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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K Story

#16 DDK에서의 IMF 기억

#16 DDK에서의 IMF 기억

 

미국, 호주에서의 DDB 연수를 마치고 돌아 오니 8월 중순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현지 방송에서는 한국 경제의 어두운 뉴스가 많이 보도되었다. 화면으로는 기아자동차의 노조 파업 등이 보여지면서. 그해 초부터 한보그룹, 삼미그룹, 진로그룹, 대농그룹, 한신공영, 쌍방울 그룹, 기아자동차, 해태그룹, 고려증권, 한라그룹 등이 잇달아 부도를 내거나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증시가 폭락했다. 아시아 각국이 달러 부족으로 고통을 받았다. 12월에는 마침내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되었다.

1998년 각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DDK도 세 명을 정리해야 했다. 마침 결혼을 앞 둔 여직원 두 명이 자원하고 부친의 냉면집을 물려받을 처지의 직원이 자원을 하여서 잘 정리할 수 있었다. 냉면집을 물려받은 직원은 이 식당을 잘 운영하여 서울의 대표적인 평양냉면집으로 만들었으니 바로 마포의 을밀대김영길 사장이다.

DDK는 외국에서 광고비를 받는 광고주도 있었고 해외 매체로 달러 광고비를 지불해야 하는 광고주도 있었다. 하지만 경리팀과 상의하여 헷지를 걸어 두어서 환차에 의한 불안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해외로부터의 광고비를 달러로 받아서 이익이 많이 남은 해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광고 집행이 급감했다. KOBACO는 줄어든 매출을 회복하느라 다양한 판매 패키지를 만들며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신문, 잡지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곧 뒤따르는 인터넷의 파도는 그보다 몇 배는 더 큰 것이었다.

나는 집이 송파였고 회사는 광화문 정동이었는데 차를 갖고 다니며 강변북로를 즐겨 다녔다. 그런데 하루하루 길의 차량이 줄어드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환율이 달러당 1800원대로 치솟고 기름값은 오르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경제가 계속 좋아진다는 믿음이 완전히 무너진 시절이었고 불확실성으로부터의 두려움이 증가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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