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람으로, 정철 카피라이터
광고쟁이의 낭만을 말하기에 광고판은 치열하다. 남을 이겨야 내가 사는 업계 특성 때문일 수도, 작은 시장을 두고 수많은 경쟁자가 싸우는 국내 시장 구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광고쟁이는 오늘도 바쁘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카피 한 줄, 이미지 하나에 골몰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잊고 사는 게 있다.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줄을 써야 하는 것이 광고쟁이고 카피라이터인데, 수많은 경쟁에 지친 그들은 언젠가부터 ‘사람’을 잊고 산다. 여기, 여전히 사람을 잊지 않고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광고쟁이, 정철 카피라이터가 있다. 시종 너털웃음을 짓는, 사람 냄새 한껏 풍기는 그에게서, 왜 결국 ‘사람’이 답인지 들어봤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김지훈 기자 kimji@websmedia.co.kr
(좌로부터, 김지훈 기자, 정철 카피, 한기훈)
특별히 ‘세상을 바꾸고 싶다’거나, ‘널리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등의 거창한 뜻은 없다.
누군가 내가 쓴 책을 전부 다 읽고 덮었을 때, 가슴 속에 ‘사람’이라는 두 글자가 남았으면 좋겠다.
----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 정철 카피라이터
본인을 소개할 때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라는 문구를 자주 쓰더라. 특별한 사연이 있을까.
대학 졸업하고 처음 가진 직업이 카피라이터다. 카피라이터가 결국 남의 얘기 대신해주는 것 아닌가. 남 얘기만 20년 넘게 하다 보니 ‘내 이야기’가 마렵더라. 내 생각을 세상에 던졌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책을 써보기로 했고, 2009년 『내 머리 사용법』이라는 첫 책을 내놨다. 어?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잘 팔리더라(웃음). 책이 잘 팔리니 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부터 강연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반응이 있으니 재미도 있더라. 덕분에 지금은 내가 카피라이터인지, 작가인지, 강사인지도 모르게 됐다(웃음).
카피, 책, 강연. 시간을 투자하는 비중이 어떻게 되나?
책 쓰는 시간이 가장 길다. 카피는 그때그때 일이 들어오면 쓰고 강의는 한 달에 많으면 열 번 정도 진행한다.
하지만 책은 보통 1년 내내 쓰니까, 아무래도 투자하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시간을 투자한 보람이 있다. 최근 발행한 『카피책』도 반응이 좋던데?
독자 반응을 꼼꼼히 챙겨보는 편인데, 반응이 나쁘지 않더라. 사실 많이 파는 것보다 카피라이터 지망생들이 오랜 기간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책으로 생각하고 만들었다. 기대보다 반응이 더 좋아서 놀랐다. 기분 좋다.
‘정철’ 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단어가 ‘정치 광고’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 후보 캠프에 합류하며 정치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는데?
사실 문재인 전 후보와는 19대 총선부터 인연이 있었는데, 문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며 캠프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카피라이터로서 광고를 계약하고 일을 진행하는 일반적인 활동이 아니라, 1년간 캠프에 합류해 전반적인 홍보 활동을 지원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먼저 아내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당시 내 생각은 ‘50년 넘게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1년만 나라를 위해 제대로 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아내도 내 생각을 알았는지 흔쾌히 허락했고, 그때부터 다른 모든 활동을 접어두고 문 후보 캠프 홍보 활동에 올인했다.
당시 ‘사람이 먼저다’ 카피가 인상적이었다.
대중이 문 후보에게 기대하는 바를 함축하고 싶었다. 과거 인권 변호사 활동을 했던 이력, 발전이나 개발보다는 복지를 중심으로 내건 공약과 정책이 모두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는 문 후보의 철학과 맞닿아 있더라. 그게 ‘사람이 먼저다’ 카피가 등장한 계기였다.
요즘에도 계속 정치 광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데. 가장 최근에는 표창원 후보(현재 당선인) 등 더불어민주당의 신규 총선 후보들을 ‘신제품’에 비유해 사용설명서를 제작한 것이 소셜에서 큰 이슈가 됐다.
문재인 전 후보가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위원장으로 활동할 때 영입 활동 일부를 함께했다. 당시 표창원 후보 등 여러 당원을 만났는데,문득 광고쟁이들이 신제품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후보의 특징을 잡아 각자에게 맞는 색깔을 우려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떠오르는 특징들을 요약해 신제품처럼 사용설명서와 주의사항 등을 정리했다. 표창원 후보는 사이다, 양향자 후보는 우산으로 비유했는데, 이게 소셜에서 반응이 좋았다. 메타포를 잡아 제품을 홍보하는 일종의 광고 프로세스를 적용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치 광고 활동을 하는 이유도 궁금해진다.
특별히 ‘세상을 바꾸고 싶다’거나, ‘널리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등의 거창한 뜻은 없다. 청와대에 간다거나 정치로 진출할 생각은 더더욱 없고. 개인적으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가 키워드로 내세웠던 ‘사람 사는 세상’에 가슴으로 공감했다. 어찌보면 나는 ‘사람 사는 세상’과는 정반대로 살아왔는데, 그 말을 만난 후 ‘사람’을 내 인생의 키워드로 삼기로 했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글과 말로 돕고 있는 거라고 보면 된다. 누군가 내가 쓴 책을 전부 다 읽고 덮었을 때, 가슴 속에 ‘사람’이라는 두 글자가 남았으면 좋겠다.
나는 광고를 꿈꾸는 이들을 만나면 광고 관련 책, 강연 들을 시간에 연애 한 번 더 해보라 권한다.
연애를 통해 알게 되는 세세한 감정, 좋은 영화 한 편이 주는 떨림, 멋진 곳을 여행하며 쌓은 추억들이 나중에 쓰게 될 좋은 카피의 소스가 된다고.
누군가 미래에 관해 물으면 나는 항상 ‘막산다’고 답하곤 한다.
계획이나 그림을 갖고 있지 않다. 최대한 오늘을 즐기자는 생각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딱 하나 소망은 1년에 책을 한 권씩 쓰자는 거다.
죽기 전까지 책을 계속 쓰고 싶다.
특별히 ‘사람’이라는 단어에 공감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
광고업계가 사실 치열한 곳이잖나. 서로 물고 뜯고,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고,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 한가운데 있다 보니, 당시 내 인생의 단어는 ‘승리’였다. 다른 대행사와의 제안 전쟁에서 승리하고, 성공적으로 광고를 론칭하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사람’이란 단어는 내 인생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표어와 그 깊은 뜻을 알고 나서는 승리가 아닌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지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 제안에서 승리해 기뻐하고 노래 부를 때, 다른 한 곳에서는 밤새 준비한 제안서를 챙기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과거엔 그게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성이 보이기 시작한 거다.
그 인간성을 중심으로 광고를 기획한 사례가 있다면.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꼭 받는데, 시력 검사 도중 시력표를 보고 문득 생각난 아이디어가 있다. 당시가 세월호 사고 1주기 즈음이었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글자가 희미해지며 잘 보이지 않는 시력표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호 사고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그래서 ‘4/16 세월호, 잊지 않을게’라는 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흐려지는 이미지를 시력표 위에 표현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지만, 관심이 침몰하고 있는 건 아닌지 표현하고 싶었다.
자, 그럼 광고 이야기를 더 해보자. 최근 들어 가장 재미있게 지켜본 광고가 있는가?
내가 뽑는 최고의 카피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결혼해 듀오’다. 이 다섯 글자 안에 회사의 브랜드명과 색깔이 함께 녹아있고,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도 들어가 있고, 말의 확장성도 굉장히 뛰어나고, 재미까지 있다. 정말 잘했다. 내가 한 건 아니다(웃음).
정철 카피 본인이 쓴 것 중에 최고로 꼽는 사례가 있다면.
과거에 내가 살던 아파트가 채광이 참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아파트 앞에 대형 스포츠 시설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미관상으로도 안 좋고, 채광 좋던 아파트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니 아파트 주민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대책 회의가 열렸고, 나는 카피라이터라는 이유로 불려가 현수막에 들어갈 문구를 정해야 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는 ‘스포츠 시설이 웬 말이냐’ 등의 문구를 쓰지만, 난 여기에 앞서 말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를 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햇빛을 받고 뛰어놀 수 있게 한 뼘만 비켜 지어주세요’. 이후 실제 해당 스포츠 시설은 채광을 방해하지 않도록 비켜 지어졌다. 싸움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부추기는 글을 쓰니, 더 화제가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거라고 본다. 브랜드 광고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내가 쓴 카피 중에 가장 기분 좋았던 사례다.
이제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해보자. 정철 카피라이터가 브랜드 광고를 기획하던 시절과 현재 광고 시장은 무엇이 다른가.
일단 매체가 변했다. 과거엔 4대 매체 광고가 곧 광고였고,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지금은 4대 매체의 존재감이 굉장히 떨어졌다. 사람들이 정보를 접하는 미디어가 변하니, 매체도 따라서 변한 거다. 브랜드나 대행사도 그에 따라 자신의 색깔을 달리하고 있다.
카피라이팅 과정의 변화는 없나.
카피를 설계하는 과정이나 크리에이티브 기획 과정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크리에이티브란 결국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방법’이다. 매체가 변하면 광고를 실어 나르는 채널이나 플랫폼에 따른 세세한 변화는 있지만, 결국 큰 줄기는 변하지 않는다.
카피라이터들이 디지털이나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강화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중요하다. 가장 트렌드에서 앞서야 하는 이들이 광고인이니까. 기술도 중요하고, 데이터도 중요하다. 하지만 ‘광고’라는 게 결국 사람들이 많이 보는 매체에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메시지를 던지고 사람들이 내 제품을 사게끔 하는 것 아니겠나.
광고인, 카피라이터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근본적인 철학이라고 본다.
그럼 카피라이터는 어떤 공부를 하는가.
나는 광고를 꿈꾸는 이들을 만나면 광고 관련 책, 강연 들을 시간에 연애 한 번 더 해보라 권한다. 연애를 통해 알게 되는 세세한 감정,좋은 영화 한 편이 주는 떨림, 멋진 곳을 여행하며 쌓은 추억들이 나중에 쓰게 될 좋은 카피의 소스가 된다고. 실제 광고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면 그런 세세한 감정들은 바빠서 좀처럼 느낄 새가 없다. 젊은 시절에 쌓아 놓지 않으면, 카피라이터는 따로 공부하기가 참 힘들다.
젊은 층 카피라이터와 함께 일할 기회는 자주 있는 편인가? 이곳저곳 부르는 곳이 많을 것 같은데.
요즘 시장에서는 나를 ‘원로 카피라이터’로 칭하더라(웃음). 몇 년 전까지는 국내 존재하는 대부분 광고대행사와 함께 작업했지만, 요즘에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광고 제안을 해본 지 한참 됐다. ‘나이를 먹으면 감각이 떨어질 것’이라는 시선이 아마도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같이 일하기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는 것 같고(웃음). 사실 아직 나는 젊을 때 비해 감각이 무뎌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광고’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시선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철 카피가 느끼기엔 어떤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열기는 조금 식었을지언정 오히려 광고 분야를 꿈꾸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더욱 다양해졌다고 본다. 광고 영역을 마케팅 전반으로 확대해서 바라보는 시선도 늘고 있고. 바람직한 변화라고 본다.
광고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하지 마라(웃음). 실제 요즘 광고 업계가 그렇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되기 힘든 게 아니라 뽑는 곳이 없어서 되기가 힘들다. 실제로 연차가 어느 정도 있는 경력 사원들을 위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새내기 사원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키우며 이끌어 줄 여유를 가진 회사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반은 농담이지만, 정말로 선뜻 도전을 권하기가 힘든 분야이기는 하다.
현실적이면서도 뼈 있는 조언이다. 정철 카피의 젊은 시절 이야기도 해보자.
수많은 브랜드 광고를 함께했을 텐데, 만약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브랜드와 함께해보고 싶나.
사실 대행사보다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하면서 대부분 브랜드와 협업을 해봤다. 아무래도 프리랜서는 더 많은 브랜드 카테고리와 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못해본 곳이 패션, 뷰티 관련 브랜드다. 광고주들이 내 스타일을 알아서 그런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무도 연락을 안 주더라. 술 광고가 많이 들어오는 걸 보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웃음).
왠지 이해가 된다(웃음). 지금은 정철 카피 자신이 ‘원로’ 이야기도 듣고 많은 젊은 카피라이터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지만, 정철 카피가 영감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반은 카피라이터, 반은 작가로 살며 ‘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내 글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사람은 얼마 전 작고한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다. 그가 쓴 책들을 보고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놀란 적이 많다. 주옥같은 책이 많지만 내가 꼽는 책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다. 기발하면서도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작법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한 명 더 있다. 조금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시인의 마을’이란 노래로 유명한 가수 정태춘이다. 그의 가사를 보고 굉장히 많은 공부를 한다. 가사를 그렇게 잘 쓸 수가 없다. 이 두 사람의 작품은 디아이 매거진 독자들도 꼭 한 번 찾아보셨으면 좋겠다.
자, 그럼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10년 뒤 정철 카피는 뭘 하고 있을까.
누군가 미래에 관해 물으면 나는 항상 ‘막산다’고 답하곤 한다. 계획이나 그림을 갖고 있지 않다. 최대한 오늘을 즐기자는 생각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딱 하나 소망은 1년에 책을 한 권씩 쓰자는 거다. 죽기 전까지 책을 계속 쓰고 싶다.
마지막으로, 정철 카피의 책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고 있을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해달라.
사실 독자에게 하는 말이자, 나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요즘 내 인생을 정확히 대변해주는 말이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소위 말하는 ‘꼰대’, ‘아재’가 되지 않으려고 진심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다(웃음). 나도 모르게 조금씩 꼰대가 돼 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광고, 디지털 분야를 이끌어갈 독자 여러분은 절대 꼰대가 돼서는 안 된다. 잠깐 정신을 놓으면 누구나 꼰대가 된다. 나이가 문제는 아니다. 20대에도 꼰대는 얼마든지 있다. ‘내가 혹시 꼰대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계속해서 몸부림을 치면서 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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