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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광고가 세상을 바꾼다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매체에는 좋은 이야기가 필요하고, 좋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필요하다.

3년간 디아이 매거진의 ‘LEADERS’ 코너를 통해 좋은 사람들의 좋은 이야기만을 골라 전해준 사람이 있다.

그간 독자들을 감동시킨 ‘LEADERS’ 인터뷰이들의 진중하고도 묵직한 이야기는 모두 이 분의 공이다.

3년간 ‘LEADERS’ 코너를, 33년간 대한민국 광고업계를 이끌어 온 한기훈 대표의 이야기다. 오랜 시간 광고인의 길을 걸어온 그의 발자취에는, 그간 ‘LEADERS’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매 한 가지로광고가 세상을 바꾼다는 꼿꼿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 김지훈 편집장 kimji@websmedia.co.kr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LEADERS’ 코너가 진행되는 약 3년간 매번 인터뷰어로 나서다가 디아이 매거진 200호를 맞아 직접 인터뷰이로 나서 주셨다. 감회가 어떤가.

사실 잡지는 내게 꿈 같은 매체다. 대학 시절 미국에서잡지왕으로 불리는, <라이프>, <포춘> 등을 창간한 헨리 루스(Henry Robinson Luce)에 관해 졸업논문을 썼을 만큼 평소 잡지에 관심이 많았다. 2010년 디아이 매거진의 전신인 월간 웹과 <IM>에 잡지 광고를 집행하면서 웹스미디어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류호현 웹스미디어 대표와 교류를 이어나가다 2013년 첫 인터뷰를 진행했다. 벌써 3년이 지났지만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나.

너무 멋진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만 찾아 인터뷰를 하다보니 한 사람만 꼽기는 힘들 것 같다. 광고계에 종사하는 주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은 피드백을 받았던 것은 의외로 김영길 을밀대 사장이다. 40년 전통의 유명 냉면집을 운영하는 그가 국내 굴지의 광고 회사 출신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랐던 것 같다. 앞으로도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인터뷰할 계획이다. 광고마케팅 분야 역시 계속 새로워지니, 그 이야기를 담는 우리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할 것으로 본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할 거다.



3
년간 한기훈 대표의 인터뷰를 꾸준히 지켜봐준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한다면?

반평생을 광고인으로 살아온 것 같다. 1983년 대홍기획 공채 1기로 광고 일을 시작했으니 이제 33년 됐다. 커리어를 돌아볼 때, 광고라는 이름의 세계에서 구대륙과 신대륙을 모두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두 대륙이 한 데 뭉쳐 또 다른 항해를 시작하는 장면을 보는 중이고. 오랜 기간 광고인으로 살아온 경험, 그리고 그를 통해 쌓아온 생각이 독자 여러분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지금 운영하는한기훈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이전에, 어떤 커리어를 쌓아왔는지 궁금하다.

글로벌 광고 회사인 DDB와 대홍기획이 파트너십을 맺으면서리앤디디비(LeeDDB)’라는 합작 회사를 만들 때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2000년부터 10년 가까이 임원으로 활동하며, 후반에 대표이사직도 수행했다. 2009년 즈음해서는, 영국계 광고 그룹인이지스미디어'의 한국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이지스미디어는 미디어와 디지털에 특화된 광고 그룹이다. 캐러트코리아, 아이소바 등 다양한 회사가 그룹에 속해 있기도 하다. 여기서 앞서 말한 광고계의 신대륙을 만나게 된 것이다. 디지털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디지털 세상에 새로운 기회가 있음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다가 2012년 초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간 휴식기를 가지며 푹 쉬었고, 지금이 됐다. 지금은 ‘B&A컨설팅'이라는 디지털 마케팅 회사, ‘모 픽처스라는 영상 전문 제작사를 공동 창업해 운영하고 있고, 차의과학대학에서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내와 글로벌 회사, 전통 매체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하며 광고인으로서 이상적인 커리어를 쌓은 만큼, 지금 운영하는 회사를 통해 광고업계에 그리고자 하는 큰 그림이 있을 것 같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이다. 고착화된 갑을 관계와 같은 잘못된 관행들이 국내 업계에 상당히 깊고 넓게 자리잡고 있다.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는 그 어떤 사이보다 끈끈한 파트너 관계여야 한다는 인식을 널리 퍼뜨리고 싶다. 또 하나는, 옳지 않은 일을 하는 디지털 및 광고 회사들이 많다. 테크닉을 이용해 검색 수치를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던지, 광고주가 돈을 주고 산 블로그 콘텐츠를 마치 소비자가 직접 작성한 콘텐츠인양 올린다던지. 이러한 일들이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어서,
이를 따르지 않고도 좋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완성할 계획인가.

나와 공동창업자가 함께 운영하 고 있는 회사, 더불어 나와 관계가 있는 많은 회사와 다양한 형태로 교류하며 앞서 말한 그림들을 그려 나가려 한다. 특정한 프로젝트에 있어 협업도 매우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구조이기에 더욱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일종의 얼라이언스 체제를 구축해 정보 교환, 교육 등에 있어 시너지를 내도록 할 계획이다. 이제 밑그림이 완성돼가는 중이고, 조급해 하지 않고 담담히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업계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시너지를 기대해보겠다. , 그럼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를 살펴보기 위해 한기훈 대표가 걸어온 길을 잠시 되돌아가보자. 1983년도에 광고업계에 첫 발을 들이셨으니, 아마도 국내에광고대행'이라는 개념이 생긴 초창기가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 내가 입사할 당시는 그야말로 초창기다. 대홍기획이 이제막 생겨난 시점이었으니까. 당시 내가 광고대행사에 들어갔다고 하니까 한 선배가 그러더라. ‘아이고, 네가 어쩌다 그렇게 됐니’. ‘광고'라는 일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좋지 않았다. 그런데 1988년 즈음, 입사 후 4~5년 정도 지나니 상황이 확 달라졌다. 보통 좋은 인재가 몰리는 곳을 보면 해당 업계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데, 대홍기획 4기 채용을 진행할 때 정말로날고 기는인재들이 엄청나게 몰려왔다. 이후부터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전성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광고대행사, 즉 광고 산업의 분위기가 좋았다.



산업의 분위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광고대행사를 택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시 국가적 위기 상황이 계속됐고, 산업·경제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내 직업의 미래는커녕,
내가 죽기 전에 자동차 한 대는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 사실 전공이 신문방송학이고, 언론사에 기자로 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언론사 시험은 그야말로언론고시'란 말이 어울렸다. 다섯 명 뽑는데 3만 명이 넘게 몰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반 기업에서도 신문방송학 전공자는 직무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지원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낙심 후 광고라는 직무를 택했다. 어찌보면 광고를 직업으로 택한 건 완전히 우연이었는데, 그 우연이 내 삶 자체가 돼 버렸으니 신기하기도 하다.



기자와 광고쟁이, 전혀 다른 분야지만 일정 부분 겹치는 영역도 있는 것 같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신문기자가 돼서 세상의 잘못된 부분들을 바꾸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광고를 하다보니, 광고로도 다른 의미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기자는 세상의 잘못된 이면을 꼬집고 비판하는 한편, 광고는 예쁘고 긍정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광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광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지금도 몸소 실현하고 계신 것을 보면, 아마도 한기훈 대표가 광고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광고를 직업으로 택한 이후 위기감이 든 적은 없었나.

왜 없겠나. 앞서 말한 것처럼 광고 산업 분위기가 한창 좋던 시절, 광고대행사로 엄청난 인재들이 몰려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친구들도 있고, 정말 놀라운 인재들이 회사로 물 밀듯이 들어오더라. 자연스럽게내가 밀리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때가 1996년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MBA를 결심하고 사직서를 냈다. 회사 측에 내가 그만두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다. 그때 참 고마운 사람과 상황을 만났다. 당시 합작 법인인 리앤디디비의 모회사였던 DDB의 아시아 담당 사장이다. 그는 내게 MBA를 마치고 나서도 광고 회사를 계속 다닐 계획이라면 그만둘 필요가 없지 않느냐며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바로 미국에 있는 법인들을 둘러볼 수 있는 연수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997년에 약 4개월간 미국의 광고업계를 생생하게 보고 듣고 왔다. 이 모든 것을 승인하고 격려해주셨던 당시 대홍기획 대표이사였던
강정문 대표에게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회를 준 것인가.

미국 광고 회사의 사원부터 임원까지 모두 인터뷰할 기회가 생긴 거다. 회사 직급이 어떻게 나눠지는지부터 왜 광고 회사에 변호사가 존재하는지, 연봉 책정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꼬치꼬치 물어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되는 기회다. 여기서 보고 수집한 자료를 통해 대홍기획 사내 교육자료를 상당히 많이 만들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사내 임직원들의 궁금증도 이 기회로 굉장히 많이 해소됐다. 광고업계에서 일하며 가장 많은 걸 보고 배운 때가 아닌가 싶다.



당시 느꼈던 국내 대행사와 미국 대행사들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생각보다 정말 많은 것이 다르지만, 아무래도 임직원들의 태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만났던 DDB 시카고의 여사장은 일주일에 3일만 출근하더라. 궁금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나는 일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을 돌보고 싶은데, 회사에선 내가 가진 네트워크와 나의 업무 능력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 3일만 출근하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을 위해 쓰기로 회사와 이야기했다". 한국에선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이러한 태도는 미운 털이 박히기 십상인데, 미국은 확실히 이런 면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일주일에 몇 일, 몇 시간을 근무했는가보다, 어떤 일과 어떠한 성과를 냈는지가 중요하다. 실질이 형식보다 중요한 것을 실감했다.



자연스럽게 한국 광고업계의 특징에 관해 더 이야기를 나눠보자. 현재 광고업계와 과거 광고업계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앞서 구대륙과 신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신대륙에서는 가장 우선적으로는 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될 것으로 본다. 구글이 디지털 시대의 광고를 아트, 카피, 코드로 정의했듯, 테크를 모르고는 광고를 모두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거다.
그게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 글로벌 시장에서 잘 나가는 광고인들에게 어느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지 물어보면, 과거 잘 나가던 광고 회사들의 이름이 아니라 AKQA, R/GA, Droga5와 같은 기술적인 역량도 뛰어난 회사들의 이름이 나온다.
물론 한국에서는 여전히 기존 광고 회사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앞으로 조금씩 인식이 바뀌어 갈 것으로 본다.
아마도 빠른 시일 내로.



변화가 있다면 장단점도 있을 것 같다.

장점부터 말하자면, 과거에는 광고대행사 창업이 상당히 어려웠는데 지금은 창업의 기회가 상당히 많아졌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환경이 다양해지고 개선되다 보니, 대형 광고대행사가 아니더라도 시도해볼 수 있는 영역이 많아졌다. 이는 광고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큰 기회다. 하나 더, 과거와 비교해 디지털이나 새로운 마케팅 개념이 추가되며 광고가 상당히 전문적인 영역으로 성장했다. 이 역시 광고인들에게는 희소식. 하지만 분명한 단점도 있다. ‘옳고 그름에 관한 논의가 상실됐다는 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좇는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린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왜 디지털 이야기를 하느냐면, 최종적으로 프로젝트에 관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클라이언트가 디지털이라는 영역을 모르는 데서 비롯한 문제기 때문이다. 즉 관리자들의 적절한 관리가 이뤄지지 못하니 자연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에 더해, 경쟁이 심화하다 보니 광고주를 획득하기 위한 대행사들의 싸움이 더욱 거세지는 것도 문제다. 대행사들의 경쟁이 심화할수록 클라이언트의 입김이 강해지고, 대행사들의 이익과 입지는 더욱 약화된다. 이는 고스란히 대행사 직원들의 근무 환경 악화로 이어지고, 좋은 인재들의 유입을 막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게 지금 광고업계의 현실이라고 본다.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는 방법은 없을까.

대행사 스스로 자존심을 세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일정한 가격 이하로는 팔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있듯, 적절한 보상 없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다는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업계 리더들이 이끌어줘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광고업계를 이끌어 온 광고인으로서 업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달라.

광고에 디지털 개념이 더해지며 기회가 상당히 많아졌다. 이러한 기회를 쉬이 대하지 말고, 광고 영역이 한 뼘 더 성장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꿈나무들이 업계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 미국의마이애미 애드스쿨과 같은 광고 실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는 것이 큰 소망이다. 앞서 말한 얼라이언스 구축이나 강의 활동, 그리고 1년에 두 번씩 개인적으로 진행하는한기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스쿨과정 등도 이러한 꿈나무 교육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자신만의 비즈니스와 꿈을 실현할 수 있는야생성을 지닌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삶의 목표가대기업 취직이 되어버린 지금 젊은이들의 현실을 함께 고민하고 바꿔 나가고 싶다.

 

  
고착화된
갑을 관계와 같은 잘못된 관행들이 국내 업계에 상당히 깊고 넓게 자리잡고 있다.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는 그 어떤 사이보다 끈끈한 파트너 관계여야 한다는 인식을 널리 퍼뜨리고 싶다.

광고를 하다보니, 광고로도 다른 의미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기자는 세상의 잘못된 이면을 꼬집고 비판하는 한편, 광고는 예쁘고 긍정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최종적으로는 자신만의 비즈니스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야생성을 지닌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삶의 목표가 대기업 취직이 되어버린 지금 젊은이들의 현실을 함께 고민하고 바꿔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