를 넣음으로써 샴페인이라 읽을 수 있고 샴페인은 보통 어떤 일의 성공 등 좋은 일을 기념하며 터트리는 것 아니던가, 의미도 좋았다.

15년전, 어떤 계기에서 지금의 샴페인을 만들게 됐는가?

당시 ‘지금쯤은 이 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선배들을 통해 대형 광고회사에서의 크리에이티브는 소모적일 수 있고, 어느 순간 움직임이 둔화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광고주가 노(No) 한다면 작업 결과물이 용도폐기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내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내 크리에이티브를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위로 올라가 임원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쯤에서 내가 조직을 하자’고 결심했다. 물론 운도 좋았다. 당시 후배들이 ‘우리 것 한번 만들어보죠’하고 힘을 실어줬다. 그때 만약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이후에 같이 해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그 친구들도 각자 자기 역할을 해야 했을 테니. 돌이켜보면 시점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창업 초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

샴페인은 크리에이티브에 중점을 두고 시작을 했다. 나 또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보니 샴페인을 시작할 때는 크리에이티브가 부족한 회사에 도움을 주는 일을 했었다. 대행사에 아이디어를 보태는 일도 했다. 그러다 ‘대행사 일만 하다가 일이 안 들어 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고, 힘들어도 우리 자체의 광고주를 개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크든 작든 우리의 클라이언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부터는 클라이언트 개발에 역점을 뒀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만약 광고대행사의 일만 했었더라면 샴페인은 10년 전쯤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광고주를 갖기 위해 인력을 충원하고 시스템을 갖추다 보니 결국 클라이언트의 니즈에 맞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클라이언트를 넓혀 나갔고, 현재는 10년 이상 우리와 작업한 클라이언트까지 보유하고 있다.

광고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회사 내에 시니어 직원들이 많다.

처음 창업을 할 당시 대홍기획 후배들이 하나 둘 가세를 했다. 샴페인에서 함께 뜻을 나눠보면 어떻겠냐 해서 모이다 보니 지금은 임원이 6명이다. 우리 정도 규모 회사에 6명의 임원은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했다. 메이저 대행사에서 각자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기에 회사에 큰 도움이 된다는 관점이었다. 시니어들이 갖는 가치와 특별함을 클라이언트로부터 인정받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알게 한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시니어 한 명만 미팅을 보내도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들 있어 올해도 작년보다 매출이 나은 상황이고, 우리보다 10배, 20배 큰 회사와 경쟁해 규모 있는 광고주를 영입 하기도 했다.

든든한 시니어들과 함께 일하는 만큼 걱정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사실 한 4, 5년 전부터 덜컥 문제가 생겼다. 나 역시 직원들과 함께 시니어가 되는 사이에 세상이 바뀐 것이다. 바로 디지털 이다. 심각한 문제다. 말로 하는 것과 그것으로 돈을 버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다. 누군가에게 기웃거려도 보고, 외주라도 맡겨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매출 포지션의 1, 2%밖에 되지 않던 디지털 관련 광고가 지금은 전체 업무의 약 60%를 차지한다. 
15년 전에는 인터넷 광고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 프레젠테이션 할 때 인터넷 광고에 대해 기획서 한 줄로도 들어간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 얘기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나머지 것들을 풀어 나가지 못한다. 영상을 제작해도 옛날엔 TV CM만 만들었다면, 지금은 어떤 디지털 매체에 활용하기 위한 영상인가를 고민한다. 완전 다른 세상이다. 클라이언트는 끊임없이 새로운 서비스들을 요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매체가 생겨나는데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면 결국 ‘너희와 일하는데 문제가 있어’라는 평을 듣게 될 것이다. ‘이러다 클라이언트를 모두 잃는 건 아닐까’하는 절대 위기감을 느낀 적도 있다. 가장먼저 했던 특단의 조치는 당시 디지털 회사에 다니던 딸을 데려와 도움을 받은 것이다. 지금은 함께하지 않지만 그 친구가 스치고 간 흔적을 보며 ‘이런, 저런 부분들을 챙겨야겠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이후 디지털 마인드가 충분한 친구, 외국에서 광고홍보를 공부한 친구 등 인력을 충원해 새로운 환경을 접하는 것에 많은 투자를 했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면서 샴페인도 변화해 왔다. 물론 앞으로의 고민도 이 디지털이다. 

최근 국내 독립 크리에이티브 회사들의 입지는 어떤가? 

입지가 아주 좁다. 그리고 많이 무너졌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에 거의 붕괴되다시피 했다. 알다시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경영 악화를 겪는 회사들이 많았다. 아무리 자기가 열심히 밤을 새고 노력 해도 비용처리를 하고 나면 손해를 보면 봤지 남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도중에 포기한 회사도 많다. 요즘은 정말 살아 남은 회사가 별로 없다. 
앞서 말했듯 광고 업계도 디지털이 대세로 바뀌면서 디지털 부서를 신설하는 등 고민들을 했었는데, 디지털광고회사는 사실 우리 같은 회사보다 더 많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요즘 디지털광고회사들의 움직임이 ‘우리도 제작팀을 두고, 아날로그 기능을 두어야 해’라며 거꾸로 과거의 광고회사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디지털, 아날로그 구분하지 말고 광고는 하나의 캠페인으로 정리하자’는 것이 지금 디지털광고회사들에서 외치는 목소리인데, 사실 그 밖에 뚜렷한 대안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과거에 비해 광고 자체의 효과가 떨어진다 이야기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역으로 물어보겠다. 요즘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화제성 높은 광고가 있나? 있다면 1년에 몇 건이나 되나? 그만큼 주목 받는 광고가 있나? 쉽게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광고가 주는 정보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일까? 물론 TV광고도 예전처럼 진행 하고, 더 다양한 채널에 다양한 접근을 하고 있지만 도리어 주목도는 떨어졌다. 결국은 관심도가 떨어져서다. 광고는 이제 하나의 콘텐츠로 스쳐 지나가거나, 지금 알아야 하는 신제품의 트렌드 정보 즈음이지, 광고 자체로서 화제가 되기는 과거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광고 효과가 과거보다 적은 것 같다고 느낀다. 
주 광고 매체가 디지털로 옮겨가며 소비자들에게 노출되는 광고 횟수는 많이 증가됐다. 그러면 인지도도 훨씬 올라가고, 뚜렷한 반응이 나타나야 된다. 이러한 흐름을 위해 광고를 하고 있지만 실제 과거보다 덜 두드러지고 있다. 확실히 과거보다 앞서 말했던 흐름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함께 공감한다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더더욱 미디어의 인사이트가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매체를 선택하고, 어떤 타깃에게 어프로치 할지 선택하는 것. 과거에는 타깃 하나를 설정하고 그 대상을 한 사람의 인물처럼 그려내려 했다. 타깃 인물의 하루를 따지고, 접촉 가능한 매체를 파악해 ‘이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미디어는 이것일 거야’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요즘은 ‘뭐가 메인 미디어가 되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업계의 변화를 포함해 광고 분야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샴페인만의 극복 방안이 있을까?
 
운이 좋게도 작년에 작은 회사로는 드물게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는 큰 회사에 비해 상을 받기 어렵다. 조금이라도 우리 목소리를 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말한 대로 광고 업계는 멈춰있거나 더 나빠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올해는 어떨까, 내년은 어떨까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 지고 마진은 나빠지는 구조다 보니 현명함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요즘은 큰 광고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옛날만큼 열정이나 희망을 찾기 어렵다. 업무는 고되고, 결국 나에게 어떠한 꿈도 이루어주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많이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5년동안 직원들에게 ‘우린 분명 이룬 것이 있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작은 뭐라도 하나씩 만들어 나누어보자’라는 생각에 처음 했던 일이 냉장고를 하나 사고 장을 보러 다닌 것이다. 냉장고에 과일, 음료를 채우고 비지 않게 하는 것, 그것부터 시작했다. 또 직원들에게 무엇으로 보상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직원들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다 전 직원 해외 워크샵을 떠나기 시작했다. 해외를 나가는데 정해진 룰은 없다. 스스로 계획을 짜서 회사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 충분히 놀다 오면 된다. 이것 역시 15년 동안 해왔는데, 올해는 전 직원이 뉴욕에 다녀왔다.

해외 워크샵이라니 그저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워크샵을 기획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

15년째 해외 워크샵을 이어온 데는 한가지 확신이 있다. 이 정도 인원이 해외 워크샵을 가면 최소 수 천 만원이 소요되지만, 결국 그 돈은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다. 회수가 가장 빠른 투자라고 생각했다. 함께 해외를 나가면 같은 공간에서 직원들간의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시 아이디어 회의 등에서 서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해외에 나가 실컷 놀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도 경쟁력이 높아진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딱딱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그 순간들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나도 안 가본 나라가 없다. 제일 처음 일본에서 시작해, 아시아, 유럽 등으로 떠났고, 작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라하까지 기차여행을 했다. 내년에는 로마에서 실컷 놀아보기로 계획 중이다. 별거 아닐 수 있어도 내게는 이것이 직원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작은 희망이자, 고생하는 그들에게 전하는 위로이다. 즐겁게 15년을 보냈다. 꿈 같은 시간이었고. 

15년째 대표를 맡고 있는 소감은 어떤가?

어쩌다 보니 가장 오래 맡고 있는 직급이 대표이사다. 앞으로 할 일은 후배들에게 이 회사를 이대로 잘 물려주는 것이다. 후배들이 이 그릇을 가지고 가족들을 먹이고, 즐겁게 살아나간다면 그만이다. 사실 창업 15주년을 맞아 대표이사를 바꾸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올해까지는 맡아달라는 것이 나머지 임원들의 생각이었다. 강요한 것은 아니다(웃음). 내년, 내후년쯤에는 후배들이 대표를 맡아 끌고 나가고, 시니어들도 조금씩 작은 회사들로 역할을 나눠 움직일 수 있도록 시도하려 한다. 시니어의 단점은 엉덩이가 무거워서 움직이기 싫어하고, 뭐 해보라 하면 골치 아파서 잘 안 한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해야지 어떡하나. 나보다는 조금 젊은 친구들이 이 어려운 디지털 환경을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

이제까지 샴페인 창업 이후 만든 광고캠페인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라면?

지금은 헤어진 광고주이지만 듀오가 아직도 우리가 만든 카피 ‘결혼해 듀오’를 사용하고 있다. 일단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었고, 낮은 브랜드 인지도에서 시작해 광고를 통해 업계 1위로 올라간 사례라 기억에 남는다. 브랜드의 카테고리와 정체성을 한번에 던져 큰 성과를 얻었던 놀라운 캠페인이었다. 또 일반 소비자들은 크게 체감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으나 고어코리아의 일관된 캠페인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고어사(社)는 본사에서 만든 캠페인을 받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우리가 만든 광고로 캠페인을 진행했고, 경우에 따라 싱가폴 등에는 역으로 우리 광고를 가져가 사용하기도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어코리아’라고 하면 ‘고어텍스? 좀 비싸지’ 정도의 인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나, 주도적으로 캠페인을 맡았던 우리 입장에서는 잊을 수 없다. 사실 똑같은 목소리로 10년씩 광고를 내는 광고주는 없지 않은가. 



평소 영화나 연극 등 문화생활을 즐기는가?

감각을 놓치면 크리에이터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다. 옛날 선배들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갈 때 라디오를 들고 갔단다. 라디오 CM모니터 하려고. 그게 하루의 시작이었다는 이야기 들으며 맨 처음 광고를 시작했는데, 그런 영향일지 나 역시 몸에 밴 습관들이 있다. 우선 매주 토요일 아침에 조조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가급적이면 박스오피스 1위 영화를 보는데, 최소한 내가 갖추어야 할 트렌드는 얻어야 할 것 같아 영화 시작 전에 미리 가서 광고도 꼭 챙겨본다. 해외 워크샵을 갈 때를 제외하곤 샴페인이 생긴 이래 15년 동안 한번도 빠진 적이 없다. 덕분에 국내에서 개봉한 대부분의 영화는 다 본 것 같다. 이제는 영화를 보면 어느 정도 흥행을 할지 까지 예상이 되는데 얼추 맞춘다. 
또 지금은 잘 안되지만 열심히 이어가려고 하는 것 중 하나가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다. 아직도 꼬박꼬박 CD를 산다. 차에서도 늘 10대, 20대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어찌 보면 이것도 병이다. 그래서 와이프는 참 꼴보기 싫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왠지 최신 트렌드는 모두 알아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 있다. 책임감, 직업의식 아니겠는가.

샴페인의 10년 후를 그려본다면?

샴페인 창립 15주년을 맞이해 던지고자 하는 슬로건은 ‘크리에이티브 르네상스(Creative Renaissance)’다. 진부한 얘기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정말 르네상스 시대처럼 크리에이티브가 부흥되지 않으면,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획기적으로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각오를 새로이 하지 않으면 우리 같은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디지털이 아무리 세상을 주도하더라도 그 안에 담기는 것은 결국 자극이 되는 크리에이티브인데, 우리도 그 부분에 역점을 두려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다. ‘어? 이거 황당한데?’, ‘이거 뭔가 끌어당기는 맛이 있는데?’할 정도의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지 못 한다면 미래를 그릴 수 없을 것이다. 르네상스처럼 서로 치고 받으며 서로 부흥해나가는 과정들이 쌓이고, 또 그것이 문화가 될 수 있을 정도의 노력을 한다면, 그래서 크리에이티브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다면 10년 후 살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좌우명이 있다면?

지금의 회사도 그렇고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약속이다. 시간 약속이든, 입으로 한 약속이든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 어렵더라도 직원들과의 약속, 거래처나 매체사와의 약속은 단 하나의 실수 없이 지켰고, 현재도 노력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리 여러 가지를 준비 해야 하니 사실 힘들 때도 있다. 사소한 약속이더라도 충실히 지키지 못하면 결국 사방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애초에 콘셉트를 잘못 잡은 것 같다. ‘약속’같은 것 말고, 그냥 ‘즐기자’가 콘셉트였다면 더 편하고 후회가 크다(웃음).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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