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어디 있는가? 누구의 작품인가?’

[Kh’s thought]

서울, 부산의 도시 슬로건 작업을 보며 드는 생각

[ 매드타임스 한기훈 대기자 ] 서울과 부산이 거의 동시에 슬로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시민 공모와 의견수렴 등을 거쳐 △'Seoul for you' △'Amazing Seoul' △'Seoul, my soul' △'Make it happen, Seoul' 등 서울을 상징할 4개의 브랜드 슬로건 후보를 정하고 12월 28일부터 1월 31일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선호도 조사를 실시한 뒤 최종 슬로건을 선정할 예정이다.

부산시는 시민 공모와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새로운 슬로건 후보로 △Busan is Good(부산이라 좋다) △Bridge for All, Busan(모두를 연결하는, 부산) △True Place, Busan(진정한 도시, 부산)을 선정했다. 그리고 부산시는 시민들의 투표로 ‘Busan is Good’ (부산이라 좋다)가 최종 선정되었다고 발표했다.

서울, 부산의 도시 슬로건 작업과 관련해서 몇 가지 비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후보로 선정된 안들이 너무 평이하거나 해외 다른 도시의 슬로건과 많이 유사하다는 것이 비판의 하나이고 시장이 바뀔 때 마다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는 지적이 다른 하나다. 필자는 여기에 한가지 문제를 더 지적해 보고자 한다.

현재 서울과 부산 두 도시의 슬로건 작업은 시민공모와 전문가 자문이라는 공통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일종의 집단 창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이다. 시의 담당자들이 결과물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좀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슬로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나 엘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부 직원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공모했을까? 글로벌 전문 업체를 선발해서 의뢰했을까? 당연히 전문업체에게 의뢰했을 것이다. 슬로건이란 것이 주로 어필하는 것이 내국인 보다는 외국인들이다. 글로벌 환경에서 우리의 서울이나 부산의 매력을 잘 어필할 수 있는 슬로건을 만드는 작업은 글로벌 전문 기업들이 주로 수행한다. 브랜딩 회사들이 그 전문가들이다. 해외의 브랜딩 전문 회사에 서울이나 부산의 도시 슬로건 작업을 의뢰한다면 큰 비용이 들고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도출된 최종 결과물을 두고는 많은 이들이 비판할 가능성도 높다. ‘이까짓 것 만드는데 그렇게 큰 돈을 주고 또 그렇게 오래 걸렸느냐고.’ 과거의 국내 대기업이 큰 비용을 지불하고 슬로건과 로고 작업을 했던 사례를 보더라도 그런 비판은 충분히 예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선정된 슬로건은 10년, 20년 동안 전세계 시장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

전문가는 남들이 생각해 내지 못하는 기이한 슬로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때로 그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슬로건을 도출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이 만들어 내는 차이는 슬로건이 도출되는 논리와 검증이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전세계 주요 도시 슬로건을 충분히 연구하고 세계 시장에서 우리 도시의 어필 포인트를 찾아 내서 후보안을 도출하고 세계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충분한 검증을 통해서 최종안이 도출되는 것이다.

부산은 엑스포 유치를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전문 회사에 의뢰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홍보 효과도 부수적으로 따라왔을 것이다.

문득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외국인으로 선임하는 사례들이 생각난다.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했던 이유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데 그가 더 믿음직했기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축구협회는 큰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큰 비용을 쓰고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축구협회의 리더십은 이런 것을 예측하지만 더 낳은 결과를 위해 책임을 진다. 마찬가지로 도시 행정 책임자들도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최고의 결과를 위해 세계적인 전문기업에게 의뢰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를 지을 때 건축 설계를 국제적으로 공모했고 그에 따라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지금 우리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DDP를 자하 하디드의 건축이라고 소개한다. 여러 건축가의 작품을 시민 투표로 선정하지는 않았다.

 

한기훈 차의과학대학교 의료홍보미디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