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h's thought

故강정문 대홍기획 대표 20주기 특별 추모 좌담회

국내 광고업에 대한 인식을 바꾼 故강정문 대홍기획 대표. 20주기 특별 추모 좌담회에 함께 일했던 광고인들이 모였다. 

2019년 4월 월간 디지털 인사이트 게재 

 

한기훈 (한기훈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여기 모인 우리 모두 대홍기획에서 故강정문 대표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분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강현구 前롯데홈쇼핑/롯데닷컴 대표

사실 국내에서는 이전까지 광고를 아이디어와 감각이 뛰어난, 남다른 예술성을 타고난 소수들의 영역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죠. 하지만 그 분은 보통 사람들도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누구든 광고를 잘 만들 수 있도록 훈육한다는 것에 굉장히 큰 의미를 많이 뒀었습니다. 광고가 일부 천재들만의 리그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마치 오늘날의 기획사에서 하는 것처럼 전략적인 훈련을 시키고, 그것을 잘 따라 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 주신 분으로 기억됩니다.


 

석중건 ㈜코리아하베스트 대표

이 자리에 있으니 마치 20여 년 전 그때의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 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광고업의 저변이 오늘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광고라고 하면 흔히 마케팅, 상품을 팔고 홍보하는 것이라는 인식 정도가 전부였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국내 광고업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바꾸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대표님과 함께 일할 당시에 그분 특유의 화법이 있었습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그래서 뭘 하자는 거야?” 단순히 제품을 많이 파는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죠. 미국의 광고사 싸치 앤 싸치(Saatchi&Saatchi)를 비롯해 당시 선진 광고사들 사이에서 사용했던 원리와 공식 등을 적극 도입해 집중적으로 직원들을 트레이닝 시키셨습니다. 오죽하면 당시의 대홍기획을 광고 사관학교라 부를 정도였으니까요.


한기훈 (한기훈미디어커뮤이션 연구소 대표)

그렇다면 그분과 함께 일하시면서 각자 어떤 영향을 받으셨습니까?

 


윤병구 와이드이스트 사장

PD라는 직능상 저는 상대적으로 사외 활동이 많았고, 현장 중심으로 근무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대홍기획 재직 시절, 세 번 정도 회사를 그만 두려 사표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다 소주 한 잔 사주시며 같이 일해보자 회유를 하셨었죠. 그 계기로 대홍기획에서는 최초로 영상사업팀을 만들어 다양한 시도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설사 회사를 나가 자그마한 가게 하나를 차리더라도 그 분께 리뷰를 받고 긍정적 피드백을 들은 후에 시작하면 무엇을 하든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저에게는 멘토 같은 분이십니다. 물론 이렇게 빨리 헤어지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만일 아직도 살아 계셨다면 여전히 제 인생의 멘토로서 함께하셨을 겁니다.


김영호 ㈜샴페인 대표

돌아가신지 20년이 된 분을 두고 이러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 광고계에서는 처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 말로 소환한다고 하죠. 여기 모인 분들 각자 가지고 계신 여러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하면 아마 밤을 새도 모자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환해야 할 이유가 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가슴 속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제가 그 분께 가장 많이 지적 받았던 말 중 하나가 ‘왜냐하면’이었는데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사용하는 모든 온라인 아이디가 바로 ‘왜냐하면’입니다. 그 정도로 야단도 많이 맞았던 ‘왜냐하면’이고, 살면서 또 하나의 이름이 되어버린 것도 ‘왜냐하면’일 만큼 저에겐 굉장히 특별한 분이셨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또 그걸 배워서 지금까지 광고 회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회사를 창업하던 당시 찾아가 국화 꽃을 올리고 “이제야 광고 회사 한 번 해보렵니다. 도와주십시오. 배운 것 가지고 한번 살아보겠습니다.”라고 시작했는데, 그게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10년 전 10주기 당시에 여러 선후배님들 모시고 행사를 진행했을 만큼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던 분이고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계신 분입니다.


임영석 식물원282 대표

글쎄요, 무엇 한 가지로 이야기기하긴 어렵겠지만 우선 대홍기획의 공채 1기로 그분이 저를 뽑아 주셨었죠. 앞서 훈육이라는 단어도 나왔는데, 그 훈육의 가장 중심에 있었던 한명으로서 지금도 가끔 꿈에 나타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식은땀을 흘리며 깨기도 합니다. 존경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두려웠던 대상이었기 때문일테죠.

특히 제가 지닌 성격이나 성품이 그 분과는 정 반대였는데, 그렇다고 제가 피할 수 있었던 입장도 아니어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돌이켜 보니 항상 그 분 시야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항상 제게 많은 기대를 해 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아직까지도 대홍기획 출신들이 외부에서 그래도 제 역할을 다하고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찌 보면 그 분의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기훈 (한기훈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대홍기획 동료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이렇게 월간 Di에서까지 그를 이야기하며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국은 故 강정문 대표가 광고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임영석 식물원282 대표

국내 광고계에서 ROI라는 용어를 처음 쓰게 된 것도 그 분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데요. 외국계 대행사로부터 직접 교육도 받고, 그들의 모델을 받아 도입도 하고, 제작 회의를 하더라도 ROI 없으면 시작도 못하게 하는 등. 그 당시 대홍기획보다 먼저 시작한 회사도 몇 있었지만 그 정도로 체계적인 틀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광고를 했던 회사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광고 업계가 전례없이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데 기여를 하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장 저만 보더라도 그 분이 가르쳐 주신 10분의 1만 실행하면 어디에 나가든 굉장히 똑똑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했으니까요.


윤병구 와이드이스트 사장

실제로 그 분이야 말로 우리 광고 산업의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마련해 주신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말하는 PT 트레이너와 같은 역할이라고 할까요? 본인의 직관에 따라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데이터를, 데이터가 없으면 서구 선진 자료를 번역해 공부하면서까지 테크닉을 쌓았으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렇게 쌓은 지식들을 본인 혼자 알고만 있는 게 아니라, 가능하면 모든 직원들에게 공유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노력이 마치 나비효과처럼 여타 광고하는 친구들에게도 전파가 됐었습니다.


석중건 ㈜코리아하베스트 대표

언론인 출신으로 항상 광고 존재에 대한 이유와 신념, 가치를 항상 실천하셨던 분으로, 어떻게 보면 내가 왜 지금 광고를 해야 하는지, 광고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게 하셨던 분입니다. 광고에 대한 철학적 신념과 가치, 윤리적 부분을 당시부터 이해하고 고민하셨던 모습들이 아직까지도 그분이 존경받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PT를 잘하거나 분석을 잘해서, 기술이 좋아서는 아닐 것입니다.


강현구 前롯데홈쇼핑/롯데닷컴 대표

그 분이 지금 소환되고, 또 광고인들이 그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첫번째는 방법론이고 두 번째는 종합적 사고입니다. 먼저, 광고가 잘난 천재 한 명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통의 사람들도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셨고, 그 방법론은 근거에 입각하고 논리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배울 수 있었죠.

다음으로 그 분이 항상 강조했던게 종합적 사고입니다. 쉽게, 흔히들 말하는 광고쟁이라면 클라이언트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좋은 아이디어로 뛰어난 PT를 하고, 훌륭한 그림을 만드는 것이 클라이언트의 근본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의미죠. 실제 클라이언트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광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클라이언트의 제품 혹은 유통을 탓하며 잔소리를 하기도 했죠. 처음에는 ‘뭐지? 조금 주제 넘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제가 다른 일을 하며 지내다 보니 내게 광고쟁이 교육을 시킨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는 방법론을 가르쳐 주신거였죠.


한기훈 (한기훈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그렇다면 故 강정문 대표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기억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기훈 (한기훈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아무래도 한겨레 신문 창간 모금 캠페인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대표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1987년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새 신문 창간을 준비하는 신문 광고를 냈는데, 단시간 내에 광고의 효과를 아주 강력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한겨레 신문 창간 모금 캠페인 카피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출처. 한겨레 신문

강현구 前롯데홈쇼핑/롯데닷컴 대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펩시 콜라 캠페인 역시 그 분의 저력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통상 월드컵 캠페인을 하면 응원 싸인을 받아 선수촌 앞에 걸어 놓는 것 까지가 기본인데, 이 분은 응원 싸인을 해준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을 카운트해 그 숫자를 신문 광고로까지 연결했죠. 어떤 의미로는 IMC를 굉장히 빨리 실천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김영호 ㈜샴페인 대표

많은 사람이 그 분을 유명 카피라이터 혹은 기획자로서의 모습을 많이 떠올리는데, 또 다른 측면에서는 탁월한 아트 디렉터였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진 않으셨지만 그림을 보는 눈 역시 남달랐던 부분이 많았고, 그 부분에 대한 열정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제가 나드리 화장품 담당하던 시절에 리뷰를 하다 새벽 3시까지 일을 하고 퇴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침에 출근해 보면 책상에 ‘이런 건 어때?’라고 묻는 듯이 이미지가 올려져 있기도 했죠. 사실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이건 뭐지? 어떻게 하라는 거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단순히 방향을 잡아주거나 리뷰를 하며 흐 름을 짚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처럼 비주얼로도 이야기하신 적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 분은 한편으로 아트 디렉터이기도 하셨습니다.


석중건 ㈜코리아하베스트 대표

비슷한 경험으로, 대한항공 캠페인을 하던 때에 일정을 맞추기 위해 3일 밤을 꼬박 샜던 적이 있습니다. 편집본 시사회를 했는데 한참 동안 안보이셔서 찾아보니 스토리 보드 앞에서 본인이 그림을 다시 그리고 계셨죠. 당시 대한항공 캠페인이 국적기로서 대략 대한항공보다 빠를 수 없다, 더 편할 수 없다는 식의 메시지였는데, 항공기 시트가 나오는 씬에서 뭔가 의자가 불편해 보인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 시엔 역시 의자가 불편해 보이지 않냐 여쭤 보시지 않고, 여기서 뭘 얘기하려고 하는 거냐 여쭤 보셨죠. 잠도 한 숨 못 잔 상황에서 상처는 받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경험 또한 아픔이 아니라 보석 같이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한기훈 (한기훈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어느덧 올 해가 故 강정문 대표 서거 20주기입니다. 올해 계획하고 계신 추모식이 있나요?


김영호 ㈜샴페인 대표

제가 개인적으로 함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여러 선배분께 여쭤보고 의견을 들었습니다. 유족분들, 그리고 가능하다면 대홍기획 하고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은데 현재 이야기가 좁혀지는 과정에 있고, 조만간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윤병구 와이드이스트 사장

대홍기획 OB 모임의 회장직을 맡아 20주기를 맞아 그 분을 추억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김대표와 함께 계획하고 있습니다. 봄 소풍 다녀온다는 기분으로 버스를 대절해 진달래공원묘지에 찾아가 같이 참배도 하고, 도시락도 하나씩 가져가서 나눠 먹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기훈 (한기훈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네, 감사합니다. 오늘 자리는 사실 지난해부터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남상조 회장님, 이강우 선생님 등 우리 나라 광고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들을 인터뷰하며 그 분들의 이야기를 남기다 보니 故강정문 대표가 살아 계셨으면 꼭 인터뷰를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돌아가신지 20주년이 되는 이 시기에 좌담회 성격의 인터뷰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영향을 받은 많은 이들이 광고계 곳곳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운 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분들을 기억할 ‘광고인 명예의 전당’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 자리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故강정문 대홍기획 대표 20주기 특별 추모 좌담회 참석자 (좌로부터 임영석 석중건 강현구 윤병구 한기훈 김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