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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좋으면 다 좋아

끝이 좋으면 다 좋아


글.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얼마 전 내가 잘 아는 회사의 직원 한 명이 입사 석 달만에 퇴사했다. 대표와 그 직원은 서로 얘기를 잘 마쳤고 대표는 그에게 마무리를 잘 해줄 것을 당부했다. 퇴사하던 날 그 직원은 아무런 인사도 없이, 자신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포맷하고 가버렸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은 몹시 당혹했다. 클라이언트와의 주요 업무 내용들이 다 날아가버렸으니 직원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는 짐작이 간다.
퇴사한 직원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서로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이런 식의 마무리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느 광고 대행사가 3년 간 함께 일했던 클라이언트와 계약을 끝냈다. 대행사의 대표는 클라이언트를 찾아가서 3년 간 정말 감사했다고 정중하게 인사하고 자사의 담당자들에게 잘 마무리할 것을 당부했다. 후임 대행사에 인수인계도 잘 해주었다. 클라이언트는 몇 년 뒤새로 대행사를 선정할 때 이 대행사와 다시 계약했다. 마무리를 잘 한 것이 좋은 기억이 됐던 것이다.

예전에 필자가 글로벌 광고회사에 근무할 때 일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일하던 미국인 중역 한 명이 수년간의 아시아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는 평소 업무를 함께 했던 아시아 지역의 매니저들에게 이임 편지를 보냈는데, 그 제목이 이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끝이 좋으면 다 좋아’다. 이 편지에서 그 미국인 중역은 수년간 가깝게 지내면서 함께 많은 일을 한 여러 나라 매니저들에게 임기 마무리를 잘 할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그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내게는 그보다 더 가깝게, 오래 일한 외국인들이 많지만 헤어질 때의 이 편지 한 통으로 그는 지금까지도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글로벌 광고회사의 최고 경영자들은 물러나고 난 다음에 평가를 받는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잊혀지고 어떤 사람은 나쁜 경영자로 기억된다. 뛰어난 경영자는 임직원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서, 회사의 회의실에 그의 이름이 붙는 식으로 기려지기도 한다.
이런 뛰어난 경영자는 후계자 육성을 특히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DDB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키이스 라인하드 회장이 대표적으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20년이 넘는 기간을 최고 경영자 자리에 있었는데, (이사회에서 합의해서)자신이 물러날시기를 정하기 10년 전에 후임을 지명했고 10년 동안 후임자를 키우며 그에게 조금씩 힘을 넘겨줬다. 후계자를 위해서, 조직을 위해서 최선의 마무리를 한 것이다. 그는 지금도 명예회장으로서 가끔 회사에 들러 중역들과 점심을 함께 한다. 마무리를 잘 한 덕에 계속 존경 받으며 경영자의 멘토로 있는 것이다.

한 해가 지나고 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금년, 우리나라에서는 촛불혁명의 결과로 새로운 정부가 출발했고 북한 핵 문제로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골치 아픈 난제들이 우리 사회에 산적해 있다. 원자력 발전소 문제, 동성애 문제, 언론 자유 문제, 노사 문제 등으로 나라 전체가 잠잠한 때가 없는 듯 하다.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좀처럼 쉽게 운신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세계는 지구 온난화 문제, 종교 갈등, 테러 문제 등의 난제로 가득 차 있다.

그래도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일상이다. 거대 담론을 얘기하는 것도 좋지만 일상을 중심으로 나와 내 주위, 공동체를 더 좋게 만들어 가는 데 관심을 가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12월은 잘 마무리 해야 하는 시기다. 지난 한 해를 잘 돌이켜 보자. 성공적인 일들, 아쉬운 프로젝트들을 함께 되짚어 보며 경험 자산으로 만들어 가자. 인간 관계도 돌이켜 보자. 사회적인 관계들에서 혹시 타인의 마음을 다치게 한 적은 없는지 챙겨 보자. 있다면 마음이 다쳤을 타인을 만나 풀고 가는 것이 좋다. 또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자. 설정해 놓은 목표들은 얼만큼 달성했는지,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 살펴 보자. 그리고 반드시 가족과 함께 휴식의 시간을 가질 것. 12월의 마지막 한 주는 일에서 떨어져서 가족과의 시간을 즐겨야 한다.
이렇게 마무리를 잘 하면 금년 한 해 끝이 좋은 것이고 끝이 좋으면 모든 게 다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