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s thought2019. 8. 27. 17:39

지난 2019년 3 DDB Worldwide는 새로운 로고를 발표했다. 몇가지 변형들이 있지만 핵심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바로 이 회사의 첫 이름이었던 Doyle Dane Bernbach가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빌 번벅의 별세 이후, Doyle Dane Bernbach는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석유가가 치솟으면서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고 특히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던 시기였다. Doyle Dane Bernbach BBDO 그리고 시카고의 Needham Harper 등 세개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고있던 회사들이 통합하여서 옴니콤 그룹을 만들었다. 그 때부터 Doyle Dane Bernbach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DDB Needham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그 때로부터 33년 만에 Doyle Dane Bernbach가 소환되는 느낌을 주는 새 로고가 만들어진 것이다.

광고회사의 정체성은 결국 창업자가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빌 번벅은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믿었던 사람이고 광고에서 크리에이티브의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었다. DDB가 다시 핵심 가치를 붙잡는 것으로 보여서 (과거 20년간의 멤버로써) 흐뭇한 기분이다.

부활한 빌 번벅에게 박수를 보내며 빌 번벅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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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 8. 27. 17:35

빌 번벅은 책을 남기지 않았다. 빌 번벅과 동시대의 인물로 ‘과학으로써의 광고’를 주장한 데이빗 오길비 'Ogilvy on Advertising'과 같은 멋진 책을 남긴 것을 생각하면 참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오랜 기간 일하며 많은 명 캠페인을 제작한 카피라이터 밥 레븐슨이 좋은 책을 한권 남겨 주었다. 이 책의 제목은 <BILL BERNBACH'S BOOK- A HISTORY OF THE ADVERTISING THAT CHANGED THE HISTORY OF ADVERTISING>이다. 이 책에는 빌 번벅의 주요 캠페인과 관련 스토리가 자세히 실려 있다. 저작권도 밥 레븐슨과 빌 번벅의 미망인이 함께 갖고 있는 책이다. 필자는 이 책을 밥 레븐슨부터 직접 받았다. 90년대 후반 스페인의 마르베야(Marbella)에서 열렸던 DDB Worldwide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밥 레븐슨이 강연하고 참석자들에게 이 책을 한 권 씩 저자의 사인과 함께 주었다.

2000
년대 초반리 앤 디디비시절에 ECD 유종상 군이 이 책을 복사하여서 자신의 필체로 번역과 해설 등을 낙서처럼 적어서 흑백으로 인쇄하여서 전 직원들의 교육용으로 나눠 주었는데 나는 이 자료를 지금도 보물처럼 아끼며 활용하고 있다.

국내 저술 중에서 빌 번벅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1998년 발행된 <딱정벌레에게 배우는 광고발상법>이 그 책이다. Doyle Dane Bernbach에서 기획 집행한 수 많은 폴크스바겐 크리에이티브 작품들을 번역하고 해설했으며 빌 번벅의 이야기와 Doyle Dane Bernbach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는 귀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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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 8. 27. 17:26

빌 번벅 1982 10 2 71세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빌 번벅이 사망하기 며칠 전, 병원을 찾았던 헬무트 크론과 밥 레븐슨은 (헬무트는 아트 디렉터로, 밥은 카피라이터로 빌 번벅의 오랜 동료이자 Doyle Dane Bernbach의 리더들이었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비망록(obituary)을 준비했다. 첫 문장은 빌 번벅의 말을 인용했다. 두번째 문장은 헬무트 크론이 썼고 세번째 문장은 밥 레븐슨이 썼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럽게 부고 광고가 되었다. (아래 부고)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많은 언론이 그의 죽음을 알렸다. 빌 번벅을 추모하며 가장 많이 남긴 말들은 그가 '광고의 얼굴을 바꾼 사람'이라는 것이다. 빌 번벅 이전의 광고는 기본적으로 ‘Hard Sell’이었고 난폭하고 무례한, 기분 나쁜 것이었는데 빌 번벅은 광고를 자극적이며 유머가 있고 믿을 수 있는 세일즈 메시지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크리에이티브 혁명가’의 시대는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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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 8. 27. 17:12

빌 번벅의 작품 중에는 멋진 브랜딩 케이스도 있다. 콜롬비아 커피’의 로고와 캐릭터 슬로건 등이 그것이다. 콜롬비아 커피 생산자 연합회 (The Colombian Coffee Growers Federation)를 위해서 빌 번벅이 이것들을 만든 때는 1959년이었다. 커피 농부 캐릭터의 이름은 후안 발데즈(Juan Valdez)로 하고 그의 노새의 이름은 콘치타(Conchita)로 지었다. 100 percent Colombian coffee the richest coffee in the world”라는 슬로건을 붙였다.

이후 콜롬비아 커피의 미국내 인기는 급속히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다른 커피 원산지들과 차별화도 확실하게 되었다. 최고의 원두 커피 브랜드로 확실하게 포지셔닝 했던 것이다. Doyle Dane Bernbach는 콜롬비아 커피 1990년대 후반에 헤어졌다. 40년간의 좋은 관계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난해 가을 콜롬비아 커피는 다시 DDB의 클라이언트로 돌아왔다. 30년만의 컴백이었던 것이다. 빌 번벅의 후배들에 의한 더 멋진 작품이 기대된다.

콜롬비아 커피 1990년대에 한국에 진출했다. 필자는 한국에 진출한 콜롬비아 커피 클라이언트를 위해 초기 5년 정도 일했었다. 인쇄광고 하고 콜롬비아에 사진작가를 보내서 촬영하게 해서 잡지에도 게재했다. 커피숍에서의 프로모션도 활발히 전개했다. 한국에서도 콜롬비아 커피는 부드러운 맛의 고급커피로 인식되면서 콜롬비아 커피의 주요 수입국 중 하나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농산물 브랜딩과 캐릭터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게 된 좋은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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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 8. 27. 17:07

DDB Worldwide에서 ‘Bill Bernbach said…’는 성경책과 같은 책이다. 얇은 이 책자에는 빌 번벅의 어록이 잘 보존되어 있다. DDB 사람들은 내부 프레젠테이션, 외부 프레젠테이션 때 모두 그의 말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를 구할 때에도 들여다보기도 하고, 학생이나 직원 교육할 때에도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Bill Bernbach said…’도 있다. 1990년대 대홍기획에서 번역했고 2000년 무렵에는 리앤디디비에서 번역하기도 했다. 빌 번벅이 현역 시절에 그와 함께 일하던 크리에이터들에게는 빌 번벅의 칭찬이 최고의 보상이었다. 칸 라이언즈에서 그랑프리 어워드를 받는 것 보다 빌 번벅의 칭찬이 더 소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대단한 카리스마의 사람이었다. 그의 말은 핵심을 잘 전달했고 그 말들은 함께 일하던 멤버들에 의해서 후배들에게 전달되었다. Bill Bernbach said’라는 작은 책자로. 그의 시대로부터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그 ‘어록’은 오늘도 훌륭히 참고되는 말씀이다. 한 조직에서 창업자의 정신이 그의 말 속에 잘 정리되고 활용되는 것은 큰 장점이다. 그리고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지 않다. 뛰어나고 역사와 전통 그리고 철학이 있는 크리에이티브 회사라 할지라도.

Bill Bernbach said…’를 우리 말로 옮겨 보면 아마도 ‘빌 번벅 가라사대’ 가 되지 않을까? Bill Bernbach said’에서 몇 문장을 소개해 본다.

Its not just what you say that stirs people. Its the way that you say it.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그대가 무엇을 말하는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가에 달려있다.

Rules are what the artist break; the memorable never emerged from a formula.

“예술가는 규칙을 파괴한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결코 공식에서 나오지 않았다.

Imitation can be commercial suicide.

“모방은 광고의 자살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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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 8. 27. 17:00

폴크스바겐에 이어서 빌 번벅과 Doyle Dane Bernbach를 유명하게 만든 캠페인이 바로 Avis렌터카의 ‘We Try Harder’ 캠페인이다. 1962년도에 작은 렌터카 업체인 Avis의 CEO 밥 타운젠트가 빌 번벅을 찾아왔다. Doyle Dane Bernbach의 독특하고 독불장군 같은 스타일에 끌려서 Avis 렌터카의 광고를 의뢰하게 되었던 것이다. 빌 번벅은 조건을 달고 광고 대행을 받아들였다. “OK, we’ll take it. But you must do exactly what we recommend.” 당시 미국의 렌터카 업계는 ‘허츠’라는 선발 업체가 시장의 35%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고 Avis는 크게 차이나는 2등이었다. 그것도 3위와 별로 차이가 안나는 2등. Doyle Dane Bernbach 팀은 솔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광고를 만들기로 밥 타운젠트와 합의했다. 그리고 광고에서는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넘버2 선언’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단지 2등일 뿐입니다. (We’re only #2) 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히 합니다. (We Try Harder)라는 솔직한 고백이 나왔던 것이다. 고객이 차를 반납하면 깨끗이 청소하고 재떨이도 비우고 예약 상담도 좀 더 친절하게 하는 등 2등이라서 1등을 따라가고자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광고를 내보내려면 Avis의 모든 직원들이 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실행해야 한다. 아니면 거짓광고가 되는 것이다. 밥 타운젠트가 Doyle Dane Bernbach의 이 광고를 처음 받아 보았을 때 그것은 그가 요청한 것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 전설적인 ‘We Try Harder’ 캠페인이 진행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밥 타운젠트는 광고가 광고로 그치지 않도록 미국 전역의 지점을 찾아 다니며 직원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케팅에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광고에서의 메시지대로 내부 직원들이 움직여 주어야 한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들은 이 광고를 보고, 이야기하고 찾게 되었다. 놀라운 반응이었다. 사실 Doyle Dane Bernbach는 광고를 밥 타운젠트에게 보여주기 전에 사전 소비자 조사를 했다. 절반 정도는 이 광고를 싫어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이 광고를 좋아했다. 빌 번벅은 “절반이면 됐네. 우리는 그 절반을 원하지!” “그대로 밀고 나가자.” 하였다. 이 캠페인이 시작되고 2개월 만에 경영은 흑자로 전환되었고 뉴욕에서는 1개월에 매출이 51%나 증가했다. 캠페인 전개 2년 만에 전국적으로 35%의 경이적인 신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AvisDoyle Dane Bernbach는 많은 이슈에 있어서 서로 의견 일치에 실패했다. 밥 타운젠트가 회사를 떠나고 경영자가 몇 차례 바뀌었다. 그 사이, Doyle Dane Bernbach는 잘렸다가 다시 고용되고 다시 잘리는 일을 당했다. 하지만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 어디에나 Avis 렌터카가 있는 곳에서는 “We Try Harder”라는 슬로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행사가 바뀌어도 명작은 살아 남는다.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인가 보다.’ Doyle Dane Bernbach의 카피라이터였던 밥 레벤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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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2019. 8. 27. 16:51

1980년대 내가 일했던 대홍기획의 초기 모습을 기억해 보면, ‘카피실’이란 조직이 있었다. 카피라이터들만 따로 모아 놓은 조직이다. 카피 실장은 각 카피라이터들에게 클라이언트나 프로젝트를 할당해 준다. 기획팀에서 브리프를 작성해서 카피실로 넘기면 카피라이터가 몇 가지 아이디어를 카피로 작성해서 디자인실로 또는 피디실로 넘겼다. 각 부서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이 존재했다. AE들에게는 좀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 뛰어난 AE들은 실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까지 하기도 했다. 그 때, 카피라이터와 아트 디렉터 간에 팀이란 의식이 없었다. 각자 자기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1950년대에 Doyle Dane Bernbach는 이미 일하는 방식에서도 새로운 혁명을 일으켰다. Doyle Dane Bernbach에서는 브레인 스토밍이나 그룹미팅이 없었다. 모든 광고는 Artist Copywriter가 동등하게 함께 일한 결과로 만들어졌다. “서로 존중하는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충분한 시간을 같이 앉았었지요. 그리고 자유 연상의 단계에 도달하고 거기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다른 아이디어로 발전하는 것입니다.”라고 Bob Gage는 말했었다. 아티스트가 헤드라인을 이야기하고 카피라이터가 그림 이야기를 한다. 이런 자유로운 역할 교환 과정을 통해서 광고 작품은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Bob Gage는 그레이 대행사 시절부터 빌 번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밑에서 일했던 아트 디렉터로 Doyle Dane Bernbach 창립 멤버였다.)

함께 일하는 두 사람(카피라이터와 아트 디렉터)은 서로 치열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일했다고 한다. “우리는 밀폐된 방에 안아서 서로가 상대를 죽을 때까지 물어 뜯었죠. Paula Green의 회상이다. (폴라 그린은 Avis 렌터카 캠페인의 ‘We try harder란 슬로건을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트 디렉터는 진정한 광고쟁이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이는 크리에이티브 팀에게 자기 자신의 작품이라는 책임감을 주게 되었다. 빌 번벅은 “그건 그들 소유입니다. 그들은 머리를 치켜 들고 긍지를 갖고 걷습니다. 카피와 아트의 결합, 이것은 엄청난 혁명이었다. 카피와 아트는 함께 어우러지면서 제3의 더 큰 것을 만들어 냈다.

1950년대 부터 Doyle Dane Bernbach는 이 작업 방식으로 유명한 캠페인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뉴욕의 Ohrbachs 백화점 광고 캠페인 그리고 이어서 Levys 호밀빵 광고, 그리고 Doyle Dane Bernbach의 이름이 점점 알려지면서 폴라로이드 카메라 캠페인, Avis 렌터카 캠페인, 이스라엘 항공, 그리고 마침내 폴크스바겐 캠페인으로 이어지는 광고의 황금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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