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스 라인하드가 시카고 소재의 Needham Harper Worldwide의 CEO로 있던 1980년대는 미국 경제가 많이 어렵던 시기였다. 경제가 어려우면 광고계는 더 크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1982년 Needham Harper의 경영을 맡게 된 키이스 라인하드는 회사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말했다. “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 16위입니다. 내가 보기에 광고산업은 앞으로 두 계층으로 나뉠 것입니다. 언제나 활력이 있는 기반층은 부티크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예닐곱개의 거대기업이 상위층을 형성할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중간입니다. 우리의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마크 턴게이트의 책 <애드랜드>에서 인용)
키이스 라인하드는 당시 BBDO의 대표였던 앨런 로젠샤인과 함께 자주 만나며 업계 현안에 관한 논의를 하였는데 이 논의가 합병관련 대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두 리더는 1982년 작고한 빌 번벅을 크게 존경하고 있었고, 이런 생각은 빌 번벅의 아들인 DDB의 존 번벅을 대화에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서 1986년 광고계의 ‘Big Bang’이라 불리우는 Omnicom Group이 탄생하게 된다. BBDO, DDB, Needham Harper의 3개사 합병에 의한 옴니콤 그룹의 결성은 광고계는 물론 미국 경제계에도 큰 뉴스로 부각되었다. 옴니콤은 당장 세계 최대의 광고회사가 되었고, 이후 WPP 그룹 등 광고회사 지주회사의 효시가 되었다.
세 개의 회사가 뭉쳐서 만들어진 옴니콤은 두 개의 글로벌 광고회사 네트워크로 개편된다. BBDO Worldwide와 DDB Needham Worldwide다. DDB와 Needham Harper간에는 이전에도 합병 논의가 있었다. 빌 번벅은 생존 시에 Needham Harper의 대표 폴 하퍼와 만나서 두 회사가 크리에이티브를 존재의 이유로 하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 존중해 가며 합병 가능성을 타진했었다. 키이스 라인하드는 합병된 DDB Needham Worldwide의 수장을 맡게 되었고 앨런 로젠샤인은 지주회사인 옴니콤의 대표가 되었다. 이 합병으로 큰 시너지가 발생했다. 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고 클라이언트나 미디어와의 협상에서도 업계 1위의 이점을 최대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부수적으로 오퍼레이션 파트나 해외 부문에서의 중복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강점도 있었다.
단점은? 물론 있었다. 뉴욕을 근거로 한 DDB와 시카고에 근거를 두고 미국 중서부의 감성을 가진 Needham Harper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이런 기업 문화에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키이스 라인하드는 회사의 대표로 뉴욕의 오피스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시카고 오피스에도 여전히 자기 사무실을 유지하며 더 편안하게 느끼곤 했다. 실제로 시카고 오피스가 뉴욕 오피스 보다 인원도 더 많고 수익도 더 많이 내는, DDB 그룹 내 넘버 원 오피스였다.
1986년의 옴니콤 결성으로 시작된 지주회사 중심의 광고계 질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옴니콤, WPP, 인터퍼블릭, 푸블리시스 등 커뮤니케이션 인더스트리의 자이언트들이 언제까지 힘을 발휘할지 궁금해진다. 새로운 질서를 위한 변화는 과연 시작된 것인지, 그 변화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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