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1)
성공한 광고회사 뒤에는 성공한 캠페인이 있다. 레오 버넷의 말로보, TBWA의 앱솔루트 보드카, 맥켄 에릭슨의 코카콜라, Wieden+Kennedy의 나이키 등이 그런 케이스다. 그런데 DDB의 폴크스바겐 캠페인이야 말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스토리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Doyle Dane Bernbach (1986년 DDB Needham으로 이름이 바뀌고 90년대에 DDB로 다시 바뀌었다)와 폴크스바겐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폴크스바겐 비틀이 미국에서 팔리기 시작한 것은 1949년로 수입회사가 이 해에 단 2대를 판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2년에는 610대가 판매되었다. 1955년, 폴크스바겐 본사에서 직접 미국 내 판매회사를 설립하고 나서부터 매출이 급속히 신장한다. 1958년에는 비틀 79,038대를 판매하는 등 크게 성공하기 시작한다.
1959년 초, 폴크스바겐 미국 판매 법인의 젊은 사장 (당시 30대 중반) 칼 한 (Carl H. Hahn)은 폴크스바겐 비틀의 광고대행사를 찾기로 결정한다. 뉴욕 매디슨 애비뉴는 환호했다. 연간 75만달러 예산에 특이한 자동차를 광고주로 영입하기 위해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매디슨 애비뉴는 주요 광고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뉴욕 맨해튼은 거리 이름으로 미국 광고계를 의미한다) 칼 한 사장은 3개월 동안 4천 명이 넘는 광고인을 만나며 고심했지만, 그다지 만족하지 못했다. Doyle Dane Bernbach를 칼 한 사장에게 소개하고 추천한 것은 폴크스바겐 대리점 중의 하나인 퀸즈보로 모터스의 아더 스탠튼이었다. 그는 이전에 Doyle Dane Bernbach가 만든 Ohrbach’s 광고를 보고 감동받아서 그의 자동차 대리점 오픈 광고를 Doyle Dane Bernbach에게 의뢰했었고 그 결과에 만족했던 사람이었다.
Doyle Dane Bernbach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칼 한 사장은 지난 1년간 미국에서 발행되는 웬만한 신문, 잡지는 뒤져서 마음에 드는 광고물을 클리핑하고, 그 광고물들을 제작한 대행사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오려낸 광고의 70%가 작은 광고대행사인 Doyle Dane Bernbach의 작품임을 알아냈고, 이 회사가 고려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칼 한 사장은 Doyle Dane Bernbach를 방문하여 회사의 과거 실적, 현재의 크리에이티브, 광고주 담당 자세 등을 듣고 본 후 감명을 받는다. Doyle Dane Bernbach는 칼 한 사장이 방문했던 다른 대행사들과는 달리, 폴크스바겐을 위한 크리에이티브는 제시하지 않고 단지 진행 중인 기존 클라이언트의 작품만을 보였을 뿐이었다.
1959년 4월 폴크스바겐과 Doyle Dane Bernbach의 파트너십이 공표되었다. 최종 광고대행계약서의 서명은 1960년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때부터 세계 광고계에 큰 혁명을 가져오게 되는 폴크스바겐 비틀 캠페인이 시작이 된다. 미국 크리에이티브의 최고 황금기인 60년대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이번 글은 박현주님의 저서 ‘딱정벌레에게 배우는 광고발상법’에서 많은 부분 발췌, 인용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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