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s IM Leader Interview2015. 6. 17. 16:26

살아있을 때, 행복하자 주철환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어떤 이에게는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있는 자신의 앞에서 수업하던 국어 선생님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셀 수 없는 밤샘 회의를 통해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던 방송국 동료였고, 
어떤 이에게는 방송 현장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 대학 교수님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에게 주철환이라는 이름은 한국 예능계를 이끌었던 사람으로 존재한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월간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주철환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등을 즐겨봤던 우리 세대에는 주철환 교수보다는 주철환 PD가 더 익숙하다. 방송인으로 교육자로 여러 삶을 살았는데, 짧게라도 주철환 교수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달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모교(동북중학교)에 국어 교사로 부임했다. 군대는 가지 않은 상태였다. 적령기에 입대하려고 했으나, 당시 체중이 병무청 징병 기준 미달이었다. 4년에 걸쳐 신체검사를 네 번 받고 결국 현역으로 입대했다. 군대 가기 전에 2년 반 동안 중학교 1년, 고등학교에서 1년 반 정도 국어 교사로 근무하고, 1980년 7월 30일 입대했다. 그리고 제대 후 방송국에 입사해 PD 생활을 시작했다.





정말 많은 사람이 물었겠지만, 제대하고 나서 교사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을텐데, PD가 된 이유가 있는가?
워낙 이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까, 대답도 녹음기처럼 하게 된다(웃음). 제대할 무렵에 방송사 앞을 지나가다가 길게 늘어선 줄을 봤고, 갑자기 호기심이 생기더라. 나도 줄을 서서 지원서를 받았고, 귀대하는 버스 안에서 찬찬히 살펴보니, 시험 과목이 국어, 영어, 상식, 작문이었다. 국어는 교사로 학생을 가르쳤고, 영어는 미군 부대에서 생활했으니 익숙했다. 상식은 신문을 즐겨봤기에 자신이 있었고, 작문은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는지라, 시험을 보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지원했고, 내 인생 계획에는 없었던 PD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소위 잘나가던 스타 PD가 대학교 교수, 그리고 방송국 사장까지 하게 됐다.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다른 PD와의 차별점이 있었다면, 쉬지 않고 글을 썼다는 점이다. 글쓰기는 내게 주어진 참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쓸 지면이 있을 때마다 글을 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시(1990년대 후반) 대학마다 미디어 관련 학과에서 현장 전문가를 교수로 초빙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PD를 하면서 글을 계속 쓰다 보니 내 전력이 알려졌고, 이화여대에서 먼저 제안이 와 그곳으로 자릴 옮겼다. 옮기기 전에 돌이켜보니, MBC에서만 PD 생활을 17년 했더라. 
이후 이화여대에서 7년 반 동안 교수로 학생들과 함께했다.
이화여대에서 7년 정도 됐을 때, OBS에서 초대사장을 해달라는 뜻밖의 제안이 왔다. 그쪽에서 원하는 것이 ‘경영전문가’가 아닌 ‘방송전문가’로서의 내 능력이었다. PD를 했던 사람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설렘에 수락했고, 약 1년 7개월 정도를 했다.


당시 OBS가 처한 상황이 쉽지 않았기에 사장직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JTBC로 자릴 옮겼다.
쉽지는 않았다. OBS를 나오고 다시 (부르는 곳이 있다면) 학교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학교보다 먼저 내게 연락을 한 곳이 중앙일보였다. 그 당시가 신문사가 방송국을 겸업할 수 있다고 이야기 나오는 시점이었다. 종편이라는 말도 없었을 때였고. 4년 반 정도 있었다. JTBC는 인기있는 프로그램들이 늘면서 시청률도 상승하고 있지만, 언론에 공개된 것처럼 경영상으로는 여전히 적자다. 이런 상황에서 임원이 많은 것이 회사로서 좋은 것도 아니고. 새로운 자리가 생기면 과감하게 변신하겠다는 차에 아주대학교에서 교수직 제안이 와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돌이켜보면, 동북중고등학교, MBC, 이화여대, OBS, JTBC, 그리고 지금의 아주대학교까지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경험을 한 것 같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르치고, 만드는 일을 번갈아 했다. 개인적으로 둘 중에 더 신나는 일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더 신나게 하는 일은 방송이다. 유재석, 신동엽, 김구라, 이경규처럼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니까. 다만, 내 적성에 맞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했을 때는 가르치는 일이다.


PD 주철환으로 돌아가보자. 내가 기억하는 주철환은 이름 앞에 ‘스타PD’라는 수식어가 늘 붙었다. 스타PD라는 명성을 들었던 시기가 언제쯤이었나.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꿈동산>의 조연출을 맡았을 때, 주제가를 내가 직접 작곡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가 1987년부터 <퀴즈 아카데미> 연출을 시작했고, 그 주제가도 내가 직접 썼다. 일단 노래를 만든다는 것에서 화제를 모았다. 게다가 <퀴즈아카데미>가 워낙 인기가 좋아서, 인터뷰 요청도 많이 왔다.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기자들에게도 친절해서 그런지(웃음) 언론에 많이 등장했다.
이전까지 사람들이 예능 PD를 바라보는 이미지가 좋진 않았다. 간혹 연예인 등쳐먹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물론 일부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 예능국 PD는 그렇지 않았다. 난 PD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 강령을 가져야 하는지를 글과 말로 많이 표현했다. 이런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방송국 내에서도 PD가 글을 쓰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 글 쓸 시간에 연출이나 잘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연출을 잘하는 방법이다. 그 자체가 생각하는 것이니까. 
나는 PD는 생각과 말로 꿈을 펼치는 사람들이므로 글쓰기도, 말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퀴즈 아카데미>도 있지만, <우정의 무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989년도에 후배 PD 두 명이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1990년도부터 했고. 이 프로를 처음 봤을 때 <배달의 기수(대한민국 국군 홍보 프로그램)>를 약간 업그레이드한 것 같았지만, 거기서 가능성을 봤다. <퀴즈 아카데미>를 마치고 <우정의 무대>를 맡고 나서, 나름 업데이트를 했다. 이게 많은 화제를 모으니, 다음에 <일요일 일요일밤에(이하 일밤)> 연출을 시키더라. 
사실 따지고 보면, 예능계의 신화 같은 존재였던 송창의 선배가 내게 프로그램을 물려준 셈이다. 송창의 선배가 ‘일밤’을 만든 사람인데, 내가 마치 일밤을 만든 사람처럼 기사가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운이 좋게도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기까지는 PD로서 전성기를 보낸 것 같다. 그래서 고맙다.


시청률이 높았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것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읽고 훔쳤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주철환 PD는 시청자를 알았는가?
생각을 읽고 마음을 훔쳤다고 말하면, 자기 모순적인 사람이 될 것 같다. 나는 PD라는 사람이 왜 PD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방송이라는 것은 잘 활용하면 사람들의 생각을 깨울 수 있는데, 그런 중요한 기능을 잊고, 시청률(물론 좋아야 하지만)과 성과에 급급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고 생각했다.
<퀴즈 아카데미>하면서도 그랬다. "퀴즈를 왜 하는가? 지식을 겨루는 데 뭐가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퀴즈는 문제다. 세상이 갖고 있는 문제를 문제 의식을 갖고 한 번 풀어본다”고 나름대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시청자가 무엇에 목말라하는가, 무엇에 배고파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나영석, 김태호 PD가 하는 것을 보면 지금 젊은이들이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는 것에 대해 알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예능 프로그램들로 JTBC가 많은 주목을 받는 중이다. 주철환 교수가 기본적인 설계를 한 것인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마치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무한도전>은 김태호 PD가 다하는 것인가? 거기에는 출연진들의 아이디어와 작가와 카메라맨, 데스크와 시청자의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단지 PD가 대표성을 가질 뿐이다. JTBC도 주철환이 설계했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중앙일보에서 데려온 방송인은 나 한 명이었다는 것, 방송이 허가받기 전까지는 신문사 사람들, 컨설팅 회사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었다.


특히, JTBC는 다른 종편이랑 비교하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강세를 보인다.
방송에는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이는 광고나 다른 분야에도 해당할 것이다. 재능, 열정, 돈, 시간이다. 한군데 치우치면 
안 된다. 재능(재주 있는 사람)이 열정과 충분한 돈 그리고 시간을 갖고 하면 무조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JTBC는 예능 쪽에 네 가지를 선택과 집중했다. 지금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아직 손익분기점에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광고계에서 보는 시각이 다르다. 애초부터 우리는 20-49 오디언스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위주로 하자고 했고, 이 부분이 다른 종편과는 차별화를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다른 종편들이 더 높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것을 생각하면 반사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통합시청률은 여전히 다른 종편이 높다. 왜냐하면 TV를 보는 주 시청자는 나이든 사람들이니까. 나이든 사람이 구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다른 종편은 그런 사람들에게 적합한 콘텐츠를 공급한다. 오히려 모든 종편이 20-49 타깃으로 가는 것이 문제다. 소위 말해서 문화라는 것은 창의성과 다양성이 중요하다. 다양성이 훼손되면 세상이 
덜 행복해진다.


주철환 교수가 PD로 활동했을 때는 지금 만큼이나 예능 PD들이 부각된 적이 없었다. 요즘에는 예능PD들 이름이 언론에 많이 등장한다. 주 교수에게는 업계 후배들이기도 할 텐데,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가요무대>를 보는 사람이 <뮤직뱅크>나 <음악중심>보는 애들한테 “저것도 음악이냐?”라고 하면 결국은 자기가 늙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는 지금의 영민한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나영석, 김태호 PD가 하는 것을 보면,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새로운 재미의 영토를 개척하는구나라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이전 세대들은 지금과 비교해 뭔가 미흡했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은 나보다 나보다 20년 후배다. 그 친구들도 2014학번의 PD들이 방송계를 이끌 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와 비슷한 대답을 할 것이다. 지금 후배 PD에 관해 물었을 때, ‘아 미흡하죠’ 그건 안 된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하면서도 주 교수한테 받은 느낌은 ‘건강하다’ 그리고 ‘젊다’는 것이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는지 궁금하다.
‘탄소동화작용’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 중에 ‘동화’라는 단어가 있다. 국어 선생답게(웃음), 문법으로 예를 들면, ‘신’이라고 썼는데, 이것이 ‘실’로 바뀔 수 있다. ‘라’를 만나면 그렇다. 이것이 ‘역행동화’. ‘종로’를 읽을 때 ‘종노’라고 읽지 않는가. 이것은 순행동화. 이게 동화다. 동화가 갖고 있는 의미처럼 누구와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과 비슷해진다고 생각한다.
‘-화’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젊은이화’되는 것은 젊은이들을 많이 만난다는 것이다. 대학 입학한 지 41년 됐는데, 
나는 지금도 여전히 대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이 점은 놀라운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대학생과 교류가 단절된 시기가 없다. 1974년도부터 60대가 된 지금까지도 20대 초반의 젊은이와 어울리는 것이 내 젊음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음악도 만들고, 방송도 만들고, 책도 냈는데, 다른 콘텐츠에 대한 욕심도 있는가?
30대 초반까지는 음악적 창작력이 왕성했다. 지금 보면, 음악에 대한 창조적 에너지를 그때 모두 소진한 것 같다. 글쓰기는 다르다. 어떤 때는 내 글이 내가 읽어도 마음에 들 때가 있다. 숙성 발효가 제대로 이뤄진 것이다.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진다. 물론, 글의 완성도가 떨어질 때도 있지만(주문 생산이니까), 그런데도 매주 마감일인 일요일에 원고를 쓰는 것도 기다려진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소중한 기회다. 나는 ‘칼럼을 쓰는 자는 칼을 쓰는 자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만든다는 것의 기본에는 아이디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주 교수는 어떤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구현하는가?
의인법이 중요하다. ‘벽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지나가다 보이는 가로수는 어떤 생각을 할까?’ 등 세상 모든 것이 살아있고, 세상 모든 것이 기뻐하고 슬퍼할 때가 있다고 상상하자.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우리는 유한하다. 언제 죽을 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살아있을 때 행복했으면 한다. 인상 쓰지 말고, 죽으면 아무것도 생각 못 하니까.

 



아무래도 더 신나게 하는 일은 방송이다. 
유재석, 신동엽, 김구라, 이경규처럼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니까. 
다만, 내 적성에 맞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했을 때는 가르치는 일이다.

나는 PD라는 사람이 왜 PD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방송이라는 것은 잘 활용하면 사람들의 생각을 깨울 수 있는데, 그런 중요한 기능을 잊고, 
시청률(물론 좋아야 하지만)과 성과에 급급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우리는 유한하다. 언제 죽을 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살아있을 때 행복했으면 한다. 인상 쓰지 말고, 죽으면 아무것도 생각 못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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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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