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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IM Leader Interview

Merlee Cruz-Jayme, 필리핀 DM9JaymeSyfu 회장

PEOPLE. 광고,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 멀리 크루즈 하이메 'DM9 하이메 사이푸' 회장

광고제의 세세한 이면을 알기 위해서는 행사 깊숙이 관여한 심사위원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이에 2015 부산국제광고제에서 모바일, 인터랙티브 등 5개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멀리 크루즈 하이메 ‘DM9 하이메 사이푸’ 회장을 만났다.
‘광고란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그를 보며,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광고제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가 광고와 인간의 본질 사이에 숨은 진짜배기 ‘사람 이야기’를 듣고 왔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정리. 월간 IM 편집국 im@webs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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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 
멀리 크루즈 하이메 ‘DM9 하이메 사이푸’ 회장


사람들은 ‘모바일’, ‘디지털’이라고 하면 굉장한 ‘하이테크(High-Tech)’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반대인 ‘로우테크(Low-Tech)’로도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산에 온 걸 환영한다. 멀리 크루즈 하이메 회장을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DM9 하이메 사이푸’라는 디지털 광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체어맘(Chairmom)’ 멀리 크루즈 하이메라고 한다.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알렉스 사이푸’라는 파트너와 내가 함께 회사를 세웠다. 전 직원이 서른세 명인 작은 회사지만, 빠르고 내실 있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다.


멀리 크루즈 회장과 DM9 하이메 사이푸는 짧은 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그 비결을 궁금해하는 이가 많은데?
시장이 디지털을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작은 광고 회사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글로벌 회사들의 프로젝트도 따내기 쉬워졌고. 확실히 4대 매체 광고가 주도하던 시대에 비해 광고 회사, 그리고 광고인들의 성장이 쉬운 환경이다.


부산국제광고제와 인연이 깊은 거로 안다.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나?
2013년 부산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수상작인 ‘스마트 텍스트북(Smart TXTBKS)’ 프로젝트는 부산국제광고제를 비롯한 세계 무대에 우리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고, 시간이 흐르며 이번 부산국제광고제에 심사위원장으로도 참여하게 됐다.
당시 ‘스마트 텍스트북’ 프로젝트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계 광고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면?
필리핀 1위 통신사인 ‘스마트(Smart)’의 프로젝트였다. 처음 그들은 우리에게 필리핀의 학생들을 타깃으로 하는 인쇄 광고를 의뢰했다. 이에 우리는 필리핀 학생들이 가진 ‘문제’를 찾고자 했다. 당시 필리핀 학생들로부터 발견한 문제는 그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평균 5킬로미터를 걸어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한참 커야 할 나이의 학생들이 이렇게 긴 거리를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걷는다는 건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난 게 사람들이 이제 많이 쓰지 않는 피처폰의 심(SIM) 카드에 교과서 내용을 넣어보자는 것이었다. 심 카드에 교과서 내용을 입력하고 피처폰 화면을 통해 아이들이 교과서를 보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었다. 당시 텍스트북 캠페인은 일반적인 인쇄 광고보다 스마트의 브랜드 호감도를 크게 높였고, 2013년 칸 국제광고제와 부산국제광고제 그랑프리를 받는 데 성공했다.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캠페인이다. DM9 하이메 사이푸의 캠페인을 보면 디지털 캠페인임에도 대단한 기술이나 어려운 과학적 접근이 아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비틀어 크리에이티브로 활용하는 것 같다.
그렇다. 사람들은 ‘모바일’, ‘디지털’이라고 하면 굉장한 ‘하이테크(High-Tech)’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반대인 ‘로우테크(Low-Tech)’로도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마트 텍스트북 캠페인은 그러한 사실을 현실화한 캠페인이었고.


또 다른 사례가 있을까?
있다. 필리핀의 여성 단체인 ‘가브리엘라(Gabriela)’와 ‘Bury the Past’라는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소위 ‘섹스 테이프’라 불리는 동영상을 찾고자 ‘섹스 스캔들 비디오(Sex scandal video)’라는 검색어를 가장 많이 검색한다(한 달 약 30만 건). 그 때문에 의도치 않게 동영상에 등장한 여성들은 평생 수치심을 안고 살아간다. 당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하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색엔진에서 ‘섹스 스캔들 비디오’를 검색할 때 관련된 영상이 노출되지 않도록 유도한 캠페인이 ‘Bury the Past’다. 방법은 간단했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상대로, 페이스북 내 자신의 프로필 이름 뒤에 ‘스캔들(Scandal)’이라는 단어를 덧붙이게 했다. 이렇게 하면 구글이나 야후와 같은 검색엔진에서 ‘섹스 스캔들’을 검색했을 때 여성들의 동영상이 아닌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SNS 활동이 상위 페이지에 노출되게 된다. 이를 통해 당시 구글, 야후, 페이스북에서 ‘스캔들 비디오’ 관련 검색 결과에서 해당 동영상들이 30페이지 이상 뒤로 밀려났다. 역시 로우테크 안에서 이뤄낸 결과물이다.


아이디어가 대단하다. 그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따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관찰’이다. 공항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릴 때도 사람들이 무엇을 입었나, 무슨 이야기를 하나 다 관찰한다. 광고인은 일상이 공부여야 하고, 모든 곳이 도서관이어야 한다. 인간, 그리고 인간의 일상에 대해 공부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물론 타고나는 것도 있다. 하지만 타고난 사람도 이러한 훈련이나 사고 과정 없이는 최고가 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광고 업계 발전을 위해 광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일도 중요한 것 같다. 부산국제광고제 역시 그런 교육 시스템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렇다. ‘마이애미 스쿨’과 같은 광고 교육을 위한 교육 기관들이 세계 곳곳에 꽤 있다. 하지만 그런 교육 기관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절대적으로 실무 스킬이나 촬영 기법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 국한돼 있다. 광고란 결국 사람에 대한 공부이기에 꼭 그런 교육 기관을 찾기보다는 자신만의 공부법을 연구해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아, 물론 교육 기관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웃음).


광고라는 산업 영역 자체가 그런 것 같다. 멀리 크루즈 회장이 생각하는 ‘최고의 광고’란 어떤 광고인가?
사람의 마음을 터치하고 움직이는 광고다. 앞서 교육 기관을 통해서는 모든 걸 배울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은 결코 누군가가 가르쳐서 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만들고 싶어하는 광고도 그런 광고다.


그런 ‘최고의 광고’가 부산국제광고제에도 있었나?
눈에 띄는 몇몇 작품이 있었다. 이번에 그랑프리를 받은 ‘#Likeagirl’ 캠페인이 특히 돋보였다. ‘2015 칸 국제광고제’에서도 PR 부문 그랑프리를 차지한 거로 알고 있다. 여자아이들에 대한 소비자 인식의 전환을 매우 기발하게 이뤄낸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감성적으로 터치한 작품이다.


혹시 한국의 광고 사례 중에 눈여겨봤던 것은 없었나?
물론 있다. 노스페이스의 ‘Never Stop Exploring’ 캠페인과 인크루트의 ‘취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캠페인이다. 두 캠페인 모두 같은 광고 회사의 작품인 것으로 알고 있다. 노스페이스 캠페인은 ‘체험’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발한 팝업스토어를 디자인했고, 인크루트 캠페인은 자사 메인 타깃인 취업준비생들의 가족애를 자극하는 상황을 통해 감동을 만들어냈다. 역시 소비자들의 마음을 터치하고 움직인 사례다. 특별히 한국 광고의 특징이 잘 드러난 캠페인 같다.


한국 광고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세계 어느 곳에 가도 통하는 ‘팝 컬쳐(Pop culture)’를 많이 갖고 있다. 앞서 언급한 노스페이스나 인크루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세계인 누가 봐도 감동하고 공감할만한 사례가 많다.


세계 시장은 어떤가? 세계 광고는 어떤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는가?
과거에는 크리에이티브 대행사와 미디어 대행사가 분리되는 것이 추세였는데, 이젠 크리에이티브와 미디어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없고 분리할 수도 없게 됐다. 미디어 자체가 크리에이티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미디어 계획 없이 크리에이티브 계획을 짜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철저히 아이디어 중심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부산국제광고제에서도 그런 부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말 나온 김에, 부산국제광고제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광고제에서 개선돼야 할 부분이나 부족했던 부분은 없었나?
우선 좋았던 점부터 말하겠다(웃음). 장-레미 폰 맛 ‘융폰맛’ 창립자와 매트 이스트우드 JWT 월드와이드 CCO를 심사위원장으로 섭외한 것은 정말 좋았다고 본다. 국제광고제에서 그 신뢰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심사위원들의 인지도와 영향력일 텐데, 그들은 광고계에서 ‘거장’이라 불릴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녔기에 광고제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또 하나는 무료 출품 원칙이다. 중소 비즈니스나 주니어들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다는 점에서 매우 좋았다. 다만, 다른 광고제나 어워드와의 연결고리를 조금 더 강화하면 좋을 것 같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행사들이 대규모 행사와 힘을 합해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한 사례가 꽤 있다. 칸 국제광고제나 뉴욕 페스티벌과 같은 대규모 광고제와의 협업 사례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지역적인 색깔보다 국제적인 색깔을 조금 더 강조할 방법을 찾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세계인이 찾아오는 광고제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심사위원장 입장에서, 광고제에 출품한 참가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나?
열심히 공들여 만든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분명하고 명백한 메시지가 중요하다. 아이디어의 핵심이 무엇인지 양식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특히 외국인 심사위원이 많으므로 케이스 비디오(출품작을 설명하는 영상물)를 꼭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 좋다.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비슷한 캠페인을 수도 없이 돌려본다. 그 안에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핵심을 잘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멀리 크루즈 회장은 비교적 최근까지 광고제에 출품했기에, 참가자들의 기분을 더 잘 알 것 같다. 실제 상을 타면 기분이 어떤가?
상은 날 행복하게 만든다. 나를 더 열심히 뛰게 하는 자극제다. 또한, 같은 업계의 경쟁사를 이기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웃음). 에이전시 입장에서 상을 타면 광고주에게 더 많은 프로젝트 요청이 온다. 아주 강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멀리 크루즈 회장을 보면 광고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그 열정이 수많은 상과 명예를 가져다준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조금 철학적인 질문 하나 해보겠다. 멀리 크루즈 회장에게 ‘광고’란 무엇인가?
앞서 아이디어 발상법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말한 이유가 광고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기술, 세상은 바뀌지만,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역사와 시간 속에서 겉모습만을 조금씩 바꿔갈 뿐이다. 사람과 그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이야기는 절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모바일이 세상을 바꿔 놓았지만, 결국 그 모바일을 통해 광고를 하는 이유는 TV, 신문, 잡지, 라디오와 같지 않은가? 그런 맥락에서 광고를 이해해야 ‘사람의 이야기’인 광고를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광고에 대한 철학을 듣다 보니 하나 더 궁금한 게 생겼다. 정말 마지막으로, 멀리 크루즈 회장의 꿈은 무엇인가?
묘비명에 ‘세상에 좋은 일을 했다’는 말이 적히는 것이다. 내가 만든 광고, 캠페인을 통해 좋은 영향력을 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는, 세상이 가진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에이전시가 되고 싶다. 그 범위가 브랜드든, 정부든, 사회든 상관 없이 말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관찰’이다. 공항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릴 때도 사람들이 무엇을 입었나, 무슨 이야기를 하나 다 관찰한다. 광고인은 일상이 공부여야 하고, 모든 곳이 도서관이어야 한다.

기술, 세상은 바뀌지만,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역사와 시간 속에서 겉모습만을 조금씩 바꿔갈 뿐이다. 사람과 그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이야기는 절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모바일이 세상을 바꿔 놓았지만, 결국 그 모바일을 통해 광고를 하는 이유는 TV, 신문, 잡지, 라디오와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