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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column @ yes31

#5 We try harder

We try harder!

 

어떤 분야이건 저 멀리 혼자 앞서가는 1등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는 뒤쳐져서 2등 그룹에서 버둥거리는데 1등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게다가 2등 그룹에는 여러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2등의 마케팅 전략은 어떤 전략이 되어야 할까요?

60년대 미국의 렌터카 시장에서는 허츠가 압도적인 1위 브랜드였습니다. 그 뒤로 한참 떨어져서 2위 그룹이 있었는데 그 중 조금 앞선 브랜드가 에이비스(Avis)였습니다. 그런데 이 에이비스DDB라는 광고회사를 통해 인쇄 광고를 집행하게 됩니다. 그 당시는 인쇄매체의 힘이 막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광고를 통해 세계 최초로 2등 전략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광고의 헤드라인 카피를 보겠습니다. “당신이 단지 2등일 때, 당신은 더욱 노력을 합니다.” 바디카피의 내용도 솔직합니다. “작은 물고기는 계속해서 항상 움직여야 합니다. 큰 물고기들이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니까요. 에이비스는 작은 물고기의 문제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렌터카 시장에서 단지 2등입니다. 우리가 더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린 잡아 먹히고 말 겁니다. 우리에게 휴식은 없습니다. 우린 항상 차내의 재떨이를 비웁니다. 차를 고객에게 전달하기 전에 가스 탱크에 연료가 가득 들어있는지 확인합니다. 배터리가 충분한지 확인합니다. 윈도우 와이퍼 상태도 점검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큰 물고기가 아니기 때문에 당신이 우리 카운터에서 많은 고객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는 일을 경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린 아직 고객들로 혼잡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 광고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1등 브랜드인 허츠에서 느끼는 불만을 아주 잘 지적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허츠 렌터카를 빌리러 가면 사무실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렌터카를 인도 받고 보니 재떨이에는 먼저 탄 사람의 담배꽁초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스 탱크가 비었는데도 그냥 차를 내 주기도 했습니다. 배터리가 부족해서 불편한 경험도 당해 봤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광고회사가 고객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이비스에는 그런 문제가 없도록 종업원 교육을 강조했지요. 그런 다음에 이런 광고가 집행된 것입니다. 1등 브랜드에 불만이 많았던 렌터카 이용자들이 대거 에이비스로 이동해 왔습니다. 현재 세계 최대의 자동차 렌트 기업이 된 에이비스는 지금도 We try harder’라는 슬로건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등은 생존하기 위해서 (1등보다) 더 노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금수저를 들고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해 봐야 소용 없고, 최고 인기의 대기업에 못 들어 간 것을 가슴 아파해 봐야 소용 없습니다.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1등이 유럽 여행가면 나도 유럽 여행가고, 1등이 휴가 갈 때 나도 휴가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는 1등을 따라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는 삶도 유지하기 불가능합니다. 뒤에서 따라오는 경쟁자도 있고 1등은 자기 몫을 더 키우려고 합니다. 인생이 피곤하다고 생각되겠지요. 정말로 그렇습니다. 산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미국 광고회사의 명예회장님이 있습니다. 이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이분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답니다. 부모님이 왜 안 계셨는지는 얘기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자동차 판매상인이었답니다. 작은 도시에서 누구네 집에 무슨 차가 있고 언제 구입한 차고 언제쯤 바꿀지를 다 아셨다고 합니다. 대단한 세일즈맨이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동네의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답니다. 손님도 별로 없고 시간 여유가 많다 보니 가게에 붙은 상품 포스터를 보고 스케치 연습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렇게 독학으로 기본적인 상업 디자인을 익혀서 좀 더 큰 도시에 있는 광고인쇄물 제작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일을 익히면서 더 큰 광고회사에 계속 입사 원서를 제출해서 마침내 큰 도시의 광고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래픽 디자이너로 원서를 냈는데 그 회사에 출근해 보니 카피라이터를 하라고 했답니다. 어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회사에 남기 위해서 카피라이터의 길을 가기 시작했답니다. 어느 날 어떤 제품의 라디오 광고를 쓰게 되었는데 윗사람이 유머 광고 카피로 쓰라고 지시를 했답니다. 한번도 유머광고 카피를 써 본 적이 없던 그는 카피라이터 팀장에게 어떻게 유머 광고 카피를 쓸 수 있는지를 물었답니다. 그 팀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쓰고, 쓰고 또 써 보게. 그러다가 마침내 자네의 글을 읽고 자네가 웃음을 참지 못하게 될 때 내게 갖고 오게.’ 그는 마침내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 냈답니다. 이 광고가 많이 알려지게 되고 이후에 그는 유머광고를 잘 쓰는 카피라이터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마침내 시카고의 대형 광고회사에 입사한 후 맥도날드 햄버거의 광고 카피로 20세기의 대표적인 작품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1980년대부터 2008년 무렵 은퇴할 때까지 세계 광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언젠가 서울에서 강연 준비하는 그를 옆에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미 70세를 넘긴 연세에도 불구하고 손수 스크립트를 준비하고 몇 차례의 리허설을 꼼꼼히 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 삶을 살았을지 쉽게 상상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부인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미국 광고회사에서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 여러 자녀를 두고 다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평범한 가정 출신이라 대학 졸업하고 다른 생각할 여유 없이 바로 취직을 했습니다. 제가 가장 역할을 바로 해야 했었기 때문이지요. 해외 명문학교 출신들, 석사, 박사 학위를 소지한 경쟁자들과의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했습니다. 일에 집중하고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다 보니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거의 못하고 살았습니다. 거의 24시간 일 속에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의 입사원서와 자기소개서를 볼 일이 많이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노력하는 삶을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을 잘 골라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그는 빨리 배우고 성장해서 중요한 인재가 됩니다. 그리고 더 큰 물로 이직을 합니다. 그래도 좋은 일이지요. 그런 친구들 중에서 대기업 사장도 나오고 성공적인 기업가도 나오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인재를 발견하고 키우고 큰 나무로 자라게 하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더 노력하는자세가 있습니다. 모두 더 열심히 노력합시다!

2016.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