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s IM Leader Interview2015. 10. 15. 17:21

PEOPLE. 광고,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 멀리 크루즈 하이메 'DM9 하이메 사이푸' 회장

광고제의 세세한 이면을 알기 위해서는 행사 깊숙이 관여한 심사위원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이에 2015 부산국제광고제에서 모바일, 인터랙티브 등 5개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멀리 크루즈 하이메 ‘DM9 하이메 사이푸’ 회장을 만났다.
‘광고란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그를 보며,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광고제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가 광고와 인간의 본질 사이에 숨은 진짜배기 ‘사람 이야기’를 듣고 왔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월간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AD STARS REPORT/PEOPLE
AD LEADERS




광고,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 
멀리 크루즈 하이메 ‘DM9 하이메 사이푸’ 회장


사람들은 ‘모바일’, ‘디지털’이라고 하면 굉장한 ‘하이테크(High-Tech)’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반대인 ‘로우테크(Low-Tech)’로도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산에 온 걸 환영한다. 멀리 크루즈 하이메 회장을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DM9 하이메 사이푸’라는 디지털 광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체어맘(Chairmom)’ 멀리 크루즈 하이메라고 한다.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알렉스 사이푸’라는 파트너와 내가 함께 회사를 세웠다. 전 직원이 서른세 명인 작은 회사지만, 빠르고 내실 있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다.


멀리 크루즈 회장과 DM9 하이메 사이푸는 짧은 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그 비결을 궁금해하는 이가 많은데?
시장이 디지털을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작은 광고 회사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글로벌 회사들의 프로젝트도 따내기 쉬워졌고. 확실히 4대 매체 광고가 주도하던 시대에 비해 광고 회사, 그리고 광고인들의 성장이 쉬운 환경이다.


부산국제광고제와 인연이 깊은 거로 안다.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나?
2013년 부산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수상작인 ‘스마트 텍스트북(Smart TXTBKS)’ 프로젝트는 부산국제광고제를 비롯한 세계 무대에 우리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고, 시간이 흐르며 이번 부산국제광고제에 심사위원장으로도 참여하게 됐다.
당시 ‘스마트 텍스트북’ 프로젝트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계 광고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면?
필리핀 1위 통신사인 ‘스마트(Smart)’의 프로젝트였다. 처음 그들은 우리에게 필리핀의 학생들을 타깃으로 하는 인쇄 광고를 의뢰했다. 이에 우리는 필리핀 학생들이 가진 ‘문제’를 찾고자 했다. 당시 필리핀 학생들로부터 발견한 문제는 그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평균 5킬로미터를 걸어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한참 커야 할 나이의 학생들이 이렇게 긴 거리를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걷는다는 건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난 게 사람들이 이제 많이 쓰지 않는 피처폰의 심(SIM) 카드에 교과서 내용을 넣어보자는 것이었다. 심 카드에 교과서 내용을 입력하고 피처폰 화면을 통해 아이들이 교과서를 보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었다. 당시 텍스트북 캠페인은 일반적인 인쇄 광고보다 스마트의 브랜드 호감도를 크게 높였고, 2013년 칸 국제광고제와 부산국제광고제 그랑프리를 받는 데 성공했다.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캠페인이다. DM9 하이메 사이푸의 캠페인을 보면 디지털 캠페인임에도 대단한 기술이나 어려운 과학적 접근이 아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비틀어 크리에이티브로 활용하는 것 같다.
그렇다. 사람들은 ‘모바일’, ‘디지털’이라고 하면 굉장한 ‘하이테크(High-Tech)’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반대인 ‘로우테크(Low-Tech)’로도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마트 텍스트북 캠페인은 그러한 사실을 현실화한 캠페인이었고.


또 다른 사례가 있을까?
있다. 필리핀의 여성 단체인 ‘가브리엘라(Gabriela)’와 ‘Bury the Past’라는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소위 ‘섹스 테이프’라 불리는 동영상을 찾고자 ‘섹스 스캔들 비디오(Sex scandal video)’라는 검색어를 가장 많이 검색한다(한 달 약 30만 건). 그 때문에 의도치 않게 동영상에 등장한 여성들은 평생 수치심을 안고 살아간다. 당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하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색엔진에서 ‘섹스 스캔들 비디오’를 검색할 때 관련된 영상이 노출되지 않도록 유도한 캠페인이 ‘Bury the Past’다. 방법은 간단했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상대로, 페이스북 내 자신의 프로필 이름 뒤에 ‘스캔들(Scandal)’이라는 단어를 덧붙이게 했다. 이렇게 하면 구글이나 야후와 같은 검색엔진에서 ‘섹스 스캔들’을 검색했을 때 여성들의 동영상이 아닌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SNS 활동이 상위 페이지에 노출되게 된다. 이를 통해 당시 구글, 야후, 페이스북에서 ‘스캔들 비디오’ 관련 검색 결과에서 해당 동영상들이 30페이지 이상 뒤로 밀려났다. 역시 로우테크 안에서 이뤄낸 결과물이다.


아이디어가 대단하다. 그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따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관찰’이다. 공항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릴 때도 사람들이 무엇을 입었나, 무슨 이야기를 하나 다 관찰한다. 광고인은 일상이 공부여야 하고, 모든 곳이 도서관이어야 한다. 인간, 그리고 인간의 일상에 대해 공부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물론 타고나는 것도 있다. 하지만 타고난 사람도 이러한 훈련이나 사고 과정 없이는 최고가 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광고 업계 발전을 위해 광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일도 중요한 것 같다. 부산국제광고제 역시 그런 교육 시스템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렇다. ‘마이애미 스쿨’과 같은 광고 교육을 위한 교육 기관들이 세계 곳곳에 꽤 있다. 하지만 그런 교육 기관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절대적으로 실무 스킬이나 촬영 기법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 국한돼 있다. 광고란 결국 사람에 대한 공부이기에 꼭 그런 교육 기관을 찾기보다는 자신만의 공부법을 연구해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아, 물론 교육 기관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웃음).


광고라는 산업 영역 자체가 그런 것 같다. 멀리 크루즈 회장이 생각하는 ‘최고의 광고’란 어떤 광고인가?
사람의 마음을 터치하고 움직이는 광고다. 앞서 교육 기관을 통해서는 모든 걸 배울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은 결코 누군가가 가르쳐서 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만들고 싶어하는 광고도 그런 광고다.


그런 ‘최고의 광고’가 부산국제광고제에도 있었나?
눈에 띄는 몇몇 작품이 있었다. 이번에 그랑프리를 받은 ‘#Likeagirl’ 캠페인이 특히 돋보였다. ‘2015 칸 국제광고제’에서도 PR 부문 그랑프리를 차지한 거로 알고 있다. 여자아이들에 대한 소비자 인식의 전환을 매우 기발하게 이뤄낸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감성적으로 터치한 작품이다.


혹시 한국의 광고 사례 중에 눈여겨봤던 것은 없었나?
물론 있다. 노스페이스의 ‘Never Stop Exploring’ 캠페인과 인크루트의 ‘취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캠페인이다. 두 캠페인 모두 같은 광고 회사의 작품인 것으로 알고 있다. 노스페이스 캠페인은 ‘체험’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발한 팝업스토어를 디자인했고, 인크루트 캠페인은 자사 메인 타깃인 취업준비생들의 가족애를 자극하는 상황을 통해 감동을 만들어냈다. 역시 소비자들의 마음을 터치하고 움직인 사례다. 특별히 한국 광고의 특징이 잘 드러난 캠페인 같다.


한국 광고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세계 어느 곳에 가도 통하는 ‘팝 컬쳐(Pop culture)’를 많이 갖고 있다. 앞서 언급한 노스페이스나 인크루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세계인 누가 봐도 감동하고 공감할만한 사례가 많다.


세계 시장은 어떤가? 세계 광고는 어떤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는가?
과거에는 크리에이티브 대행사와 미디어 대행사가 분리되는 것이 추세였는데, 이젠 크리에이티브와 미디어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없고 분리할 수도 없게 됐다. 미디어 자체가 크리에이티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미디어 계획 없이 크리에이티브 계획을 짜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철저히 아이디어 중심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부산국제광고제에서도 그런 부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말 나온 김에, 부산국제광고제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광고제에서 개선돼야 할 부분이나 부족했던 부분은 없었나?
우선 좋았던 점부터 말하겠다(웃음). 장-레미 폰 맛 ‘융폰맛’ 창립자와 매트 이스트우드 JWT 월드와이드 CCO를 심사위원장으로 섭외한 것은 정말 좋았다고 본다. 국제광고제에서 그 신뢰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심사위원들의 인지도와 영향력일 텐데, 그들은 광고계에서 ‘거장’이라 불릴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녔기에 광고제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또 하나는 무료 출품 원칙이다. 중소 비즈니스나 주니어들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다는 점에서 매우 좋았다. 다만, 다른 광고제나 어워드와의 연결고리를 조금 더 강화하면 좋을 것 같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행사들이 대규모 행사와 힘을 합해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한 사례가 꽤 있다. 칸 국제광고제나 뉴욕 페스티벌과 같은 대규모 광고제와의 협업 사례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지역적인 색깔보다 국제적인 색깔을 조금 더 강조할 방법을 찾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세계인이 찾아오는 광고제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심사위원장 입장에서, 광고제에 출품한 참가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나?
열심히 공들여 만든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분명하고 명백한 메시지가 중요하다. 아이디어의 핵심이 무엇인지 양식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특히 외국인 심사위원이 많으므로 케이스 비디오(출품작을 설명하는 영상물)를 꼭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 좋다.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비슷한 캠페인을 수도 없이 돌려본다. 그 안에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핵심을 잘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멀리 크루즈 회장은 비교적 최근까지 광고제에 출품했기에, 참가자들의 기분을 더 잘 알 것 같다. 실제 상을 타면 기분이 어떤가?
상은 날 행복하게 만든다. 나를 더 열심히 뛰게 하는 자극제다. 또한, 같은 업계의 경쟁사를 이기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웃음). 에이전시 입장에서 상을 타면 광고주에게 더 많은 프로젝트 요청이 온다. 아주 강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멀리 크루즈 회장을 보면 광고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그 열정이 수많은 상과 명예를 가져다준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조금 철학적인 질문 하나 해보겠다. 멀리 크루즈 회장에게 ‘광고’란 무엇인가?
앞서 아이디어 발상법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말한 이유가 광고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기술, 세상은 바뀌지만,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역사와 시간 속에서 겉모습만을 조금씩 바꿔갈 뿐이다. 사람과 그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이야기는 절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모바일이 세상을 바꿔 놓았지만, 결국 그 모바일을 통해 광고를 하는 이유는 TV, 신문, 잡지, 라디오와 같지 않은가? 그런 맥락에서 광고를 이해해야 ‘사람의 이야기’인 광고를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광고에 대한 철학을 듣다 보니 하나 더 궁금한 게 생겼다. 정말 마지막으로, 멀리 크루즈 회장의 꿈은 무엇인가?
묘비명에 ‘세상에 좋은 일을 했다’는 말이 적히는 것이다. 내가 만든 광고, 캠페인을 통해 좋은 영향력을 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는, 세상이 가진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에이전시가 되고 싶다. 그 범위가 브랜드든, 정부든, 사회든 상관 없이 말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관찰’이다. 공항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릴 때도 사람들이 무엇을 입었나, 무슨 이야기를 하나 다 관찰한다. 광고인은 일상이 공부여야 하고, 모든 곳이 도서관이어야 한다.

기술, 세상은 바뀌지만,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역사와 시간 속에서 겉모습만을 조금씩 바꿔갈 뿐이다. 사람과 그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이야기는 절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모바일이 세상을 바꿔 놓았지만, 결국 그 모바일을 통해 광고를 하는 이유는 TV, 신문, 잡지, 라디오와 같지 않은가?

Posted by KH 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

kh's IM Leader Interview2015. 9. 26. 15:00


희생과 봉사라는 이름으로, 강요식 대한미식축구협회 회장

모든 스포츠엔 그만의 정신이 존재한다. 서로를 향해 돌진하고 격돌하며 관객들에게 한 편의 드라마를 선사하는 미식축구 또한 그렇다.
각자가 맡은 역할과 책임에 대한 ‘희생’, ‘봉사’가 미식축구의 기본 정신.
강요식 대한미식축구협회 회장은 이처럼 숭고한 정신을 기반으로 ‘미식축구’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한국에 전파하고자 선수들과 함께 달리고 있다.
그가 흘리는 땀에는 ‘희생’과 ‘봉사’라는 미식축구의 정신이 온전히 녹아있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월간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강요식 대한미식축구협회 회장의 이력을 보면 ‘과연 한 사람의 이력이 맞나’ 싶다. 군인이자 정치인이자 문인, 그리고 스포츠 협회 회장까지. 간단히 소개를 부탁해도 될까?
내 삶의 키워드를 꼽자면 재미있게도 미식축구의 정신인 ‘희생’과 ‘봉사’를 꼽을 수 있다. 희생과 봉사만 하며 살아왔다는 말이 아니라 희생하고 봉사하기 위해 살고 있다는 말이다(웃음). 나라에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1981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93년부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평화유지군’으로도 참여했다(아프리카 소말리아 지역). 의무복무 10년을 마치고 제대하며 사회에 봉사하자는 생각으로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후 국방부 장관(김장수 전 장관) 정책보좌관 활동을 거쳤고, 현재는 한국동서발전 감사위원, 미식축구협회 회장 일을 병행하고 있다.


답변이 짧지 않을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웃음). 군에 꽤 오랜 시간 복무했는데, 정치 활동이나 스포츠 협회장과 같은 다른 종류의 커리어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
내게 군이나 정치 활동, 스포츠 협회장은 큰 의미에서 같다. 커리어는 ‘출세’의 수단이 아니다. 군인이든, 정치인이든, 스포츠 협회장이든 본연의 의무는 ‘희생’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식축구의 정신인 희생과 봉사를 삶을 통해 실현하는 게 내 꿈이다. 지금 수행하고 있는 모든 직무 또한 그런 꿈을 안고 하고 있는 거다.


그럼 본격적으로 미식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미식축구는 어떤 운동인가?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지상 최고의 스포츠’다. 희생, 협력, 봉사, 개척정신에 근거해 전략과 통찰을 겨루는 스포츠인 동시에 럭비와 축구의 장점만을 결합했다. 희생과 봉사 정신을 키우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스포츠다.


지난 1월 24일 취임했다. 취임 목표가 있었을 것 같은데?
대한미식축구협회는 1946년 창립해 약 7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동호회적인 성격이 강한 탓인지,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서울, 대구, 부산, 경남에서만 현재 협회를 운영하고 있다. 서부 지역도 곧 협회 창립을 앞두고 있으나, 여러모로 홍보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취임 목표를 ‘조직 활성화’와 ‘홍보 강화’로 잡았다. 궁극적으로는 미식축구를 하나의 브랜드로서 사람들에게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목표다.


최근에는 미식축구 월드컵도 열렸다고 들었다.
그렇다. 지난 7월 9일부터 18일까지 미국 오하이오주 켄튼시에서 개최됐다. 국제미식축구연맹(IFAF)이 주관하는 월드컵으로, 4년에 한 번씩 열려 올해 5회째를 맞는 세계 대회다.


한국 국가대표팀도 참가했나?
물론이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 3회 대회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본선에 출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총 일곱 개 본선 진출국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1위는 미국, 2위 일본, 3위 멕시코, 4위 프랑스, 5위 호주, 7위는 브라질이다. 한국은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대망의 1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월드컵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뒷이야기가 화제다. 선수들이 사비를 들여 월드컵에 참가했다는데?
대한미식축구협회가 현재 대한체육회 가맹 단체가 아니기에 월드컵 참가를 위해 외부로부터 지원 받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에선 비인기 종목이기에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후원이 백 퍼센트 이뤄지지는 않아 나머지 비용을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직접 충당했다. 선수는 대학생, 직장인 등 각자 사회에서 다른 활동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에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투자한 학생도 있고, 휴가를 받지 못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월드컵에 참가한 직장인도 있다. 심지어 한 선수는 여동생 저금통을 털어 자금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눈물겨운 이야기지만, 이토록 열정적인 모습에 모두가 감동했다.


예산이 부족한 상태에서 월드컵에 참가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거다.
물론 쉽지 않았다. 하지만 관계자 모두가 좋아서 달려들고 있다. 그 때문인지 여섯 차례의 합숙 훈련, 평가전, 기자회견, 미 대사관과의 면담, 미국 현지와 교섭하는 과정 등 어떤 프로세스에서도 차질이 없었다. 비록 월드컵에서 승은 거두지 못했지만,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포함해 80여 명의 선수단이 미식축구의 본고장에 가서 큰 부상 없이 경기를 마친 것만으로도 기쁘다. 승패를 떠나서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다들 즐기는 게 결국 스포츠 아닌가 싶다.


하지만 부족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선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도 필요할 것 같다. 특별히 생각하는 마케팅 전략이 있나?
우선은 선수 개인과 자체 소셜미디어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속해서 콘텐츠 개발도 하고 있고, 훈련장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을 콘텐츠화한다. 최근에는 와디즈(크라우드 펀딩 커뮤니티)를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시행했다. 꾸준히 페이스북에서 활동을 벌인 게 꽤 성과가 있었던 거로 보인다. 당연한 얘기지만, 언론 홍보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또한, 스포츠가 한 지역 또는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광고비를 통해 예산을 확보하는 시스템이 필수다. 이 분야에서 가장 선진화된 미국의 미식축구는 슈퍼볼(미국 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 광고를 통해 ‘세상에서 제일 비싼 1초’를 팔지 않는가.


미국 슈퍼볼 광고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도 광고를 집행하고 있다. 강 회장이 생각하기에 어떤 브랜드가 미식축구와 잘 어울린다고 보나?
미식축구의 정신인 희생, 봉사, 도전 정신과 같은 심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가 좋지 않을까 싶다. 카테고리로 따지면 스포츠음료나 자동차, 맥주 등이 잘 어울릴 것 같다. 사실 미식축구 자체가 희생, 봉사와 같은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부각하기에 굉장히 좋은 스포츠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예정화 코치가 SNS와 각종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화제가 됐다. 이슈가 된 만큼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굉장히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미식축구’라는 스포츠를 브랜드화해 대중의 마음속에 긍정적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해선 화제를 몰고 다니는 스타가 필요하다. 예정화 코치가 화제 된 뒤로 미식축구 관련 SNS 채널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상당히 좋아졌다. 언론사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국가대표 코치’라는 타이틀이 그에게도 큰 도움이 됐으리라 본다. 서로에게 ‘윈-윈(win-win)’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정화 코치의 사례처럼 문화 콘텐츠와 엮어도 상당한 이슈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식축구를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등장한다면 어떨까?
앞서 언급했던 월드컵 당시 선수들의 스토리처럼 미식축구도 충분히 영화나 드라마 소재가 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결국,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건 사람의 이야기 아니겠나. 영화 <국가대표>가 스키점프라는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감동을 선사했듯이, 미식축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한 편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방송 프로그램도 좋다. 미식축구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국내 대회를 활성화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국내에도 대회가 있나?
물론 있다. 1980년대 말까지 지역별 또는 전국대회를 춘·추계와 동계로 나눠 챔피언전을 치러 왔고, 미식축구 보급이 확대되며 1995년부터 대학리그와 사회인 리그를 분리하게 됐다. 현재는 전국 36개 대학팀으로 구성된 대학리그 챔피언전인 ‘타이거볼’의 승자와 전국 21개 사회인 팀 챔피언전인 ‘서울슈퍼볼’의 승자가 맞붙는 최종 결승전인 ‘김치볼’이 있다. 올해 김치볼은 12월 6일 목동운동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국내 리그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꿈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초등학생을 위한 태그 풋볼①, 플래그볼② 등 약식 미식축구 경기를 활성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들이 성장해 고등학생이 되면 태클 태그 풋볼③로 전환할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 미식축구 아카데미를 활성화하는 등 꿈나무 육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세스를 개발 중이다.


① 태그 풋볼 태클 없이 수비수가 공격수를 손으로 터치만 하면 공격이 끝나는 방식의 약식 미식축구.
② 플래그 볼 상대의 깃발을 제거하면 종료되는 약식 미식축구.
③ 태클 태그 풋볼 태클을 허용하는 태그 풋볼.





강 회장의 말을 들으니 한국 미식축구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많은 걸 준비해 왔고, 또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중국에서는 우리 미식축구에 관심이 많다. 중국 AFU(American Football Union, 중국 미식축구연맹, 회장 Ken Li) 측에서 자사가 주관하는 현지 미식축구 캠프에 한국 코치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해당 캠프는 중국 하얼빈, 지린 성부터 북경, 상해 등 중국 전역 14개 대학에서 모여든 약 120여 명의 선수와 20여 명의 코치, 그리고 10명의 심판이 참여하는 대규모 캠프였다. 중국 연맹 측은 중국과 비교하면 경험이 풍부한 한국 코치들이 직접 찾아와 세미나와 훈련을 주도해주길 원했고, 한국 코치들은 이를 멋지게 소화해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국가대표팀은 큰 자부심을 품게 됐다. 중국 역시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했다.


해외에서도 관심을 두고 있는지는 몰랐다. 특히 중국은 스포츠로 보나 시장으로 보나 ‘큰 손’ 아닌가? 추후 아시아권 국가들의 미식축구 대회도 꿈꿔볼 만할 것 같다.
물론이다. 실제로 이번 일을 계기로 한·중·일 미식축구 대회를 추진할 생각도 갖고 있다. 나중에는 북한까지 포함해 극동아시아 4개국이 벌이는 대회로 확대할 구상도 있고. 과거 닉슨 대통령이 보여준 ‘핑퐁 외교’처럼 정치권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미식축구라는 스포츠가 대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식축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선 한국 미식축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 내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월 슈퍼볼 기간에 미국에 방문해 미국 한인사회에 한국 미식축구 현황과 월드컵 관련 소식을 전한 바 있다. 특히 그린 장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장과 대한미식축구협회의 인연이 미국 내 언론사를 통해 보도됐다. 슈퍼볼 기간 중 서부 쪽 한인회와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했을 당시 인연이 닿았던 그린 장 회장이 클리블랜드의 한인회장과 우리를 연결해 줘서 클리블랜드 주민들이 월드컵 당시 마지막 경기를 치른 우리 선수들에게 한식과 다과를 제공했다. 작은 사건일 수도 있지만, 원래 큰일은 작은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 좋은 인연이 계속 이어져 훗날 멋진 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본다.


자, 어느새 마지막 질문이다. 앞서 미식축구를 하나의 브랜드로 구축하고자 한다고 했는데, 미식축구를 어떤 브랜드로, 또 어떤 방식으로 브랜드화할 것인지 계획을 밝혀달라.
월드컵이라는 큰 행사를 치렀다. 이에 월드컵에 참가한 모든 이에게 월드컵을 마친 소감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 의견을 모아 미식축구 백서를 제작하기로 했다. 우리의 진정성이 담긴 이 백서를 문화체육관광부에도 보고할 생각이고, 각종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대중에게 전파할 계획에 있다. 미식축구라는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리기 위한 전초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매번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우리만 보기 아깝다’는 거다. 우선 많은 사람에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뭉친 젊은이들이 드넓은 경기장을 맨몸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줘 어떤 스포츠도 흉내 낼 수 없는 미식축구만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싶다. 많이 찾아와 달라. 한 번 보면 분명히 느낄 거다. 






Posted by KH 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

kh's IM Leader Interview2015. 8. 19. 14:56

web 마케팅의 내일을 마주하다 목영도 작시스코리아 대표이사

마케팅의 내일을 마주하다 목영도 작시스코리아 대표이사아날로그 시대의 마케팅에서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으로 넘어오면서 손 가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다. 

마케터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기업이나 브랜드에서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더 작고, 빠르고, 간결한 시대에서 마케팅은 더 넓고, 천천히, 복잡한 것을 다루고 분석하는 마케팅의 시대로 바뀌었다.
마케터는 변해야 했고, 에이전시들은 또 다른 세상을 찾아 나서야 했다. 목영도 작시스 코리아 대표는 여전히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월간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목영도 작시스코리아 대표이사









24/7 미디어 대표이사에서 지금은 작시스코리아 대표이사로 바뀌었다. 일단은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LG애드(현 HS Ad)기획팀 AE로 근무했다. WPP가 LG애드를 인수했을 때, LG애드를 나왔다. 이후 대학교에 잠시 있었고, 사업도 했다가 종합광고대행사 쪽이 아닌 디지털 에이전시 쪽으로 오면서 지금까지도 디지털 마케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작시스 코리아는 24/7 미디어와 합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목 대표는 24/7 미디어에 입사했었던 것인가.
아니다. 처음에는 리얼미디어에 입사했다.  당시 리얼미디어는 전 세계 미디어렙 영역에서 24/7 미디어, 더블클릭에 이어 3위 기업이었다. 이 세 업체가 모두 한국에 들어왔다가, 24/7 미디어와 더블클릭이 철수하고, 리얼미디어만 남았었다.
2001년, 24/7 미디어 본사와 리얼미디어 본사가 합병하면서 24/7 리얼미디어가 됐었는데, 2007년에 WPP가 이를 다시 인수하면서 다시 24/7 미디어로 이름이 또 바뀌었다. 이듬해 더블클릭은 구글이 인수했고. 그러다가 2013년 24/7 미디어는 WPP의 디지털 오디언스 바잉 기업인 작시스와 합병한 다음 작시스(Xaxis)로 사명이 바뀌었다.



한국 마케터들에게 작시스라는 이름이 친숙하지는 않다. 일단 작시스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작시스는 모든 채널을 통해서 광고주와 퍼블리셔를 타깃층에게 프로그램방식(Programmatic)으로 연결하는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이다. 프로그램방식의 출발점은 매체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지면에 우리 광고를 싣는 것이 아니라 오디언스(Audience, 수용자)가 어디에 접촉했는지에 따라 적합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발점 자체가 오디언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광고주에게는 매체보다는 오디언스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에 접촉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DSP(Demand Side Platform, 광고주 대상 플랫폼)로 접근하고 있으며, 관련 분야에 계속 투자하고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물론, 아직 마케팅 업계에서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미래는 이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확신하고 투자를 하는 중이다.



작시스가 24/7 미디어와 합병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미디어를 담아 놓는 통이 크면 클수록 더욱 효과적인 타깃팅과 리타깃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통 안에서 오디언스 바잉(Audience Buying)을 한다면 효율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과도 같은 작시스와 미디어렙 24/7 미디어를 붙인 것이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프로그래매틱 광고(Programmatic Advertising,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이용자의 검색 경로, 검색어 등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광고를 띄워 주는 광고 기법)나 오디언스 바잉 개념으로 접근하겠다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는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기에 작시스 코리아의 인력 규모에 대한 궁금증도 있다.
작시스는 플랫폼이나 시스템 개념으로 보고 있으므로 사람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이 플랫폼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광고 효과를 낼 수 있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 정도만이 필요하다. 아시아 전체를 봐서도 작시스 운영 인력은 30~40명 정도다.



밖에 꽤 많은 직원이 있던데, 그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대부분 인력은 24/7 미디어 인력이다. 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 방송광고를 방송사 대신 판매하는 방송광고 판매대행사)은 매체를 구매하고,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하므로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작시스 프로그램 방식과 제품 론칭에 관련한 사람은 3, 4명 정도다. 앞으로도 작시스 경우에는 운영에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보고 있다.



작시스와 24/7 미디어의 합병이 이뤄진 다음, 국내에서도 작시스 코리아라는 이름의 새 옷을 입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세 가지 영역에서 크게 변한 것 같다. 첫 번째는 글로벌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어떤 상품이 나왔다고 하면, 빨리 접해보고 적용한다. 또 하나는 작시스 플랫폼은 사람이 하는 것보다는 비용 효율성과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의 미디어 바잉(Media Buying, 광고 지면 거래)을 버리려고 하고, 교육과 효율의 필요성을 좀 더 지향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그 밖에 그룹엠(GroupM)과 협업함으로써 온라인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오프라인이 함께 섞인 프로젝트 경험을 쌓으면서 오프라인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 접근 방식이 다양해졌다.



작시스코리아는 그룹엠 소속이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그룹엠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그룹엠은 WPP의 종합미디어 투자관리기업이면서, 우리를 포함해 ‘Maxus’, ‘MEC’, ‘Mediacom’, ‘Mindsha’ 등의 회사로 이뤄져 있다. 이 회사들은 각각 자생적으로 성장했다. 그룹엠은 이들이 자리 잡은 나라에 들어가면서 해당 회사의 브랜드 영향력을 뺏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뒤에서 받쳐주면서 비용 효율성을 높이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시장도 작을뿐더러, 글로벌 광고주들이 많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각자 한국에서 브랜딩을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차라리 그럴 바엔 처음부터 백오피스인 그룹엠을 법인으로 만들고 그 안에 비즈니스 유닛으로 들어가는 것이 브랜딩과 관리 부분에서 효율성이 낫다고 여겨 그룹엠 이름을 앞에 뒀다.


현재 작시스의 주요 글로벌 클라이언트를 알려달라.
P&G, 로레알, 샤넬, 재규어-랜드로바, 아우디-폭스바겐, GSK 등이 있다.


글로벌 클라이언트와 로컬 클라이언트가 전략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에 차이가 있는가?
회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P&G를 예로 들면, 미디어 접촉을 할 때 자기가 목표한 KPI를 만들어서 미디어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지 분석하고 퍼포먼스를 체크한다. P&G는 각 매체를 따로 접촉하고, 각 매체의 KPI를 따로 만든다. P&G 니즈에 맞춰서 접촉하고 세팅하는 것이다. 그들은 효율을 체크하는 기준이 명확하다. 그게 선진화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접한 클라이언트 중에서는 가장 독특했고, 우리도 많이 배우고 있다.
대부분 국내 기업은 하나의 KPI를 가지고 모든 매체에 동일하게 적용한다. 동일 시점에서 동일 KPI로 여러 매체에 하는 것이 운영은 편리하지만, 진정한 효과를 체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업계 이야기로 돌아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가 동영상 광고에 대한 것이다.
도달률 확보 측면에서는 온라인에서 이미 검증이 됐음에도, 주목도에서는 공중파 TV와 케이블 TV보다 효율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의심을 받았다. 지난 몇 년간 온라인 영상 광고는 시청하고자 하는 콘텐츠 전에 강제 노출되거나 1일 고정 등의 특수 상품을 통해 주목도가 과거에 비해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보인다.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타깃팅이 매력적인 요소다. 이는 다소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브랜딩 측면에서 보완작용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공중파와 온라인 중 어느 영역이 더 좋다의 문제가 아니다. 해당 브랜드에 맞는 전략이 있을 테니 그 전략에 부합하는 것을 통해 언제, 어떻게 우리 타깃층에게 접근하는 게 가장 올바른 방법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TV 영향력은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가.
일정 부분은 떨어질 것이다. 이는 사람이 미디어를 소비하는 행태와 연관이 있다. 이전까지 높은 효과를 보는 콘텐츠는
같이 보고, 감정을 함께 공유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들은 함께 보지 않는다. 각자의 기기에서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큰 화면이 필요한 것이 많이 있을까?’라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다.  그렇지만 TV라는 매체는 여전히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운영하기가 쉽고, 효과를 빨리
볼 수 있는 매체다.


이제는 핫 키워드라고 하기에는 뭐한, ‘모바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바일의 경우 PC와 달리 제한적인 공간 및 화면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등 제약이 있다. PC와 달리 광고 측면에서의 퍼포먼스를 높이는 데 일정 부분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바일에서의 검색과 DA(Display Ad, 디스플레이 광고) 영역이 PC와 충돌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소구 영역과 사용자 니즈에 확연한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검색을 기반으로 한 DA 또는 DA를 기반으로 한 검색 광고 상품 등의 상호 보완 상품들이 더욱 활발하게 생겨나지 않을까.


목영도 대표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디지털 미디어의 트렌드가 궁금하다.
제일 첫 번째가 오디언스 바잉이고, 또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비디오다. 그중에 요즘 제일 관심 갖는 영역이 MCN(Multi Channel Network) 이다. 앞으로 3, 4년 안에 그 영역이 미디어의 영역을 차지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채널이 아닌, 그것들을 묶어 관리하는 소스, 콘텐츠와 미디어가 함께 있는 영역이 아닌가.  또 하나는 데이터다. 오디언스 바잉에도 데이터가 기본이고, 현재 모든 마케팅 분야의 기본은 데이터다. DMP(Data Manamagement Platform, 쿠키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플랫폼)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다만, 진짜 빅데이터는 외부에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WPP에는 컨설팅 회사인 칸타 그룹이 있다. 이 칸타의 데이터를 광고에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WPP의 미션이기도 하다. 미디어와 광고 영역에 이런 데이터를 적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매체사의 커미션 베이스(Commission Base, 성과에 관계없이 받는 운용 보수)가 없어진다면, 앞으로의 비즈니스 환경은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당연히 커미션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게 빨리 올 것이다. 현재도 일부 매체사는 별도 커미션이 없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플랫폼이든, 인벤토리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디지털 미디어 바잉 조차도 피 베이스(fee base·성과에 따른 받는 운용 보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당장은 미디어렙 입장에서는 수익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위협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환경에 따라 많은 미디어렙과 에이전시는 영향을 받을 것이다. 목 대표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나는 일단 미디어렙의 롤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롤이 형성된 데는 미디어렙이 활동하고, 대행사 본연의 역할이 축소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업무 역할 분담을 보면,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대행사와 미디어를 담당하는 미디어렙으로 나눠진 것은 맞다. 하지만 미디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 반대로 전체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디어 전략은 반 쪽짜리 전략이다. 두 영역의 갈등과 충돌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면 오히려 더 깊고 농익은 전략이 탄생하리라고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목영도 대표의 비전을 듣고 싶다.
외국계 회사다 보니까, 직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친구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들의 미래를 열어주고, 그들을 어떤 사람으로 키워주느냐가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교육에 많이 투자하는 편이다. 외부강사를 섭외하고 내부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직원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 결국, 국내 디지털 미디어 영역에서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뉴 트렌드 리더를 키워내는 것이 내 비전이다.







작시스는 모든 채널을 통해서 광고주와 퍼블리셔를 타깃층에게 프로그램방식으로 연결하는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이다.
프로그램방식의 출발점은 매체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지면에 우리 광고를 싣는 것이 아니라, 오디언스(Audience, 수용자)가 어디에 접촉했는지에 따라 적합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발점 자체가 오디언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공중파와 온라인 중 어느 영역이 더 좋다의 문제가 아니다.
해당 브랜드에 맞는 전략이 있을 테니 그 전락에 부합하는 것을 통해 언제, 어떻게 우리 타깃층에게 접근하는 게 가장 올바른 방법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 반대로 전체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디어 전략은 반 쪽짜리 전략이다.
두 영역의 갈등과 충돌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면 오히려 더 깊고 농익은 전략이 탄생하리라고 바라보고 있다.





IM LEADERS는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가 ‘뉴스와 이야기가 있는 리더’를 만나
IM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tags


Posted by KH 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

kh's IM Leader Interview2015. 7. 22. 17:13
소금의 진미를 아는 남자 김상일 태평소금 대표이사

달큼한 소금. 상상하기 힘들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언급할 때나 쓸 수 있는 문구 같다. 
하나 실제로 달다. 소금이 달다고? 그렇다. 소금을 숙성하면, 쓴맛이 빠지면서 단맛이 남는다. 
김상일 태평소금 대표이사는 우리나라 최대 염전인 태평염전을 질 좋은 소금을 생산하는 밭으로, 
세계 최고의 소금 브랜드로 숙성시키고자 한다. 소금의 짠맛과 함께 그 안에 숨어있는 단맛까지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월간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소금은 염화 나트륨(NaCl)을 주성분으로는 하는 짠 맛의 조미료로, 식염(Table Salt)이라고도 부른다. 
소금은 체액에 존재하며, 삼투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사람이나 동물에게 중요하다. 
또한, 체액이 알칼리성을 띠도록 유지하고 완충 물질로는 산과 알칼리 평행을 유지시켜 준다. 

- 위키피디아



김상일 대표이사가 월트디즈니 코리아 사장을 하던 1993년부터 인연을 맺었으니까, 20년이 넘었다. 클라이언트와 대행사로 만나다가 이번에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세계적인 영화사의 한국 지사장을 하다가 지금은 소금을 만드는 회사의 대표이사가 됐다. ‘연관성이 있나?’라는 생각부터 들더라. 그런데 태평염전 오기 전에는 골프장 CEO였으니(웃음). 김 대표가 걸어온 길이 궁금한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1970년대 중반, 국제그룹 소속의 국제상사에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종합상사는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산업 일꾼들이었다. 당시는 해외 시장 개척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때는 정적으로 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프랑스 파리 주재원으로 한 6년 동안 파리에 머물렀다. 그곳에서는 우리나라 신발과 옷 브랜드를 알리는 브랜드 담당자이자 마케터로 지냈었다.


국제그룹 하면 일단 ‘프로스펙스’가 떠오른다. ‘아티스’도 있고. 특히, 김 대표가 근무했던 1980년대에는 프로스펙스의 브랜드 가치는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맞다. 당시 프로스펙스가 ‘잘 나가는 브랜드’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티스’의 경우에는 당시 프랑스 지사에서 만든 브랜드로 로고를 피에르 가르뎅 수석 디자이너가 만들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아티스’가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쉽다.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1985년) 스위스의 무역회사인 ‘코사리베르만’으로 자리를 옮겼다. 코사리베르만에서는 스포츠 브랜드 ‘푸마’를 담당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는 ‘발리’, ‘칼 라거펠트’와 같은 패션 브랜드에서 쥬얼리 브랜드까지 소비재 모두를 담당했었다. 그리고 1992년에 월트디즈니 코리아가 설립되면서, 월트디즈니 코리아의 영화사업부 사장이 됐다.


지금 태평염전에 온 것처럼, 월트디즈니 한국법인 사장직을 맡은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일에 대한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분야에서 도전하는 것을 원했고, 마침 때가 잘 맞았다. 당시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월트디즈니 사장직 제의를 수락하고 미국에서 진행한 면접이었다. 대개 한국에서는 한, 두 시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업무 담당자별로 한 시간씩 아홉 시간을 인터뷰했다. 마케팅, 영업, 관리, 법률 등 분야별로 계속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그들이 많이 물었던 것이 윤리와 법률 쪽이었다. 왜냐하면, 1990년대 초반에는 국내 영화 시장이 체계화된 시스템이 아니었기에 월트디즈니의 브랜드와 기업 윤리를 정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국내 영화 분위기는 직배사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도 아니어서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전략에 관한 것도 물었던 기억이 난다.


10년 동안 월트디즈니 코리아의 수장으로 있었다. 그 사이 한국 영화계는 엄청난 성장을 했는데, 어떤 일이 기억에 남았는가.
1990년대 한국에는 5대 직배사가 있었다. 그중에서 최초로 한국 영화를 배급한 곳이 우리였다. 그 작품이 바로 김승우, 명세빈 주연의 <남자의 향기>였다. 1990년대만 해도 한국 영화계에는 융합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실감한 적이 없었으니까. 우리가 <남자의 향기>를 배급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미국 메이저사가 한국 영화 배급시장까지 잠식한다는 비판조의 기사가 상당했다. 업계 분위기도 그랬다. 영화 시장 개방과 관련해서 나는 늘 시장은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열린 경쟁 상태에서 성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보면, 내 생각이 틀리진 않았다.






정제염은 이온수지막으로 불순물과 중금속을 제거하고 얻어낸 순도 높은 소금이다. 공장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기계염이라고도 한다. 
천일염은 갯벌을 다진 토판에 바닷물을 끌어모아 최소 25일간 햇볕을 쪼여 생산한 소금으로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말한다. 
- 두산백과




지난 2012년 태평염전의 대표이사로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직전에는 골프장 ‘캐슬파인’의 사장직을 하기도 했고. 이번에도 완전히 다른 분야로의 도전을 시작한 셈인데, 김 대표를 사로잡은 태평염전은 어떤 곳인가.
태평염전은 462만㎡(약 140만 평)가 넘는 국내 최대 단일 규모의 염전이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감이 올 것이다. 손일선 태평소금 회장의 선친인 손말철 회장이 신사업을 구상하던 중 전남 신안군 증도에서 문을 닫은 이 염전을 발견했고, 바로 매입했다. 손말철 회장은 이 염전을 미래의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고, 결국 그것이 들어맞았다. 천일염 생산량으로는 국내 1위 염전이고, 
매년 1만 5,000톤 정도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사실, 염전은 소금을 생산하는 밭이기 때문에 김 대표 경력을 생각해보면 접점을 찾기가 힘들다.
태평염전은 단순히 소금만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염전 중에서 최초로 6차 산업★을 하고 있다. 소금을 생산하고
(1차 산업), 소금을 가공해 상품화하며(2차 산업), 소금을 콘텐츠 삼아 사람들이 즐기고 치유할 수 있는 서비스(3차 산업)까지 이 모두를 한다. 내가 쌓은 다양한 경험으로 태평염전을 이에 걸맞게 브랜딩하고 가꿔나가는 중이다.


1, 2차 산업은 쉽게 이해가 가는데, 3차 산업은 어떤 것이 있는가?
소금박물관이 대표 사례다. 우리나라 최초면서 지금까지 유일하게 소금을 다루는 박물관이다. 소금에 관한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2007년에 개관한 소금박물관은 1953년부터 사용했던 석조로 지은 소금창고를 고쳐서 만들었다. 근대문화유산 361호에 등록된 건물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소금연구소, 소금대학, 염생식물원, 솔트 레스토랑 등 다양한 것이 있다.


소금박물관을 개관 한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식품기업이 박물관까지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2008년 3월 이전까지는 천일염은 광물이었다. 천일염이 식품이 된 지는 이제 5년 남짓이다. 광물로 취급받던 천일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소금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가 체결된 후 소금값이 폭락하면서 국내 다른 염전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국내의 좋은 염전들이 지키지 못했다. 소금의 가치를 알았다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갯벌천일염은 30만 톤뿐이고. 귀한 자원이다.


소금의 가치를 어디에서 우리가 알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는 소금과 함께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늘 소금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소금은 사실 식품으로 취급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 아닌가? 이 아이템으로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최고의 소금을 만드는 것이 우리 태평염전의 목표고 할 일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3차 산업에 해당하는 분야에서 필요한 것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고, 이곳에 온 사람들이 다시 오고 싶게끔 하는 동기 부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소금의 가치와 염전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이 깔려 있어야 하고. 그래서 박물관을 비롯한 캐러반, 식물원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금 파는 직업은 중요한 사회적 구성 요소였다. 우리의 삶이 소금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역사에서 소금의 비중 또한 적지 않다. 멀게는 기원전 1세기 로마와 스페인 간의 소금전쟁, 17세기 독일과 오스트리아 간 소금의 경제적 가치로 인한 전쟁이 있다. 가깝게는 19세기 말 미국과 북아메리카 원주민 간의 소금 갈등이 있었다. - 국민일보 2015.1.3


증도에 있는 염전에 가면 다양한 부대시설이 있다고 들었다. 레스토랑하고 카페도 눈에 띈다. 이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것도 있나?
우리 태평염전은 염전 주변에서 자라는 함초(퉁퉁마디)라는 염생 식물이 있다. 함초는 당뇨, 고지혈증, 다이어트에 좋고, 음식을 맛깔나게 해준다. 유럽에서는 샐러드로도 사람들이 찾는 데, 우리도 함초를 이용한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이 있고, 함초 라떼와 같은 것이 있다.


소금이나 함초를 이용해서 음식을 만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렇게 사람들이 독특하게 볼 수 있는 것을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증도에 왔을 때, 식당에 가서 음료를 마시거나, 식당에 가서 함초 요리를 먹으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것이 브랜딩이고 마케팅이다. 사람들이 소금과 친숙해지는 방법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소금의 품질을 냉정하게 따졌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인가
맛이나 미네랄 향으로 따진다면 우리나라 소금은 세계 최상급이다. 그런데 마케팅에서 지고 있다. 지금 우리의 상품을 어떻게 브랜드화하고, 소비자들이 가치를 인정하게 해주느냐가 우리의 제일 큰 과제다.


김 대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진심이 느껴진다. 이런 것은 사실 어느 산업을 막론하고 경영자로서는 가져야 할 자세겠지만.
염전 자체는 황량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금의 가치뿐 아니라 증도의 아름다움도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치 정원처럼 보이게 해바라기를 심었고, 오는 9월에는 메밀꽃으로 주변을 물들일 계획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항상 생각하는 다음 프로젝트다.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마케팅 아닐까.


지금까지 말한 모든 활동은 자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독하리만큼 염전을 보존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가꾸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 같다.
좋은 천일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염전과 주변의 생태계를 지켜나가야 한다. 증도는 2007년 12월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의 슬로우 시티로 지정됐다. 이뿐 아니라 우리 태평염전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람사르 연안습지 선정 등 세계적인 생태 관련 3대 타이틀을 가진 염전이 됐다. 우리는 소금을 알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생태계 보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소비자에게 태평소금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다.


해외 진출 계획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올 하반기에 롯데 면세점에 입점한다. 면세점의 성과가 중국 진출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제품 디자인으로 준비하고 있다. 내년 봄에는 전 세계 소금 시장에서 가장 인정받는 시장인 프랑스에 진출할 계획이다. 에디아르(Hediard)를 통해서 소금 시장의 본고장인 프랑스 소비자와 만날 예정이다. 우리 태평염전의 카피는 ‘Tasty Salt(맛있는 소금)’이다.


앞으로 태평염전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건강하고 즐겁고, 맛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코사리베르만에서는 스포츠 브랜드 ‘푸마’를 담당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는 ‘발리’, ‘칼 라거펠트’와 같은 패션 브랜드에서 쥬얼리 브랜드까지 소비재 모두를 담당했었다. 그리고 1992년에 우리나라에 월트디즈니 코리아가 설립되면서, 월트디즈니 코리아의 영화사업부 사장이 됐다.

태평염전은 단순히 소금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염전 중에서 최초로 6차 산업★을 하고 있다. 
소금을 생산하고(1차 산업), 소금을 가공해 상품화하며(2차 산업), 소금을 콘텐츠 삼아 사람들이 즐기고 치유할 수 있는 서비스(3차 산업)까지 이 모두를 한다. 내가 쌓은 다양한 경험으로 태평염전을 이에 걸맞게 브랜딩하고 가꿔나가는 중이다.

좋은 천일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염전과 주변의 생태계를 지켜나가야 한다. 
증도는 2007년 12월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의 슬로우 시티로 지정됐다. 
이뿐 아니라, 우리 태평염전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람사르 연안습지 선정 등 세계적인 생태 관련 3대 타이틀을 가진 염전이 됐다. 
우리는 소금을 알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생태계 보전이라고 생각한다.

★ 6차산업  농촌에 존재하는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바탕으로 농업과 식품, 특산품 제조가공(2차산업) 및 유통 판매, 문화, 체험, 관광, 서비스(3차 산업)등을 연계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IM LEADERS는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가 ‘뉴스와 이야기가 있는 리더’를 만나 IM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tags 월간 IM , 한기훈 , 한기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 김상일 , 태평소금 , 월트디즈니 , 발리 , 칼 라거펠트 , 푸마 , 코사리베르만 , 소금

저작권자 © 웹스미디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콘텐츠는 저작권법 제7조 규정된 단서조항을 제외한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입니다.
본 기사를 개인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게재(링크)를 원하시는 분은
반드시 기사의 출처(로고)를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출처 없이 본 기사를 재편집해 올린 해당 미디어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절차(지적재산권법)에 따라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kh's IM Leader Inter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요식 대한미식축구협회 회장  (0) 2015.09.26
작시스 목영도 대표  (0) 2015.08.19
김상일 태평소금 대표이사  (0) 2015.07.22
주철환 교수  (0) 2015.06.17
농심켈로그 한종갑 사장  (0) 2015.05.16
이노레드 박현우 대표  (0) 2015.04.29
Posted by KH 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

kh's IM Leader Interview2015. 6. 17. 16:26

살아있을 때, 행복하자 주철환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어떤 이에게는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있는 자신의 앞에서 수업하던 국어 선생님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셀 수 없는 밤샘 회의를 통해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던 방송국 동료였고, 
어떤 이에게는 방송 현장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 대학 교수님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에게 주철환이라는 이름은 한국 예능계를 이끌었던 사람으로 존재한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월간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주철환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등을 즐겨봤던 우리 세대에는 주철환 교수보다는 주철환 PD가 더 익숙하다. 방송인으로 교육자로 여러 삶을 살았는데, 짧게라도 주철환 교수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달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모교(동북중학교)에 국어 교사로 부임했다. 군대는 가지 않은 상태였다. 적령기에 입대하려고 했으나, 당시 체중이 병무청 징병 기준 미달이었다. 4년에 걸쳐 신체검사를 네 번 받고 결국 현역으로 입대했다. 군대 가기 전에 2년 반 동안 중학교 1년, 고등학교에서 1년 반 정도 국어 교사로 근무하고, 1980년 7월 30일 입대했다. 그리고 제대 후 방송국에 입사해 PD 생활을 시작했다.





정말 많은 사람이 물었겠지만, 제대하고 나서 교사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을텐데, PD가 된 이유가 있는가?
워낙 이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까, 대답도 녹음기처럼 하게 된다(웃음). 제대할 무렵에 방송사 앞을 지나가다가 길게 늘어선 줄을 봤고, 갑자기 호기심이 생기더라. 나도 줄을 서서 지원서를 받았고, 귀대하는 버스 안에서 찬찬히 살펴보니, 시험 과목이 국어, 영어, 상식, 작문이었다. 국어는 교사로 학생을 가르쳤고, 영어는 미군 부대에서 생활했으니 익숙했다. 상식은 신문을 즐겨봤기에 자신이 있었고, 작문은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는지라, 시험을 보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지원했고, 내 인생 계획에는 없었던 PD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소위 잘나가던 스타 PD가 대학교 교수, 그리고 방송국 사장까지 하게 됐다.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다른 PD와의 차별점이 있었다면, 쉬지 않고 글을 썼다는 점이다. 글쓰기는 내게 주어진 참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쓸 지면이 있을 때마다 글을 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시(1990년대 후반) 대학마다 미디어 관련 학과에서 현장 전문가를 교수로 초빙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PD를 하면서 글을 계속 쓰다 보니 내 전력이 알려졌고, 이화여대에서 먼저 제안이 와 그곳으로 자릴 옮겼다. 옮기기 전에 돌이켜보니, MBC에서만 PD 생활을 17년 했더라. 
이후 이화여대에서 7년 반 동안 교수로 학생들과 함께했다.
이화여대에서 7년 정도 됐을 때, OBS에서 초대사장을 해달라는 뜻밖의 제안이 왔다. 그쪽에서 원하는 것이 ‘경영전문가’가 아닌 ‘방송전문가’로서의 내 능력이었다. PD를 했던 사람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설렘에 수락했고, 약 1년 7개월 정도를 했다.


당시 OBS가 처한 상황이 쉽지 않았기에 사장직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JTBC로 자릴 옮겼다.
쉽지는 않았다. OBS를 나오고 다시 (부르는 곳이 있다면) 학교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학교보다 먼저 내게 연락을 한 곳이 중앙일보였다. 그 당시가 신문사가 방송국을 겸업할 수 있다고 이야기 나오는 시점이었다. 종편이라는 말도 없었을 때였고. 4년 반 정도 있었다. JTBC는 인기있는 프로그램들이 늘면서 시청률도 상승하고 있지만, 언론에 공개된 것처럼 경영상으로는 여전히 적자다. 이런 상황에서 임원이 많은 것이 회사로서 좋은 것도 아니고. 새로운 자리가 생기면 과감하게 변신하겠다는 차에 아주대학교에서 교수직 제안이 와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돌이켜보면, 동북중고등학교, MBC, 이화여대, OBS, JTBC, 그리고 지금의 아주대학교까지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경험을 한 것 같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르치고, 만드는 일을 번갈아 했다. 개인적으로 둘 중에 더 신나는 일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더 신나게 하는 일은 방송이다. 유재석, 신동엽, 김구라, 이경규처럼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니까. 다만, 내 적성에 맞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했을 때는 가르치는 일이다.


PD 주철환으로 돌아가보자. 내가 기억하는 주철환은 이름 앞에 ‘스타PD’라는 수식어가 늘 붙었다. 스타PD라는 명성을 들었던 시기가 언제쯤이었나.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꿈동산>의 조연출을 맡았을 때, 주제가를 내가 직접 작곡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가 1987년부터 <퀴즈 아카데미> 연출을 시작했고, 그 주제가도 내가 직접 썼다. 일단 노래를 만든다는 것에서 화제를 모았다. 게다가 <퀴즈아카데미>가 워낙 인기가 좋아서, 인터뷰 요청도 많이 왔다.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기자들에게도 친절해서 그런지(웃음) 언론에 많이 등장했다.
이전까지 사람들이 예능 PD를 바라보는 이미지가 좋진 않았다. 간혹 연예인 등쳐먹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물론 일부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 예능국 PD는 그렇지 않았다. 난 PD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 강령을 가져야 하는지를 글과 말로 많이 표현했다. 이런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방송국 내에서도 PD가 글을 쓰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 글 쓸 시간에 연출이나 잘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연출을 잘하는 방법이다. 그 자체가 생각하는 것이니까. 
나는 PD는 생각과 말로 꿈을 펼치는 사람들이므로 글쓰기도, 말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퀴즈 아카데미>도 있지만, <우정의 무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989년도에 후배 PD 두 명이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1990년도부터 했고. 이 프로를 처음 봤을 때 <배달의 기수(대한민국 국군 홍보 프로그램)>를 약간 업그레이드한 것 같았지만, 거기서 가능성을 봤다. <퀴즈 아카데미>를 마치고 <우정의 무대>를 맡고 나서, 나름 업데이트를 했다. 이게 많은 화제를 모으니, 다음에 <일요일 일요일밤에(이하 일밤)> 연출을 시키더라. 
사실 따지고 보면, 예능계의 신화 같은 존재였던 송창의 선배가 내게 프로그램을 물려준 셈이다. 송창의 선배가 ‘일밤’을 만든 사람인데, 내가 마치 일밤을 만든 사람처럼 기사가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운이 좋게도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기까지는 PD로서 전성기를 보낸 것 같다. 그래서 고맙다.


시청률이 높았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것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읽고 훔쳤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주철환 PD는 시청자를 알았는가?
생각을 읽고 마음을 훔쳤다고 말하면, 자기 모순적인 사람이 될 것 같다. 나는 PD라는 사람이 왜 PD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방송이라는 것은 잘 활용하면 사람들의 생각을 깨울 수 있는데, 그런 중요한 기능을 잊고, 시청률(물론 좋아야 하지만)과 성과에 급급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고 생각했다.
<퀴즈 아카데미>하면서도 그랬다. "퀴즈를 왜 하는가? 지식을 겨루는 데 뭐가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퀴즈는 문제다. 세상이 갖고 있는 문제를 문제 의식을 갖고 한 번 풀어본다”고 나름대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시청자가 무엇에 목말라하는가, 무엇에 배고파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나영석, 김태호 PD가 하는 것을 보면 지금 젊은이들이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는 것에 대해 알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예능 프로그램들로 JTBC가 많은 주목을 받는 중이다. 주철환 교수가 기본적인 설계를 한 것인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마치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무한도전>은 김태호 PD가 다하는 것인가? 거기에는 출연진들의 아이디어와 작가와 카메라맨, 데스크와 시청자의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단지 PD가 대표성을 가질 뿐이다. JTBC도 주철환이 설계했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중앙일보에서 데려온 방송인은 나 한 명이었다는 것, 방송이 허가받기 전까지는 신문사 사람들, 컨설팅 회사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었다.


특히, JTBC는 다른 종편이랑 비교하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강세를 보인다.
방송에는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이는 광고나 다른 분야에도 해당할 것이다. 재능, 열정, 돈, 시간이다. 한군데 치우치면 
안 된다. 재능(재주 있는 사람)이 열정과 충분한 돈 그리고 시간을 갖고 하면 무조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JTBC는 예능 쪽에 네 가지를 선택과 집중했다. 지금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아직 손익분기점에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광고계에서 보는 시각이 다르다. 애초부터 우리는 20-49 오디언스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위주로 하자고 했고, 이 부분이 다른 종편과는 차별화를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다른 종편들이 더 높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것을 생각하면 반사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통합시청률은 여전히 다른 종편이 높다. 왜냐하면 TV를 보는 주 시청자는 나이든 사람들이니까. 나이든 사람이 구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다른 종편은 그런 사람들에게 적합한 콘텐츠를 공급한다. 오히려 모든 종편이 20-49 타깃으로 가는 것이 문제다. 소위 말해서 문화라는 것은 창의성과 다양성이 중요하다. 다양성이 훼손되면 세상이 
덜 행복해진다.


주철환 교수가 PD로 활동했을 때는 지금 만큼이나 예능 PD들이 부각된 적이 없었다. 요즘에는 예능PD들 이름이 언론에 많이 등장한다. 주 교수에게는 업계 후배들이기도 할 텐데,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가요무대>를 보는 사람이 <뮤직뱅크>나 <음악중심>보는 애들한테 “저것도 음악이냐?”라고 하면 결국은 자기가 늙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는 지금의 영민한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나영석, 김태호 PD가 하는 것을 보면,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새로운 재미의 영토를 개척하는구나라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이전 세대들은 지금과 비교해 뭔가 미흡했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은 나보다 나보다 20년 후배다. 그 친구들도 2014학번의 PD들이 방송계를 이끌 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와 비슷한 대답을 할 것이다. 지금 후배 PD에 관해 물었을 때, ‘아 미흡하죠’ 그건 안 된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하면서도 주 교수한테 받은 느낌은 ‘건강하다’ 그리고 ‘젊다’는 것이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는지 궁금하다.
‘탄소동화작용’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 중에 ‘동화’라는 단어가 있다. 국어 선생답게(웃음), 문법으로 예를 들면, ‘신’이라고 썼는데, 이것이 ‘실’로 바뀔 수 있다. ‘라’를 만나면 그렇다. 이것이 ‘역행동화’. ‘종로’를 읽을 때 ‘종노’라고 읽지 않는가. 이것은 순행동화. 이게 동화다. 동화가 갖고 있는 의미처럼 누구와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과 비슷해진다고 생각한다.
‘-화’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젊은이화’되는 것은 젊은이들을 많이 만난다는 것이다. 대학 입학한 지 41년 됐는데, 
나는 지금도 여전히 대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이 점은 놀라운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대학생과 교류가 단절된 시기가 없다. 1974년도부터 60대가 된 지금까지도 20대 초반의 젊은이와 어울리는 것이 내 젊음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음악도 만들고, 방송도 만들고, 책도 냈는데, 다른 콘텐츠에 대한 욕심도 있는가?
30대 초반까지는 음악적 창작력이 왕성했다. 지금 보면, 음악에 대한 창조적 에너지를 그때 모두 소진한 것 같다. 글쓰기는 다르다. 어떤 때는 내 글이 내가 읽어도 마음에 들 때가 있다. 숙성 발효가 제대로 이뤄진 것이다.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진다. 물론, 글의 완성도가 떨어질 때도 있지만(주문 생산이니까), 그런데도 매주 마감일인 일요일에 원고를 쓰는 것도 기다려진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소중한 기회다. 나는 ‘칼럼을 쓰는 자는 칼을 쓰는 자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만든다는 것의 기본에는 아이디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주 교수는 어떤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구현하는가?
의인법이 중요하다. ‘벽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지나가다 보이는 가로수는 어떤 생각을 할까?’ 등 세상 모든 것이 살아있고, 세상 모든 것이 기뻐하고 슬퍼할 때가 있다고 상상하자.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우리는 유한하다. 언제 죽을 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살아있을 때 행복했으면 한다. 인상 쓰지 말고, 죽으면 아무것도 생각 못 하니까.

 



아무래도 더 신나게 하는 일은 방송이다. 
유재석, 신동엽, 김구라, 이경규처럼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니까. 
다만, 내 적성에 맞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했을 때는 가르치는 일이다.

나는 PD라는 사람이 왜 PD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방송이라는 것은 잘 활용하면 사람들의 생각을 깨울 수 있는데, 그런 중요한 기능을 잊고, 
시청률(물론 좋아야 하지만)과 성과에 급급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우리는 유한하다. 언제 죽을 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살아있을 때 행복했으면 한다. 인상 쓰지 말고, 죽으면 아무것도 생각 못 하니까.



IM LEADERS는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가 ‘뉴스와 이야기가 있는 리더’를 만나 IM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kh's IM Leader Inter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시스 목영도 대표  (0) 2015.08.19
김상일 태평소금 대표이사  (0) 2015.07.22
주철환 교수  (0) 2015.06.17
농심켈로그 한종갑 사장  (0) 2015.05.16
이노레드 박현우 대표  (0) 2015.04.29
KPR 신성인 사장  (0) 2015.03.13
Posted by KH 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

kh's IM Leader Interview2015. 5. 16. 07:54

web 건강한 대한민국의 시작은 켈로그와 함께 한종갑 농심켈로그 사장

트위터 페이스북

건강한 대한민국의 시작은 켈로그와 함께 한종갑 농심켈로그 사장

기업은 소비자와 약속을 한다. 약속을 지키는 기업은 소비자의 신뢰를 자양분 삼아, 성장한다.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면 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약속은 지키기보다 깨기 쉬우니까. 
켈로그가 특별한 것은 ‘건강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100년 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켈로그의 약속은 한국에서도 30년 이상 지속 중이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한종갑 농심켈로그주식회사 사장


작년 7월에 신임 사장으로 부임하고, 정신없이 바쁠 텐데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시리얼하면 켈로그가 떠오를 정도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 그럼에도 켈로그가 어떤 회사인지 궁금하다.
한 대표님이 알고 있듯이, 켈로그는 시리얼을 파는 기업이 맞다. 여기에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웃음). 시리얼은 해외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영양과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인을 위한 균형 잡힌 아침 식사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에서도 시리얼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켈로그는 제품 제조 및 판매뿐 아니라 다양한 영양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건강과 식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노력 중이고, 건강한 생활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는 회사라고 보면 된다.


1906년에 설립됐으니, 100년이 넘은 기업이다. 100년이 넘은 것도 놀라운데, 한국에 들어온 지도 30년이 넘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1981년 3월에 회사 설립 이후, 1983년 9월에 안성 공장을 세우고 국내 최초로 콘플레이크를 생산했다. 그뿐만 아니라 명함에 있는 것처럼 국내에서는 농심켈로그로 소개하고 있어, 양 사 관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우리는 농심과 합작으로 설립해서 농심켈로그가 된 것이며, 지금은 지분 대부분과 경영권은 켈로그 본사에서 갖고 있고, 유통을 농심과 함께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웰빙 바람이 불자, 많은 사람이 건강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식품에 집중했는데 대중적이면서도 대표할 수 있는 식품이 바로 시리얼이다. 한국에서의 시리얼 시장 상황은 외국과 비교해서 어떤지 궁금하다.
북미나 유럽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시리얼을 소비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시리얼이 주식이니까.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평균적으로 1년에 500g 정도 시리얼을 먹는다고 하더라. 그게 시리얼 한 팩 정도다. 북미나 유럽 사람들은 1년에 5~6kg을 소비한다고 하니까, 한국은 1/10 정도다.


작년 10월에 있던 ‘포스트’ 사건(편집자주. 2014년 10월에 동서식품이 제품 출고 직전 대장균이 검출된 시리얼을 새 제품과 섞어 판매하다 적발)으로 시리얼 시장이 위축됐다고 들었다.
전체 시리얼 시장 수익이 20% 정도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감소한 시리얼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 광고도 하고, 다양한 오프라인 프로모션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열심히 했다. 회사 매출로만 본다면, 이번 1분기 실적은 정말 좋았다.


최근에 인상적으로 본 켈로그 캠페인은 ‘좋은 하루의 시작’ 캠페인이었다.
소비자에게 아침 식사를 통해 몸의 바이오리듬을 깨워, 건강하고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 캠페인이다. ‘그래놀라’ 제품군을 중심으로 진행했고, 아침 식사의 중요성과 곡물이 풍부한 우리의 시리얼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최근에는 도산공원 근처에 있는 마이쏭과 함께 손잡고 ‘켈로그 그래놀라 브런치’라는 프로젝트도 했다. 그래놀라로 만든 네 가지 요리를 함께 개발해 소비자에게 선보였고, 조리법을 카드로 제작해 나눠주기도 했다.


켈로그의 새로운 모델로, <미생>의 히로인 강소라를 발탁했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일단 강소라는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 우리 제품군인 ‘스페셜K’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부합했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보니, 누구보다도 건강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으며, 우리 브랜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 놀랐다. 좋은 모델과 함께 하게 됐으니, 올해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광고 캠페인에 큰 활력을 불어 넣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켈로그는 소비자층이 워낙 넓다 보니, TV 광고가 중심인 것 같다. 대개 이렇게 한 편의 광고를 만들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하다.
다른 브랜드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TV 광고는 보통 캠페인 시작 6, 7개월 전부터 준비한다. 아마도 그 시기는 우리 마케팅팀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제품의 주요 특장점을 담은 자료를 대행사에 전달하면서부터일 것이다. 대행사와 여러 차례 회의하면서 얻은 다양한 아이디어는 소비자 테스트와 자체 수정을 거친 다음 확정한다. 켈로그의 모든 캠페인은 엄격한 기준의 테스트를 거친 아이디어만을 실제 집행한다.이번에 강소라를 모델로 한 ‘스페셜K’ 광고를 예로 들면, 실제 집행은 3월 중순이었지만, 준비는 작년 10월부터였다. 당시에 수십 개의 아이디어 중 소비자 선호도가 높았던 아이디어를 갖고 최종 광고 테스트를 거쳐, 그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아이디어의 광고가 지금 만나는 광고다.


아무래도 식품 회사다 보니, 소비자 조사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것 같다.
소비자 조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소비자 성향을 파악하고, 소비자 인사이트를 도출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우리의 신제품 출시 및 마케팅 활동에 앞서 조사를 통해 잠재된 위험 요소를 줄여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 조사를 게을리할 수 없다.


TV, 인쇄 광고에 여전히 많은 힘을 쏟고는 있지만,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활동 역시 그만큼의 비중을 갖고 있다. 켈로그는 어떤 방식으로 디지털 마케팅을 하는가.
우리는 크게 디지털 캠페인과 이커머스(e-commerce) 사이트를 통한 프로모션 활동으로 나눠 한다. 작년부터 기존 TV 광고 위주의 마케팅 활동에서 조금씩 벗어나려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소비자들의 미디어 소비 습관에 따라 각 브랜드의 타깃층에 적절한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늘려가는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스페셜K’와 ‘첵스초코’에서 진행한 유튜브 캠페인이다. 두 브랜드 모두 기존 TV 광고를 통해서는 전달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트렌드와 인사이트에 기반한 캠페인 메시지를 각 브랜드의 타깃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디지털 채널을 통해 집행했다. 실제 집행 한 달 만에 두 브랜드 캠페인 모두 200만 뷰라는 높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현재 켈로그 전체 미디어 예산은 어떻게 나눠져 있는지 궁금하다.
현재 전체 미디어 예산에서 70%는 TV 쪽에 집중하고 있고, 디지털이 약 20%, 그 외 미디어(PR 및 아웃도어 미디어)가 10% 정도다. 기존에 TV 예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였는데 차츰 줄어드는 중에 더욱 디지털 비중을 늘리며,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반영했다.


앞서 말했지만, 모든 켈로그 캠페인은 마케팅 부서와 대행사의 공조로 이뤄진다. 지금까지 여러 에이전시와 손발을 맞춰봤을 텐데, 한 사장이 생각하기에 그들과 시너지를 내기 위한 정책이나 방법론이 따로 있다고 보는가?
간단하게 하나로 정리할 수 있다. ‘켈로그 마케팅 시스템 프로세스’다. 예를 들면, 브랜드 메시지 전달을 넘어선 브랜드 경험까지 소비자들이 도달할 수 있게 켈로그에서는 통합경험마케팅(Integrated Experience Planning)을 펼치고 있다. 이런 IEP를 만들기 위한 켈로그 마케팅 프로세스 중 하나가 각자의 전문성이 있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미디어 에이전시, 디지털 에이전시와 캠페인 브리프를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각 에이전시가 이에 맞춰 준비한 것을 모두가 모인 한자리에서 공유하게 한다. 서로가 한 자리에서 의견을 나누고 결정까지 도달할 수 있는 프로세스인 셈이다.
그리고 에이전시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본사 측과 굉장히 복잡한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고자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각자의 롤과 책임성(Responsibility)을 구분해 업무를 추진한다. 긴밀하고도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시너지의 중요한 요소이므로 의도적으로 분기마다 화상 통화 및 다양한 대면 미팅을 통해 전략 및 플랜을 함께 의논하고 기획한다.


그렇다면, 나라별로 마케팅 성공 사례를 공유하고 시도하는 경우도 있는가?
물론이다. 외국계 회사가 갖는 장점 중 하나가 국가별 마케팅 성공 사례 공유다. 실제 다른 나라의 성공 사례를 기반으로 국내화된 캠페인 진행 및 신제품 출시 등으로 국내에서도 성공을 거둔 사례가 꽤 있다.
소셜미디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을 것 같다. 식품과 관련된 회사라면 모두가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마케팅에서만 놓고 봐도, 소셜미디어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프링글스의 경우 페이스북을 얼마 전쯤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푸드 쪽에서 가장 많은 팬 수를 확보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단순하게 팬을 모집하는 것이 아닌 신제품에 대한 피드백도 받고, 소비자 불만에도 빠르게 대응한다. 아끼지 않고 우리도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감자칩 브랜드 프링글스를 인수했다고 들었다.
2012년에 감자칩 브랜드 프링글스를 인수, 합병했다.
프링글스를 인수하면서 켈로그가 글로벌 스낵 기업으로서의 기반을 다지는 기반을 마련했고 생각한다. 이듬해 6월부터 프링글스를 우리가 국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국내 스낵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활동 중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켈로그에서 인수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인수해서 P&G 모델 그대로 시장에 나갔다. 이전 프링글스 팀이 그대로 와서, 독립적으로 마케팅과 영업을 했다. 
관심 있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알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취임하고 나서, 작년 9월부터 통합을 시켰다. 프링글스도 기존 켈로그의 마케팅 브랜드 중 하나로 편입했고, 영업도 그렇게 했다.


허니버터칩 돌풍으로 국내 감자칩 시장이 들썩거렸다. 프링글스도 영향을 받지 않았나?
물론 받았다. 감자칩 시장이 점차 감소하는 시장이긴 했는데, 허니버터칩으로 인해 오히려 상승하는 일이 일어났다. 재밌는 것은 프링글스 점유율은 7% 떨어졌는데, 매출 자체는 떨어지지 않았다. 허니버터칩이 일단 감자칩 시장을 끌어올린 것이다.


프링글스는 올해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프링글스는 수입 감자칩 브랜드로서는 그 입지가 대단하다. 지금까지 여덟 가지가 넘는 다양한 맛과 제품을 한국 시장에 선보였다. 새로운 맛도 선보일 예정이며, 올여름에 프링글스 뮤직 스키퍼 론칭을 기획 중이다. 프링글스 통 자체가 베이스 사운드를 증폭하게 하는 우퍼 역할을 하는 멋진 기획 제품이다. 


프링글스 말고도, 시리얼에서도 신제품이 있는가?
오는 8월에 선보일 예정인 제품으로,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시리얼이 있다. 기존 그래놀라는(한국에서는) 그래놀라가 30% 플레이크 베이스가 70%였는데, 이번 제품은 그걸 뒤집어서 그래놀라가 70%, 플레이크 비중이 30%다. 기존의 함유량을 뒤집은 것이다. 원가를 생각하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제품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국내 시리얼 소비량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다. 그래놀라가 중심에 있고, 또 하나는 ‘스페셜K’다. 기존 ‘스페셜K’에는 과일 말린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 과일들을 온전한 상태로 넣으려면 프리즈 드라잉 상태여야 한다. 한국에서는 그런 장비가 없어서, 직접 투자를 해 장비를 만들었다. 그래서 온전한 과일이 들어간 ‘스페셜K’가 나온다.


1년에 제품 하나만 해도 벅찬 일일텐데, 두 가지 제품을 동시에 내놓는 것이 꽤 흥미롭다.
신제품 말고도 켈로그 시리얼 패키지 리뉴얼을 단행했다. 켈로그의 아이덴티티를 살릴 수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신제품 발매, 패키지 리뉴얼,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캠페인 전개와 타 브랜드와의 콜라보까지, 업계 선두로 가는 중인 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내며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위치로 가고자 노력 중이다.


켈로그 본사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시리얼 중심으로 이제 프링글스까지 더한 모습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켈로그는 어떤 모습으로 가꿔나갈 생각인가.
올 연말까지는 새로운 제품군을 선보이려고 계획 중이다. 일종의 에너지바와 같은 것인데. 말한 것처럼 미국에서 켈로그는 식품 기업으로 운영 중이다. 한국에서야 아직은 시리얼 중심의 회사지만, 앞으로는 종합 식품 회사로 
브랜딩할 수 있게 준비하려고 한다.



IM LEADERS는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가 ‘뉴스와 이야기가 있는 리더’를 만나 IM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kh's IM Leader Inter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상일 태평소금 대표이사  (0) 2015.07.22
주철환 교수  (0) 2015.06.17
농심켈로그 한종갑 사장  (0) 2015.05.16
이노레드 박현우 대표  (0) 2015.04.29
KPR 신성인 사장  (0) 2015.03.13
HS Ad 김종립 대표  (0) 2015.03.13
Posted by KH 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

kh's IM Leader Interview2015. 4. 29. 11:52


  • HOME > 인물 인터뷰
INNORED! What's next?" 박현우 이노레드 대표이사

박현우 이노레드 대표이사의 머릿속에서는 늘 ‘Next(다음)’가 자리 잡고 있다. 
28세에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차린 것도, 31세에 회사 이름을 바꾸고 배너가 아닌 디지털과 영상의 결합을 택한 것도 ‘다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음을 무기로, 그 무기는 경험으로 더해지면서 이제는 그가 선택한, 이노레드가 바라보는 ‘다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봐 이노레드, 다음에는 뭘 할 거야?”.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이번에 이곳(팍스타워)으로 이사 왔다고 들었다. 인터뷰 전에 사무실을 둘러보니 ‘이노레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을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
전에 있던 빌딩에 한 3년 정도 있다가 이쪽으로 이사 왔다. 우리 회사가 인원을 한 번에 많이 늘리는 편은 아니다. 많으면 1년에 7, 8명 씩 충원했는데, 때마침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최대치까지 왔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당시 건물에서 1개 층을 더 쓰면서 확장하는 것과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것 두 가지였다. 내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한 공간(한 층)에 모두 함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규모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정예 집단이 80명 정도가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까 선택지가 많지 않았고, 이곳을 선택했다.

현재 직원은 60명 정도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80명까지는 늘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80명 정도라면 대량 생산이 아닌 크리에이티브에 집중할 수 있는 집단의 적절한 인원이라고 생각한다. 70명 대가 가장 좋을 것 같은데, 80명은 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도 이노레드의 성장세를 생각하면, 80명 넘는 것은 금방 올 것 같다. 만일 넘어가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웃음). 그런데 넘어가도 R/GA나 AQKA처럼 크리에이티브에 집중해 성공하는 회사들이 있다. 우리도 80명이 넘어간다면, 그들처럼 할 수 있도록 그 이후 과정에 대한 학습을 잘 해야 할 것 같다.

매년 그랬지만, 작년에도 국내외 시상식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상을 받는 비법을 따로 가진 것은 아닐까?’ 라는 궁금증까지 생길 정도다.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일단 지금까지 상을 목표로 진행한 캠페인은 없었다. 나는 상보다 시장에서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시장에서 성공은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 사업에 기여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소기 때문이다. 고객사에게 광고제 상을 받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자고 제안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박 대표가 생각하기에 이노레드의 프로젝트들이 상을 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음…. 원 팀 플레이(One Team Play)가 아닐까? 나를 비롯해 서강민 부사장이나 이노레드의 모든 CD가 우리가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진행하는 프로젝트 수는 많지 않지만, 퀄리티 컨트롤(Quality Control)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광고제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에이전시를 만나면서 하는 질문인데, 디지털 에이전시가 상을 받는다는 것이 사업과 상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정도 있다. 고객사 입장에서도 디지털 부문은 여전히 용기가 필요하다. 상은 그것을 담당하는 고객사 담당자에게도 성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같은 대행사로서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요소기도 하고. 사업 초반에는 광고제에서 수상하는 것이 꿈이었을 때도 있었다. 상을 주면 물론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박현우 대표는 20대에 창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트렌드를 앞서나간 셈인데. 원래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던 것인가.
20살 때부터 그냥 ‘뭔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생각했었고, 그 중에 하나가 사업이었다. 연예인도 있고, 스포츠 스타도 있었는데, 그런 재능은 없었으니까(웃음). 사업은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내 기질과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광고관련 사업을 할 줄은 몰랐고. 아이파트너즈에서 병역특례를 하면서 이쪽 비즈니스에 관심이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SK커뮤니케이션즈를 9개월 정도 다니고 난 후 28살에 창업했다.

회사를 창업하면서 영감을 받았거나 본인에게 영감을 미쳤던 것이 있다면?
IDEO다. 그 회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 『유쾌한 이노베이션』을 읽고 나니, 양립하기 힘든 두 단어의 연결이 너무 자연스럽게 보이더라. 이거다 싶었다. 그들은 나 역시 산업에 혁신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즐거운 회사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이노레드의 전신인 이노버스가 창업했을 때가 2007년이었고, 2011년 이름을 이노레드로 바꾸면서 회사의 성격도 바뀐 것 같다.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2011년도에 이노레드라고 이름을 바꿨고, 사업을 시작한 지 8년 정도다. 웹 에이전시로 창업했고, 초기에는 웹사이트와 배너 광고를 만드는 일을 주로 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너 같은 경우는 소비자가 가장 피하고 싶은 광고 영역이었다. ‘디지털 부문에 좀 더 새롭고 신선한 영역이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소셜무비(2011)’다. 영상 기술과 감성을 결합해서 뭔가를 만들었을 때, 새로운 형태의 에이전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나도 회사의 대표였던 적이 있고 지금도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서 아는데, 박 대표처럼 기존에 했던 것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고 본다.
4년 전에 ‘Change’라는 워크숍에서 앞으로 웹사이트와 배너 제작을 하지 않겠다고 선포하면서 변화를 시작했다. 물론,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저항감은 있었다. 나와 함께 시작했던 중요한 OB 멤버들이 그로부터 3개월 안에 퇴사했을 정도니까. 그렇지만, 그때 변화를 선택하지 않고, 기존 방향으로 사업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찔하다. 이후 소셜무비를 활용한 ‘센소터치 3D 소셜무비’, ‘뉴트로지나맨 소셜무비’, ‘필립스 에어프라이어’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변화를 해야겠다는 박 대표의 선택을 증명한 것이 소셜무비의 성공이다.
맞다. 지금까지 총 9편의 소셜무비를 찍었다. LG전자 3D Leadership 캠페인을 하면서, 우스갯소리로 강제 해외 진출까지 했다. 해외에서도 소셜무비를 만들자는 제안이 왔었다. 당시만 해도 모바일로 서비스를 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모바일뿐 아니라 페이스북까지 활성화되면서 제2의 물결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이렇게 변화를 주도하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면?
크리에이티브와 그것을 위한 환경이다. 혹자는 에이전시는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하지 야근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지를 묻는다. 반발심일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증명하고 싶었다. 크리에이티브가 시간과 일의 양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다시피 이런 것으로 우리 회사도 유명세를 탔다. 야근이 없는 회사로 알려졌는데, 야근이 없을 수는 없다(웃음). 다만 이노레드에는 나를 포함해 모두가 야근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에이전시는 크리에이티브가 생명 아닌가. 크리에이티브로 경쟁하려면 직원 한 명 한 명이 중요하고, 이들에게 최상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선택하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이런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박현우 대표가 생각하는, 아니 이노레드가 갖고 있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가.
많은 크리에이터와 에이전시가 자신만의 견해가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는 ‘Next’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연을 할 때 많이 쓰는 제목이 ‘What’s Next?’다. 크리에이티브가 미래를 지향한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노레드는 ‘Next(다음)’를 생각하는 것에서 왔다. ‘소셜무비’나 ‘소셜웹툰’을 만들었던 것도 다음의 기술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던 것이 주요인이었다.

다음이라, 그렇다면 지금 박현우 대표가 생각하는 ‘다음’은 무엇인가?
키워드는 경험이 될 것이고, 그 경험의 종류는 다양할 것으로 본다. 소셜무비는 광고에 내가 출연한다는 경험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고, 노스페이스는 갑작스럽게 나에게 닥친 모험의 경험을 준 것이었다. 스니커즈나 트윅스 같은 경우는 우리가 흔히 보던 제품에 변형을 줘서 새로운 경험으로 재해석하게 해준 것이고. 브랜드에게 다음을 생각하게 만들게 하고, 마술 같은 경험을 주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진행했던 스니커즈나, 트윅스 등의 프로모션은 이노레드의 새로운 팀이 진행한 것으로 들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크리에이티브 프로덕트 팀이다. 프로덕트 디자인을 했던 사람과 디지털 기반의 커뮤니케이션을 했던 사람들이 어우러지면, 재밌는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다양한 사람을 모아서 팀을 꾸렸다. 새로운 문법을 구성하는 사람들인데, 프로덕트 디자이너에서 엔지니어링 지식 기반의 디자이너인 디자인 엔지니어, 그래픽 디자이너 등으로 이뤄진 팀이다. 이 팀이 최근에 이노레드가 선보였던 ‘하기스 모멘트캠’에서 트윅스, 스니커즈 프로모션까지 진행했다.

특히, 하기스 모멘트캠, 인상적이었다.
모멘트캠은 프로토타입의 제품이었다. 반응이 워낙 좋아서 지금은 대량생산까지 이야기가 진행됐다. 기저귀 만드는 회사가 카메라를 만든다는 것이 예전 같았으면 이해하지 못할 문법이다. 제품을 떠나서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여기에 ‘엄마와 아기의 행복한 여정’이라는 하기스의 슬로건을 대입하니, 이것에 대한 공감이 생기고, 생산하는 단계까지 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신기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펼쳐질 것들이 무궁무진해서 모든 제안에 제품 아이디어가 들어가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노레드는 프로젝트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훌륭한 아이디어를 더 많은 브랜드와 함께 진행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 같다.
글쎄. 그런 욕심이 없다. 난 임직원들에게 매출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내가 매출 압박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직원들에게 매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뭔가 다른 문화가 만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원들에게 흔들어야 할 깃발은 ‘크리에이티브’고 그들이 ‘더 크리에이티브’해지고, ‘더 실험을 많이 하고’, ‘더 실패하라’는 주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노레드는 실력만큼이나 좋은 파트너를 고객사로 두고 있는 것 같다. 박 대표는  에이전시와 고객사가 어떤 파트너십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 환경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고객사들이 에이전시가 1, 2주안에 놀라운 아이디어를 가져오길 바란다. 1, 2주 만에 진행하는 구조에서는 관습적이지만, 쓸 수 있는 것은 나올 수 있다. 그렇지만, 새롭고 놀라운 것을 원한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다음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던 고객사와 좋은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고객사라면 에이전시에게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법에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 진출이나 기업 인수 합병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일단 우리가 해외 지사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현재 우리가 만든 프로젝트가 해외로 나가고 있으며, 한국의 고객사와도 충분히 좋은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리적으로 나가있지 않을 뿐이지, 지금 체감상은 글로벌 회사와 같다. 인수나 합병에 대해서는 니즈는 없지만, 관심은 있다. AQKA나 R/GA 같은 회사가 손을 잡자고 하면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물론 우리의 크리에이티브와 잠재력, 그리고 우리의 사람들과 문화를 인정해야 한다.

인수, 합병하면 떠오르는 것이 옐로모바일이다. 업계에서도 이들의 행보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 박현우 대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옐로모바일 구성원을 보면 우리와 같은 쪽에 있는 회사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성실하게 자신의 비즈니스를 해온 회사라는 점이다. 시장에 주는 긍정적인 면을 보면, 기술 기반 회사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기반 회사에도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창업 활성화에도 이바지하는 것 같고. 너무 많은 회사가 순식간에 손을 잡으면서 그 연합의 힘이 얼마나 지속적이고, 강력할지 시장에 증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모바일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갖고 모은 것은 훌륭하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노레드 2015년의 목표는 무엇인가?
더 많이 웃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 회사에 직원들이 경직되지 않고 편안하게 있을 때 크리에이티브가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좀 더 많이 웃으면 더 나은 크리에이티브가 발현된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것에 대한 욕심을 갖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kh's IM Leader Inter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철환 교수  (0) 2015.06.17
농심켈로그 한종갑 사장  (0) 2015.05.16
이노레드 박현우 대표  (0) 2015.04.29
KPR 신성인 사장  (0) 2015.03.13
HS Ad 김종립 대표  (0) 2015.03.13
쓰리세븐 상사 김상현 사장  (0) 2015.03.13
Posted by KH 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

kh's IM Leader Interview2015. 3. 13. 16:25

"PR은 관계다" 신성인 KPR 사장

신성인 케이.피.알.앤드 어소시에이츠(이하 KPR) 사장은 모든 질문에 정성을 다해 대답했다. 그는 짧은 답변 하나도 관련한 자료를 모두 꺼내 들고 일일이 짚어가며 설명했다. 19년을 머문 자리에서, 30년을 달려가는 한국 PR 업계 역사를 이끌고 있는 회사의 수장다웠다. 이전까지는 이런 인터뷰이가 없었기에 새로웠다. 그리고 신뢰가 생겼다. 인터뷰하는 그의 앞에는 자료로 가득 쌓여있었고, KPR의 역사도 함께 있었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1년 반 넘게 이 코너를 진행하면서 많은 마케팅ㆍ광고 업계 사람들을 만났지만, PR(홍보) 업계 쪽은 신성인 사장이 처음이다. 개인적으로는 긴장되면서도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다. 오기 전에 KPR 웹사이트에 보니, 국가대표급 종합 PR 컨설팅 기업이라고 쓰여 있더라. KPR은 어떤 회사인가?
KPR은 1989년 김한경 회장이 설립한 홍보 전문 기업이다. 일단 설립 배경을 들려줘야 할 것 같다. 1988년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여러 분야가 국내 시장에 개방됐다. 그때 김한경 회장은 제일기획에서 국제 PR 고문을 맡고 있었다. 당시에는 광고회사의 핵심은 광고였다. PR은 보조 역할이었다. 김 회장은 PR의 성장 가능성을 봤고, 우리나라에도 PR 회사가 있다는 것을 외국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듬해 KPR을 설립했다.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PR 전문 회사들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흥미로운 것은 김한경 회장이 KPR을 창업할 때, 이미 50대가 넘었고, 게다가 여성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김한경 회장에게 KPR 창립에 관해 물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PR 산업 여명기에 촛불 하나를 켜는 심정을 담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KPR을 설립하면서 ‘Life Is Relationship’을 강조했다. 더 좋은 사회를 위해서도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단순한 것  같지만 이는 곧 KPR의 창업 정신인 사회적 공익을 우선시하는 것과 연결된다.

KPR 창립 때만 해도 국내에 뿌리를 둔 PR 전문회사가 많지 않았다.
맞다. 설립 초기만 해도 PR 전문 회사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국내에 뿌리를 둔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대부분 고객이 다국적 기업이나 외국 정부 기관이었다. 우리는 고객들의 커뮤니케이션 요구에 들어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우리 스스로 그런 미션을 갖고 수행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 현재 KPR은 120명이 넘는 직원들과 12개의 팀, 2개의 연구소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신성인 사장은 창립 멤버는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으며, KPR에는 어떻게 합류했는가.
장교로 군 복무를 하고, 건설 회사에 공채로 입사했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해외에서 근무 했다. 1986년도에 귀국하고 나서 또 해외로 나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가족과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서 고민하던 중 지인의 ‘<비즈니스 코리아>’라는 잡지를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기획 실장으로 해외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다가 1996년 KPR에 합류했다. 김한경 회장하고는 1987년에 한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게 “같이 한 번 일해보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9년이 지나서야 함께 일을 한 것이다.

PR 업무를 했던 경력이 없었는데, 입사 초반에 힘들지 않았나?
내가 건설 회사를 다닐 때 해외에서 했던 일이 PR 분야에서 도움이 되더라. 그때 내가 했던 일들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발하는 것부터 입찰, 계약도 있었다. 이와 함께 현지인 채용에서부터 미디어 대상 설명회, 인허가 업무까지 모든 일을 다했다. 그런 부분들이 PR 업무에 보탬이 됐다. 특히, 계약과 관련이 있거나 비용의 효율성 관리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과거에 일했던 경험이 도움을 줬다.

KPR에서만 19년째다. 그 시간 급격한 변화를 지켜봤을텐데, PR 업계는 어땠나.
PR 업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 PR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본다. 1990년대 말부터 일어난 IT 벤처 붐에서부터 2002년의 한·일 월드컵, 그리고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시작한 소셜미디어 시대까지 PR 업계도 이와 함께 성장했고, 변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아마도 이는 우리 회사의 역사를 살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IT 벤처 붐이 일면서 우리는 IT PR팀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2000년에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헬스케어 PR팀을 만들었다. 지금 엔자임 헬스의 김동석 대표와 함께했었다.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스포츠마케팅팀과 스포츠마케팅 연구소도 만들었다. 인터넷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온라인 이슈 문제가 불거지자 이슈 관리팀을 꾸렸다. 2008년에는 아이폰 열풍을 보면서 온라인 PR팀을 만들었고, MSL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MSL 코리아도 설립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성해지자 CSR 팀을 만들었고, 2012년에는 소셜커뮤니케이션연구소를 설립했다.

KPR의 연혁이 곧 국내 PR 업계의 역사처럼 보인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큰 기점이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그리고 스마트폰의 등장이 PR 업계의 흐름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나.
큰 변화를 줬던 사건 하나를 더 꼽자면 1987년도에 있던 언론기본법 폐지였다. 폐지 이후 미디어가 늘어나면서 PR 업계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아무래도 PR 산업 자체가 언론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사건들도 그랬지만, 언론기본법 폐지가 우리 업계 역사에서는 전환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KPR이 지금 하는 업무는 크게 마케팅, CSR, 디지털 부문으로 영역이 나뉘어져 있던데, 이 중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부분은 어디인가?
해마다 차이가 있다. 경제 상황이 좋으면 소비자 심리와 연관이 있으므로 마케팅 PR 부문 성장이 가장 빠르다. CSR 같은 경우는 크지는 않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디지털 쪽은 두 자릿수 성장을 계속 기록 중이다. 최근에는 고객사들이 어떤 한 부분이 아닌 통합적으로 요구하니, 각 팀에서도 디지털 담당자를 키우고 있다.

그 외에 주목할 부문이 있다면.
스포츠마케팅은 대형 국제 대회가 있으면 성장하고, 그렇지 않으면 주춤하는 경우가 있다. 올해에는 우리나라에서 2015 프레지던츠컵(미국과 세계 연합팀의 골프 대항전)이 열리기로 했다. 그래서 조금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 헬스케어 부문도 디지털 분야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KPR의 성장 동력은 어떤 것이었나?
이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우리의 성장 동력도 인재들이다. 오랫동안 함께 하고, 그들이 성장·발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직률이 다른 회사에 비해 낮다 보니, 고객사에서도 해당 산업도 잘 이해하고 브랜드와 제품 자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대로 있는 우리와 함께 오랜 시간 일하게 됐다. 이런 장기 고객사들이 바탕이 돼서 새로운 고객들이 추가된 것이고. 여기에 한국에 뿌리를 둔 PR 전문 회사라는 점도 성장 동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어느 회사나 인재를 오랜 시간 데리고 있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KPR의 인재 관리 방식이 궁금하다.
‘삶은 관계다’라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회사도 직원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KPR 운영 콘셉트는 가족이다. 예를 들면, 내가 여기서 다른 일을 배우고 더 나은 삶에 대해 고민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유학을 생각하면 추천서를 써주고, 다른 회사에서 레퍼런스를 체크할 때 이야기를 해준다. 재밌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KPR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직원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기업의 조직 문화에 변화를 줬다. 나간 직원들이 고객이 되기도 하고, 가족이니까 잠깐 외출할 수도 있지 않나(웃음).

업계 전반을 살펴보자. 최근 시대가 바뀌면서 광고 회사, PR 회사 등 서로의 업무가 겹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쟁자가 그만큼 늘어난 것인데, PR회사가 갖고 있는 강점을 설명을 해달라.
PR은 신뢰와 가치를 주는 게 중요하다. 우선, PR 전문 회사는 폭넓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광고에 비해서 가격적인 부분에 경쟁력이 있다. 광고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이슈 및 위기관리 능력이 있다. 그렇지만 요즘은 다른 회사도 “우리도 PR하고, 디지털 한다”고 얘기 한다. 중요한 것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먼저 내서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런 것을 강화해나가는 것이 좋다.

회사 소개서를 살펴보면, 상을 많이 받았다. PR전문 회사에게 상이 갖는 의미가 있는가.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바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창업 초기부터 그랬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우리 서비스나 업무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했던 부분이 있었다. 상은 그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것 중 하나다. 그리고 상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준다. 프로젝트 팀원이나 다른 팀에게 동기 부여도 되고. 회사 차원에서는 따로 영업하지 않고도, 잠재적 고객사를 만날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이직률이 낮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객사와 오랜 인연을 맺는다고 앞서 말했는데.
우리 고객의 25% 이상이 5년 이상 됐다. 에어버스 같은 경우는 작년에 20년이 됐다. 엔진오일 회사 셸, 3M 등은 15년 이상 인연을 맺은 파트너들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 및 기관에 대한 아쉬운 점이기도 한데, 어떤 부분에 있어서 일을 잘하면 이것을 이어갈 수 있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대표가 바뀐다든지, 책임자가 바뀌면 다시 비딩하고, 성과보다는 금액을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경우가 있으니까.

업계 이슈 중 하나가 클라이언트가 에이전시를 자주 바꾸는 것인데, KPR의 경우를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부럽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평가시스템을 도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오랜 파트너십의 이유 중 하나로 꼽는 KPR의 평균 근속 기간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근무한지 5년이 되면 행운의 열쇠를 주고, 10년 되면 금 10돈, 15년 되면 금 15돈을 준다. 15돈 받은 사람이 꽤 있다. 팀장들이나 임원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PR 업무의 장점은 오랜 시간 현역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KPR에도 정년 넘어서 근무하는 사람이 있다. PR이라는 업무가 정년과는 상관이 없다.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그 경험은 계속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PR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Bernays)도 100세 넘어서까지 이 일을 했다. 이 업무가 그런 업무다.

그렇다면 PR에 적합한 인재는 어떤 인재라고 생각하는가?
사람을 뽑을 때는 일 처리 능력도 보지만, 나는 오히려 사람의 성품, 친화력, 소통 능력, 항상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고,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PR 업계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초창기 때보다는 훌륭한 친구들이 지원하고 있다. 이 산업이 지속해서 발전하려면, 젊은 인재들을 계속 발굴해야 한다. 우리가 대학생 PR 공모전(2004년부터 시작해서 12회까지 진행 중)을 하는 것도,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실무적으로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가져야 흥미가 생기니까,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수많은 기업과 함께 해봤을 텐데, 함께 일하고 싶은 기업이 있는지.
비영리법인과 함께하는 일이라면 꾸준히 하고 싶다. 우리가 CSR 팀을 꾸린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이 밖에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 윤리적인 기업, 우리 직원들이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기업과 해보고 싶다.

앞으로 5년 혹은 10년의 이 산업은 어떻게 변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세계 시장을 기준으로 보면 커다란 규모의 PR 기업들과 전문성을 지닌 부티크 형태의 회사들로 나뉠 것이다. 아마도 규모와 전문성이 PR 기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처럼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우리 같은 PR 전문 회사가 보강해야 할 것은 디자인, PR 리서치,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온·오프라인 통합도 신경을 써야 하고. 이런 시대가 5년 뒤에 올지 10년 뒤에 올지는 세계 경제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PR 업계는 지속해서 성장할 분야라는 것은 확신한다.

* IM LEADERS는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가 ‘뉴스와 이야기가 있는 리더’를 만나 IM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kh's IM Leader Inter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심켈로그 한종갑 사장  (0) 2015.05.16
이노레드 박현우 대표  (0) 2015.04.29
KPR 신성인 사장  (0) 2015.03.13
HS Ad 김종립 대표  (0) 2015.03.13
쓰리세븐 상사 김상현 사장  (0) 2015.03.13
우림FMG 김윤호 사장  (1) 2015.03.13
Posted by KH 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

kh's IM Leader Interview2015. 3. 13. 16:23

다름’ 으로 ‘공감’ 을 만든 33년 - 김종립 HS Ad CEO

진행. 한기훈 ‘한기훈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사진. 포토그래퍼 김두영 doostudiokorea@gmail.com
정리. 월간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1982년, 한 젊은이가 광고 회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명(知命)을 보낸 그는 한 회사의 대표이사가 됐다.
김종립 HS Ad CEO는 인터뷰 중 웃으면서 “첫 직장이 마지막 직장이 될 것 같다” 고 말했지만, 그가 보낸 33년은 한 회사의 역사면서, 한 산업의 변천사다. 그의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던 이유다.

광고는 대한민국 산업의 역사와 맞물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광고 업계는 IMF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IMF가 1997년 말에 오고,  우리는 1998년 제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후로 대한민국에는 IT 붐이 일었다.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IMF를 기점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로, 20세기와 21세기로 나눠진 것 같다.

이미 잘 알고 있는 회사지만, 오기 전에 HS Ad(www.hsad.co.kr) 사이트를 다시 한 번 살펴봤다. 1962년 락희화학공업사 선전실을 모태로,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내 광고 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한 종합광고회사다. HS Ad는 락희화학공업사 선전실을 모태로, 희성산업을 거쳐 1984년 독립법인 상태의 종합광고회사인 LG애드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2014년은 창립 30주년 이기도 했다. 2002년에 WPP 계열사로 편입됐다가, 2008년 다시 LG그룹으로 돌아왔다. LG그룹으로 편입되던 그 해 사명을 HS Ad로 변경했고. 2008년에 엘베스트(LBest)를 LG그룹이 편입하면서 지금은 광고지주회사인 GIIR, HS Ad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고 있다.


LG애드에서 HS Ad까지 30년이 흘렀다. 30년의 세월을 돌아보기에 앞서 일단, 지난 한 해에 대한 소감을 듣고 싶다. 무척이나 어려웠던 한 해라는 생각이 들어서 김 대표의 생각이 더욱 궁금하다.
다른 광고 회사 대표들과 만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지금까지매해가 어려웠는데, 이구동성으로 2014년은 진짜 어려웠다고 하더라. 연초부터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금융 관련 광고에 제동이 걸렸다. 진행하던 광고는 내리고, 제작했던 광고는 틀지도 못했다. 한 마디로 금융광고 파동이 온 것이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고, 방송국 파업까지 겹치면서 상반기 광고 시장은 얼어붙었다. 희망이었던 월드컵에서도 반전 효과를 보지 못했고. 올해는 우리 업계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광고인으로 지내 온 김 대표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광고 업계를 돌아보면, 김 대표처럼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일한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김종립 대표에 대한 소개도 필요할 것 같다.

1982년 1월에 희성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별다른 재주가 없었는지, 희성산업에서 LG애드로 그리고 지금 HS Ad까지 33년을 한 광고회사의 광고인으로 살았다. 이곳이 내 첫 직장이었고, 마지막 직장이 될 것 같은데(웃음).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우리나라 광고계가 양적으로 팽창했고, 세계화가 활발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또한, IMF를 겪으면서 산업이 위축됐던 때도 있었지만. 내 나름대로는 그런 여러 가지가 농축되고, 압축된 33년이었다고 생각한다.


김 대표의 33년에는 우리나라 광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김 대표가 경험한 국내 광고의 역사를 듣고 싶다.

내가 입사했던 1982년에는 전자제품보다는 화장품이나 생활용품 쪽 광고 물량이 더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자제품이 광고의 중심이 됐고, 그러다가 자동차로 넘어갔다. 자동차의 뒤를 이어 업계의 주류가 된 것은 이동통신이었다. 이동통신이 저물면서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IT 서비스였고.
결국, 광고는 대한민국 산업의 역사와 맞물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광고 업계는 IMF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IMF가 1997년 말에 오고, 1998년 제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후로 대한민국에는 IT 붐이 일었다.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IMF를 기점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로, 20세기와 21세기로 나눠진 것 같다.
업계 내부로 본다면, 20세기 시절에는 광고가 주목받고 잘나가는 업종이었다면,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갑을 관계가 분명해지고, 일하기는 조금 힘든 업종이 됐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말이다.


이제 21세기 이야기를 해야겠다. HS Ad 입장에서. 2014년에 진행한 캠페인들이 상도 많이 받았고 칭찬도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배달의민족’ 광고였다.

‘배달의민족’은 데이비드 오길비가 말한 것처럼 “좋은 광고는 광고주가 만든다”를 실감한 경우였다. 많은 이가 ‘배달의민족’ 성공 요인에 궁금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열쇠는 클라이언트 자신이 브랜드에 대한 콘셉트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함께 일하는 입장에서도 편하다. 자연스럽게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 간의 파트너십은 돈독해지고, 더 좋은 캠페인을 만들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이번 사례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지만, 기업은 브랜드 철학이다. 그게 얼마나 정립 됐는지가 중요한데, 배달의민족은 자사의 브랜드 본질이나 철학을 제대로 정립했다고 생각한다.


‘배달의민족’ 광고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 광고계의 획을 그었다고 생각다.

그렇게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캠페인 성과가 워낙 좋아서 고맙게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배달의민족’ 광고는 류승룡이라는 빅모델과 B급 문화의 절묘한 조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산업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지만,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본다면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해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위축되는 시장을 보고 있으면 광고 회사로서는 위기 의식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 광고의 역사를 살펴보면, 광고 영역은 지면 광고에서 TV 광고로, 그리고 마케팅 서비스에서 신제품 발표회, 이벤트 프로모션까지로 확장됐고,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면서 IMC까지도 포함했다. 2년 전부터 “광고 회사의 다음은 무엇일까?”를 묻기 시작했다. 다른 말로 하면, “광고 회사의 신제품은 무엇인가?”, “광고 회사가 클라이언트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고민이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을 섞는 것 밖에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 회사의 신제품이라. 색다른 관점이다. 그렇다면, 김 대표가 생각한 해결 방안은 어떤 것이었나?

마케팅의 4P를 놓고 봤을 때, 광고 회사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것이 가격(Price)이다. 제품(Product), 장소(Place), 촉진(Promotion)이 남는다. 촉진을 가운데 두고, 제품 쪽으로 접근해 “상품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만일 우리가 제품을 만들면, 광고는 고민 없이 풀린다. 장소는 고객과 우리 클라이언트가 만나는 접점인 유통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것은 쇼퍼 마케팅(Shopper Marketing)으로 지금 한 축이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 쇼퍼 마케팅은 다이렉트, 빅데이터 마케팅 등을 포함한다.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부분에서 해결이 가능한 문제다.
제품은 창의력과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능력을 더 발현할 수 있다. 지난 2012년 우리는 Over The Rainbow(OTR)라는 조직을 발족했다. 이 조직이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가 LG전자에서 나온 스마트폰 ‘아카(AKA)’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모든 전화기가 다 똑같이 생겼는데, 차별화하는 방법, 그리고 미드티어(중급사양) 소비자층에 접근할 수 있는 해답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스마트폰에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본인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답을 끌어냈다. 그래서 마치 사람과도 같은, 캐릭터처럼 생긴 아카폰이 탄생했다. LG전자 연구소와 협업을 통해 만든 이 제품은 성공 여부를 떠나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광고회사가 클라이언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신제품이라고 생각한다.

 
광고회사가 앞으로 고민할 것이 ‘광고회사의 신제품’이라고 말했는데, HS Ad 직원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가는 것을 잘 따라온다고 생각하는가?
회사뿐 아니라 광고계 종사자 중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ATL 담당 AE들 같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어떤 비전을 만들어줘야 할지, 앞으로도 같은 시스템으로 가는 것이 맞는지 고민중이다. 내가 요즘 직원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라는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는 개인의 노력을 보완할 수 있게 잡 로테이션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게 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겠지만.


좋은 이야기다. HS Ad는 국가, 정부 관련 브랜드 작업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광고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런 프로젝트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이런 공공 브랜드 작업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작업은 잘 되고 있는 것 같은가?

솔직히 말해서 잘 안 되고 있다. 브랜드를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로 나는 STEPS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 번째 S는 스토리텔링이다. 해당 브랜드와 연결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T’는 기술이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기술적으로 새로운 신제품이든, 새로운 기능이 들어갔든 메시지 전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는 인게이지먼트다. 소비자가 참여하게 해야 한다, ‘P’는 필로소피(브랜드 철학)다. 브랜드가 가진 철학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S’는 ‘Something New’다. 이도 저도 아니면 뭐라도 새로운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단계를 밟아야지만, 성공적인 브랜딩이 된다. 국가 브랜드는 이 다섯 개 중에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가 브랜드는 이 모든 것이 다 해당하니까.


인터뷰 초반에도 언급했지만, 2014년은 여러모로 힘든 한 해였다. 특히, 광고 업계에서는 제작사뿐 아니라 매체까지도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한 해였으니까. 2015년은 어떨까?
아마도 많은 회사가 조직 개편 때문에 머리가 아플 것이다. 내가 본 시장의 분위기는 규모의 축소(Downsizing)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일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2014년에는 전체적으로 5% 성장했는데, 국내는 줄고, 해외는 늘었다. 다른 회사도 비슷할 것이다. 조직 내에서도 해외 담당이 커질 텐데, 그 일까지 할 수 있는 회사는 손에 꼽는다. 결국, 2015년에도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수수료는 줄고, 완성도에 대한 니즈는 커지고 원가는 늘어나는 상황에서 각 사의 CEO나 CFO들은 합리적인 회사 경영 솔루션을 찾기 위해 머리가 아픈 한 해가 될 것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모를까, 양적인 팽창이 없는 상태에서 갈려면 리스트럭쳐링(Restructuring)이 됐건,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 됐건,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만들 수 밖에 없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이것은 광고회사뿐 아니라, 방송국이나, 신문사도 마찬가지다.


해외 시장의 비중이 커진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해외 에이전시를 인수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도 인수를 당해봐서 아는데, M&A는 성장에 좋은 무기고 축이다. 다만 그것은 인수한 다음에 유지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다. 그게 아니면,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사는 것인지, 클라이언트를 사는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규모 확대를 위한 M&A는 의미가 없고, 우리가 갖지 못한 핵심역량을 보충하기 위한 M&A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광고회사가 힘든 만큼 광고회사의 인기도 떨어졌다. 지속적으로 좋은 인재가 공급돼야 업계가 살아남을텐 말이다.

개인적으로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광고는 3D 업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바뀌었다. 광고만한 3D 업종이 없는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다. 다이나믹하고, 드라마틱하다. 또한, 지금은 광고 회사만큼 스펙을 안보고 직원을 뽑는 곳은 없을 것이다. 진입 장벽도 낮고, 열린 기회의 땅이 됐다. 우리는 그 부분의 장점을 알리는 것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솔직히 광고회사 같으면 원인터내셔널의 장그래 같은 사원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채용한다. 광고 업계는 꽉 막힌 조직이 아니다. 광고는 자기가 갖고 있는 끼와 열정만으로도 승부를 걸 수 있는 일이다.


맞다. 최근 많은 광고 회사가 인재 영입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업계에서 광고 회사의 장점을 알리고, 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제 인터뷰도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 김 대표는 HS Ad가 업계에 어떤 이미지로 비춰지길 바라는가?

난 우리 직원들이 “HS Ad에 입사하길 참 잘했다”, “클라이언트가 저 회사와 일하길 참 잘했다”고만 느끼면 된다. 직원이든, 고객사든 우리를 선택한 것을 잘했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로 남길 바라는가?

글쎄.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 되길 바라는지 생각해보질 않아서…. 우리 임원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 재관여빈(在官如賓, 관직은 손님으로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는 영원히 있을 자리가 아니므로, 내가 떠난 후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왔을 때, 깔끔하게 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려고 한다. 이것은 주인의식과는 다르다. 내가 가슴에 두는 말 중에 청이불각(淸而不刻) 화이불탕(和而不蕩) 엄이불잔(嚴而不殘) 관이불이(寬而不弛)이라는 것이 있다. ‘청렴하되 각박하지 말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말고, 엄격하되 잔인하지 말며, 너그럽되 해이하지 말라’는 뜻으로 개인적으로 이런 선배로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마지막으로 2015년 새해 목표는 무엇인가?

2015년에는 우리 회사가 양적으로 커졌으면 좋겠고, 질적으로 강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GIIR, 엘베스트, HS Ad의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세 조직이 한 색깔이면 재미없지 않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저마다 다른 색을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안에서 키워드를 찾아보려고 한다.

 


2년 전부터 “광고 회사의 다음은 무엇일까?”를 묻기 시작했다.
다른 말로 하면, “광고 회사의 신제품은 무엇인가?”, “광고 회사가 클라이언트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것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고민이었다.
청이불각(淸而不刻) 화이불탕(和而不蕩) 엄이불잔(嚴而不殘) 관이불이(寬而不弛)이라는 것이 있다. ‘청렴하되 각박하지 말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말고, 엄격하되 잔인하지 말며, 너그럽되 해이하지 말라’는 뜻으로 개인적으로 이런 선배로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kh's IM Leader Inter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노레드 박현우 대표  (0) 2015.04.29
KPR 신성인 사장  (0) 2015.03.13
HS Ad 김종립 대표  (0) 2015.03.13
쓰리세븐 상사 김상현 사장  (0) 2015.03.13
우림FMG 김윤호 사장  (1) 2015.03.13
김영길 을밀대 사장  (0) 2015.03.13
Posted by KH 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

kh's IM Leader Interview2015. 3. 13. 16:20

62년의 장인 정신으로 일궈낸 품위 김상현 ㈜쓰리세븐 상사 대표이사

‘대한민국 가방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자사 웹사이트에 회사 소개를 할 수 있는 것은 브랜드 홍보 전략이 아니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2,30대 독자들이 있다면, 당신의 삼촌, 이모 혹은 부모님께 물어보길 바란다 쓰리세븐 가방(www.777bag.com)을 아는지.
아마도 모두 “당연하지”라고 말할 것이다. 쓰리세븐 가방은 모두의 등과 손에 메고 들던 역사와 추억이다.

당시에 든 생각이 ‘앞으로 모든 비즈니스라는 것이 인기가 10년을 넘기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면, 그 안에 또 다른 브랜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다른 브랜드를 찾기 위해 고민했다.

 

김상현 대표는 2세 경영인이다. 1952년에 태어난 쓰리세븐 가방은 그의 아버지가 만든 국내 대표 가방 브랜드다. 6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쓰리세븐은 국내 가방의 역사 그 자체 아닌가? 그렇기에 그에겐게는 안정적으로 경영을 하면서도 이 일을 끝까지 이어간다는 사명감도 필요했다. 지금, 우리 학생들의 등에 쓰리세븐 가방은 찾기 힘들지만, 김상현 대표는 60년을 지탱한 쓰리세븐 가방의 장인 정신을 더 많은 브랜드에 심어놓고, 확장하는 중이다.



내 기억에는 쓰리세븐제포사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말 그대로 쓰리세븐 표 가방은 수십 년간 가방의 대명사였으니까. 지금 세대에게는 아마도 쓰리세븐보다는 허스키 뉴욕(Husky Newyork)이 익숙할 것이다. 일단 회사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쓰리세븐 상사(이하 쓰리세븐)
는 1952년에 창립해 올해로 62년 된 가방 제조 회사다. 쓰리세븐제포사를 거쳐서 국내 시장 판매와 판매망 확장을 위해 티ㆍ에스 유통을 설립했고, 지금은 허스키 뉴욕과 델시, 란체티 등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 알다시피 쓰리세븐은 학생용 가방에서 시작했다. 1980년도에 가방 자율화가 되면서 학생용 가방이 아닌 다른 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남성용 서류 가방, 여행 가방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고, 1988년도에는 좀 더 다각화하자는 의미로 골프 가방까지 영역을 넒혔다. 당시에는 골프가 일부 상류층에서만 즐기던 운동이었는데, 우리가 골프 가방을 다루면 브랜드에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러면 김상현 대표는 언제부터 합류한 것인가?

나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1988년에 회사에 들어왔다. 1990년에 브랜드 사업을 시작하려고 영국과 일본 브랜드를 갖고 와 라이선스 사업부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라이선스와 외국 브랜드에 대한 개념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고생을 좀 했다. 그러면서 1992년에 ‘닥스’를 라이선스 하면서 본격적으로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에 브랜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생각보다는 일찍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렇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짧은 시간에 (골프 가방 중심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그와 함께 당시에 든 생각이 ‘앞으로 모든 비즈니스의 인기는 10년을 넘기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면, 그 안에 또 다른 브랜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다른 브랜드를 찾기 위해 고민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지금의 ‘허스키 뉴욕(이하 허스키)’인가?

맞다. 1980년대 국내에서는 제품 캐릭터를 동물로 쓰는 경우가 드물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보니까, 의외로 제품 캐릭터로 동물을 많이 쓰더라. ‘우리나라에도 언젠가는 이런 류의 캐릭터를 쓸 날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1985년에 브랜드를 만들어 상표를 등록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걸 꺼내서 시작한 브랜드 사업이 바로 허스키라고 볼 수 있다(공식 론칭은 2003년 3월).


브랜드 설명에는 허스키가 썰매를 끄는 시베리안 허스키에서 따온 것이라고 돼 있는데, 허스키를 가방 브랜드로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허스키의 강인함과 카리스마를 담으려고 했다. 초기에는 이런 특징을 골프 가방에 담으면, 스포츠 용품에 어울릴 것 같다며 밀어붙였다. 그런데 이게 생각 외로 잘 됐다. 론칭 3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브랜드 인지도가 생겼다. 골프 백으로 시작해서 서류 가방, 여행 가방으로 제품 라인업을 확장했고, 지금은 노트북 케이스에서 지갑, 벨트까지 다양한 제품이 있다.


과거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1960-70년대에 내 기억으로는 모든 학생이 쓰리세븐 가방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 점유율이 얼마나 됐나?
20%가 넘으면 독점이라고 하는데, 점유율이 30-35% 정도 됐으니까, 정말 대단했다. 서울은 그 이상이었다고 본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우리 가방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 같다(웃음). 당시에는 쓰리세븐이 가방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1980년대에는 TV 광고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0년대에는 학생이 많았다. 초등학교 같은 경우는 입학식을 기점으로 학생 가방에 대한 수요가 굉장했다. 그래서 입학식을 중심으로 약 3개월 동안 TV 광고를 했다. 당시 잘 나간다는 스타들을 데려와 광고 모델로 썼고, TV 광고뿐 아니라 학생 잡지에도 지면 광고를 했다. <소년중앙>, <어깨동무>, <보물섬>과 같은 책에서 우리 광고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일찍부터 광고에 대한 필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쓰리세븐이 탄생한 시기가 전시 때였다(1952년). 먹고사는 것만 해도 벅찬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브랜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제품이라는 것이 브랜드, 제품의 이름 없이는 판매가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랍다.
 

사실, 이것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회사 이름이 ‘777’이다. 슬롯머신부터 생각난다. 실제로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럴 수 있다(웃음). 777은 행운의 숫자 아닌가? 무엇보다 이런 아라비아 숫자가 언어를 떠나 전 세계 사람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공통 언어다. 행운을 주는, 게다가 누구나 이해하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다.


그렇다면, 김상현 대표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선 것이 1990년대 였는가?
1988년도에 귀국하자마자 일은 시작했고, 1992년도에 ‘닥스’ 라이선스 사업을 필두로 백화점 유통과 그 밖의 라이선스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1980년대 중반에 구상했고, 1990년대 중반에 상품화를 시작했다. 어쨌든 지금은 소비자들이 쓰리세븐보다는 허스키를 먼저 떠올리고 있다. 미국에서 캐릭터 활용을 생각한 것을 넣어 골프 가방까지 연결한 것은 의외다.
구상할 때만 해도 골프를 안 할 때니까, 당시에는 생각 못 했다. 1980년대에는 개를 상품에 쓰면 망한다고 했던 시대다(웃음). 1960, 70년대의 가방의 첫 번째 조건은 튼튼함이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의 아이들이 다섯 명이라면, 첫째부터 막내까지 그 가방을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튼튼한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런 것이 허스키라는 캐릭터와 잘 맞았고, 이것을 제품과 연동시킨다면 튼튼하고 강인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골프 가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접목한 것이다.


허스키 골프 가방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 받는 것 같은데, 사실인가?
글쎄, 세계 최고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격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내가 해외를 다니면서 150만 원 선의 골프 가방을 본 적은 없으니까, 가장 비싼 가방인 것 같기는 하다(웃음).


가격이 비싸다고 제품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쓰리세븐이 제품에 대해 갖고 있는 철학은 무엇인가?
아버지가 자수성가를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방을 처음 만들 적에 먹고 살려면 시장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뭐든지 하나를 팔려면 최고 수준으로 만들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시장 형성가를 생각하지 않고, 시장에서 최고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회사의 정책이다. 가격은 두 번째다. 가격을 생각하면, 제품이 좋아질 수 없다. 싼 재료를 써야 하고, 공정과정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품질은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일단 만들어 놓고, 가격은 조정 하면 된다. 제품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이제 최고 수준의 제품을 들고 나갈 시장이 늘었다. 지금까지 내수에 집중했다면, 다음은 해외 시장을 바라보고 있을 텐데.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가?

해외 진출은 당연히 준비하고 있다. 미국 시장과 특히, 중국 시장을 신경 쓰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중국 시장에 우리가 제품을 팔아야 할 시기다. 지난 8월부터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 계속 이야기하는 중이다.


현재 외국인 구매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우리 제품 대부분이 국내 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한류 바람 때문에 많은 외국 관광객이 국내에 오고, 자연스럽게 백화점 방문 숫자도 증가했다. 특히, 중국과 일본 관광객이 우리 제품을 많이 구입하는 편이다. 국내에서 만드는 피혁 제품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허스키 제품군을 살펴보면, 골프 가방 외에도 여행 가방, 서류 가방, 지갑, 벨트까지 꽤 다양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들 고가 제품이다. 마케팅하는 입장에서는 소비자를 유혹하는 데는 싼 가격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허스키 제품이 고가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고가를 형성하는 것은 재료와 기술이다. 재료를 살펴보자. 인간이 쓰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은 재료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품은 일차적으로 어떤 재료를 쓰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똑같은 소가죽을 쓴다고 해도, 이 소가 어떤 환경에 어떤 먹이를 먹고 자랐는지에 따라 가죽의 등급이 달라진다. 모 브랜드는 제품에 사용할 최상의 가죽을 얻기 위해 직접 소를 기른다. 그만큼 재료가 중요하다. 재료 다음이 기술력이다. 얼마큼 장인정신을 갖고 얼마나 그 노하우가 축적됐느냐에 따라 제품 질이 달라진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될 수 없고, 복제도 안 된다. 재료가 있다 해도 기술이 없으면 힘들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를 갖고 있다. 좋은 재료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나오는 제품이니 고가면서, 고급 제품이 되는 것이다.


결국은 가죽을 수급하는 것부터 봉제, 염색, 가공 처리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내부에서 다하니, 하나의 제품이 아닌 작품으로 완성된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쓰리세븐은 드라마 PPL도 그렇고, TV 광고에서 온라인 광고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회사가 갖고 있는 특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있는가?
브랜드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해당 브랜드를 바탕으로 하는 제품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상품만 만든다고 해서 팔리는 시대가 아니다.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고, 단계적으로 브랜드 이야기를 만든다면, 충분히 차별화된 글로벌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명품으로의 도약과 같은 전략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혹시 경쟁 브랜드가 있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학생 가방을 만들었을 때는 우주표 가방, 크로바 가방 등 국내 업체가 있었는데, 지금은 국내 브랜드 찾기가 힘들다. 학생 가방은 전무한 상태고, 서류 가방도 국내 브랜드는 거의 없다. 여행 가방이나 서류 가방은 샘소나이트와 투미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경쟁업체가 됐다. 골프 가방 시장에서는 나이키, 타이틀리스트, 테일러메이드 등 더 큰 산이 눈앞에 버티고 있다(웃음). 이걸 경쟁이라고 해야 할지…. 솔직히 경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브랜드들이니까. 그럼에도 내가 경쟁사로 보는 이유는 그들이 못하는 부분, 그 틈새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도 우리만의 경쟁력 아니겠는가?


회사 규모 이야기가 아니고, 분명히 제품 중심으로 봤을 때 경쟁 맞다고 생각한다. 골프 가방을 하나 살 때도, 타이틀리스트를 살까? 나이키를 살까? 라고 했을 때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경쟁인 것이다.
종종 내게 묻는다. 이게 경쟁이 맞다고 생각하나?라고(웃음).


소비자들이 허스키라는 브랜드를 보고 떠올렸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가?
역시, 브랜드는 품위가 아닐까 싶다. 품위가 있다면 다른 것이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도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방은 어떤 가방인가?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내 몸에 편안한 옷이 가장 좋은 옷이라고 어떤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가방도 마찬가지다. 가방이라는 것이 내 몸에 걸쳤을 때, 착용하는 것에서 기능성까지 모두 편리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이다. 다음이 디자인과 색상 등이고. 내가 불편한데 아무리 예뻐도 소용없다.


쓰리세븐 표 학생 가방은 앞으로 만날 수 있을까?
앞으로 3년 안에 입이 딱 벌어질만한 학생 가방을 만들어 선보일 예정이다. 우리 회사의 모태가 학생 가방 아닌가? 그 제품이 팔리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학생 가방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IM Leaders는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가 ‘뉴스와 이야기가 있는 리더’를 만나 IM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kh's IM Leader Inter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KPR 신성인 사장  (0) 2015.03.13
HS Ad 김종립 대표  (0) 2015.03.13
쓰리세븐 상사 김상현 사장  (0) 2015.03.13
우림FMG 김윤호 사장  (1) 2015.03.13
김영길 을밀대 사장  (0) 2015.03.13
더 커뮤니케이션즈 엔자임 김동석 대표  (0) 2014.11.21
Posted by KH 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