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s IM Leader Interview2015. 3. 13. 16:15

대한민국의 무브먼트를 꿈꾸다 김윤호 우림FMG 대표이사

대한민국의 무브먼트를 꿈꾸다

김윤호 우림FMG 대표이사


우림FMG(Fashion Marketing Group)는 우리나라 굴지의 시계, 주얼리 업체다.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인 파텍 필립(Patek Philippe)과 쇼파드(Chopard)의 국내 독점 에이전트며,
시계 편집매장인 갤러리  오클락(Gallery O' Clock)을 운영 중이다.
지난 2008년에는 독자 주얼리 브랜드인 스톤헨지를 론칭했고, 지난 3월에는 독자 시계 브랜드인 ‘아르키메데스’를 출시했다.
지난 25년간 우림FMG를 이끌면서 문화 기업으로 진화중인 김윤호 대표를 만나 세밀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진행. 한기훈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김윤호 우림FMG 대표이사(이하 김윤호 대표)


김윤호 대표의 방은 자유분방했다. 살짝 든 배신감은 어쩔 수 없었다. 25년 동안 시계와 함께 했다는 이미지 탓에, 시계의 무브먼트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고 깔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우림FMG가 수입하는 수 십여 개의 브랜드 시계 진열대 위에 가득 쌓여있는 서류, 인터뷰를 진행할 테이블 위에도 역시 수많은 서류와 잡지로 가득했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만이 내가 상상했던 김윤호 대표의 모습과 일치했다.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깐깐한 기업의 대표라기보다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아티스트 같은 느낌이 짙게 흘러나왔다. 


광고회사 AE에서 잡지사 광고부 직원으로 일하다가, 시계, 주얼리 수입회사를 차렸다. 아무리 봐도 연관성이 없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결혼을 조금 일찍 한 편이다. 대학생 때 했으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이화여대 앞에서 '메이퀸'이라는 잡화점을 했었다. 그때 취급하던 아이템 중 하나가 시계였고. 당시에는 수입자유화 전이어서 미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시계를 들여와 팔았다. 브랜드 인지도가 없음에도 곧잘 나가는 것을 보고, '메이퀸'을 접은 다음에 본격적으로 시계 브랜드를 수입하게 됐다.

우림FMG가 1989년도에 설립해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했는데,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이 내 기억으로는 1998년 정도부터인 것 같다.
설립한 1989년부터 1997년까지는 우림FMG는 외형적으로는 55억 원 정도 규모의 회사였다. 1997년 IMF가 터지면서 국내 중소형 지방 백화점이 줄줄이 부도가 났고, 우리 역시 도산 위기를 맞이했었다. 수입 회사였기 때문에 타격이 컸다. 당시에는 하루하루 어음을 막는 것이 일이었다.






급격한 반전을 이루는 계기가 있었나?

우리가 엠프리오 아르마니 시계(EMPORIO ARMANI Watch) 브랜드를 론칭하면서부터다. 아르마니 시계를 필두로 다섯 개 유명 브랜드를 연속으로 론칭하면서 1998년 초부터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이 세계적인 브랜드 판매권을 따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1997년에 엠프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가 시계 브랜드를 론칭했다.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이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전문가였던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 친구에게 “회사 소개서와 제안서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그 친구가 대뜸 “시간이 얼마나 있느냐”고 묻더라. 사실 이전에도 해봤고, 실제로 2주 정도 안에 만들었기에, “한 2주 정도?”라고 하니, 그 친구가 크게 웃었다.
그 친구는 “네가 앞으로 8개월 동안 하루에 3, 4시간씩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시간을 내줄 생각이 없다면, 난 도와줄 수 없다”했다. 이해하지 못 했다. 2주에 끝냈던 것이 8개월이 걸렸다. 일주일에 3, 4일을 회사가 끝나면, 7시 30분에 그 친구를 만나 새벽 2, 3시까지 이 작업만 했었다.

8개월 걸린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의 결과는 어땠나?

속도전에 익숙했기에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때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를 잘 만드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지를 배웠다. 이걸로 아르마니를 얻었고, 펜디, 베르사체, 휴고 보스, 버버리까지 이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를 갖고 연달아 국내에 론칭했다. 쇼파드 전까지 우리가 수입했던 7~80개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했던 것 같다. 지금도 우리 회사에서 가장 가치있는 소프트웨어로는 당시 만들었던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를 꼽는다. 

40장의 잘 만든 소개서와 제안서가 우림FMG를 바꿔 놓은 것인가?

하나의 잘 만든 제안서를 갖게 됐다는 의미보다는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게 됐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2010년에는 15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브랜드 쇼파드를 론칭했다. 이 때도 그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가 도움이 됐나?

아니다. 재밌는 것은 4년 전에 하이엔드(최고급) 브랜드인 쇼파드(CHOPARD)의 국내 론칭을 위해 다시 한 번 그 친구와 일을 했다. 사람들은 기존에 만든 걸로 70개가 넘는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했고, 회사 규모도 성장했으니, 자체적으로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그 친구와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돌이켜봐도, 잘한 선택이었다. 하이엔드 브랜드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우리도 조직이 갖춰졌음에도 홍보팀과 함께 만드는데 3개월 반이 걸렸을 정도니까. 결국, 쇼파드 국내 론칭을 성공했고, 이 제안서를 바탕으로 파텍 필립(Patek Philippe)까지도 우리 손에 쥐게 됐다.


차원이 달랐던 하이엔드 브랜드의 평균가격대는 얼마나 되는가?

우리가 수입하는 브랜드의 평균 가격을 살펴보면 대개 200만 원(주얼리 기준)에서 시작해 많이 팔리는 제품의 가격대는 4~500만 원대다. 시계는 주로 600만 원대에서 시작하고, 천 만 원대가 주요 판매 제품의 평균 가격이다. 그런데 하이엔드 제품이라고 불리는 파텍 필립 같은 경우는 3~4,000만 원에서 시작한다.


엄청나게 높은 가격인데, 파텍 필립은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는가?

쇼파드를 비롯해 하이엔드 쪽에서 주얼리와 시계를 잘하고 있는 회사를 꼽자면, 티파니(Tiffany), 까르띠에(Cartier), 불가리(Bulgari), 쇼메(Chaumet) 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파텍 필립은 독보적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분야에서 뭐가 1등이냐고 물어볼 때, 의견이 다르게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25년 동안 이 업을 하면서 수많은 외국 시계 전문가와 브랜드 담당자를 만나서 물어보고 의견을 나눴지만, 백이면 백 모두 파텍 필립이라고 한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최고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브랜드는 드물다.


예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런 가격 차이는 왜 나는 것인가?

여성 시계는 주로 다이아몬드 세팅에 따라 가격이 많이 올라가는데, 남성 시계는 다이아몬드가 아닌 무브먼트(동력장치) 때문에 가격이 올라간다.


이제 시계 마케팅 이야기를 해보자. 이러한 좋은 브랜드 제품을 마케팅하는데,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가.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PPL이 눈에 띈다.

비록 광고 회사에는 2년 정도 밖에 안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광고에 대한 두 가지 철학이 있다. 일단 광고는 광고주가 싫증 내서 자주 바꾸는 것이다(웃음). 나는 지속적인 광고 효과에 대해 믿고 있다. 두 번째로는 기억이 안 나는 광고보다는 욕먹는 광고가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보 담당자들한테, (비도덕적이어서는 안된다) 이슈화할 수 있게 밀어붙이는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실제 우리는 광고의 상당 부분을 매체 광고로 진행한다. 대부분 수입 브랜드를 했기 때문에 본사 광고 필름을 받아서 집행하는 편이다. 자체 주얼리 브랜드인 ‘스톤헨지’를 론칭하면서부터는 오프라인 매체에서 온라인 매체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PPL로 큰 효과를 본 브랜드는 무엇인가?

‘로즈몽(Rosemont)’이라는 브랜드다. 2012년에 방영한 드라마 KBS2 <넝쿨째 굴러 온 당신>에서 김남주 씨가 착용했던 시계로 유명하다. 우리가 이 브랜드 제품을 수입할 때만해도 한국에서 아는 사람의 거의 없었던 브랜드였다. 드라마 방영 이후 이 시계가 팔리기 시작하는 데 그 속도가 놀라울 정도였다. PPL 효과를 제대로 실감했던 제품이었다.

국내에서 명품 시계 브랜드 마케팅은 어떤 형식으로 이뤄지는가?
명품 브랜드는 광고 가이드라인이 명확하다. 온라인보다는 신문과 잡지 중심으로 진행한다. 명품 시계 브랜드에서만 하는 것이 있다면 VVIP 마케팅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퍼스널 서비스를 하는데, 쇼파드 같은 브랜드는 1년에 한 번 정도 약 300억 원어치의 물건을 가져와 고객들이 퍼스널 쇼핑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가져오는 물량 중에서는 최소 5~15억 원 정도의 매출이 일어난다. 또한, 쇼파드는 칸 영화제 메인 스폰서기 때문에 VVIP들과 세일즈팀, 브랜드 매니저들이 함께 직접 칸 영화제에 가기도 한다.

현재 한국 시장의 트렌드는 어떤가?
25년 전 이 사업을 시작할 때는 한국 시장에 패션 시계가 알려질 즈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패션 시계의 정의는 아무리 고가라고 해도, 모 브랜드가 패션이라면 패션 시계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샤넬에서 시계가 나오면 패션 시계다. 다만, 패션 시계의 하이엔드일 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스와치는 모 브랜드가 패션이 아니므로 정통 시계(트래디셔널 시계)라고 할 수 있다. 1989년부터 2008년도까지 한국은 패션 시계 중흥기였다. 2009년 이후부터는 패션 시계 성장률은 둔화되고, 정통 시계 성장률이 상승하고 있다.

세계 시계 시장은 해외 브랜드가 지배하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림FMG가 최근 자체 시계 브랜드 ‘아르키메데스’를 론칭했다. 왜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나.
글로벌 시계회사와 경쟁하려면 자체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980년대 시계 산업을 이끌었던 한국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높이자는 것도 있다. 4년 전부터 자체 브랜드를 준비했다. 200만 개가 넘는 시계를 팔면서, 많은 시계를 봤기 때문에 남의 시계를 잘 골랐던 눈으로 우리가 만든다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2년 전부터 전문인력과 함께 브랜드 개발부터 디자인, 제조까지 모두 우리가 했다.

아르키메데스의 세계 시장 진출을 기대해도 좋은 것인가?
‘아르키메데스’라는 브랜드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출시하려는 브랜드가 몇 개 더 있다. 그것 중 하나가 '독파이트(Dogfight)'다. 전투기의 ‘공중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표권을 전 세계 50개국에 등록했다. ‘아르키메데스’는 요즘 트렌드에 맞춰서 스포츠형 시계부터 클래식 형 시계까지 모두 갖춘 브랜드라면, ‘독파이트’는 파일럿과 관련한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브랜드다 2016년 4월에 론칭할 예정이다. 그보다 앞서 내년 초에는 홍대 근처에 편집숍을 연다. 이 숍에서는 다섯 개 브랜드를 동시에 선보일 예정이다. 우림FMG가 패션 마케팅 그룹으로 나가는 초석을 마련하는 셈이다.

이제 우림 FMG가 그리는 미래를 정리해 볼 때가 됐다. 시계, 주얼리, 영화, 레스토랑을 모두 포괄하는 최고의 패션 마케팅 그룹을 넘어서는 어떤 미래를 생각하는가?
첫 번째는, 올해 7만 개의 시계를 자체적으로 디자인에서 생산까지 한다. 2015년에는 최소 20만 개가 넘을 것으로 본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우리가 세계적인 라이선스 회사인 파슬(Fossil)과 경합을 벌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5년 안에는 시계 제조를 위한 케이스와 밴드를 만드는 공장 건립을 준비 중에 있다. 자체 생산이 20만 개 가능하면 공장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이 공장을 짓게 되면, 한국 시계 산업의 부활을 알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계획은 시계를 수입해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한국 시장에 대한 빚을 갚고 싶은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케터와 젊은이에게 그들의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 한마디 부탁한다.
마케팅이라는 것은 마케팅하고자 하는 제품의 팩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제품의 본질과 시장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마케팅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테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이는 마케터를 비롯해 모든 젊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이 남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으면 난 그 사람이 노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남이 잘하는 것을 나와 다르다고 여기는데, 우리 역시 큰 회사에도 많은 것을 배우지만, 작은 회사에도 많이 배운다. 다른 이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 큰 공부다. 그게 진화다. 

Posted by KH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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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계사러 갈 남ㅈㅏ

    진열품 시계라도 있으면 하나 살라고 하다가 검색해봤는데..이 기사를 접했음

    2018.12.22 07:00 [ ADDR : EDIT/ DEL : REPLY ]

kh's IM Leader Interview2015. 3. 13. 16:12

을밀대, 진심을 우려내다 - 김영길 을밀대 사장

지금까지 IM LEADERS에서 만난 인물들은 마케팅이나, 광고 업계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인터뷰이는 다르다. 서울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한 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줄 서서 기다리게 한다는 냉면집 ‘을밀대’의 김영길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뜬금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40년 전통의 냉면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국내 굴지의 광고 회사에서 크리에이터로 활약했던 사람이라면, 구미가 당길 것이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서울에는 평양냉면 하면 딱 떠오르는 유명한 집이 몇 곳 있다. ‘을밀대’ 역시 그런 집이다.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을밀대는 차 한 대 정도 지나가는 골목길에 있다. ‘을밀대’ 간판이 없다면 식당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간판이 없다 하더라도 점심시간만큼은 이곳을 못 찾을 일이 없다. ‘을밀대’는 1년 내내 냉면을 먹으려는 손님들이 줄 서는 곳이니까.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였었는데, 한 명은 인터뷰어로, 다른 한 명은 인터뷰이로 만나니까 반가우면서도 신기하다. 그것도 인터뷰이는 냉면집 사장이 됐으니까. 광고인이 가업을 이어받아 냉면집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재밌으면서도 놀라운데, 김영길 사장이 을밀대 경영을 맡은 지도 벌써 17년이 흘렀다. 일단, 을밀대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을밀대가 지금 이곳에 들어선 것이 1976년이었으니까, 벌써 약 40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함께 운영했다. 그러다가 1998년에 내가 인수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인수보다는 물려받았다는 것이 맞겠다(웃음).

김 사장의 아버지께서는 이전에 냉면과 관련된 일을 했던 적이 있었나? 혹시 평양 출신인가?
어린 시절에 냉면집에서 일을 했었다고 들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아르바이트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것 외에는 특별한 인연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는 평양 출신이 아니고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났고, 해방 이전에 대구로 내려왔다.

‘을밀대’는 평양에 있는 누각 이름에서 따왔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요새 젊은이들에게는 아마도 냉면집 이름으로 더 익숙할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을밀대는 우리 집이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을밀대는 1년 내내 줄을 서는 식당으로도 유명하다. 그걸 보면서, 지금까지 을밀대를 있게 한 손님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우래옥’이 연세가 많은 평안도 출신의 1세대들이 주를 이뤘다면, 우리 집은 그 세대보다는 젊은 층이 찾아왔다.
그 씨앗이 된 것은 문인들이다. 가게를 열었던 1970~80년대 이곳(마포) 근처에 출판사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문인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그룹이 형성됐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그룹은 근처에 있는 서강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교수들이었다. 또 여기에, 국내 대학에 교환 교수로 왔던 일본 교수들이 더해지면서 을밀대의 초기 손님층이 형성됐다.
그 뒤로 여의도, 광화문에 근무하던 언론 종사자들이 오면서 우리 냉면에 대한 소문이 빨리 퍼져나가 지금의 을밀대가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몇 해 전에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단골집이라는 기사도 났었는데.
구 회장님은 오래전부터 우리 집 단골이었다. 소문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은 아니었는데, 우리 집에 에어컨 선물을 해줬다는 것이 기사화되면서 알려졌다. 지금도 사장단과 종종 들른다.

하루에 오는 손님이 얼마나 되는가?
평균적으로 따지면, 4, 500명 정도다. 아무래도 우리 집은 여름에 장사가 더 잘되니까, 계절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하다. 여름에는 천 명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을밀대를 유명하게 한 것 중 하나가 줄이다. 줄이 길다는 것은 맛집의 상징이기도 한데, 이렇게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궁금하다.
한 2002년 정도 즈음이었다. 월드컵 이후부터는 더 많이 늘기 시작했고. 2010년 월드컵 때 김장훈과 싸이가 함께 찍은 뮤직비디오에서도 우리집이 나온다.

월드컵과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아니다. 인연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와서 찍고 갔다. 얼마 전에도 영화 촬영을 하고 갔다. 한효주가 나오는 영화인 것 같던데, 엑스트라만 50명 정도가 왔었다. 밤에 줄을 서 있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놀라더라(웃음).

“이렇게 평양냉면은 첫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맛의 기준을 흩뜨리는 독특한 맛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는 평생 먹고 싶은 소울 푸드이지만, 누구에게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음식인 것이다” - 『냉면열전(인물과 사상사)』 중 -

많은 냉면 중에서 평양냉면은 특별하다. 특별한 맛이 있지만, 맛에 대해 정확히 표현하기가 모호하다. 심심하다고 하기에도, 싱겁다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밍밍하다고 말하기도 뭣하다. 그러므로 손님 입장에서는 길들여져야 하는 음식이고, 만드는 입장에서는 손님을 길들여야 하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 냉면 붐이 인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전에도 냉면은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했지만. 그중에서도 평양냉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이때 즈음이 아닐까 싶다.
맞다. 당시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다녀오고 이러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평양냉면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재밌는 것은 우리 집이 1998년도에 을밀대라는 이름을 특허로 냈었다. 그때는 갱신기간이 있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2005년), 우연히 생각나서 문의를 해보니 해지가 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재신청하려고 하니까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을밀대가 고유지명이어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 신청했을 때는 그쪽에서도 ‘을밀대’ 자체를 모르니까 그냥 해줬던 것이다. 그 뒤에는 냉면 붐이 일고 유명해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고(웃음).

계속 냉면집 사장님으로 김영길 사장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대홍기획에서 나와 함께 일했던 광고인이었다. 경력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광고회사 생활이 재밌지 않았나?
대홍기획 이전까지 합치면 약 13년 정도 광고 업계에 몸을 담았었다. 물론, 광고회사 생활은 재밌었다.

그러다가 1998년 돌연, 냉면집 사장으로 변신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선친이 “네가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게 이유다. 이전에도, 아버지가 계속 이야기는 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승합차를 구입한 다음, 여행 다닌다고 하더니 가게를 두고 나가셨다. 두세 달 가게를 돌보지 않다 보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의 바람대로 가업을 잇게 됐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IMF가 오면서 구조조정이 필요했고, 우리 부서에서는 세 명 정도 인원을 감축할 예정이었다. 당시에 김영길 사장이 “나는 가업도 이어야 하니, 나를 그 리스트에 넣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맞다. 나도 기억이 난다. 뭐, 결국 나와서 훨씬 잘 됐다(웃음).

김영길 사장이 경영하면서부터 을밀대가 커졌다. 물려받고 나서 세웠던 경영방침이 있었나? 아니면 이왕 맡았으니까 규모를 늘릴 목표가 있었던 것인가?
음…. 그런 것은 없다. 누군가에게 알려줄 만한 특별한 경영 방침이나, 마케팅 비법이 내게는 없다. 생각해보면, 그냥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면 되는 것 같다.
나란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한 욕심이 없다. 냉정하게 분석하면 나는 경영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 디자인을 열심히 하거나,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잘하는 것에 더 맞는 사람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이렇게 냉면집을 운영하는 것이 힘들다. 여러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맺어야 하고, 내가 시켜야 하고, 직접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체질에 맞지 않은 일들 말이다(웃음). 그래도 어쨌든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과 직원들에게 나쁜 짓을 하면 안 되니까, 착한 마음을 갖고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단골 입장에서 보면, 을밀대는 한결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굉장히 많이 알려진 집임에도 뭔가 인공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그렇다. 사실 요즘 잘나간다는 식당을 보면 짜여진 공식 같은 것이 있지 않다.
글쎄…. 나는 친절도 극친절을 싫어한다. 보여주기 위한 친절 말이다. 우리 집은 어떻게 보면 무덤덤하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 집 냉면 맛처럼. 직원들에게도 인위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말들을 하면 못하게 한다. 우리 집을 오랜 시간 찾은 손님들도 그런 것(인위적인 친절)에 대해 어색해 한다.
나는 나이가 비슷한 손님이 오면 친구처럼, 나이가 많으면 형처럼 대하고, 훨씬 연세가 많은 분이 오면 부모한테 하는 것처럼 한다.

“사계절의 별미 그 이름 평양냉면 / 동치미 국물와 고기육수가 어울려 / 깊고도 오묘한, 심심하고도 꽉찬 그 맛을 못 잊어 원정을 다닌다” - 큐비스토의 ‘평양냉면’ 중 -

평양냉면을 처음 맛본 사람이 맛있다고 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평양냉면의 진가는 내가 먹은 그릇 수가 늘어날수록 나타난다. 맛이 없던 평양냉면은 어느 순간 그 맛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를 만난다.



좌석 수를 기준으로 보면, 1998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을 것 같은데.
두 배 이상이다. 매출은 그 이상이고. 1999년도 매출이 약 7,000만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약 35억 원 정도다.
말 그대로 매출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지금은 정체기가 오긴 했다. 세무사가 그러더라, “이 정도 매출은 중소기업 2, 300억 원 매출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가게 규모도 늘고, 매출도 늘고, 종업원도 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맛도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게 사실인가. 맛으로 승부하는 음식점에서 맛의 변화는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그 이야기가 들린 것은 2003년쯤으로 알고 있다. 맛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가 운영할 때는 육수를 가마솥 같은 솥에서 만들었다. 2002년 이후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손님이 늘어나니까 기존 솥으로 그 많은 손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좀 더 많은 양의 육수를 끓일 수 있는 솥을 디자인, 개발했다. 처음에 사용했던 솥 보다는 약 네 배 정도 큰 솥이었는데, 육수 비율을 맞춰서 했지만, 똑같은 맛이 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해서도 초기에 냈던 맛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 한 번 변했다. 당시에는 손님들에게도 맛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했었다.

을밀대 냉면은 처음 먹었을 때 ‘무슨 맛이야?’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러다가 익숙해지면 다른 냉면은 먹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김영길 사장이 생각하는 을밀대 냉면의 특징은 무엇인가?
글쎄. 다른 음식으로 표현한다면 물이나 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밥이나 물은 특별한 맛이 없음에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지 않는가. 평양냉면은 물과 밥에 상당히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맛이 없게 만드는 것이 힘들다. 또한, 담백한 맛이다 보니, 손님들 또한 미묘하게 맛이 변해도 금방 알아챈다. 그래서 힘들다(웃음). 만일, 다시 음식 장사를 한다면 평양냉면이 아닌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거의 발가벗고 음식을 내놓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맛이란 것이 처음에는 길들이기 힘들지만, 길 한 번 들이면 이렇게 깨끗하고 오히려 맛없는 것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사장이 광고회사 출신임에도 을밀대는 그 어떤 마케팅 활동도 하지 않는다. 블로그, 웹사이트, SNS도 안 한다.
제품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을밀대라면 우리가 만드는 음식이다. 광고나 마케팅은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자연 그대로 있는 것이 제일 좋은 마케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절 하지 않는다. 평양냉면처럼 담백한 맛으로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고 보여주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예전에 자꾸 TV에 나가다 보니까, 세무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웃음).

광고 업계를 떠나기는 했지만, 을밀대를 위한 광고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긴 했다. 지금은 정신도 없고 해서 생각만 했지만, 조금 안정되면 광고라기보다는 을밀대의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영상집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다.

마지막으로 성공하는 식당 브랜드가 되기 위한 조건을 정리해 보자. 음식, 주인의 열정, 종업원의 친절, 위생, 인테리어, 홍보, 식당의 위치…. 뭐가 정말 중요한 것일까.
아무래도 음식이 제일 중요하다. 다음에 주인하고 종업원의 열정 등이 따라오고. 위생은 기본이고, 인테리어나 홍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식당을 시작하려는 후배가 있다면 무어라 조언해 줄 것인가?
평양냉면은 그렇고, 하려면 비빔냉면을 하라고 하고 싶다. 평양냉면은 단기적으로 승부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냉면집이 하고 싶다면 비빔냉면을 추천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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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4. 11. 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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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4. 11. 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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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4. 11. 2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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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4. 8. 28. 15:43

 

IM Leader Interview 1주년

지난 해 8월부터 시작한 IM Leader Interview 1년이 되었다. 이 인터뷰 코너를 기획하고 시작하게 된 동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만나서 묻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 중에 뉴스가 있는 분들, 그런데 일반 미디어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나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째 동기는 프린트 미디어, 특히 잡지 매체에 관한 나의 관심이다.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잡지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내가 인터뷰 기획하는 내용을 웹스미디어류호현 대표에게 제안을 했고 류호현 대표가 흔쾌히 동의해 주어서 웹스 미디어의 광고 마케팅 전문지인 월간 IM’‘IM Leaders’라는 인터뷰 코너를 진행하게 되었다.

첫 인터뷰 대상자로 모신 분은 프로스펙스 브랜드 부활의 주인공인 ‘LS 네트웍스박재범 사장이었다. 광고대행사 두 곳의 사장을 역임하고 (BBDO Korea, 이노션) ‘LS 네트웍스로 자리를 옮겨서 워킹화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시장에 큰 반응을 만들어서 프로스펙스 브랜드를 되살려놓은 주인공이었다. 이 인터뷰 내용은 지난 해 월간 IM’ 9월호에 게재되었다.


(박재범 사장과)

두 번째 인터뷰 대상은 우리나라 최대의 온라인 광고 미디어 랩사인 나스 미디어정기호 사장이었다. 마침 나스 미디어의 코스닥 상장과 함께 공모주 청약에서 대단한 인기를 보인 화제의 기업이었다. 정기호 사장은 이미 90년대 후반에 이 회사를 시작하면서 이런 미래를 예측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 온라인 광고의 주역으로서 그가 보는 온라인 광고의 오늘과 미래는 어떤 것인지 등 많은 것을 묻고 들으며 인사이트를 얻는 시간이었다.


(나스미디어 정기호 사장)

세 번째 인터뷰 대상은 ‘CU 미디어박종우 사장이었다. 잘 나가는 외국계 광고회사 사장에서 (JWT Korea) 케이블 방송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배경, 미디어 인더스트리의 내면, 광고계와 미디어 업계의 관계 변화, 케이블 업계의 큰 변화의 흐름 등을 듣는 시간 이었다.


(웹스 미디어 이예근 편집장, 이정윤 기자, 박종우 사장, 한기훈 대표)

네 번째 인터뷰 대상은 글로벌 리서치 회사인 GfK Korea’ 장경은 사장이었다. 이전에 글로벌 리서치 회사인 시노베이트 코리아의 대표로 국내에서 큰 성장과 업적을 만든 주인공이었는데 시노베이트가 다른 글로벌 리서치 회사로 팔리면서 독일계 글로벌 리서치 회사인 ‘GfK Korea’로 옮겨서 역시 빠른 시간에 시장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회사로 만들었다. 마케팅에서 리서치의 중요성, 한국 시장의 특징, 리서치 비즈니스의 본질과 전망, 인재관, 비전 등을 듣는 귀한 시간이었다.


(GfK Korea 장경은 사장)

다섯 번째 인터뷰 대상은 중국 상해의 동방CJ홈쇼핑김흥수 사장이었다. 첫 해외기업 인터뷰였다. 홈쇼핑은 한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분야이다. 전세계로 한국의 홈쇼핑 비즈니스 모델이 전파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최대의 홈쇼핑 회사를 만들고 가꾼 주인공인 김흥수 사장을 만나서 그 놀라운 스토리를 듣는 시간이었다.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취할 입지가 어떤 것일 지를 생각하게 되고 급변하는 중국시장과 그 이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동방CJ홈쇼핑 김흥수 사장과)


여섯 번째 인터뷰 대상은 다츠 커뮤니케이션서 건 대표였다. 다츠를 설립해서 18년간 우리나라 온라인 대행사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는 서 건 대표를 통해서 일찌감치 온라인 분야로 뛰어든 이야기, 그리고 우리나라 온라인 광고 업계의 이야기, 시장의 변화 등을 듣는 시간이었다.


(다츠 커뮤니케이션 서 건 대표)

일곱 번째 인터뷰 대상은 우리나라 최정상급 아웃도어 업체인 동진레저의 김 정 부사장이었다. 동진레저는 블랙야크 브랜드의 모기업이자 마운티아, 캐리모어 브랜드로 잘 알려진 아웃도어 업체이다. 불과 40년 전, 동대문의 작은 가게였던 회사가 이제 1조원 매출의 엄청난 기업이 된 이야기, 세계적으로도 가장 앞서가며 독특한 우리나라의 아웃도어 업계 이야기, 독특한 마케팅, 광고 이야기 등 시간 가는 지 모르는 두 시간의 인터뷰였다.


동진레저 김 정 부사장)

여덟 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SBS TV의 최영범 보도본부장이었다. TV 방송사들에게 있어서 뉴스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고 각 방송사 마다 뉴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다. 방송사 뉴스의 마케팅이 궁금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과 전략으로 이 마케팅 전쟁에 임하고 있는지, 그 전쟁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SBS TV 최영범 보도본부장)

아홉 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글로벌 영화사인 20세기 폭스 재팬의 이주성 대표였다. 광고대행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20세기 폭스 코리아에서 대표까지 지내고 다시 일본 대표로 일하고 있는 이주성 대표에게서 영화 산업, 영화 마케팅 이야기를 듣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20세기폭스 재팬 이주성 대표)

열 번째는 독일계 광고회사인 서비스 플랜 코리아에드먼드 세퍼 대표였다. 첫 외국인 인터뷰 대상이었다. 이 회사가 나의 주목을 끈 이유는 우선 그 전 회사인 리퀴드 캠페인에서 비롯된다. 이 특이한 이름의 외국계 광고회사가 이태원에 자리잡고서 BMW 광고를 대행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회사가 독일의 광고회사인 서비스플랜에 매각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서비스 플랜은 알고 보니 독일 내에서는 절대 강자였다. 그리고 서비스 플랜 코리아가 한남동으로 이사 가고, 이케아의 한국 광고 대행이 결정되었다는 등의 소식을 접하면서 인터뷰를 추진하게 되었다. 한남동의 멋진 새 오피스에서의 인터뷰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다.


(서비스플랜코리아 세퍼 대표와)


열 한 번째는 우림FMG’ 김윤호 사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수입 시계를 가장 많이 판 사나이, 최고가의 수입시계를 파는 사나이. 그리고 주얼리 브랜드 스톤 헨지를 만들었고 금년 봄에는 시계 브랜드 아르키메데스를 런칭한 사나이다. 김윤호 사장은 또한 영화 투자자이기도 하다. 김윤호 사장과의 대화에서 시계 산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림FMG 김윤호 사장)

열 두 번째의 주인공은 여주인공이다. 브렉퍼스트 필름의 박미라 대표였다. 요즘 마케팅의 키워드 중의 하나는 영상이다. 그러던 차에 브렉퍼스트필름이 중국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이 회사와 박미라 대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 시즌을 마무리 하고 이제 새로운 한 바퀴를 또 굴리고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참 많다. 멋진 리더들이 많다. 대한민국의 마케팅, 광고 분야는 충분한 능력과 열정과 멋이 있다. 우선 지난 한해 인터뷰를 즐겨 준 열 두 분께 감사하며 특히 항상 좋은 사진 작품 남겨 준 이재은 작가에게 감사한다.


(포토그래퍼 이재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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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4. 8. 2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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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4. 6. 1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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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4. 5. 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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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2014. 4. 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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