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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

#292 동네를 살리는 길은 동네에서 소비하는 것

#292 동네를 살리는 길은 동네에서 소비하는 것

가끔 걷던 거리를 다시 거닐다가 문득 주목하게 되는 것이 있다. 이전에는 비어 있는 상점이 없었는데 이젠 임대 표시가 붙은 빈 점포가 눈에 많이 띈다. 즐겨 가던 식당 중에도 문을 닫은 곳이 있다. 점심 시간이면 손님들로 항상 붐비던 황태국으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그런데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 요구에 폐업을 결정하고 말았다. 빈 점포가 늘어가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 경제의 내일이 정말 걱정된다.

친구들과 가끔 모임을 하는 강남 신사동의 어느 식당에서는 종업원 수가 줄어들어서 무척 불편함을 느꼈었다. 수익성 때문에 종업원을 줄여야 했던 것이다. 둘러 보니 전보다 손님이 줄어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른 친구들과 태능 부근의 식당에서 모였다. 대형 고기집인데 유독 부근에서 이집만 사람이 가득하다. 먹고 나서 보니 정말 착한 가격이란 생각이 든다. 가성비가 훌륭하다. 결국 주변의 고깃집들은 다 죽여가며 혼자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주위 경쟁 식당들이 문을 닫고 나면 과연 이 식당도 계속 장사가 잘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

미국에는 월마트의 저주가 있다. 월마트는 매일매일 최저가로 유명한 세계 최대의 유통 체인이다. 거대한 매장에 엄청난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있고 너무나 싼 가격이 매력적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우리 도시에도 월마트가 들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월마트가 들어오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는 죽어가기 시작했다. 작은 도시의 중심부에서 상업 활동을 하던 많은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모두 교외의 대형 월마트 매장에 가서 쇼핑을 하는지라 오래된 상권이 죽어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월마트 이펙트’, ‘가격 파괴의 저주등의 책을 통해서 이런 현상을 주의 깊게 살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가 더 좋아지고 가치가 오르기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동네를 위해서 하는 일은 별로 없다. 며칠 전 눈이 많이 내릴 때 동네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눈을 치워본 적이 언제였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변의 식당이나 커피숍 중에 내가 들어가 본 집이 몇이나 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20년을 넘게 살면서도 동네 상권은 별로 이용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 동네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동네를 살리는 길은 동네에서 소비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17.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