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5월에 생각해 보는 리더
지난 가을 이후 우리나라는 매우 극적인 정치 상황을 거쳐왔다. 대통령의 측근에 의한 국정 농단이 드러나고 그에 분노한 민심은 촛불집회로 한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어진 국회의 대통령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최종 탄핵 판결 그리고 바로 이어진 대통령 선거 정국과 마침내 제 19대 대통령 취임까지 그야말로 숨 쉴 틈 없이 달려온 시기였다. 새 대통령 취임으로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고 많은 이들이 행복해 한다. 다시 한번 리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이런 정치적인 상황을 보고 외국에서 많이 부러워하고 칭찬을 한다. 적극적인 참여와 평화적인 시위, 정권 교체까지, 여러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나라로 어필된다.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많이 높아졌을 것이다.
이번 과정을 지나면서 딱 30년 전인 87년 6월 항쟁 당시가 많이 생각났다. 독재정권에 항거해서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핵심으로 하는 6.29 선언을 이끌어 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대홍기획의 사원으로 시청 앞 광장으로 시위에 참여하러 나가곤 했다. 큰 에너지가 결집하여 큰 변화를 만들어 낸 시기였다. 그 때의 헌법이 오늘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그 때 대통령 직선제를 성취해 냈지만 야권의 양 김씨가 분열되어서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 되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실망한 결과였지만 이 때의 열기를 바탕으로 민주 언론에 대한 열망이 커져갔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주주가 되는 민주 언론인 한겨레신문을 만드는 흐름이 시작되었고 이 때 한계레신문 창간을 위한 국민 주주 모금 캠페인 광고를 내가 속해있던 대홍기획에서 담당했었다. 그리고 국민 주주 모금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한겨레신문은 이듬해인 1988년 5월 15일 창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한겨레신문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언론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대홍기획에서 한겨레신문 국민 주주 모금 캠페인 광고를 주도한 분은 故 강정문 대표였다. 故 강정문 대표는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당시 대홍기획 국장이었다. 그는 대단한 일벌레였고 학구파였다. 외국 광고회사의 자료를 구해서 번역을 하고 내부 교육 자료로 만들어 내곤 했다. 80년대, 90년대에 강정문 대표의 이런 작업에 의해서 광고 전문가로 성장한 인재들은 정말 많았다. 나를 포함해서 대홍기획 출신의 많은 광고인들이 직접적으로 그에게 큰 배움을 얻었었다. 나는 故 강정문 대표 덕분에 1997년, 5개월 가까이 DDB 연수를 다녀오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연수를 통해서 미국의 광고회사 조직, 운영, 교육 등 다양한 자료를 구해와서 대홍기획에서 내부 자료로 발행을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광고 산업의 선진화, 과학화의 귀중한 바탕들이 되었다. 그런데 그분은 대홍기획 대표로 많은 일을 하다가 지병을 얻어서 1999년 5월 3일 54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 함께 일했던 많은 후배들에게, 광고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리더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던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5월이면 그분의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또 한 분, 내가 잊을 수 없는 리더는 미국의 광고회사인 DDB의 명예회장 키이스 라인하드(Keith Reinhard)이다.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세계적인 광고회사의 대표로 20년을 지낸 분이다. 또한 1986년 세계 광고계의 빅뱅인 옴니콤 그룹을 출범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 광고계는 미국 경제의 부진과 함께 깊은 침체에 빠져있었는데 키이스 라인하드는 당시 시카고 소재의 ‘니덤 하퍼’ 에이전시의 대표로 DDB와 BBDO라는 두 대행사를 끌어들여서 세계 최대의 커뮤니케이션 그룹인 옴니콤 그룹을 만들어서 BBDO와 DDB Needham의 두 회사로 재편해 1990년대부터 20년간 미국 광고산업의 황금시대를 만들어 낸 주역이다. 키이스 라인하드는 또한 미국 광고대행사협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미국의 광고업계는 물론 세계 광고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내가 만난 키이스 라인하드는 항상 조용하고 겸손한 리더였다. 프레젠테이션 스크립트를 직접 작성해서 여러 번 리허설 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는 내가 멋진 리더를 모시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의 편지이다. 키이스 라인하드는 23년간 단 한 주간을 제외하고는 매주 한편의 편지를 전세계의 DDB 매니저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했다. 그 제목은 Any Wednesday로 리더가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전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회사의 비전, 정책, 특정 광고 캠페인에 대한 칭찬, 사람 소개 등 다양한 이야기를 짧은 글로 작성해서 보내주었다. 이 내용들은 이후 내가 기업의 리더로 생활을 하면서 크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또한 멋진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최고 모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를 리더로 모시고 지낸 20년간의 DDB 생활이 자랑스럽다. 리더는 구성원을 그렇게 만들어 주는 사람인 것이다.
국가나 기업이나 분야별 업계나 모두 리더에 따라 그 모습이 크게 달라진다. 뛰어난 리더 한 명이 많은 사람을 바꿔 놓고 그들이 함께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낸다. 리더가 중요하다.
2017.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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