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h's IM Leader Interview

최인아, 정치헌 최인아 책방

본질을 읽는 책방, 최인아 × 정치헌 최인아책방 대표

서울 선릉의 한 책방. 이 책방엔 여느 서점에나 있는 책의 카테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책방 주인과 그 주변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들의 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 광고쟁이 ‘최인아’가 정치헌 디트라이브 대표와 함께 차린 ‘최인아책방’의 이야기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정리. 김지훈 편집장 kimji@websmedia.co.kr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최인아책방을 오픈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제일기획’이라는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의 전 부사장, 그리고 오랜 기간 디지털 업계서 그만의 탄탄한 기반을 다져온 두 사람이 뭉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은데,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최인아 보통 사람들이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직업이나 출신을 얘기하기 마련인데, 저는 대뜸 이메일 주소를 말하곤 한다. 주소는 ‘imnotstay’. ‘나는 머물지 않겠다’는 엉터리 영어 표현인데, 이 말이 지금껏 내 인생이 제자리에 머물지 않게끔 끌어줬다고 생각한다. 늘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고, 지금 책방도 그렇게 열게 됐다.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부사장으로 일했던 최인아라고 한다. 반갑다.

정치헌 나도 반갑다(웃음). 제일기획에서 AE로 커리어를 시작해, 17년 전쯤 디지털에 대한 열망으로 ‘디트라이브’라는 회사를 차려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는 정치헌이다. 정작 제일기획을 다닐 때는 대선배인 최인아 전 부사장과 달리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작년 겨울쯤 만나 우연히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이 맞아 책방을 함께 열게 됐다.

그렇게 열게 된 책방. 일반 책방과 무엇이 다른가. 개인적으로는 최인아, 정치헌 대표가 추천하는 책이나 업계 선배들이 추천하는 책 등으로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어, 고민 없이 책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참 좋았는데.
정치헌
 정확하다. 책방 주인의 지인들이 추천한 책을 진열한다는 점, 추천 도서에 관한 간단하지만 울림 있는 코멘트들이 존재한다는 점이 책방의 차별점이다.

최인아 더불어 우리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최인아책방에 가면 좋은 책이 있다’고 인정을 받는 거다. 다른 무엇보다 책방을 찾아주고 들러 주시는 분들이 만족해야 좋은 책방 아니겠나. 잘 모르는 작품을 만난다 해도 ‘이 책방에 있으니 좋은 책이겠지’ 하는 생각을 가졌으면 참 좋겠다. 일각에선 일본의 ‘쯔따야 서점’과 비교하는 이들도 있더라. 멋진 시니어들이 온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는 완연히 책이 중심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쯔따야와 다르다. 쯔따야는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 중심이고 책이 거드는 역할을 하지만, 최인아책방은 온전히 책을 중심으로 문화가 펼쳐지는 구조다. 책이 주인공이다.

사실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로 자꾸만 가고 있는데, 책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최인아
 디지털 시대가 되어가며 대체로 긴 글 읽기를 꺼리고, 압축된 정보를 빠른 시간 내에 흡수하려는 습관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람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일을 어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궁금한 부분이 생기면 찾아보고 알아 보려는 시도와 노력이 필요하고, 그 시도 중에 얻게 되는 것들이 상당히 많은데, 요즘은 ‘큐레이션’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된 서비스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어떠한 정보를 볼 때,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읽는 가운데 특정한 부분을 마주치는 것과 단편적인 정보 한 편만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책이 가진 매력은 하나의 정보나 이슈를 둘러싼 온전한 맥락을 짚어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빙산의 일각만으로 빙산 전체의 모습을 그려볼 수 없듯이, 진짜 깊이 있는 정보는 그만한 시간을 투자했을 때만 얻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종이 책 시장은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 않나. 책방 주인으로서 앞으로의 종이 책 시장을 어떻게 보나.
최인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태블릿PC를 들고 있을 때와 책을 들고 있을 때의 느낌은 참 다르다. 이 느낌이 디지털이 더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책장을 넘기는 손맛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겐 참 좋은 경험일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대에도 이러한 감성이 남아있을지 장담은 못하겠다. 사실 주변에서 책방을 연다고 할 때 말린 사람들도 많다(웃음). 뭐, 책방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니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자’ 생각하고 있다.

공간도 상당히 독특하다. 개인 서재 같은 느낌도 들고.
최인아 
그렇다. 만들 때 두 가지 콘셉트를 생각했는데 하나가 ‘서재’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집에 서재를 두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곳을 서재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살롱’. 책이 있는 이 공간에서 마치 살롱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연과 같이 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놓고 있다.

강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첫 번째 강연이 열자 마자 하루 만에 신청 마감되는 등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는가.
정치헌
 처음에는 홍보가 잘 안 되리라 생각하고 포스터도 많이 찍어 놨는데, 미처 붙이기도 전에 마감이 됐더라.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최인아 예상 외로 광고인 이외의 참석자들이 많았다. 아이디어나 창의성 발현에 관심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와 주신 것 같다. 앞으로 콘서트나 연주회 같은 다양한 행사를 준비할 예정인데, 책과 강연, 콘서트 등이 한 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책방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책방을 운영하며 페이스북도 상당히 활발하게 운영하는 것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고 있나.
최인아 페이스북은 늪 같다. 할수록 빠져든다. 책방에 하루 종일 있다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밤 열 한 시쯤 되는데, 요즘 이곳저곳 책방이 많이 알려지다 보니 질문들이 많이 와 있다. 메신저로 일일이 답을 드리고 소식이나 근황을 올리면 새벽 두 시가 훌쩍 넘는다. 팬 분들도 책방 주인과 직접 대화하니 만족해 하고 나도 소통에서 재미가 느껴지니 손에서 놓기가 참 힘든 것 같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책방을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들어볼 시간이다. 두 광고쟁이가 어떤 계기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인가?
최인아 
제일기획에서 나오며 다음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고민의 형태는 여러 갈래였으나, 단순한 광고대행업이나 비즈니스보다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다. 처음엔 디지털 분야에 관심이 있어 디지털에 일가견이 있는 정 대표를 만나 어떤 일을 함께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연히 공통 관심사가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 그럼 책과 관련된 일을 해볼까?”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종이보다 화면이, 활자보다 디지털 텍스트에 익숙한 시대에 다시 책을 꺼내 보자고 이야기하는 일이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럼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수익이나 매출 같은 현실적인 걱정을 하지 않았는지 묻곤 하는데, 사실 그 날 이후 아무런 의심 없이 달려왔다. ‘잘 될까’가 아니라 ‘어떤 책방을 만들까’만 즐겁게 고민해 온 것 같다.

정치헌 내가 처음 디지털이라는 업(業)에 뛰어들 때가 생각이 났다. 당시 나는 늘 업의 경계에 관해 생각했다. 이런 말도 있지 않나. “포경업이란 고래를 잡아 기름을 얻는 일이 아니라, 불을 밝히는 일”이라고. 결국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이 중요한 것 아닐까. 당시 TV광고 일을 하던 내가 ‘TV라는 매체에 광고를 집행하는 사람’이란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면 디지털을 하지 않았을 거다. 광고의 본질은 아이디어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의 대화를 돕는 것이다. TV와 디지털은 채널일 뿐 결국 본질은 생각과 대화, 소통에 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책방도 같다. 책방도 생각을 확장시켜 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 의 대화가 일어나는 장소인 것이다.

결국 광고와 책방이 같은 일이라고 봐도 되는 것인가.
최인아
 그렇다. 여러 매체에서 우리 책방을 다뤘는데, 인터뷰 때마다 기자에게 왜 우리 책방에 관심이 생기셨나 물어봤다. 대답은 대부분 ‘광고 하던 사람들이 책방을 연 게 독특해서’. 그런데 우리는 사실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정해 놓은 업의 기준으로 보면 광고와 책방은 완전히 다른 업이지만, 그 일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느냐는 본질을 들여다보면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광고란 결국 ‘생각’의 비즈니스다. 생각을 통해 기업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그 본질이 있다. 동시에 지금 시대는 생각이 중요한 시대다. 스스로 생각하는 법과 생각을 확장하고 구체화하는 훈련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그 훈련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즉, 생각의 비즈니스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 온 광고인들이 가장 깊은 사유의 공간을 만든 거다.



업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자연스럽게 광고업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요즘 광고업계, 어떻게 보나?
최인아 
광고 산업도 어찌 보면 종이 책과 같이 하향세로 보는 시선이 많지 않나. 후배들만 봐도 광고 회사보단 광고주 회사로 옮기려는 성향이 강하다. 우수한 인력들도 빠져 나가고. 그래서 나는 지금의 광고업계서 선배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역할이란 바로 일하는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다. 광고쟁이란 광고 잘 만든다고 끝이 아니며,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기업과 사회가 처한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해가는 존재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 이 본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향세를 타게 된 것이 디지털 때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는데, 광고와 디지털의 관계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인아 사실 일각에서 ‘광고는 죽었다’는 세스 고딘의 표현을 참 많이 쓰는데, 난 오히려 ‘광고가 넓어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채널이 많아졌으니 시각에 따라 오히려 운동장이 넓어진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전통 미디어의 입장에서는 위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광고를 운영하고 집행하는 입장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지고, 이야기하는 방법이 다양해진 것이다. 이 얼마나 큰 기회의 확장인가.

그렇다면 광고만이 가진 힘은 무엇이라고 보나. 혹은 광고만이 가진 매력?
최인아
 우리 사회에 여러 업종이 있지만 ‘생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지닌 집단이 그리 많지 않다. 새삼 회사를 그만두고 보니, 생각에 관한 한 가장 꾸준하고도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이들이 광고인들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광고야말로 지식 산업의 가장 대표적인 주자라고 생각한다.

정치헌 100% 동의한다. 몇 년 전 칸 국제광고제가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지 않았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광고’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브’라는 말이 붙은 모든 분야가 광고인의 영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말한 업의 본질과 비슷한데, 결국 디지털과 광고의 관계도 이러한 본질적인 측면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지식 기반 산업이 득세하는 요즘, 광고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더욱 커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최인아 맞는 말이다. 그 좋은 예가 ‘칸 키메라(Cannes Chimera)’다. 이는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빌앤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칸 라이언즈와 2012년 함께 주최한 행사로,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아이디어’를 주제로 저개발국가 사람들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한다. 공모작 심사는 칸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수상자들이 맡으며, 심사위원들과 예선 통과자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행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반 참가자들이 낸 신선한 아이디어를 광고,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들이 깎고 다듬어주는 형식이다. 아이디어에 기반해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 광고인,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라는 사실을 방증한 셈이라고 본다.

어느덧 막바지 질문을 드릴 때가 왔다. 책방 주인으로서, 광고인 후배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을 꼽아 달라.
최인아 우리에게 ‘깐수일’로 유명한 정수일 교수가 쓴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아랍계 필리핀인 ‘무함마드 깐수’로 위장한 북한공작원이었던 정수일 교수가 1996년 체포된 후 2000년 옥을 나오기까지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펼쳐낸 책이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어려움 앞에서의 면역이 많이 약해져 버린 요즘이지만, 삶에서 무언가 ‘성취’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견디는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 시간을 온전히, 그리고 담담히 마주하는 방법을 일깨워 줄 책이다. 꼭 읽어보면 좋겠다.

정치헌 나는 『논어』다. 항상 책상 옆에 두고 읽는 책이고, 꼬박 3년을 읽은 책이다. 난 이 한 권에 세상이 다 있다고 본다. 말하는 법, 생각하는 법, 말을 듣는 법, 다른 사람을 대하는 법 등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방식과 해법이 녹아 있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우리 후배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특별히 디지털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한 권 더 추천하자면, 『오가닉 미디어』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디지털이 가져온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꿰뚫고 있는 책이다. 디지털 앞에서 우리 모두 어찌 보면 허둥대고 있지 않나. 그 질문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갈해줄 수 있을 책이라고 본다. 이렇듯, 책 안에 광고가 있고, 세상이 있다. 꼭 우리 후배들뿐만 아니라 책방을 들러주시는 모든 사람들이, 책을 통해 생각을 확장하고 삶이 풍부해지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