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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K Story

#7 월트디즈니 (영화부문)

DDK Story

#7 월트디즈니 (영화 부문)

93년 봄에 월트디즈니 영화사 광고를 대행하게 되었다. 영화부문의 한국대표이신 김상일 사장께서 내게 전화를 주셔서 만나고 경쟁 프레젠테이션 없이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 김상일 사장님께 누구로부터 나를 소개받았는지 여쭈어도 웃기만 하셨다.

그해 93년도 여름 개봉하는 월트디즈니 작품은 ‘알라딘’이었다. 이때부터 매년 여름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대작을 광고를 했다. ‘라이언 킹’, ‘뮬란’, ‘토이스토리’, ‘토이스토리2’ 등등 수많은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극영화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척 많았다. '시스터 액트더 록’, 아마게돈’, ‘인생은 아름다워’, ‘스타십 투루퍼스’ ‘콘 에어’ '일 포스티노' '페이스 오프' '랜섬' 등등



이 클라이언트의 마케팅 담당자는 여성이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는 대리였고 9년 후 내가 월트디즈니 광고를 그만하게 되었을 때는 이사로 승진해 있었다. 이 분은 여러모로 대단했다. 목표에 대한 집중, 대행사 존중하되 책임을 다하게 하는 대행사 다루기, 기자들 대하기 등 내게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고마운 클라이언트였다. 10년 가까운 기간 광고회사를 교체하려고 경쟁에 붙이지도 않았다. 담당AE였던 박천택은 많은 고생을 했지만 전천후 AE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박천택은 나중에 광고회사를 만들어서 잘 운영하고 있다. PD 이장혁과 미디어팀의 김성식, 대홍기획 프로모션본부 김태철 등이 월트디즈니 영화로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멤버들이다.

당시는 직배사의 진출이 막 허용된 시점이었다. 한국의 영화인들은 시장을 지키기 위해 많은 활동을 했다. 심지어 직배사의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다가 뱀을 풀어 놓는 소동까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먼 과거 이야기로만 생각된다. 하지만 이후 경쟁을 통해 한국영화는 더욱 강해졌고 이제는 해외로 무척 많이 진출하고 있다. 불과 20년 사이에 바뀐 일이다.

당시 영화 개봉은 토요일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중심지는 종로3가였다. 매 영화 개봉할 때 마다 클라이언트와 우리 팀은 토요일 오전에 서울극장에서 집합했다.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니었다. 표를 사기 위해 얼마나 줄을 섰는지, 첫 회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이 무어라 말하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관찰했다. 그러면 그 영화가 얼마나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판단에 따라 광고 미디어 계획을 수정하곤 했다. 영화 광고는 평균 노출이 1회를 조금 넘는 정도면 된다. 일반 상품에 비해서 아주 적은 편이다. 그리고 광고, 마케팅은 개봉 첫날에 얼마나 많은 관객을 동원하느냐에 70%이상의 자원을 집중한다. 개봉 전 광고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 신문은 작은 사이즈들의 여러 광고가 모여서 신문의 영화광고 면을 구성한다. 신문사에서 영화광고는 광고국이 직접 하지 않고 외부 전문대행사에게 맡겼었다. 스포츠 신문은 직접 담당했다. 당시 스포츠신문은 전성기였다.

개봉에 맞추어서 종로의 극장 앞에서 이벤트도 많이 했다. 발전차까지 동원하는 대형 이벤트도 했었고 어떤 이벤트는 크게 인정을 받아서 우리 팀이 장비, 시설을 그대로 갖고 나가서 덴마크에서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당시 대작 영화의 경우 기자들을 미국으로 초청하는 행사가 종종 있었다. '아마게돈개봉에 앞서서 나는 클라언트와 기자들과 함께 LA를 방문했다. 유명한 극장에서 시사회를 진행하고 다음 날에는 부루스 윌리스를 비롯한 벤 애플렉, 리브 타일러, 스티브 부세미, 빌리 밥 손턴 등 여러 배우들을 인터뷰 하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런 행사는 영화 홍보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국내에서의 시사회도 매우 중요한 마케팅 활동이었다. 남산의 시네마센터 시사실이나 월트디즈니의 시사실에서 많이 했는데 주로 기자들이나 주요 오피니언 리더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리고 Tie-In Promotion이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맥도날드와 계속 타이 인 프로모션을 진행했었고 다양한 브랜드들과 크고 작은 공동 프로모션을 많이 진행했다. 

90년대의 흥행영화 관객은 100만 미만이었다. 최초의 100만 돌파 영화는 서편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90년대 후반에 처음 개최되었다. 나도 초기에 가서 추위에 떨며 광복동 극장가와 해운대를 다녔었다.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축제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한국영화가 20년 만에 엄청나게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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